단편소설---눈을 감으면 보이는것들

  •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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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0.0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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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보이는것들
                    김경희

길옆 닭굴이 무너졌다.
닭굴 앞으론 맑은 내가 흐르고있었다.
닭들이 사처로 몰켜가고 몰켜오고 닭모이와 닭똥이 구름처럼 흩어지고있었다.
청소한적 없는 닭굴…
어디가 비자루를 빌려야지, 하면서도 가지 않고 길가에서 종이 상자 조각 주어서 접어 가지고 길을 쓸기 시작하는데, 물은 어디가고 없다.
남편이 술취해 오가다 옆에 와 쓸어진다
여보, 나 맛있는거 가져왔소,저기…하는 남편의 손에 뭔가 비닐봉투 같은게 들려있고 털썩 자빠지는 남편…
물기가 빠진 콩크리트 바닥에 물먼지가 두텁게 깔리고 물먼지가 마른 세멘트가루가 되여 남편의 얼굴에 들씌우더니 눈을 스르르 덮는다…
이렇게라도 한번은 청소해야 하는거야, 어디선가 이런 말이 들려오듯 싶은데.
문득 저앞에 뉘집 하얀 오리 무리가 보인다…

눈을 뜨니 새벽은 멀었다.카텐 너머 밖은 밤이 한창이다.꿈이 너무 요망스럽다.스위치를 누르니 겨우 새벽 두시.여자는 슬리퍼를 끌며 침실문을 민다.시커먼 객실 구석에 검은 그림자가 쏘파에 앉아 카텐을 빠금이 젖히고 캄캄한 밖을 내다 보다가 이쪽으로 머리를 돌리는데 어둠 속에서 이쪽을 향한 시선이 반짝인다.
낯선 풍경이 아니다. 놀라진 않는데 가슴이 서늘해진다.잠이 안오는 남편이 날 밝기를 기다려 저렇게 카텐을 젖히고 밖으로 시선을 주고 있는 것을 여자는 알고 있다.깊은 여름이라 밤이 짧다고는 하나 온밤 저렇게 날 새기를 기다려 목을 빼들고 있었을 남자,세상이 다 자는 시간에 혼자 깨여 있다가 아내가 깨난걸 보는 남자의 환희는 그 눈빛이 말해주고있다.어둠속에 그렇게 혼자이다가 기다리는 일출보다도 백배는 더 반가운 아내가 깨여 난것이 남자의 세포들에 활력을 주입한다.
광천수병을 들어 남자가 물 한모금 마신다.여자는 그것이 물이 아닌 술인줄을 알고있다.남자가 왜 술병에 술을 광천수병에 넣고 물처럼 마시고있는지 언뜻 짐작이 가기는 하나 여자는 캐여묻지 않고 모른척 한다. 굳이 남자의 빤히 들여다보이는 그 엷은 자존심을 찟고 싶진 않다.남자가 마시는것이 물이 아니고 술인 것은 객실을 지리리 채우는 알콜 냄새로도 충분히 안다.
깨났소? 남자는 깊은 새벽의 정적을 깨뜨린다.아니, 잠기에서 헤매고있는 여자의 신경을 깨운다.목소린 또랑또랑 하다.
두신데, 더 자야죠. 여자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있다.영민한 남자는 그걸 알아차린다.
어서 가 더 자오. 그렇게 말하면서 남자는 또 한모금 넘긴다.시선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밖을 향한다.어둠속에서의 빛 못지 않게 술은 남자에게 유일무이한 친구다.
여자는 말없이 취사칸으로 가서 랭동기 문을 연다.
아무것도 싫으니까, 내 걱정 말고 빨리 가서 자라니깐…남자가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듯 손 사래를 휙 저어 보인다.그러는 남자가 여자는 싫다..
여자는 말없이 자기가 하던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그는 사과 하나 꺼내 보기 좋게 썰고 접시에 담아 거기에 이쑤시개를 하나 꽂아서 남편앞에 내민다.
헤헤, 쎄쎄! 아무것도 싫다던 금방전의 남자는 어디 가고 지금 남자는 입이 벙글써 벌어진다.그런 남자를 여자는 빈 눈동자로 바라본다.
내 요것만 마시고 술 인젠 안 마실게! 남자는 정색해있다.
여자는 그 말을 바람결처럼 들으며 자기방으로 돌아간다.남자가 사과를 씹는 소리가 음악처럼 여자귀에 까지 들린다.


2

오후의 해살이 노곤한데, 남자는 동여 매 놓은 사람 처럼 까딱 않고 밖을 향해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각이 난 뾰족 택을 약간 쳐들사 하고 유난히 노란 눈동자를 들어 해지는 방향을 따라 어딘가 먼곳을 바라보고있다.마치 그런 자세로 굳어진 조각상처럼.
쇼핑을 하고 온 여자는 이옷 저옷 입고 거울을 들여다보는데, 남자가 하도나 조용하니 들어가본다.
뭘 그렇게 정신없이 보고있죠?
남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입가에 넌지시 웃음 머금은 채로 퍽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저 마주켠 아빠트의 지붕 위에 사람 둘이 있는데 참 재미 있소.
여자가 아무리 안경을 추슬리고 보아도 지붕 위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데? 샤워기 태양에네르기 기계밖에 안 보이잖아요?
그래도 남자는 말한다.
자기가 눈이 나빠 그런거지 뭐. 저기 보이잖아? 이쪽에 남자가 있고 저쪽에 여자가 앉아 있잖아? 여자는 가방을 메고 있고….
근데 여자는 아무리 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시력이 나빠도 안경을 끼면 다 보는데요?
여자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낮이면 남자 혼자 있고 여자는 어딘가 갔다가 이렇게 요때쯤 되면 이렇게 온다니까, 아마 먹을거 얻으러 갔다오나 봐. 저 가방에 말이야…
근데 무슨 사람들이 집에 있지 않고 저렇게 지붕 꼭대기에 올라가 있대요?
어디 죄를 짓고 온 사람들이나, 아니지, 가능 하면 북조선에서 도망 쳐온 애들 일지도 몰라.
시력이 좋은 남자는 보는데 시력이 나쁜 여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그럼 먹을걸 좀 갔다 줄가요?
그럴 필요는 없어, 지금 세월에 까딱 잘못 삐쳤다가는 다쳐.지금은 자기 일 말구는 아무것도 삐치지 않는게 좋아. 누가 죽든 살든…
남자는 얄팍한 입술을 다물어 버린다. 그리고는 또 바라 보기에 여념이 없다.
여자는 아무리 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문득 여자의 핸도폰이 울린다.핸드폰 받던 여자의 얼굴이 금시에 환해진다.
미려가 불러요. 저녁 밥 혼자 챙겨들어요.나 저녁 나가 먹어요. 아침에 해놓은 국도 있고 랭장고 안에 반찬도 두루 있어요.
걱정 말고 어서 나가오. 남자는 나가기를 바라는 사람같이 어서 나가란다. 여자는 금방 사온 옷중에서 하나 골라 입고 나간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주말인줄 남자는 알았다. 무슨 요일인지 남자는 그런것에 중시하지 않았다. 아내가 출근을 안하는 날인거 보니 토요일 인줄 알았다.
아내가 바람처럼 나가 버린 후의 집안이 남자는 허허벌판 처럼 느껴졌다. 아내가 없는 집안, 사람 냄새가 없는 집안, 생명이 없는 집안은 정말 싫었다.평소 아내가 출근한후 아내가 퇴근해 올때를 기다리느라고 남자는 진이 빠질 지경이다.기다려서 크게 할일도 없으면서. 그냥 집안에 아내가 있으면 마음이 편해 져서 뭐든지 할수도 있다. 텔레비죤을 시청할수도, 잠을 잘수도…
아내가 나가자 남자는 어둠처럼 엄습해오는 고독을 못 이겨 술을 단숨에 한컵 쭉 내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라지오를 볼륨 높게 놓고 잠을 청했다. 남자가 잠든 집안에 라지오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린다.그런 소리라도 나야 남자는 잠들수가 있었고 깊이 잘수가 있나보다.자나 깨나 남자는 정적이 싫었고 고요가 싫었다.
그렇게 나간 여자는 아홉시반 이라야 들어온다. 잠을 자다가도 남자는 문 소리에 깬다.여자는 남자가 뭘하고 있는지 객실을 건너 제일 안쪽에 있는 침실을 들여다 본다.언제나 문을 활짝 열고 자는 남자니깐. 그럴때 깨여 있으면서도 남자는 자는체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여자는 출입문 쪽에 위치한 자기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에 마주 앉는다. 뒤이어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남자는 그 소리만 듣고도 아내가 영화를 보는지, 메일을 쓰고있는지, 챗팅을 하고있는지 다 알수가 있다.
여자가 챗팅할때면, 남자는 신경이 꽂꽂이 선다. 대체 누구와 저렇게 재밋게 대화를 하고있을가, 무슨 할말이 저렇게 많을가, 저러다가 둘이 만나기라도 하는게 아닐가…
그런 생각을 하고있느라면 남자는 이상하게 뇨기를 느낀다. 그래서 화장실 간다. 화장실은 여자가 있는 바로 옆이라, 일보고 물을 틀어놓는 소리에 여자는 남자가 화장실에 온것을 안다.
남자는 혹 여자에게 할말이 있어도 그냥 문을 밀고 들어 설 때가 없다. 문밖에서 기척을 내고 문을 연다.그것 하나만은 여자는 대단히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남자는 아내가 오늘 친구랑 같이 즐거운 시간을 가졌음을 안다. 아내는 얼굴이 발가우리해서 들어왔다. 와인을 마신것이 분명하다. 아내는 술 안좋아하는데 와인만은 입에 댄다.
그리고 그렇게 기분좋은 날은 오늘처럼 이렇게 양고기뀀이랑 바나나랑 들고 들어온다.남편은 양고기뀀에 술잔을 기울이며 텔레비를 켠다.근데 혼자 시청하는 텔레비는 어떤 내용이라도 들어오지 않는다. 아내가 곁에 앉아 함께 시청해줌 좋겠으련만, 아내가 자기같이 텔레비 보는거 마치 그 무슨 큰 일을 하는것처럼 생각해서 남자는 아내더러 함께 텔레비보잔 말 안한다.술이 속에 조금 흘러들자 남자는 문득 아내를 안고싶어진다.
그래서 남자는 아내방을 노크한다.
왜?여자가 단마디로 묻는다.
한판 할가? 그 말을 하며 남자가 게면쩍어 한다.
여자는 오늘따라 선선히 말을 듣는다. 씻고와요.
남자는 성수나서 씼는다.
입이 눈귀에 가 붙게 웃으며 남자가 두팔을 벌리며 다가오는데, 어머, 이 냄새, 치솔질도 하고 와요 좀! 그래서 남자는 또 가서 치솔질을 한다.
치솔질을 하고와도 그냥 냄새가 난다.
입에서 나는 내가 아니라 술이 넘 들어가서 콤파스가 잘못 돼서 나는 냄새에요. 아유 역해라! 여자는 머리를 돌려버린다.
키스도 애무도 귀찮아한다.남자는 여자를 느끼게 하려고 온갖 애를 다 쓴다. 근데 여자 몸은 말라있다. 여자는 조금 아픔을 느낀다.딱 한달만의 잠자린데 여자가 말라있다.그래도 남자는 좋았다.사정을 하고나니 거뿐했다. 아, 잘수 있을거 같다. 하고 나간 남자는 씻고 자기방으로 가더니 인츰 깊은 잠에 빠진다.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진다.
여자는 남자가 일어서니 오물이나 털어버리듯 인차 씻어버리고 다시 컴에 마주앉는다.컴보다도 잼없는 남자!
오호, 그러고보면 술보다도 맛없는 여자! 아마 남자는 그럴거라고 생각하면서 여자는 피씩 웃음이 나간다.

3

저것 보오, 여자가 달아 날가봐 남자가 여자를 바줄로 묶어 놓았소.
안보이는데? 뭔가 가느다랗고 작은게 보이긴 하는데….사람이면 어떻게 저렇게 까딱 안하고 있을수 있어요?
내가 사진기로 보았기에 틀림없다니까. 저것보오, 남자가 오토바이 모자까지 쓰고있는거 다 보이는데…
여자는 남자를 보고 창밖으로 보이는 먼 지붕위를 보고 하면서 번갈아 보며 아리숭해한다.
여자가 밤이면 달아 날까봐 남자는 저렇게 꽁꽁 묶어 놓은거요.
남자가 큰것을 발견 하듯이 신기해 하는 아내에게 여느때 보다도 자상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는 남자의 목소리도 여느때보다 부드럽고 가라 앉고 평온 하다.
여자의 불룩한 가방안에는 내일 아침 먹을 만두랑 있을게요.
여자가 어디가서 얻어올가요?
거야 모르지, 훔쳐왔던 구걸해서 왔던, 암튼 여자는 나가면 먹을건 얻어오오.
남자는 뭘하구?
남자는 자기네가 없는 사이 누가 저 자릴 차지할가봐 그냥 지키구 있지, 여자가 돌아오면 저렇게 여자를 마주 보고 서있지 뭐!
여자는 반신반의한다. 하지만 너무 생동하게 이야기 하는 남자를 보면서 믿지 않을수도 없다.
그날 밤, 잠결에 여자는 아주 미약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새벽 두시다.여자는 갑자기 공포를 느낀다. 남편이 혹 정신이 돈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그녀를 못견디게 만든다. 잠을 잘 못자는것은 이미 알고있지만 저렇게 남이 다 자는 꼭두 새벽에 거리로 뛰쳐나갈만큼 그는 정서조절을 못한단 말인가?
찾으러 나갈가 하다가 여자는 그만둔다.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그리고 남자가 나간 영문이 아직 확실치가 않다.
여자는 잠을 깼다. 아무리 쥐정뱅이고 아무리 미워도 남편이고 애 아버진데, 남자가 잘못되는것은 두려웠다.
그렇게 이생각 저생각으로 혼곤해질때, 남자가 나갈때처럼 역시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발자욱소리를 죽여가며 자기 방에 들어 가더니 조금후에 잠이 든다.
이튿날 남자의 해석을 듣고 그녀는 웃음이 나갔다. 가게 앞에 고객의 낡은 텔레비를 놓고 들여 놓지 않고 문 잠그고 왔는데, 잃어 버릴가봐 가서 안에 넣고 왔다는것이다.그 걱정때문에 잠 잘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깟 낡은 텔레비 몇푼 간다고, 하물며 마사져 가져온것을, 왜서 저렇게 잔걱정이 많은지 여자는 남자가 안타까워난다.
그런걸 여자는 괜히 두려운 생각을 한것이다.하기사, 남자가 술 많이 마셨을 때, 눈알이 돌지 않을 때면, 여자는 진짜 남자가 정신이 돈거 아닐가 하는 근심을 잘 하니깐.
남자는 술 마시는 방식이 여느 사람보다 특이하다. 가게 문 닫아버리고 핸드폰 꺼버리고 집의 전화선 빼버리고 죽치고 앉아 혼자 술 마시는데, 마시다가는 자고 자고 일어나서는 마시면서 텔레비보고, 한달이고 두달이고 제일 길땐 석달을 술에 묻혀있다.이번엔 두달이 되니깐 더 삐치지 못한다.
처음엔 식사를 못하다가,후엔 안주룰 못 집다가, 인젠 술도 더 들어 안간다. 속이 메스꺼워 술을 끊어야 한다.
련 사나홀 남자는 물을 마시고는 토하고 물을 또 마시고는 또 토하고 그렇게 물이 속에 하루에도 몇십통 들어가는지 모를만큼 물을 마셨다. 그리고는 화장실에 줄창 붙어있었다. 그렇게 속에 들어간 술을 씻어낸단다.
그러고나니 백골에 껍질을 씌워놓은 사람같이 돼버렸다. 그런 남자를 여자는 눈길마저 맞추기 저어한다. 시체를 마주한 느낌이다. 무서웠다.
여자는 남자에게 꿀물을 타 마시게 하고 입살 죽을 써 대접하고 암튼 소화가 잘되는걸로 골라서 음식을 남자에게 들이댔다.그렇게 댓새쯤 지나니 남자는 바깥 출입을 했다.
돈 좀 벌어야지, 아직도 애 학비사 대야지, 애가 대학 필업만 하면 일전도 안벌거다.그런 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남자는 돈 벌러 나간다.
두달이나 문 닫고있었는데 신기한것은 남자를 찾는 고객이 며칠이 안돼 또 줄쳐 있는것이다.
손님들마다 묻는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문 닫았댔냐구?
아, 좀 아파서 입원을 했었습니다 하고 남자는 얼굴 하나 변치 않고 심통한 거짓말을 정말처럼 한다.
남자와 여자가 사는 이 작은 시가지에서는 재간이 손꼽히는데다가 하나 건너 다 면목 있는 사람이라 다른 곳보다 돈을 적게 받는 탓인지, 남자에게는 정말 고객이 많았다.
보름쯤 지나니 남자 베개밑에는 이천원쯤 인민페가 깔려있다.
남자는 은행에 저축할줄을 모른다. 그는 현금을 어느 구석에 잘 간직하는 버릇이 있다.
남자와 여자는 여느집보다 경제관리가 좀 특이하다.남자는 대학간 애 학비만 부담하고 여자는 애한테 다달이 생활비를 대고 집안의 모든 비용을 대기로 했다. 말이 그렇지, 남자는 학비외에도 아내가 우는 소리를 하면 맑은 정신에는 끄떡도 안하다가 술기운에는 쉽게 마음이 허물어져서 화장품 사라고 돈주고 미용하라고 돈 주고 옷 사입으라고 돈주고 암튼 많이 들이댔다.
여자는 여자대로 돈 모이는 스타일이 아니여서 많이 주면 많이 쓰고 적게 주면 적게 썼다. 이런 여자 약점을 알고 남자는 안주려 하다가도 술에 취하면 저도 모르게 돈을 싹싹 꺼내 놓는 버릇이 있었다.
한편, 여자는 또 여자대로, 남자가 술에 취하면 술 취해서 정신이 흐리멍텅한것이 밉고 맑은 정신이면 너무 일전도 안내놓고 돈 쓴거 너무 따지고 들어서 싫었다. 이래도 싫고 저래도 싫었다.
돈 안벌면 안버는가 할텐데 벌때면 좀 주쇼. 나 혼자 로임갖고 모자란데…여자가 돈소리 하면 남자는 딴사람이 되여버린다.
모르오, 난 애 학비만 대구 다른거는 다 모르오.
그다음은 야자가 나온다.
너 내가 어떻게 돈 버는지 아니? 이 손톱 봐라….난 일원이 아까워 오선타면 곡수 다녀올수 있는데, 자전거 타고 8리나 되는 곡수에 텔레비수리하러 갔다왔다. 난 이렇게 손톱으로 버는데, 넌 니 하고픈거 다 하고 물처럼 돈 쓰잖아?
이렇게 시작를 떼니깐 남자는 말할수록 점점 성이 나서, 목소리가 높아진다.
너 애 대학학비하라고 내가 준 3만 8천, 그 돈 다 써버리고 없어졌단 말 첨 들었을때 난 정신이 잃어질번 했다.난 인제 널 안믿는다. 돈 모여도 내가 모인다. 하고 남자는 떠들어댔다.아유, 콱 모여! 하고 여자는 함께 큰소리쳤다.
지금 쓸돈이 모자라는데 쓸건 쓰면서 조금 모여야지, 어떻게 아내는 나가 남의 돈 꿔쓰게 생겼는데 남편이란게 현금 챙겨넣고 모른체 못본체 할수가 있어? 니가 다 남편이야? 하고 박박 대든다.
둘이 한참 큰소리칠때는 깊은 밤중인데 둘은 그것도 의식못하고있다.
니 낯에 집 두채는 들어갔겠다, 다른 여자같으면 내가 이만큼 벌었으면 적어도 삼십만원은 저축이 있을게다. 너 3만원이라도 있니? 하고 남자는 터뜨린다.


4

하지만, 술 마실때면 남자는 큰소리는 커녕 여자에게 잘보이려고 여자 맘을 풀어주려고 애쓴다.
세상에 니같은 여자 없는거 나 안다. 이렇게 몇달씩 들어앉아 술 먹는데도 삐뚠 소리 하나 없이 술 섬기고 오미자 풀어주고 안주 해주고 너 날 살리려 애쓰는거 내 다 안다.니처럼 성격 좋은 여자, 맘이 하늘만큼 너른 여자 세상에 없다. 하고 남자는 여자에게 좋은 말만 한다.
지금도 이렇게 취사칸에 있는 여자를 불러서 사근사근 자기가 본 이야기를 한다.
다른때같으면 이때면 여자 돌아올때가 됐는데, 여자가 안돌아오오, 남자가 여자를 죽여버린거요.
걸 어떻게 아세요?
이젠 이게 며칠인데 여자가 그냥 없지 않소? 남자가 죽여버린거요.보오 저기, 전에는 두사람이던것이 지금은 한사람밖에 없잖구 뭐요?
여자는 아무리 눈을 쪼프리고봐도 하나도 안보인다.
그럼 110에 빨리 전화해요. 사람이 죽었는데…
삐치지 마오, 그럼 우리가 시끄러워지오.남자가 눈을 부릅뜬다.여자는 정색이 된다.
왜 죽였을가? 여자가 바람이라도 피웠나? 남자가 혼자소리로 되뇌이는데 여자는 눈이 까칠해진다.
바람 피우는데 죽이긴? 미움 같이 안살면 되지 죽이긴 왜 죽여요?
글쎄 말이오, 그래도 그 여자 덕에 밥이라도 얻어먹구 사는데 죽이긴 왜 죽여?
그때 마침, 좀 벌레 하나가 눈앞을 휙 날아지난다. 여자는 손바닥을 날려 벌레를 때려죽였다.
남자가 기절을 할시 한다. 죽이긴 왜 죽이오? 다 생명인데, 다 제 멋에 사는데…
그러는 남자를 여자는 힐끔 본다.
대체 저 남자의 진실은 뭘가? 남자가 그렇게 낯설어 보이기 첨이다.
조금만 맞같지 않으면 한다는 말이, 최경리부터 죽이고 그다음 미운 사람을 하나하나 싹 죽여버리고 자기도 죽겠다는 말만 해도 오십번은 될텐데.그말은, 직장에서 인원감소할때 밀려나올때부터 지금까지 입에 달고있는 말이다. 직상에서 조금 받던 로임에 비하면 지금 개인으로 혼자 해서 버는 돈이 세배는 되는데도 남자는 그때 자기를 밀어낸 원단위 령도를 죽이고싶어 한다.
삼십년이 거의 되는 공령인데, 만원 하나 달랑 갖고 영영 직업이 없어진거 생각하면 눈앞이 아찔하기도 하겠지만 사람 그만한 일로 사람 죽일 맘 품는다는것은 어디까지나 아닌것이다.
끝이란 또 다른 시작이였다. 그때 받는 고통이 크기는 하지만 그랬기에 남자는 지금 더 잘 된것이다.
그때, 정리 실업 금방 당했을때, 남자는 입에서 나오는 말이란, 사층에서 뛰여내리겠소, 다 죽여치우고 나도 죽겠소, 혹은 이 아빠트에 불을 콱 놓겠소 그런 말들이였다.
여자가 그렇게 조심을 해도 남자는 누가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아도 자기절로 상처를 곧잘 입군 했다.
그래서 여자는, 당신 아무 압력도 가지지 말아요, 제가 로임 높잖아요? 그러니깐 당신 안벌어도 되구 조금 벌어도 되니깐 넘 걱정 말아요. 당신 버는 돈은 당신 뜻대로 써요. 저의 돈으로 살림 할만해요. 그렇게 남자마음을 차분히 해주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여 여자는 그후부터 남자가 버는 돈을 손에 거머쥐지 못했다. 어찌 보면 이 가정에 그것도 옳은것 같기도 하다. 여자는 씀씀이가 계획적이 못되였다.
하지만 여자는 지금도 그것을 후회는 않는다.
여자는 헤프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돈에 너무 애착 갖는 여자는 아니였다. 쉽게 만족하는 여자였었다.
그날 밤, 늦게 잠자리에 누웠는데, 밖에 날씨가 을씨년스러운 탓인지 몸이 추워났다. 그래서 여자는 적외선 치료기를 허리에 쪼일수록 맞춰놓고 옆으로 누웠다. 천천히 허리가 따듯해왔다. 몸이 나른해나고 편해왔다.잠기가 안개처럼 서려왓다.여자는 꿈을 꾸었다. 꿈에 누군가 자길  죽이려 하고있었다. 상대가 자기 목을 옥죄고있었다. 여자는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소리를 쳐야겠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타들어가듯 마르고 숨이 막혀왔다.
그러다가 눈을 떴다. 눈앞이 캄캄 한데, 매캐했다. 전등을 켰다.근데 방안 전체가 연기로 꽉 채워져있었다.언뜻 스치는 생각에 적외선 치료기 스위츠를 보니 붉은 등이 켜져있었다. 그것부터 껐다. 그다음 이불을 보니 손바닥만한 구멍이 뚫려있다. 구멍 변두리는 아직도 담배꽁초처럼 붉은 불꽃이 타들어가고있다. 여자는 막 베개 수건으로 벌건 불씨를 꺼버렸다. 이불 젖히고 요를 보니까, 요는 지금도 타들어가는데 면적이 손바닥 두개는 되였다.
불길이 확 달리지 않은것이 천만 다행이였다.가슴이 와들와들 떨렸다.
여보, 여보, 하며 여자는 객실을 지나 남자방으로 가며 불이 날번했어요 이불이 다 탔어요. 나 죽을번 했어요. 하고 말했다. 남자는 술 많이 마셨는지,응? 하고 대구를 한다.
여자는 창문이란 창문 다 열어 놓았다.앞뒤로 통풍이 잘 되는 집구조라 연기는 오라지 않아 다 빠졌는데도 탄 냄새는 그후 며칠동안 그냥 찜찜하게 붙어있었다.
불이 날번했다는 말을 여자는 어디가도 뻥긋 할수 없었다. 너무도 큰 일을 저지를번했으니깐. 불이 나면 한집이 타는 문제가 아니였으니깐.
화재사건이 있은후로 남자가 아내를 대하는 태도가 확 달라졌다.
니가 죽었더라면 어쩔번했니? 남자는 여자를 보며 그런 말을 한다. 니가 죽음 어떻게 되니? 내사 쥐정뱅이구 아픈데도 많으니깐 오래 못살겠지만, 니사 오래 살아야지, 그렇찮음 우리 딸이 불쌍해 어쩌지?
죽음 이 따위 돈이 다 무슨 소용있어? 에구, 니 하고픈 거 가져다 다 해라, 남자는 그러면서 삼천원 가져다 여자에게 내놓았다.
말이 그렇지 내사 돈 해서 뭘하겠니? 니 하고픈거 다 해라….
여자는 배시시 웃는다.
남자가 웃는다. 가만히 보니까 넌 돈 주면 이렇게 좋아하는구나, 기다려, 내가 돈 많이 벌어줄게….
여자는 진짜 내심으로 부터 웃는다. 이달에 참으로 빠듯한데, 숨이 펴일것 같았다. 아니, 숨이 빠듯하면 안사면 되는데 여자는 아무리 빠듯해도 자기가 욕심내는건 어떻게 사나 사고야 말았다.
여자가 좋아하는 꼴을 보더니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든다.
한판 할가?
여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니 값이 비싸긴 비싸다. 한번에 삼천원이라니!
여자는 그냥 웃기만 한다.
여자는 남자을 당겨 옷을 벗기고 자기도 벗고 세면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어놓는다. 남자를 잔등까지 밀어주고 머리까지 감겨주고 구석구석 싹 씻어주고….
돈이 이렇게 맥이 쎈가? 참, 돈 벌기는 벌어야 겠네…남자는 중얼거린다.
참으로 오랜만에 남자는 기절하듯 좋았다. 여자가 착착 감기는 느낌, 여자가 좋아서 자길 물고 늘어지는 느낌, 여자가 몸짓으로 자기에게 전달하는 그 짜릿함…애가 스무살 먹도록 왜 이렇게 좋은줄을 모르고 살았던가? 남자는 꿈을 꾸고있는것 같았다.


5

난 니가 진짜 탄복이 간다. 미려의 말속에 들어있는 말을 여자는 안다.하지만 모른척 한다.
뭘?
몰라 물어? 집에 들어가면 술 냄새가 집을 메우는데, 넌 그런 쥐정뱅이를 군소리 없이 맞춰주구, 그러면서도 어쩜 이렇게 밝은 모습일수 있어?
술 마시는것이 그 사람 취미란다.그 사람이 좋다는 일을 왜 막아?
술 그냥 마심 후과 모르니? 일찍 죽는다구!
알어.
알면서 안 막어?
그가 그런다. 그렇게 좋아하는 술 끊고 십년 사느니 차라리 먹고픈 술 맘대로 먹으면서 삼년 살겠대!
아이구, 세상에!
여자는 혀를 차는 친구를 보며 웃는다. 그 웃음엔 여유가 흐른다.
잘하긴 잘하네, 남자는 집에서 술 맘대로 먹고 취하고 그래도 일없고, 여자는 이렇게 나가서 외박도 하고 산에 텐트치고 야숙도 하고 주말이면 수영장에 붙어있고, 안마원도 다니고…
세상에 가장 행복한 남자와 여자잖아!
그래,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잖아.우리 남편이 등산복도 사고 수영표도 사고 미용도 하라면서 전달에 또 돈 오천원 내놓더라.
술만 안 먹음 돈이 얼마 들어올지 모르겠구나. 술 못 먹게 해!
얘, 그럼 안되지. 우리는 왜 한주 다섯날 출근하고 두날은 노니? 우리 남편은 연속 둬달 일했는데 한두달쯤 연속 좀 휴식한다구 뭐 안될것 없잖어?
아이구 아이구, 손들었다. 너 참!미려가 됐다를 연발했다.
여자는 가쯘한 흰이을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미려와 그녀는 적어도 한주 한번은 만나서 식사도 하고 다방가 커피도 마시고 혹은 와인도 한다. 강변 산책은 물론 곁들인다. 그러는 그네둘을 미려의 남편은 동성연애를 한다고 한다.
남자는 아내가 그렇게 즐겁게 나가 도는것이 컴에 죽은듯이 붙어있는것보다는 훨씬 보기에 편하다.
누가 보아도 자기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다.그리고 가장 멋진 여자다.그 여잘 행복한 여자이게 할 자신이 남자는 얼마든지 있었다.
오랜만에 남자는 아내를 곁에 나란히 하고 거리에 나갔다. 남자는 리발하러 가는데 아내더러 배동해달라 했던것이다.
어느 사이 나무잎이 저렇게 짙푸르러 졌을가 할 정도로 여름은 깊어졌다. 해뱇이 찬연해서 눈살이 쪼프러졌다. 남자는 가슴을 쭉 펴고 걷는다. 멋진 아내를 곁에나란히 하고.
앞에서 하얀 승용차가 천첞 미끌어져온다. 차가 이뻐서 여자는 차를 찬찬히 본다. 차 주인은 차를 몰면서도 여자얼굴에 시선을 준다.
빌어먹을 자식, 저 자식이 저것보지? 우리 동창이요, 저 자식이 날 보지도 못하고 자기만 눈이 퀭해 보잖어? 남자가 말한다.
어머, 동창이에요?
응, 한국 다녀와서 차도 사고 그랬지. 우리 동창들중에는 잘 된 놈이지 뭐.
남자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속으론 은근히 기분이 가벼웠다.데리고 다니긴 진짜 멋진 여잔줄을 그는 알았다.
임마, 난 이런 여자를 데리고 산다, 어째? 남자의 표정이나 몸짓은 그런 말을 발산하고있었다. 해빛이 강한 질투를  할만큼 남자는 우뚝해있었다.


6
                               
    여자는 눈앞의 정경에 아연해졌다. 짐작 못하고있은것은 아니지만, 확인하고나니 가슴에 이름모를 바람이 불어쳤다.
    집에서 창으로 내다보이는 그 마주 켠의 아빠트에 여자는 올라온 것이다. 자기 남편이 남자와 여자라고 하던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순간 너무 허허로웠다.
    그것은 세멘트쯤새로 자라난 풀포기였다. 남자의 오토바이모자란것은 꽃잎처럼 핀 풀잎사귀였다. 그 마주켠에 그 풀보다 키가 작은 낮다란 풀이  또 하나 눈에 띄였다.
    그 키큰 풀포기를 감정을 갖고 유심히 응시하고있노라니 해빛아래 그 풀이 자기를 마주보며 씽긋 웃고있었다.
    하늘을 쳐다보니 손 대면 닿을듯안 파란 하늘에 은빛 구름이 시름없이 떠간다.언제가서 개인 하늘이 흐리고 비가 내릴수도 있다는것을 떠올리며 여자는 씁쓸히 웃는다. 남편이라고 남은 날들을 그냥 웃음띤 얼굴이지만 않을것을 여자는 직감으로 느낀다. 하지만 그런것들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것임도 여자는 안다.



                                            2009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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