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크림자치국 고려인 협회 창립 15주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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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을 맞아 우크라이나 크림지역에 살고 있는 고려인 협회의 15주년 창립기념식에 초청을 받아 참석하였다. 사실 정식 초청이라기보다 예빠토리야에 살고 있는 고려인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55세)가 동행을 요청하였다. 플로리다는 필자에게 예빠토리야에 살고 있는 고려인의 일원으로 한국의 민요를 불러달라는 청을 한 것이다.
어울리기 좋아하고 술잔을 기울이면 노래를 즐기는 사람이지만, 처음에는 이곳의 고려인들의 큰 행사에 불청객 같은 노릇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해서 거절을 했다. 그런데 플로리다의 요청이 간곡해서 못이기는 척 참석하기로 했다. 사실 참석한 이유는 이곳에 사는 고려인들의 생활도 내심 궁금하고 만남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매서운 추위가 지나가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 예빠토리야 고려인들과 참석한 행사에는 500여 명이 참석한 매우 큰 행사였다. 물론 경제력이 미치지 못해 우크라이나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들의 솜씨자랑이 프로그램에 채택되고 그들과 공유하는 행사처럼 되었지만, 공식적으로는 고려인협회 창립15주년(심페로폴 2월 13일 오후 3시 장소 : 마티스 레스토랑)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된 행사였다. 현지 고려인 대표인 김알렉산드라는 현직경찰관으로 크림자치국의 수도 인 심페로폴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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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에는 현지의 주요기관장들과 지역정치인들이 참석하고 길고 지루한 인사가 이어졌다. 대개는 고려인들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이야기 일색이었다. 드물지만 크림자치공화국의 주요직에도 고려인들이 진출해 있다. 머지않아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우크라이나의 정치권이나 학계, 문화계에서도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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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자치국의 방송국인 "크림"텔레비전에서 촬영을 나와 한국의 전통의상인 한복을 맨 먼저 카메라에 담았다. 먼저 여성의 맵씨 좋은 한복을 찍고 나서 필자에게 남성 한복 모델이 되어주길 청했다. 사실 이곳의 고려인들 대부분은 여성들의 한복은 있으나 남성 한복을 입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성들의 한복도 대개 오래된 것들이어서 제 멋이 나질 않아 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고 안쓰러운 마음만 많았다. 아무튼 한국의 한 인터넷카페 회원이 보내주신 한복을 플로리다의 청으로 입고 갔던 일로 한복모델이 되는 영광을 맛봤다.
이왕이면 좀 더 멋지게 차려입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아이들과 고려인 아이들이 어우러진 춤과 고려인 아이의 노래 그리고 지역에서 활동 중인 주요 가수와 유명한 무용수들까지 출연하여 축제를 빛내주었다. 물론 필자도 주요 출연진이 되어 두 번째 순서에 민요 "아리랑 목동"을 불렀다. 많은 박수를 받기는 했으나 호응이 좋았는지는 모르겠다. 숙주나물과 샐러드 등 다양한 먹거리가 잘 차려진 가운데 자연스럽게 공연을 관람하며 서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행사는 출연진들의 공연이 끝나고 급속도로 무르익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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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깊은 시간인 11시가 넘어도 해산을 하지 않고 디스코를 추기도 하고 블루스를 추기도 하며 도수 높은 보드카를 마시며 고려인 모임이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서로 함께 어우러지며 열정적인 밤을 즐겼다. 우리 민족이야 워낙 잘 논다고 생각하는 필자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이 보여준 낯선 열정 또한 우리 못지않음을 알 수 있었다.
열정적인 밤을 주체하기 힘든 사람들의 광란? 같은 즐거움을 남겨두고 돌아오는 길에 필자는 고려인 45세의 사샤에게 아픈 질문을 받았다. 왜 한국인들은 우크라이나에 오면 고려인들을 괄시하는가? 뭐라 답을 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우크라이나인들의 정서와 하나가 되어 노력이 없는 일상을 사는 것을 한국인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둘러대고 말았다. 제대로 된 답일 수 없음을 알면서도 궁여지책이었다.
사실 얼마 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은 내게 왜 통일을 못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필자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다음은 또 무슨 질문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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