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용군 항일투쟁의 예술적 기념비 /김호웅

  • 김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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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2.16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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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용군 항일투쟁의 예술적 기념비

                                  * 김호웅 

   

…다리를 총에 맞아 쓰러진 채 붙들려간 동무는 일본 어떤 형무소로 끌려갔다고 할 뿐 그 생사와 진위를 알 수 없었던 바 이번 해방을 맞이하여 일본으로부터 돌아왔다. 척각의 작가 김학철이 바로 이 사람이였다…

ㅡㅡ김사량의 ≪노마만리≫에서

일찍 40년대로부터 ≪척각의 작가≫로 세인들의 이목을 끌어온 김학철은 기나긴 정치적박해와 인간적멸시를 이겨내고 오늘도 70고령에 백발을 날리며 투사의 드높은 자각과 의지로 간거한 문학의 원정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년간의 피타는 노력의 결실로 세상에 나온 그의 장편소설 ≪격정시대≫ (상,하)는 조선의용군의 피어린 항일투쟁을 형상화한 예술적기념비로, 근 반세기에 걸치는 작가의 문학적지향과 탐구의 예술적결정체로 거대한 인식적가치와 미학적가치를 갖고 있다.

김학철은 근 반세기에 걸치는 문학활동을 통하여 번역작품을 내놓고도 2백여만자에 달하는 무학작품을 내놓았다. 그는 수필, 전기문학, 소설 등 다양한 쟝르의 문학작품을 통하여 광활한 시대생활을 반영하고 여러가지 인물형상을 창조하였다. 그러나 그의 전반 작품에는 하나의 주선률이 흐르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조선민족의 해방투쟁에 대한 열렬한 찬미와 그 성스러운 혈전에서 목숨을 바치니 무명영웅들의 정신적미에 대한 예술적탐구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본쩨마와 스찔은 장편소설 ≪격정시대≫에 와서 집대성되고 있으며 란숙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1.

사나운 비바람치는 길가에/다 못 가고 쓰러지는 너의 뜻을/이어서 이룰 것을 맹세하노니/진리의 그늘 밑에 길이 길이 잠들어라/ 불멸의영령

ㅡㅡ김학철, 류신 작 ≪조선의용군 추도가≫에서

조선의용군은 조선과 조선민족을 해방하기 위한 거룩한 투쟁대오의 주요한 한 갈래이며 ≪국제반파쑈전쟁의 아세아싸움터에서 용맹하게 싸운 동방피압박민족의 해방운동에 있어서의 빛나는 전범이다.≫ 김학철은 조선의용군 항일투쟁의 력사적견증인일 뿐만 아니라 그 대오속에서 총칼을 잡고 피흘리며 싸운 투사의 한사람이다. 그는 40년 대중엽 일본감옥에서 풀려나오자 마자 조선의용군용사들이 피로써 적어놓은 영웅업적을 이 땅우에 길이길이 전해야 할 작가적의무를 가슴깊이 느끼면서 ≪담배국≫ 등 그들의 투쟁생활을 형상화한 특색있는 단편소설들을 쓴바있다. 하지만 그 후 모종 력사적 및 정치적 원인으로 말미암아, 더욱이는 당내의 종파주의 경향으로 말미암아 항일전쟁시기 조선의용군계통에서 싸운 조선족혁명가들은 ≪민족주의 분자≫, ≪소자산계급급진분자≫로, 심지어는 ≪국민당간첩≫, ≪외국간첩≫으로 락인받았으며 그들의 피어린 투쟁업적은 여지없이 말살당하게 되였다.

장장 20여년간이나 정치적생명과 창작의 자유를 박탈당했던 작가는 이 억울한 참극을 가슴 아프게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기에 작가는 다시 붓을 잡게 도자 ≪신화가 아닌, 날조가 아닌 진실한 력사적면모 즉 있는 사실 그대로를 꾸밈없이 적어서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영광스러운 전통에 대한 긍지감으로 가득차게 할 때는 드디여 왔다.≫라고 환희에 넘쳐 웨쳤던 것이다.

장편소설 ≪격정시대≫에 나오는 인물, 사건 및 에피소드들을 그 이전에 쓴 작가의 많은 작품들에서 볼 수 있다. 작가는 이번에 그러한 독립적인 인물, 사건 및 에피소드들을 윤색, 보충하고 있으며 ≪핍박에 의하여 량산에 오르≫는 ≪수호전≫, ≪림꺽정≫ 등 고전소설들의 슈제트구성 방식을 본받아 예술적으로 재구성하였다. 소설은 1928년부터 1941년에 이르는 조선, 중국의 시대생활을 폭넓게 펼쳐보이면서 서선장, 문정, 씨동이…등 조선의용군용사들의 집단적형상을 창조하고 있다. 특히 주인공 서선장은 작품의 구성선색을 이어주는 인물로서 뿐만 아니라 작품의 주제해명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소설을 펼치면 1928년 초봄의 어느날 원산 앞바다가에 그림을 그리려 나온 보통학교 4학년 학생 서선장이와 만나게 된다. 고양이수염을 깎기도 하고 벌집을 뚜지기도 하는 ≪무사분주하고장난이 심≫한 선장이, 그래도 총명이 뛰여나 작문만은 제일 잘 짓는다. 그런데 그 당시 날따라 혹심해지는 일제의 식민통치와 그에 대한 조선인민들의 반일운동의 물결은 선장이로 하여금 민족의식에 눈뜨게 한다. 특히 마을의 진보적인 애국청년 한정희와 담임교 김영하의 교양과 영향밑에 선장이는 모름지기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게 된다.

선장이가 서울에 사는 변호사의 처 숙자아주머니네 집에 양자로 들어가서 공부하게 된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 였다. 서울에서 선장이는 친일주구 강교장을 밀어내는 반일학생운동에 참가하며 또 광주학생운동의 소식에 가슴을 끓이기도 한다. 특히 원산부두 로동자들이 총파업을 단행했을 때 일본선원들이 배고동을 울려 성원하던 일에서와 체포령이 내린 유명한 독립운동가 리재유 등을 자기 저택에 숨겨두었다가 발각된 일본인 스기우라교수의 사건에서 선장이는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제의 침략야심이 더욱 로골화됨과 더불어 간도의 만보산사건, ≪9.18≫사변이 일어나며 김영하를 비롯한 애국청년들이 체포, 투옥된다. 괴로움에 모대기던 선장이는 중국 광주의 황포군관학교에서 조선젊은이들이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이며 상해의 홍구공원에서 조선젊은이 윤봉길이 폭탄을 던져 상해파견군사령관 시라가와대장을 포함한 일본군장령 10여명을 살상했다는 소식이며에 접한다. 하여 피끓는 선장의 가슴은 한껏 부풀어오른다. ≪남들은 다 목숨을 걸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데 나만 안일하게 여기서 공부를 해? 수치스러운 일이다. 도저히 량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폭탄도, 권총도 다 손에 넣을수 없으니까… 중국으로 건너가자, 림시정부를 찾아가자, 황포군관학교로 찾아가자, 가면 무슨 수가 나겠지, 가자!≫ 이처럼 소설은 천진란만한 소년 선장이가 독립운동의 길에 나서게 된 과정을 실감있게 보여주면서 작품의 배경을 30년대 중엽의 상해에로 옮기고 있다.

≪9.18≫사변후 동북의 조선인 반일독립운동은 세 갈래로 나뉘여졌다. 한 갈래는 동북지구에 계속 남아 투쟁을 벌렸고 한 갈래는 상해 광주로 남하했다가 후에 남경 등지로 전이하였다.≫모진 고생끝에 상해에 이른 선장이는 리춘근, 김혜숙 등 독립운동가들을 만나며 그들의 소개로 남경에 본부를 둔 ≪조선민족혁명당≫의 상해지하조직에 들어가 테로활동에 참가한다. 선상이는 처음으로 ≪시가 1천만원어치의 혜로인이 밀수입 되는걸 눈감아주고 뢰물을 받아서 벼락부자가 된≫ 상해해관의 조선인관 신영호를 혼내주는 ≪사로니까행동≫에 참가한다. 첫 행동에서 선장이는 당황해하고 빈구석이 많았으나 그 후 용감하고 민첩한 조직의 성원들과 사귀는 사이에 어느덧 ≪표범의 넋을 지닌 사슴≫으로, 용감한 테를분자로 자라난다.

상해에서 선장이는 조직의 선전위원이며 중국공산당 당원인 성재수를 만나게 되며 그의 영향밑에서 ≪변증법적유물론≫, ≪유물사관≫등 혁명서적과 ≪국가와 혁명≫, ≪프랑스내전≫, ≪철학의 빈곤≫, ≪가족, 사유제와 국가의 기원≫ 등 맑스주의 사상에 눈뜬다.≫ 말하자면 ≪개인테로는 극소수의 가장 고상하고 가장 용감한 애국자들만이 해낼수 있는 신성한 사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단순한 민족주의자 선장이는 점차 ≪민중을 발동하는 것을 주요한 투쟁수단으로 삼≫는 공산당을 우러러보게 되며 민족주의자 ≪리춘근과 김혜숙에게서 받은 인상이 무색해지리만큼 보다 강렬한 것을 선장이는 성재수에게서 느끼게 된다.≫

남경의 중앙륙군관학교에서의 생활은 선장이의 성격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그는 여기서 김두봉, 한번 등 이름난 공산주의자들과 접촉하게 되며 진일보 맑스주의 서적을 읽게 된다. 1936년 학교를 졸업한 선장이는 국민당군대 소위로 임명 되여 ≪8.13≫상해보위전에 참가하기도 하지만 국민당의 무저항정책과 ≪염통 곪기는 줄은 모르고 그식이 장식으로 벼슬 오를 궁리, 천냥 모을 궁리만 하는≫ 국민당군대의 ≪썩은 늪같이 침체된 생활≫에 염오를 느낀다.

무한의 함락전야, 중국공산당과 주은래동지의 창의 밑에 1938년 10월 10일 국민당정부의 비준을 맡고 조선의용대가 한구에서 정식으로 성립을 선포하였다. 조선의용대는 ≪산해관 이남 각지에 흩어져 활동하던 조선혁명가들 특히는 군사교육을 받은 청년층≫들로 조직 되였다. 조선의용대는 국민당 관할구역에서 활동하게 되였는데 맨 먼저 동방의 마드리드로 불리운 무한을 보위하는 전투에 뒤여들었다. 조선의용대에 들어간 선장이는 전우들과 함께 항전표어를 쓰기도 하고 극을 공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항일투쟁의 물결속에서 선장이는 마침내 중국공산당에 가입한다.

그러나 선장이는 일본어를 능숙하게 장악한 까닭에 국민당군대 군단사령부의 통역-≪수양아들≫노릇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국민당의 소극항전, 적극반공의 정책과 그들의 호화로운 생활은 선장이의 가슴에 분노의 씨앗을 묻어주었다. 선장이는 ≪목숨을 걸고 정의의 전쟁에 뛰여들어 서기까지 남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신세가 한스러웠다.≫ 이는 또한 국민당 관할구역에서 활동한 전체 조선의용대 대원들의 공통한 심정이기도 하였다. 그 무렵 조선의용대내부에서는 자연히 ≪해방구로 넘어가야 한다≫, ≪팔로군과 합류하는게 유일한 출로다≫라고 사상조류가 대두하였다. 이런 정세하에서 1940년부터 1941년 가을까지 팔로군 총부는 조선의용대를 락양을 거쳐 황하를 넘어 태항산혁명근거지로 들어가도록 배치하였던 것이다.

선장이와 그의 전우들은 이와 같이 천신만고를 겪고 기나긴 ≪두름길≫을 거쳐 마침내 인민의 품으로, 공산당의 품으로 들어 간것이다. 이와 같이 장편소설 ≪격정시대≫는 주인공 서선장을 비롯한 조선의용군대원들의 운명과 투쟁생활을 혁명발전중에서 진실하게 력사적으로,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조선의용군의 형성, 발전의 력사적과정을 예술적으로 재현하였으며 그들의 불후의 업적을 소리높이 가송하였는바 작가의 말 그대로 ≪모종 원인으로 조성되였던 력사의 공백을 메울수 있는≫ 거대한 문헌적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2

나는 혁명자를 타고난 천재처럼, 초인간처럼 그 언제나 락관적 정신이 포만된 신적존재로 묘사하는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최소한 내 전우들중에서는 그런 굉장한 인물을 보지 못하였다. 

ㅡㅡ김학철의 ≪항전별곡≫에서 

장편소설 ≪격정시대≫는 제목과는 달리 사시적인 전경소설이 아니다. 소설에서는 거대한 력사적사변이나 대전역을 정면으로 묘사하지 않았으며 위대한 전략가나 거인적인 영웅인물을 부각하지도 않았다. 그와는 달리 중국에서활동한 조선혁명가들과 조선의용군대원들의 운명, 단편적인 전투생활과 해학적인 일화들을 통하여 그들의 성격미를 사실주의적으로 보여주었다.

우선 소설에서는 중국 땅에에서는 활동한 조선혁명가들과 조선의용군대원들의 생활모습과 그들의 희로애락을 풍속화적인 화폭으로 보여주고 있다. 상해 프랑스조계지에서의 생활, 남경 화로강훈련소에서의 생활, 중앙륙군관학교에서의 생활 그리고 전투생활과 행군행활은 그 얼마나 활기와 인정미로 차넘치고 있는가! 그들은 누구라 없이 그리운 고국에 사랑하는 부모형제를 두고 온 젊은이들이기에 고향에서 오는 편지 한 장이 천금같이 귀중한 것이며 또 그들 모두가 피끓는 젊은이들이기에 이성이 그립고 사랑이 그리운 것이다. 그들 중에는 명망이 높은 김두봉선생의 따님에게 ≪뒤구멍으로 편지를 내여 짝사랑을 고백≫한 엉큼한 친구가 있는가 하면 ≪무릇 그 눈에 띄우는 범위 안에 만년필이기만 하며 누구의 것이나를 막론하고 한번 갖다 분해해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괴짜도 있다. 그 외에도 매일 이름을 가는 리강의 일화, 20세기계명구도이며 술고래인 김문의 일화…등은 모두 생활미가 풍기는 조선의용군생활의 진실한 풍속화이다.

다음으로 소설에서는 서선장, 씨동이, 마점산, 문정, 송일엽 등 수십명의 조선혁명가들과 조선의용군용사들의 형상을 창조하였다. 그들은 모두 각이한 곡절과 경난을 겪고 중국 땅에 들어와 항일투쟁에 참가한 20세기의 ≪량산박영웅≫들이며 ≪청석골영웅≫들이다.

씨동이는 선장이와 같은 고향의 태생이다. ≪시커먼 소도적처럼≫생긴 그는 한마음에 사는 쌍년이를 무척 아끼고 사랑하였으나 돈 없고 권리 없는 까닭에 왜놈에게 빼앗기고 만다. 그는 한정희의 영향밑에서 원산부두로동자들의 파업투쟁에 참가하여 선두적역할을 논다. 그는 그 번 파업투쟁에서 부상을 입고 체포되나 ≪칼 물고 뜀뛰기로≫ 병원 2층에서 뛰여 내려 상해로 온다. 소설은 조난당한 마을의 어민들을 구하는 사건을 통하여 처음부터 선이 굵게 씨동이의 성격을 창조하고 있다. 불시에 폭풍우가 부러지고 노까지 잃은 배 한턱이 뭍에 닿으려고 무진애를 쓴다. 폭풍우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배우의 어부들은 배전을 붙잡고 아우성을 치는데 그네들의 부모처자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고 있다. 이때 마을의 어른 한진사가 상금으로 50냥을 걸고 위험에 바진 어민들을 구하려고 한다.

벌써부터 ≪사나운 바다를 노려보며 우리안에 갇힌 들집승처럼 안절부절 못하던 씨동이가 마닐라로프를 어깨에 메고 물속에 뛰여든다. ≪그는 죽을 고비를 넘으며 끝내 사경에 처한 어민들을 구해낸다. 하지만 일이 끝난 후 씨동이는 상금 50원을 받을 받을념을 하지 않는다. 가난에 쪼들린 부모들이 ≪50원이면 입쌀이 여덟가마야.≫ 하고 그 상금을 받기를 원하고 또 한지나사가 상금 50원을 보내오기까지 했지만 씨동이는 ≪엄마가 아무리 불쌍해도 인끔 떨어질 일은 나 못하겠소. 죽는 사람을 구하는데 상금이 다 뭐야. 개코구멍같이!≫하고 내뱉는다. 여기서 우리는 의롭고 씨억씨억한 조선젊은이의 고매한 성격미를 보게 된다.

고달픈 연회생활, 량반대감들의 천시와 희롱, 피비린 전란과 생사 리별의 피눈물… 험악한 세월을 최하층의 인간으로 살아온 가냘픈 기생들! 과연 조국이 그녀들에게 무엇을 주었기에 나라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자기의 사랑과 절개를, 피와 목숨을 바치는 것인가? 이는 그 옛날 임진왜란때의 계월향, 론개로부터 ≪격정시대≫에 나오는 송일엽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눈물겨운 절창으로, 천고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촉석루에서 술잔치를 하다가 만취한 왜장 게야무라 로꾸스께를 껴안고 사품 치며 흐르는 남강에 뛰여 들어 함께 죽었다는 애국기생 론개와 마친가지로 송일엽의 고향 역시 경상남도 진주이다. 론개를 가장 숭상하는 일엽이는 상해 공공조계의 유명한 딴스홀 ≪메트로폴리스≫의 딴서로 있으면서 반일테로활동에 종사한다. 그녀는 선장이네와 배합하여 악마 같은 무라다경부를 미인계로 끌어내다가 황포강에서 통쾌히 처단하기도 하며 상해보위전에서는 위문선전대로, 그 후 조선의용군생활에서는 호라약적인 녀전사로 싸우기도한다.

그런데 이 ≪20세기 론개≫는 ≪크르멘처럼 자유 분방하고 활달≫한가 하면 ≪좀 샘바르고 또 좀 변덕스러웠다.≫ 그녀는 프항스조계지에서 선장이를 만나자마자 홀딱 반해버린다. 그는 불시에 선장이의 등을 끌어당겨 자기 가슴에 붙이고 입을 쪽 맞추기도 하며 야밤삼경에 선장이의 방에 찾아들기도 한다. 하지만 조직의 수요로 무라다경부 같은 악마와 동침해야 하는 일엽이, 그는 선장이에게 더 없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끼며 무서운 심리고통에 모대긴다. 또한 그녀는 자기의 사랑이 성취 될수 없을 때에는 한창 무르익어가는 전보경과 반해량의 사랑을 공연히 시샘하고 질투하기도 한다. 일엽이는 조선의용군에 참가한 다음에도 커다란 모순과 고민속에 빠진다. 번화하고 현란한 딴스홀에서 맘껏 유흥을 즐기던 일엽이에게는 부대의 철 같은 규률과 조직생활이 부자연스럽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하기에 그녀는 전우들을 보고 ≪혁명대오는 왜 이렇게…개인의 자유란게 하나도 없지요?≫ 하고 불평을 부린다. 이처럼 소설에서는 한 녀의용군전사의 애달픈 운명과 복잡한 성격구조를 깊이있게 헤쳐보이면서 ≪악마≫와 ≪천사≫의 대결로 이루어진 그녀의 생명변증법을 진실하게 표현하였다.

요컨대 ≪격정시대≫에 나오는 조선혁명가들은 그 어떤 정치개념의 메가폰으로, 풍운을 휘여잡는 거인적인 존재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정미가 흐르고 자기 생명체의 충동을 느낄줄 아는 평범하고 진실한 인간들이다. 특히 작가는 주인공들의 사회계급적 성격과의 결합속에서 그들의 기질적성격을 생동하고 풍부하게 그림으로써 세속적이면서도 비장한 조선의용군생활의 실태와 평범하면서도 영웅적인 조선혁명가들과 의용군용사들의 군상을 성공적으로 반영, 표현하였다.

3

우스개 즉 유모아가 부족하거나 아주 없는 작품은 읽기가 따분합니다…독자가 따분해 하는 작품에는 아무리 심호한 철리가 담겨있더라도 그것은 실패작이랄밖에 없습니다. 문학작품은 약이 아니므로 상을 찡그리고 억지로 삼킬수는 없는 것입니다.

                  ------김학철의 창작담 ≪문학도끼리≫에서

≪격정시대≫에는 거인적인 영웅형상도 없고 첫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관통된 박력있고 굴곡적인 슈제트선도 없다. 여기에는 오직 순박하고 정직하고 용감하거나 꾀바르고 거만하고 비굴한 각양각색의 인간들의 운명과 그들의 희로애락이 있을 뿐이며 능청맞고 배포유한 해학과 유모아, 날카롭고 신란한 기지와 풍자가 흘러넘치고 있을 뿐이다.

작가는 1985년 단편소설 ≪짓밟힌 정조≫, ≪<천지>문학상≫을 받고나서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남의 장단에 춤이나 추는 따위의 경사로운 작가는 하루 세끼 밥을 먹는 꼭두각시입니다. 앵무새처럼 남의 말을 되받아 옮기거나 하는 약삭스러운 작가는 두다리로 걸어다니는 마이크입니다…한마디로 말하여 작가에게는 개성이 뚜렷한 령혼이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풍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라침판이 있어야 합니다. 그 라침판이란 곧 맑스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입니다.≫ 이와 같이 김학철에게는 ≪어떠한 풍랑속에서도≫드놀지 않는 작가적신념이 있었기에 그 어떤 정치적리념에 의하여 력사를 분식하거나 인물을 우상화, 신격화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영웅성으로 비겁성을 가리우지도 않았고 또 그 대상의 존귀함에 허리를 굽힐줄은 더욱 몰랐다. 김학철의 앞에 나선 인물은 무엇보다도 먼저 생명유기체로서의 생생한 인간이였고 그 인간적인 생활과 기질, 습성, 취미였다.

하기에 륙군군관학교에 광림하여 위엄있게 장편훈유를 하는 장개석각하고 야비하고 너절한 인간으로 락인되는것이다. 말하자만 작가에게는 위엄스레 코수염을 기른 장개석교장각하도 ≪히틀러식으로 챠플린수염을 기른≫희극 배우로 보이고 ≪담배도 안피우고 술도 차도 안마시는 ≫ 장교장의 고아한 습관도 좀스럽고 어리석게만 보인다. ≪환영곡이 그치고 훈유가 시작되니 종관이 앞으로 나와 유리고뿌에 보온병의 물을 따라서 연탁우에 올려놓는데 보니 말간 맹물이다. 장교장은 담배도 안피우고 술도 차도 다 안마시는 까닭에 생전 어디를 가나 맹물대접밖에 못받게 되엿다.≫ 실로 깨고소한 야유이며 조롱이다. 더욱이 장개석특급상장각하는 마라손훈유를 하고 그 훈유가 끝나기전에는 자리를 뜨지 못하게 되여있었으므로 눈뜨고 볼수 없는 희극을 여기서 탄생을 고한것이다. 여해암이라고 하는 학생이 ≪방광이 파렬직전의 상태에 놓였으므로…허리에 찬 빨병을 앞으로 끌어당겨 마개를 빼고 거기다 배설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우에서는 숙연히 훈유를 삼가 듣고 아래서는 수채가 거침없이 페수를 방출하였다.≫고 묘하고 익살맞은 완곡어법 그리고 장중한 기분과 세속적인 기분, 위인의 도고함과 소인의 안타까움이 대조되면서 희극적 뉴안스를 한결 짙게 표현한 것이다.

소설에서는 하나하나의 단편적인 사건을 재치있게 엮고있는데 매 하나의 사건은 모두 상대적독립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선장이의 성격발전ㅡㅡ조선의용군의 형성과 발전이라는 이 기본선에 통일되고 있다. 작가는 수제트의 구성에 있어서 그의 긴장성, 비장감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내포한 희극적 이미지를 발굴하는데 모를 박고 있다. 이를테면 자기 혼자만 호의호식 하겠다고 중국백성들에게 독품을 뿌린 외국상인을 묵과해준 신영호에게 버릇을 가르쳐주고저 의사의 신분으로 찾아간다는 그 자체가 벌써 물씬 해학미를 풍긴다.

    …커리를 마시고나서 의사가 주인을 보고
    ≪선생님, 앉은자리에서 웃옷만 좀 헤치시지요.≫
    말한 다음 곧 조수를 향하여
    ≪청진기≫하고 손을 내밀었다.

…신영호씨가 태평한 마음으로 무심히 바라보니 조수가 가방에서 꺼내서 의사에게 건네주는 것이 천만뜻밖에도 청진기가 아니고 권총이다…신영호씨가 속으로 ≪아차 속았구나!≫ 웨쳤으나 때는 늦어서 성복후의 약방문이였다. 

가짜의사의 능글맞고 교묘한 행동, 초풍할듯이 놀란 신영호의 얼굴, 그 얼마나 희극적기분이 넘치는 장면인가!

≪전쟁할 때≫라는 괴상한 별명을 가진 문정이의 얼굴은1946년 서울에서 출판되던 ≪문학≫잡지 창간호에 실린 김학철의 단편소설 ≪담배국≫에서 첫선을 보인바 있다. 간도 땅 훈춘이 고향인 문정이는 ≪작딸막한 키에 빼빼 여윈 말라꽹이인데 홀쪽한 얼굴에는 병색이 끼여있다.≫그는 됨됨이가 능청스럽고 말본새가 고약하며 훈련에서는 잔꾀만 부린다. 어느 한번 ≪산병반군(散兵半群)≫ 연습을 하고 중대장의 ≪강평≫을 듣는중인데 문정이는 또 눈을 판다. 괘씸한 생각이 든 중대장이 문정이를 대렬앞에 불러다 세워놓고 ≪산병반군은 어떤 때 쓰는거지?≫하고 물으니 문정이는 한나절이나 어쩡쩡해 있다가 ≪전쟁할 때 쓰는겁니다.≫하고 대답한다. 하여 문정이는 전우들의 폭소를 자아내고 ≪전쟁할 때≫라는 영예스럽지 못한 별명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처럼 꾀바르고 ≪추태백출≫하던 문정이도 정작 전쟁할 때가 되니ㅡㅡ조선의용군의 태항산으로 들어갈 때ㅡㅡ자기의 슬기와 총명을 뛰여나게 발휘한다. 실로 평론가 장정일씨가 말한바와 같이 문정이는 사령관도 아니고 출중한 영웅인물도 아니다. ≪그는 오히려 이리저리 밀리우는 축에 속하는 사람이다. 허나 작가의 붓끝에 묘사된 이런 보통인간은 그지없이 사랑스럽다. 인간적으로 사랑스러우며 그 단순성과 그 천성적인 결함뒤에 숨은 내면세계가 사랑스럽다.≫

소설에서는 ≪춘향전≫, ≪흥부전≫ 등 고전작품들과 ≪림꺽정≫ 등 걸출한 력사소설의 전통을 살려 가담가담 희극적인 장면과 삽화를 설정하여 유모아적이니 기분과 정취를 한결 돋구고 있을 뿐만아리라 비유, 과장, 상징…등 다양한 문체론적수법들을 능란하게 구사함으로써 형상의 생동성과 해학성을 한결 높이고 있다. 소설에서는 거액의 뢰물을 받아먹고 호화판생활에 잠긴 신영호를 묘사하면서 ≪신영호씨의 아래배가 차차 거위알 모양으로 불러오름을 따라 집지기 불독의 살진 두 볼도 중태처럼 점점 늘어졌다.≫라고 비유하고 있으며 황포강의 물귀신으로 되는줄은 모르고 송일엽의 자색에 반하여 침을 흘리는 무라다경부를 두고 ≪껍질이 꺼슬꺼슬한 악마도 제가 좋아하는 녀자 앞에서는 강아지 배바닥 같이 말랑말랑해지는 모양이다.≫하고 비유적으로 야유, 풍자하고 있다. 또한 한진사댁 마름 ≪최선생은 나이가 마흔된 사람으로 홀쪽한 얼굴에 두귀가 유난히 발쪽하여 흡사 우승컵에 달린 손잡이 같았다.≫고 한 스케치식묘사는 얼마나 인상적이며 ≪로빈손크루소≫에 나오는 생번들같이 고양이고기를 먹으면서 ≪야, 얼빠진 소리 하지 말아. 광동사람들은 고양이고기, 뱀고기, 쥐고기, 원수이고기…안먹는 고기가 없다. 네발 가진건 책상, 걸상만 빼놓구 다 먹구 날아다니는건 배행기만 빼놓구 다 먹는단다.≫라고 내던진 씨동이의 말은 또 얼마나 해학적이고 락천적인가!

유모아는 총명과 지혜의 상징이며 바다와 같은 흉금을 가진 인간만이 소유할 수 있다. 천박한자에게는 유모아를 낳을 재간이 없는것이고 협애한자에게는 유모아를 낳을만한 도량이 없는 것이다. 유모아는 오직 ≪심오하고도 극히 발달한 정신≫을 소유한 인간이나 민족만이 구사할 수 잇는 것이다. 작가의 말로 말한다면 ≪한되들이 알단지들≫은 죽어 변성을 해도 유모아적인 세계에 들어설수 없는바 ≪작품의 무게는 언제나 그것을 쓴 사람이 겪은 고통의 심도와 정비례하는 것이다.≫

소설은 작가가 급촉이 집필한 사정과도 관계되겠지만 전반 작품의 구성밀도가 잘 공제, 조절되지 못한 까닭에 상권이 좀 지루한 감을 준다. 소설의 주제해명과 인물성격의 발전요구로부터 본다면 상권을 훨씬 줄여도 방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명쾌한 사건처리와 유모아 적인 필치에 의하여 많이 해소되고 있다. 

장편소설 ≪격정시대≫는 조선의용군 열혈남아들이 벌린 성스러운 항일투쟁의 력사적화폭을 예술적으로 재현하고 그들의 고매한 성격미를 보여주었으며 해학과 유모아의 극치를 이루고 있음으로 하여 조선민족문학의 한페지를 빛나게 장식하였으며 세계 조선어문학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조선의용군의 항일투쟁에 대한 예술적탐구는 아직도 시작에 불과하며 이 투쟁에 대한 예술적탐구는 아직도 시작에 불과하며 이 투쟁생활은 우리 작가들에게 무궁한 제재와 다양하고 심오한 주제를 약속하고 있다. 쏘련 군사제재의 문학이 여러 번 획기적인 변모를 가져온 것처럼 앞으로 작가자신에 의하여, 특히는 젊은 세대의 작가들에 의하여 조선의용군의 투쟁생활은 다양한 쟝르로, 다양한 각도로 깊이 있게 형상화되리라고 필자는 믿어마지 않는다.

* 본문은  《김학철론》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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