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타에 가다(6)

  • 김형효
  • 조회 4102
  • 2009.11.13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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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짧고도 긴 사색의 여행을 마치며

 

사색의 강이었던 얄타, 사색의 동굴이었던 얄타는 자유로운 영혼의 땅이었다.

얄타는 깊은 동굴 같았다. 얄타를 떠나오는 나는 오랫 동안 동굴 속에서 갇혔던 느낌이었다. 그리고 동굴 속에서 빠져 나오는 느낌은 홀가분하기도 하고 무언가 빠트려 놓은 것 같았다.

 

여행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필자가 느낀 것은 사색과 번민을 부려두고 온전하게 자유로운 방랑만을 허용해도 좋은 곳이 얄타라고 생각되었다. 어찌하여 우리 민족과 얄궂은 인연이 있었지만, 얄타가 선택한 것이 아닌 사람의 일이었으니 훗날 사람들의 일로 우리가 바로 잡을 일만 남은 것으로 치고 이제는 자유로운 영혼만을 허용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알렉산드르 네브스키 교회의 지하보도를 걸어 내리막길을 걸었다. 바로 경찰서가 있고 많은 경찰 차량들 사이로 경찰들이 여기 저기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흡사 비상 상황에 놓인 느낌이었다. 하필 그곳에 경찰서가 있어서 낯선 나그네에게는 작은 위화감 같은 것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도둑 제 발 저리는 행색이 싫어 더 당당하게 걸음을 옮겨 딛는다. 그렇게 50미터 정도 걸어내려 섰을까? 그런 마음을 갖는 나도 우습다. 한국에서 느꼈던 공권력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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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향하는 관문 같이 저 빌딩을 나서면 수많은 정박한 배와 바다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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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도시 같은 느낌을 갖게 한 얄타의 항구......,

 

양쪽에 멋진 유럽식 건물을 게이트처럼 벗어나자 바다가 눈앞이다. 바로 건물을 다 빠져 나가기도 전에 저 멀리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침 출발지에서는 비 내리는 겨울날 같았던 날씨다. 불과 2시간 30분 남짓한 거리를 버스 편으로 이동해왔지만 한국 같으면 1시간 30분 정도 거리다. 그런데 이곳은 아직도 한 여름이다. 바닷가에 눈길을 돌리자마자 인파가 나타났다. 사람들의 차림새가 긴팔을 입기는 했지만, 추워서라기보다는 바닷바람을 막기 위한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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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파도가 사람들을 희롱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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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향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보는 듯한 선박 조형물......,

 

마치 동해와 같은 거친 파도에 맞장을 뜨겠다는 듯이 사람들은 그곳에 부두를 짓고 빌딩을 지어 상가를 만들어 놓았다. 그 모습에 성이라도 난 것처럼 파도가 매섭게 몰아쳤다. 그래도 사람들은 안하무인격으로 그 파도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흥미롭게 대적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다가 가끔씩 파도를 우습게보고 머뭇거리던 젊은이들이 파도에 아랫도리를 적시기도 하고 신발이 물에 젖기도 하였다. 바다 새들은 한가롭고 바쁘게 날아오르며 사람들의 눈요깃거리를 제공해주었고 사람들은 또 그런 흥미로움에 값을 치르는 것처럼 먹잇감을 던져주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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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명동거리 같은 인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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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얼마나 거친 것인지 짐작하실 수 있으리라.

 

일행 없이 그저 연방 무언가를 주워 담으려는 필자처럼 욕심 많은 나그네는 사진을 찍어대면 서 얄타를 내 호주머니 다 넣어버리겠다는 심보를 보여준다. 그러나 다 허망한 노릇인 줄도 알지만, 사람 욕심이다. 그런데 이국의 이 낯선 바다 풍경은 그런 욕심도 용서가 될 만큼 아름답고 색다른 것이 사실이다. 잘 정리된 명동거리가 이 흑해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색다른 풍경이 낭만을 더한다. 가끔씩 황홀한 젊음을 뽐내기라도 하듯 어여쁜 아가씨들이 지나갈 때면 나도 몰래 멍청한 눈길을 보내게 된다. 그런 아름다운 여성들은 수도 키예프의 여성들보다도 훨씬 더 돋보였다.

 

틈틈이 멋을 부린 아가씨들을 우거진 숲을 배경 삼아 몰래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러다 홀로 기타를 둘러메고 기타를 연주하는 연주자를 만났다. 계속 사진을 찍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이곳에서 나도 여행객의 푼돈은 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타 연주자를 향해 몰래카메라를 막 들이대다 든 생각이었다. 한 시간 이상 필자의 모델이 되어준 얄타에 인파 속에서 저 기타 연주자에게 조금은 갚아주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기타 연주자에게 다가가 얼만지 물었더니 30(한화4500원)그리밴이란다. 결코 싼 값이 아니다. 그런데 그냥 샀다. 다음에 가면 이야기를 한 번 나누어볼 생각이다. 필자의 여행중 버릇이다. 처음 만날 때는 부담없이 다가가고 나중에는 그 기억을 더듬어주며 더 가까워진다. 그리고 본전(?)을 되찾는다. 나름의 노하우(?)라고 해도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여지껏 실패는 없었다. 초면과 구면은 그래서 다른 의미가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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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카메라로 촬영 하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절묘한 각도에서..., 모델 같은 아가씨들이 정말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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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주자를 찍다가 음반을 하나 샀다.

 

기타 연주자는 샹송과 발라드라며 두 개의 CD중 택일 할 것을 청했다. 필자는 좀 더 낯선 것이 듣고 싶어 샹송을 골랐다. 그리고 포즈를 취해 달랐더니 그냥 밋밋한 자세다. 차라리 몰래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낫다. 역시 기타 연주자는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이 제일 아름답다. 모든 사람의 의무이자 스스로의 권리에 가장 가까운 것은 결국 자기 직분을 수행하는 사람의 모습인 것 같다. 자기 직분에 맞게 움직이는 것이 제일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서도 찾아지는 것 같다.

 

이제 버스터미널을 향해 걷는다. 하루 일정은 짧은 여행의 모든 것을 마감하는 시간이다. 사색이 길었다. 그러니 이야기도 많았다. 마지막으로 내 눈에 다시 띤 것은 레닌공원이었다. 저 멀리 얄타에 산과 어우러져 더 푸른빛으로 살아있는 레닌이 보였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그 광장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 바로 그 앞에서는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공보를 돌리는 선거운동 종사자들이 눈에 들었다. 필자는 한국에 있을 때만해도 레닌은 역사 속에 영원히 사장(死藏)된 인물로 알았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생활 8개월만에 느끼는 것은 스탈린은 죽었으되 레닌은 현실의 역사 속에서 부활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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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건재하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 같다. 필자가 보기에도 사람들 속에 그는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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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과 경쟁했던 러시아 소치(СОЧИ)행 버스다.

우크라이나가 막판에 소치편을 들어 평창 유치가 실패했음을 우크라이나에 와서 알았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재까지 스탈린이 아닌 레닌 정신을 지향하는 지역당의 야누코비치에 지지율 1위는 그냥 예사롭게 넘길 일은 아닌 듯하다. 그것도 현대통령과 현국무총리의 지지율을 합쳐도 그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니 그냥 별일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짧은 하루의 여정에서 우리의 광복이 분단의 역사가 되었던 그날의 기억부터 현재까지 긴 세월 같은 여행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쉬운 볼거리들은 훗날 고국의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 할 그리움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얄타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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