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고려인 형님 "아우! 근심하지 마오"

  • 김형효
  • 조회 3883
  • 2009.09.04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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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의 말 "예! 형님, 천천히! 천천히 가세요"

 

흑해 파도에 몸을 맡기고 함께 출렁거리는 파도를 즐기다가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졸음이 쏟아졌다. 생면부지 사람들이 아니라 익숙한 형님과 누님을 만난 기분 때문이었을까? 꾹꾹 졸음을 눌러 참으며 견디는데 다시 과속주행을 일삼는(?) 게오르기(54세) 형님이다.

 

수박을 수확하고 있는 넓은 밭이 나왔다. 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 누님께서 이 밭도 고려인 것이라면서 만면에 흡족한 자랑을 담아 웃고 있다. 오던 길에 눈물이 맺혔던 자리다. 무엇이 그렇게 우리를 통하게 하는 걸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난생 처음 만나는 아우에게 자랑삼고 싶은 이야기들도 있고 보여주고 싶은 것들도 있다.

 

다행이다. 낯설고 물 설은 곳에 가면 고생이라는 말을 어려서부터 듣고 살아온 우리들 아닌가? 아마 이분들에게는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 것이었을까? 생각해 볼 때 상상하기도 벅찬 일이다. 수박 수확을 하던 자리를 지나고 나는 깊이 잠들었다. 잠시 깨어보니 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 누님이 차에서 내려 대문을 열고 어느 집에 들어간다. 그리고 게오르기 형님은 다시 차를 몰았다. 나는 다시 잘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으나, 게오르기 형님이 집에 도착했다며 날 깨운다. 곧 자리를 손가방을 들고 따라 내렸다. 내리자마자 곧 샤워를 하라며 안내해 주었다. 정말로 익숙한 형님네 집에 찾아온 것과 같은 일상적 행위로 생각되는 시간들이다. 아니면 생전에 와서 만났던 사람들처럼 모든 게 순조롭고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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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에 고려인이 만든 된장 된장, 고추, 오이에 달콤한 식사를 했습니다. 고려인 스베타(49세) 형수님이 만든 된장 맛은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언어를 잊었지만, 맛은 잊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생명은 끈기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 김형효
icon_tag.gif우크라이나 고려인 스베따가 만든 된장

 

형님은 내가 샤워를 하고 있는 동안 식사 준비를 하셨다. 형수님이 만들었다는 된장 맛은 일품이었다. 참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고 우리가 따로 떨어져 살아왔어도 하고 먹는 짓(?)이 같으니 어쩔 수 없는 동족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사실 필자는 한국에서도 고추 된장에 식사를 잘 하지 못한다.

 

매운 고추를 잘 못 먹는 탓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입안에 착착 달라붙는 맛있는 식사를 했다. 된장과 고추, 그리고 오이를 썰어 내놓은 간단한 식사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와서 지난 5개월 동안 먹었던 그 어떤 식사보다도 달콤한 식사 시간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형수님이 퇴근해 들어오셨다. 만면에 항상 웃는 모습이 반가움을 더하는 누이처럼 맑다.

 

형수님이 바쁘게 이리 저리 오가신다. 형님은 내게 집에서 구운 빵을 봉지에 싸서 갈 때 먹으라면 챙겨주신다. 눈물겨운 배려다. 고향집 어머니, 아버지처럼 고마운 정성이다. 마음 깊이 속으로 가득 차오르는 것들이 있다. 형수님이 준비가 끝났는지를 묻던 게오르기 형님은 이곳 예빠토리야의 오래된 유적과 바닷가를 구경을 좀 하러 가자고 한다. 그리고 출발하면 된다는 것이다.

 

철저한 배려다. 예정에 없던 만남이었는데 나와 함께 오가던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 누님과 게오르기 형님이 시간표를 짠 것이다. 두 분이 계획한 일정표대로 하루가 간 것이다. 난 전혀 알지 못했던 일과다. 중간에 고려인을 소개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 이후 일정에 대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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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의 집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의 소도시 예빠토리야의 고려인 김 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 집 대문을 노크하는 스베따! 오른쪽 대문 위에 문패가 걸려 있다.
ⓒ 김형효
icon_tag.gif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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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인 김 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의 집 고려인 김 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 누님 집이다. 셰로바 거리 4번지 김 비케이다. 아마도 빅토르 김이나, 바실리예브나 김의 약어가 비케이가 아닐지?
ⓒ 김형효
icon_tag.gif고려인 집

차에 올랐다. 게오르기 형님의 부인인 스베따(49세) 형수님과 필자! 그리고 다시 페달을 밟으면서 게오르기 형님이 형수님에게 오늘 승용차를 타고 오가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전한다. 그중에 한 마디 "천천히! 천천히 가세요." 내가 했던 말이다. 그리고는 자신이 말한 "근심하지 마오!"라는 말이다. 차를 타고 오가는 형님의 운전이 아니라, 내가 이곳에서 살아갈 날에 대해서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아우! 근심하지 마오. 잠시 후 어느 집 대문 앞에서 차를 세운다. 대문에 문패가 걸려있다. 러시아어로 새겨진 КИМ B,K(김:KIM)! 형수님이 차에서 내려 대문을 두드릴 때, 처음 본 러시아어 김이 새겨진 문패를 본 나는 당당한 조국을 보는 느낌이었다. 작은 일에 비약이 심한 노릇이다. 그리고는 곧 차에서 내려 셔터를 눌렀다. 고려인의 존재감을 보고 기쁜 마음이 날 사로잡는 것이다. 우리가 내 나라 안에서 밖으로 나가 살고 있는 서러운 형제들을 잊고 산 세월이 너무 길다는 각성도 날 슬프게 한다.

 

잠시 후 안에서 낮과 다른 복장을 하고 나타난 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 누님! 편안한 꽃단장을 하셨다. 연지곤지 바른 꽃단장이 아니라 단정한 차림으로 말이다. 그리고는 다시 차를 몰아가는 게오르기 형님! 이어지는 낮에 있었던 이야기, 다시 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 누님이 "아우! 근심하지 마오." 그리고 내가 말한 "천천히! 천천히 가세요"를 따라 하신다. 그래 우리가 살아가는 지향이 그런 것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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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오르기(54세) 하루 종일 운전석에서 초면의 아우를 위해 근심하지 말라며 안내를 맡아준 게오르기 형님! 형님, 고맙습니다.
ⓒ 김형효
icon_tag.gif게오르기(54세)

형님도 누님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아우! 근심하지 마오"라고 말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좋겠다. 그리고 "천천히! 천천히 살아가세요"라고 말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하늘의 맑은 날만 보고 살 것이 아니라 그리 살다보면 세상에서도 맑은 것을 볼 날이 많겠다.  

 

이제 게오르기 형님은 완전히 운전 기사로 전락했다. 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 누님은 향토사학자처럼 앞장 서고 나와 스베따 형수님은 그 곁을 따르며 그 예빠토리야 지역의 문화 유적에 대해서 안내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갈 때마다 게오르기 형님은 차를 몰고 따라오는 것이다. 극진한 대접이다. 나는 몇 몇 곳을 그냥 지나치자고 했다. 다음에 와서 찬찬히 둘러보아도 된다고 정중히 고생을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말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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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년된 포도나무 앞에 선 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와 스베따! 예빠토리야의 한 유적지 안에 심어져 있는 200년된 포도나무 앞에 선 플로리다 바실리에브나와 스베따
ⓒ 김형효
icon_tag.gif200년된 포도나무

한 오래된 성곽의 말루였던 곳에 멋진 전통 카페가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커피를 한 잔 하기로 했다. 전통의상을 입은 작은 키의 아가씨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보통의 우크라이나 여성의 늘씬한 여성이 아니라, 우리네 한국 여인들처럼 당당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들이었다. 그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동안 벽면에 슬라이드에서는 예빠토리야의 역사가 사진으로 상영되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게산을 서둘렀다.

 

극진한 대접을 받는 느낌으로 지낸 하루에 대한 나의 인사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다. 그리고 다시 바닷가를 찾았다. 게오르기 형님만 차를 타고 이동하고 우리 셋은 멋지게 물결치는 저녁 바다를 보았다. 영화속 한 장면 같은 바다 풍경이다. 짙은 코발트색이 느껴지는 저녁바다였다. 그곳을 조망하기 위해서는 따로 입장료 5그리벤(한국돈 1000원 정도)을 내야한다고 했다. 난 시간도 짧고 해서 그냥 지나치자고 했다. 나중에 여유롭게 와보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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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전통의상을 입은 종업원들 예빠토리야 한 유적지에 있는 카페에 여종업원들이 우크라이나 전통의상을 입고 일을 하고 있다. 사진을 찍는 나그네에게 반가운 웃음으로 반겨주고 있다.
ⓒ 김형효
icon_tag.gif우크라이나 전통의상을 입은 종업원들

그리고는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나는 그 하루를 지내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실감했다. 낯선 나라에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인데도 전혀 낯설지 않은 친근감! 잠시 둘러보러 갔던 하루였는데 그분들도 일주일 후 만남의 기약도 아쉬운 듯 저녁 9시가 넘은 시간까지 함께하면서 날 배웅했다.

 

평생 동안 기억할 하나의 상징적인 모습을 전 간직한다. 그리고 소중하게 기억할 것이다. 낯선 나라 작은 도시 예빠토리야의 저녁! 버스터미널에서 쪼그리고 앉아 주고 받았던 이야기다. "어찌 조국의 사람을 이곳에서 날마다 만나게 될 줄 알았겠는가?"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중년의 게오르기 형님과 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 누님 그리고 듣고만 있는 스베따 형수님!

 

마치 내가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어머니나 아버지라도 되는 듯이 짧은 일주일 후도 버겁다는 듯 아쉬워하던 모습을 기억하련다. 동족이라는 이유 때문일까? 나는 아마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그런 마음으로 그들과 아쉬움을 가득 담고 살아가는 날이 되도록 하겠다. 그런 마음으로 남은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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