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타의에 의해 바뀔 수도 있지만, 민족은 바뀌지 않는다

  • 김형효
  • 조회 4029
  • 2009.09.04 18:55
  • 문서주소 - http://sisarang.com/bbs/board.php?bo_table=photoessay2&wr_id=51

-종족, 족속 = 고려인, 조선족, 한국인, 북조선 사람 우리의 이름부터 통일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일상을 보낸다는 것, 그리고 또 그런 만남이 이어지며 지내는 일상, 그래서 오래전부터 고려인이던 그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새로운 고려인들을 만난다고 말한다. 우스운 일이고 못난 일이란 생각도 든다.

 

내가 선택한 일이어서 이런 경험도 하게는 되었지만, 조국에 대해 안타까운 연민이 든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이곳에서 처음 만나며 설렘을 이어가는 나는 그런 만남을 이어주는 고려인들에게 한없이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든다.

 

정말 잘난 족속이 우리 민족이 아닌가 싶기도 한 것이다. 치욕의 역사적 경험을 무시하고 외면할 수 없는 안타까움도 있지만, 낯설고 험난한 세상을 잘도 이겨내서 당당한 고려인으로서 당당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서 홀로 감동한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이 겪어내었을 역사적 사실들을 배경화면 바라보듯 연관 지어 보기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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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림시 조선족 예술단 지난 북경 올림픽 개막식에 조선족 대표 공연을 했던 조선족 예술단 가운데 김예화 외2인
ⓒ 김형효
icon_tag.gif길림시 조선족 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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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빠토리야 고려인 후손들 9월 1일 수업을 시작하기전 몇몇의 고려인 후손들과 상견례를 하였다. 나는 제일 먼저 얼굴부터 눈, 코, 입, 귀 등을 알려주고 인사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 김형효
icon_tag.gif예빠토리야 고려인 후손들

장합니다. 장하십니다. 하지만, 튼튼한 자리를 잡은 그 자리에 돋는 새싹 같은 아이들이 갖는 호기심에 못 미치는 관심은 한없이 날 초라하게 하고 조국의 못난 속을 보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고 속이 상한다. 우크라이나 사회에서 현지인들 못지않게 안정적인 자기 생활을 지켜가는 그들을 보면 더부살이 같은 자부심이 든다. 그러나 그런 자부심은 몹쓸 더부살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을 위해 조국이 한 것도 없고 내가 한 것도 없다.

 

눈물 없이 살 수 없고 죽음이 일상처럼 그들의 삶을 기다리고 있었던 옛 역사의 흔적이 그들의 면면에 흐르고 있다. 밝은 햇살에 비친 이슬 같이 맑은 아이들의 눈빛에는 자신과 닮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조국 사람을 보고 대하는 태도가 전혀 어색하지 않고 반갑다. 나는 그런 그들의 눈빛을 대하기가 죄스럽다. 그런 그들을 같은 동족으로서 만나고 있기가 한없이 미안하다. 괜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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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에서 만난 고려인 배우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다.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의 도움으로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분들도 찾아다니며 인사를 드렸다. 나중에 수업에 참여하시라고 인사를 건네며...
ⓒ 김형효
icon_tag.gif시장에서 만난 고려인

어느 날이다. 역사를 이야기해주다 느닷없이 이제 한 아이의 아버지인 37세의 세르게이가 동서독은 통일을 이루었는데 왜 남북은 통일을 못하느냐고 강하게 따지듯이 묻는다. 자책감이 크게 드는 순간이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가 내게 따지듯 말했지만 나보고 뭘 안 했다는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그의 태도가 너무 단호해서 마치 내게 따지는 것처럼 느껴져 난감하고 당혹해 했다. 미안하다. 세르게이!

 

그날 밤 나는 창문으로 새벽빛이 들 때까지 멍청해져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지껏 이어오던 글쓰기도 중단하고 오늘에야 사족 같은 글을 쓴다. 어쩌랴! 우리의 이 못난 자화상을, 조국의 나날이 근심에 가득하고 으르렁대는 주변 강국들의 만행(?)은 밤낮으로 멈출 기미없이 하세월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 수립 이전의 해방공간에서 벌어지는 위인전기를 읽다가 참 불행한 민족이란 생각을 한다. 당당하고 대단한 면도 많지만, 불행을 위해 갖출 것 다 갖춘 몹쓸 것도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사에 많은 민족들이 불행을 겪기도 했지만, 자기 민족끼리 허구헌날 공방을 하는 우리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다 순간 모든 싸움을 다 포기(?)하고 싶어진다. 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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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에서 만나 고려인 시장을 중심으로 고려인을 찾아다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고려인 어린이......, 할머니와 함께 있던 어린이가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사진촬영에 응해주었다.
ⓒ 김형효
icon_tag.gif거리에서 만난 고려인

바르다는 것이 갖는 속성을 들여다보면 무한히 주변의 부정의한 것들과 대항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홀로 잘 산다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홀로 잘 살 수 없는 것이 현대인의 고독의 유산인 듯하다. 힘과 권력과 명예가 작든 크든 도리질 당하는 삶의 구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가 싸우는 형국들이 알고 보면 한결같이 우리 민족끼리 싸움이다. 이 올가미를 누가 만들었던가? 아프다.

 

우리의 지도자들의 초개와 같은 마음으로 일구었고 일신의 영달에 혈안이었던 위정자들의 지 잘난 싸움들이 이루기도 했고 망가뜨리기도 했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다시 답답해진다. 다 부정하지도 다 긍정하지도 못하고 그저 두고 보자 해도 아직 밝지 못한 눈 탓을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나는 지난 광복절 하루를 시작하며 아침 6시부터 세 시간여 동안 예빠토리야 거리를 산책했다.

 

그저 멍한 사색의 시간이었다. 무엇을 할까? 일상처럼 주어진 일 말고 무언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며 고민이 깊어가는 날들이다. 그러던 와중에 故 김대중 대통령 서거라는 비보도 접했다. 그리고 조문정국에 이어 남북관계의 회복을 그나마 안도할 수 있는 일로 바라보면서 보내고 있다. 그러나 싸움처럼 무언가 하려하면 무언가 감당해야 한다. 그러니 예비된 고독을 반길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려고 해서도 안되는 일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보내는 날들이다. 아직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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