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끼시마마루호의 항해는 끝나지 않았다

  • 김형효
  • 조회 2847
  • 2005.09.0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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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시안 블루>를 보고

 


영화 아시안 블루, 다시 말해 아시아의 상흔을 통해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우끼시마마루호의 항해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잊혀진 기억으로, 기억할 수 없는 아니 기억할 필요가 없는, 낡은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일 뿐이다. 다르게 말해서 잠복하고 있는 위기, 혹은 잠재된 위기의 모습을 하고 웅크리고 있는 실제의 역사적 사실 앞에서 비켜나 앉아 있는 것과 같다.

영화의 사실주의적 생동감에 우리는 사로잡히기 원한다. 그러나 모든 영화에서 그러한 독법으로 영화보기를 원다는 것은 죽음 앞에서 웃고 탄생 앞에서 조소하고 울음을 터트리라는 것처럼이나 부당한 독법을 강요하는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말해 이 영화에서 우리는 사실주의적 생동감을 요구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비사실주의적이란 것은 아니다. 단지 동적인 혹은 경쾌한 스릴러물처럼 혹은 산만하고 조합적인 영상물이길 원하지 말 것을 영화를 보기 이전에 관객들에게 숙지하길 바라는 것이다.

이 영화가 일본 침략 시기에 국권을 상실한 민족의 아픔을 철저하게 관조적인 입장에서 해설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의 강제노동을 통해 침해되는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존엄성의 참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철저하게 계산된 감독의 연출법은 냉정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만담가와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우리가 읽어나갈 비극을 예비하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내가 보는 관점에서 일제 시대 아니 일제시대가 아니라 할지라도 온갖 수난의 고통을 온몸으로 감내한 선조들이 후손들에게 조용하게 동화책을 읽어주듯이 나레이션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겪어온 고통의 줄기들을 따르라고 강요하지 않고 이런 사실들이 이러 이러하게 진행되었던 것이 사실인데 이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다시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 이 사실을 외면하지도 말고 확대하지도 말 것을 바란다는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도덕책을 펴놓고 읽어가듯 지루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요즘 일상적으로 접하는 영화들처럼 조연급 배우들이 <나 조연 싫어> <나 조연 안할래> 하는 듯이 영화 내부에서 사사건건 충돌하며 톡톡 튀어나오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의 모든 주인공과 조연들은 한결같이 팽팽한 긴장의 말머리를 달린다. 팽팽한 긴장의 끈을 놓치않고 서로서로 아우른다. 어쩌면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한국의 서정적 고리를 바로 보고 그 끈을 얼기설기 조화롭게 엮어낸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아니 이 영화가 소개되고 배급되는 과정을 보면서 딴소리를 한마디 하고 싶다. 이 영화가 상업적 영화라고 규정하지 않는 제작진과 수입 배급사 측의 입장은 어느 정도 감안하여 알고 있다. 나는 스스로가 상업적 영화가 아니라고 규정하는 순간, 이 영화야말로 온전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세상에 어떤 영화를 상업적으로 규정하고 안하고 한단 말인가? 애시당초 상업적 전제가 없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영화가 있을 수 있고 상업적 전제에서 만든 영화가 상업적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아니 오히려 상업적인 전제로 만드는 모든 창조물들이 오히려 수많은 실패를 하는 것을 우리는 일상적 체험으로 보아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갖는 제작 배경에서 오는 그리고 이 영화를 수입하고 배급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갖는 입장에 의해 이 영화의 상업적 성공을 막는 장애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영화 <친구>를 보았다. 아니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숱한 영화들을 보았다. 그러나 결코 그 영화들이 <아시안 블루>에 버금갈 만한 성과로 읽혀지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잔잔한 감동과 긴밀하게 생각할 여지를 두는 사유의 공간이 마련된 영화를 찾는 영화인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나는 영화 <아시안 블루>의 시사적 의미와 영화적 성공을 믿는다. 역사가 살아 꿈틀대고 있다. 우끼시마마루호의 항해가 멈추지 않는 한 해방은 없다. 미완의 해방, 해방의 그날을 위해 우끼시마마루호의 항해가 계속되고 있고 우리도 함께 그 배를 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시인이 말하는 시의 말처럼 시의 여운이 멈추지 않고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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