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시 그리고 갱신의 길 / 김동진

  • 김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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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9.1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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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시 그리고 갱신의 길
          - 우리 시단의 류파와 나의 경우
       
                                          * 김동진

1985년, 우리 북방시단의 중견이며 또 수필가이고 평론가인 한춘씨가 중국조선족시단의 침체상태를 보고만 있을수 없어 선두에 나서서 모더니즘시를 시도하면서 “시가관념갱신”을 호소하였다. 이 호소는 구체적으로 “몽롱시로 대표되는 서방모더니즘기법”의 도입을 시도하는것으로서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전제로 하여 표현기법에서의 돌파를 주장한것이다. 그로 하여 우리 시단은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진듯이 파문이 일면서 술렁거리기 시작하였고 잇따라 “시가관념갱신”의 열띤 쟁론이 시작되였다.

당시 나는 서방문예리론을 먼저 접촉한 사람들의 발언에서 나오는 “정신분석학”이요, “의식의 흐름”이요, “흑색유머”요, “모더니즘”이요, “이미지”요, “폭력조합”이요 하는 새로운 단어를 도무지 알아들을수 없었다. 그만큼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이는 면에서 나의 사유는 경화상태였고 그리하여 시탐구모임에 가서는 뒤구석에 앉아있다가 돌아오는, 할 말이 없는 말석시인이였다.

개혁개방은 문학이 더는 정치에 종속되지 않는 시대를 열어주었고 문인들에게는 전례없이 넓은 창작자유가 주어졌다. “3돌출”의 틀이 무너지고 “시가관념갱신”을 부르짖던 그 시기는 필자에게 있어서 자신이 걸어온 문학의 길을 뒤돌아보는 반성과 번뇌의 시기였다.

바로 그때 할빈에 계시는 리삼월선생님께서 편지로 다음과 같은 조언을 보내주시였다.

“쟁론에 류의하기 바랍니다. 시가의 관념을 갱신해야 한다는것은 누가 어떻게 말해도 필요한것이고 또 필연적인것인데 어떻게 갱신할것인가에 분기가 있는것 같습니다.”

때를 같이하여 소위 “실험시”들이 그때 적지 않게 창작되였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일러 “몽롱시”, “난해시”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 급류에 휩쓸리지 못한 나는 북방의 어느 한차례 시인진맥에서 전통관념을 탈피하지 못한 시인의 하나라는 락후생명찰을 달아야 했다. 그뒤로 이거 안되겠구나 하여 “현대서방철학강요”라는 리론서를 구해 보았는데 알고보니 새로 들어온 서방문예리론과 사조는 남들이 적어서 50년전  길다면 100여년전부터 써먹은것이였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생신한것이여서 우리 시인들에게는 관념갱신의 둘도 없는 “보약”이 된것이였다.

어찌했건 새로운것은 우리 시단의 활성화를 이루는 촉매제가 되기에 충분하였고 시단의 면모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준것만은 틀림이 없다. 당시 나는 그러한 “난해시”를 리해할수 없는것을(지금도 잘 리해하지 못함) 자신의 무지로 간주하였고 그렇게 쓰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 앞서가는 시우들과 평론가들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었다.

평론가들의 말을 빌면 확실하게 “시가관념의 갱신은 풍성한 성취를 거두었다.” 재래식의 따분한 정형의 틀에서 벗어난 자유시의 형태결구에 다양한 기법의 인입으로 우선 표현형식의 변화를 다그친것이다. 례하면 이미지시의 출현, 시어의 자유결합, 풍격의 개성화와 같은것이라 하겠다.

그런데도 늘 마음 한구석이 께름직하고 머리 한구석이 개운치 못하였다. 한것은 “시가관념갱신”이 바라는것이 진정 이런것인가, 시는 꼭 이렇게 몽롱하고 난해한 쪽으로만 발전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지워버릴수 없기때문이였다.

아닌게아니라 시단에서 갱신의 성과를 놓고 중구난방으로 떠드는데 밖에서는 질책이 터지기 시작하였다. 조선족시단의 소위 “현대시(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를 놓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자다가 봉창 두두리는 소리”, “도깨비 기와장 번지는 소리”라는 질책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한것이다.

우리의 갱신은 이런 욕을 먹자고 한것은 아닌데 왜서 이런 비난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그것도 한두사람이 소리라면 귀등으로 넘겨버릴수 있겠지만 도처에서 이런 말이 나올 때는 문제가 다른것이다. 몇몇 평론가가 아무리 좋다고 올리추어도 광범한 독자와 공감대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 시는 실패작이라는것이 나의  판단이다. 

생명의 뿌리인 민족과 생활의 요람인 나라를  초월하여 과연 좋은 시를 쓸수 있단 말인가? 나는 여직껏 민족의식과 국가의식을 떠난 시인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시인이란 자고로 성스러운 이름이지만 그렇다고 문학을 빙자하여  제멋대로 민족과 나라를 초월할수 있는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력대의 노벨문학상 시부문의 작품과 작자를 살펴보아도 일부 그 특별한 기법이 인정받아 수상한 실례가 있지만 그 대부분이 모두 어느 나라에서 살았건, 어떤 기법을 썼건 모두가 자기 나라의 력사와 민족의 애환(전쟁과 평화, 사랑과 증오, 부유와 가난, 선과 악 등등)으로 인간세상과 인간심령의 깊이갈이를 한것이다. 

류파는 류파마다 선언 비슷한 자기의 주장이 있기마련이고 또 그래야 류파로 될수 있는것이며 그것이 바로 세상에 존재할수 있는 리유로 되는것이다. 하지만 자기의것만을 유일정확하다고 소리를 높이면서 모두가 자기를 따르라고 하는것은 아무래도 과분한 욕망이 아닌가싶다. 

그래서 현재 우리에게 “창작의 자유”가 주어진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의 “시가관념갱신”은 마땅히 주어진 창작환경속에서 그리고 주어진 자유속에서 내용과 형식의 갱신을 꿈꾸어야 할것이며 우리 민족시의 건전하고도 아름다운 발전을 가져와야 할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기대와 어긋나 독자들이 머리가 아파나서 못보아주겠다는 시를 만들어내고있으니 이는 우리의 관념갱신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주는것이다.

“시가관념갱신”은 일조일석에 완성되는 일이 아니기에 실험이 필요했고 모방이 필요했다. 이런 실험과 모방이 말로는 우리 민족 시문학의 우수한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표현기교에만 집착하여 그 많은 알둥말둥한 새 기법을 마구 도입하는데만 급급해한 결과가 오늘의 이 모습이 아닌가싶다. 그러한 갱신은 유구한 력사속에서 형성된, 우리 민족의 맥락으로 다듬어진 그윽한 민족정서와 아름다운 언어운률을 홀시 또는 무시한것은 아닌지 알아보지 않을수 없다.

시에서의 이미지화와 “낯설기”는 현재 좋은 시를 평하는 기본조건의 하나로 보아진다. 그래서 “낯설기”하기에 고심하는데 그렇다고 딱딱한 어휘배렬이거나 시어의 이상한 조합이거나 복합이미지의 창조만으로 “낯설기”가 완성되는것이 아니다. 나는 “낯설기”의 근본은 고유한 우리의 다채롭고 풍부한 언어의 새로운 발견과 여러 기법의 유기적인 결합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의 시어를 보면 어제도 오늘도 늘 쓰던 시어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시어들을 가지고 새로운 시를 만든다고 한다.

친일행위가 있어 력사의 말밥에 오르면서도 한번도 반성한적이 없다는 서정주시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시단의 시성으로 받들리는것은 그가 민족어의 대부이기때문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한국시단에서 이때까지 서정주시인만큼 우리 민족의 고유어를 아름답게 피루어낸 시인이 더는 없다는것이다. 이 점을 감안할 때 우리의 “낯설기”도 우리 민족의 생활속에 잠재하고있는 입맛을 돋구는 언어의 끊임없는 발견이 없이는 아니될줄로 안다. 빈곤한 언어를 가지고 모방을 한들 난해를 조성하는 기법의 “낯설기”밖에 될것이 없다는 말이다.

일본은 모방의 전능대가이다. “모방하는 원숭이”로 소문난 일본의 재간은 모방하여 자기것으로 만드는데 있다. 발전한 과학기술을 리용하여 남이 크게 만든 산품을 가져다가 작게 또 작게 하여 완전한 자기만의 산품인 미니형 신제품을 만들어 세계시장을 공략하고있다. 모방으로 자기의 문화와 전통을 이룩하고 세계의 주목을 받는것도 일본민족이라고 한다. 뜻인즉 모방도 재치있게 하면 자기의 창조로 된다는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아직 이런 모방재능이 결여하다.

한국시단이 서방리론과 사조를 받아들인 현대시의 력사는 이미 백년을 꼽는다. 그러니 우물안의 개구리였던 우리보다 상당히 앞선것인데 지난해 작가이며 언어학자인 양효성씨가 한국시단을 향해 “과연 우리는 모방이라도 제대로 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였다. 이에 앞서 김지하시인은 “이미지와 상징, 기호에 경도되여 사치를 부리면 안된다.”, “현재 한국시는 혼돈, 추함, 렵기, 리기 등의 요소가 지배”한다고 지적하였고 최근에는 “독자”라는 닉네임의 주인이 사이트 “문학의 창”에 “시인들에게 드리는 고언”을 올리였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시를 읽으면 골치가 아픕니다. …때로는 아름답지 못한 비틀린 시어마저도 소위 ‘시어’라고 극찬하는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끼리 문단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문인과 민중사이를 단절시키는 성벽쌓기를 주저하지 않고있습니다. …딱딱한 서양식표현법에 물들어 아름다운 우리식표현법이 배척당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내가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건, 현재 우리 나라 시인들의 의식전환이 있지 않고는 향후 모든 시인들은 더욱 어려운 환경에 처해질것이라는 점입니다.”

“독자”는 이렇듯 안타깝게 우수한 전통을 무시하는 한국의 현대시와 시단의 병집을 꼬집으면서 시인들의 의식전환을 요구하고있다.

손꼽아보니 우리가 시가관념갱신을 하면서 살아온지도 자그마치 25년이나 된다. 하나의 인생에 25년은 결코 작은 수자가 아니다. 내가 보건대 이 25년의 관념갱신은 25년의 쟁론과 25년의 분기로 하여 현재 우리 시단은 여러 파가 있겠지만 크게 두개의 류파로 나뉘여진 상황이다. 낡은 모식에서 해탈하지 못한 극히 개별적인 시인을 제외하고 하나는 모더니즘시만이 시이고 다른것은 시가 아니라고 하는 소위 현대파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시의 우수한 전통(시어와 정서와 운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새로운 리론과 사조를 접목해야 한다는 소위 접목파이다.

누가 나에게 일부러 “당신은 어느 파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접목파라고 대답한다. 나는 고금중외의 좋은것들에서 자양을 뽑아 우리의것을 살지우는 그런 갱신만이 진정한 갱신이라고 믿는다. 다시 말하면 “모더니즘”(현대주의)이요, “포스트모더니즘”(후기현대주의)이요, “아이디얼리즘”(리상주의)이요, “휴머니즘”(인문주의)이요, “센티멘털리즘”(감상주의)이요, “다다이즘”(허무주의)이요, “오토마티즘”(자동주의)이요, “이마지즘”(이미지주의)이요 하는 그 많은 “주의”(主义)에서 우리에게 유익한 알맹이를 뽑아 그것을 영양제로 우리의 전통시를 더욱 호함지고 아름답고 향기롭게 해야 한다는것이다.

그러면서 잊지 말아야 할것은 우리가 신선하다고 말하는 이런 사조나 주의들이 모두 우리가 겪어본적 없는 자본사회의 권력과 금전, 인간사회의 첨예한 모순, 갈등속에서 그 시대, 그 사회의 시인들과 철학인들이 심령의 허무와 정신의 고독에서 해탈하는 방법으로서의 필연적인 산물이라는것이다.

이러한 갱신을 개량이라고 하면 어떨가? 비유하건대 한국의 한복과 같은 개량 말이다. 한국에서는 우리 민족 전통복장의 고유의 멋스러움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감각이 돋보이는, 간편하고 실용적인 개량한복을 만들어내였다. 개량한복은 고리타분함과 거치장스러움에서 벗어난 하나의 훌륭한 보기이다. 이는 집으로 말할 때  쓰러지는 초가집을 허물고 그 터전우에 현대의 선진적인 건축재료로 추녀 높은 우리식의 전통식 한옥―팔간기와집을 짓는것과 같은 경우이다. 우리것을 잃지 않는 현대, 우리를 위하여 복무하는 현대란 바로 이런것이다. 하긴 취미와 여건에 따라 양복을 입고 양옥을 지을수도 있겠지만 그속에 우리의 말과 글이 살아있고 우리의 노래와 춤이 살아있고 우리의 된장내음, 김치내음이 살아있다면 문제로 될것이 하나도 없다. 나는 우리 시단의 갱신도 이런 개량식이 되였으면 좋겠다.

생각은 이러하지만 생각처럼 갱신은 그렇게 쉬운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전통시에 현대를 접목하려고 꾀하지만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다. 그래서 국외의 유명시인들과 대비하면서 원인을 찾아보았는데 세가지의 치명적인 부족점이 있었다. 하나는 자연과 인간사회에 대한 체험과 인식이 그들과는 전혀 비할수도 없이 천박한것이고 다음으로 그들과 같이 풍부한 문학수양과 종합지식, 탐구정신을 갖추지 못한것이고 그 다음으로 장악하고있는 시어가 너무나 빈약한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자질을 가지고 시인이 된것이 부끄럽다.

그래도 자존의 마음은 죽지 않아 가던 길에서 돌아설 생각은 없다. 한글자씩 배우면서라도 내나름의 견해와 주장을 가지고 갱신에 생명소모를 해야하는거다. 접목파의 최대의 약점이 시의 이미지화를 비롯한 여러가지 기법을 유용하게 활용하는면에서 선명한 돌파를 가져오지 못한것이라고 자인하면서 나는 우리 시단의 시가관념갱신의 현실을 바라보며 나의 견해와 주장을 다시한번 반복한다.

“나는 전통을 사랑한다. 그러나 전통을 한사코 고집하지는 않는다. 전통은 뿌리와 같은것이여서 계승, 발전시켜야지 전면부정하거나 말살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관념을 갱신한다고 하여 일조에 현대파로 둔갑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럴만한 재간도 없거니와 현대파라고 하여 다 좋은게 아니기때문이다.

나는 접목을 시도한다. 그것만이 나의 시를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기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시의 고유한 민족성을 잃지 않으려는 아집이기도 하다.

나는 지나치게 난해한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시의 안중에는 광범한 인민대중(독자)이 없다. 시가 소수인이 심심풀이하는 수수께끼거나 오락궁이 되는것은 시의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관(观)에 대한 변명”이라는 부제를 단 “나의 문학관”에서 밝힌것이다.

나는 나의 이런 주장과 견해가 스스로 옳다고 여길뿐이지 절대로 유일정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실천만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진리앞에서 각자의 주장과 견해는 오로지 장구적인 실천에 의거하여 그 무게와 가치를 확인받을수 있기때문이다.

시가관념갱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미래지속형으로써 끝이 없는 사유와 행위작업이다.

우리 시단의 시가관념갱신이 25년이 흘러간 이 시점에서 시인마다 우리의 갱신이 어디까지 왔으며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가를 한번 랭철하게 숙고해봄이 좋지 않을가? 25년간 우리의 시가관념갱신이 시인들의 의식구조변화와 더불어 풍성한 성과를 거둔것도 비하할수 없는 사실이고 25년간의 시가관념갱신이 새로운 관념의 새로운 문제와 분기로 하여 시단에 조화롭지 못한 분위기를 형성한것도 묵과할수 없는 사실이다.

좋은 시를 한수라로 더 창작하여 중국조선족문학과 시문학의 발전에 기여하고싶은 우리 시인들의 심정은 똑같은것이다. 따라서 류파가 형성된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진정 두려운것은 류파마다 자타의 장점과 약점을 정시하지 않고 무조건 절대적으로 자기만이 옳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시야비야하는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시인이 불과 몇십명밖에 안되는 우리의 시단에 무슨 희망을 기탁할수 있을것인가? 이점을 깨우쳐야만 우리의 시단에는 지나간 25년보다 더 풍요롭고 다채로운 시의 번창기가 도래하게 되리라는것이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연변문학 2010.7호

출처: http://koreancc.com/xxy.asp?idx=6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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