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우리의 음성 만주벌에서 울려 퍼져 오네

  • 김형효
  • 조회 3403
  • 2005.09.05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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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변의 민족 시인들(1), 조용남 시인의 시

 
 
 
연변의 민족 시인 조용남(65세)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민족문학인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우리로 치면 문협과 작가회의와 같이 치열한 당파성(지금 그런 게 있기나 한가?)도 존재한다. 그런 면을 보면 문학에서의 치열한 자기 돌파 노력속에는 내적으로 필연적인 갈등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사실 필자가 작년 7월 연변을 방문했을때 연변문학의 총편집장으로 부터 점심 초대를 받았다가 종무소식으로 한나절을 보낸 적이 있는데 우리로 치면 민작과 같은 민족적 입장에 충실한 연변문학의 총편집장께서 연변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필자가 조용남 시인댁에서 일주일을 기거하게 된 것을 두고 홀대하게 된 것이란 사실을 나중에야 연변문학 한국 지사장 석화 시인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되었다.

그러나 조용남 시인은 우리의 민족의 입장을 정면으로 배반한 그런 시인이 아니라, 다년간 민족문학을 통해서 작품을 널리 펼쳐오셨음에도 불구하고 한때의 과오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국인 우리 한국에서는 그런 부분의 평가를 극단적으로 한다는 것이 좀 가혹하다 싶다.

허허벌판 만주에서 우리의 삶터를 닦아오시던 분들이 우리의 운명적 고난을 감내하지 못한 애석함은 갔되 완전히 무시하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조용남 시인의 작품을 소개한다.

일주일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함께 두만강변을 거닐기도 했다. 조용남 시인의 한때의 과오가 짐이되고 있지만, 그는 많은 후학들에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있으면서 동족의 미래를 위해 여러가지 일들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조용남 시인의 큰 아들은 지금 원광대 약학대에서 석사과정을 수련중이다. 그럼 조용남 시인의 웅대한 민족적 기상에 찬 시편들을 감상하시길 바라며 앞으로도 지속해서 북한 시인들의 시편과 연변 시인들의 시, 그리고 재일교포 시인들의 시를 연재해서 통일 제1세대가 될 대학생들이 민족적 동질성을 확립하는 데 일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대학생들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 저 미제국주의자들과 보수 우익세력들의 책동에 민족의 이름으로 단일한 대오를 굳건하게 해 나가길 기대한다.

백두산석

분출된 암장의 덩어리
이글거리던 분노는 식었으나
쩡쩡 울리는 쇠소리속에
반항의 넋은 아직도 살아있는가?

남이장군이 검을 갈던 돌
애국지사 의지와 신념을 갈던 돌
한 많은 겨레의 뼈가 된 돌
불멸의 역사에 얼이 된 돌

나도 오늘 성스러운 이 돌 위에
천지물 끼얹으며 마음을 간다
유구한 족속의 이념에, 정감에
새파란 날을 세운다


오 겨레여, 우리 어데서 살든
끌날같은 백두의 얼로 살자!
우리 어데서 죽든
쇠소리 나는 백두산 돌이 되자!


옹달샘

갈수록 어지워지는 세상에서
너는 아직도
그렇게 정갈하고
그렇게 성결하다

일찍 내 혈관의 피가 되었고
내 마음의 눈물이 된 샘물
너의 물맛은 오늘도 변함없이
어머니의 젖 맛이구나

샘가에 앉아
맑디맑은 물속을 들여다보면
땅속에서 송골송골 솟아나
고로한 옛동요를 지절대며 흐르는 샘물

그립고 소중한 것이, 순결하고 천진한 것이
하나 둘 소실되어가는 이 세상에서
너는 나의 애련한
마지막 눈물방울 아니더냐

너는 안다, 태평양의 물로도 못다 씻을
오염된 이 세상의 때를
어찌 너의 이 작은 샘물로
씻어낼 수 있으랴

하지만 다음 번엔 기어코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리라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너의 샘물로
그것들의 마음을 닦아주리라


산꽃
- RS에게 바침

지금도 나는 알지 못한다
네 이름이 무엇인지를
아무렴 그 고장 사람들처럼
그저 산꽃이라 불러두자

나의 먼 오솔길에
그 거치른 운명의 고개 위에
꿈인 듯 황홀하게 피어나
내 기억에 뿌리 박은 산꽃

너의 담대한 꽃이었다.
능욕도 짓밟힘도 두려움 없이
세월의 길목에 조용히 피어나
기다리였지 갈망하였지

나는 놀랐다
해 짧고 구름 많은 북녘 하늘아래
이 버림받은 척박한 진흙땅에
어찌 이렇듯 어여쁜 꽃이 피어날 수 있느냐고?

그리고 나는 탄식하였다
너에게는 정말 이름이 없는지?
꽃의 족보에 오르지 못해
정말 아무 목, 아무 과에도 속하지 못하는지?

그때는 나도 너처럼
집없이 떠돌던 서러운 나그네
알아볼 겨를조차 없었구나
설혹 알아본다 해도 누가 나서 대답해 주었으랴

너의 미소의 부드러운 애무를 받으면서
나는 아픔 상처 마물구었고
너의 숨막히는 그 향기에 취해
나는 고달픈 세상일을 잊어버렸다

소치는 사람들은 너를 그저 산꽃이라 불렀다
그 투박한 손이 어쩌다 너를 꺾어
소뿔바에 꽂아주면 너는 거기서
수줍게 웃다가 반날도 못 가 시들어버렸다

하지만 너는 완강히
다시다시 길가에 피어났고
길지 못한 생명의 한철을
고집스런 기대 속에 지나 보냈다

너는 다만 이슬만 먹고 자라
맑은 향기를 세상에 남기었다
너의 꽃은 볼수록 예뻤으나
너의 뿌리는 기가 차게 쓰거웠다

이젠 너의 오솔길은 끝나
넓은 포장길 시원히 트이고
길녘 화단들에는 뭇꽃이 요염하게 웃고 있네만
나는 진정을 오로지 먼 추억에만 바친다

산꽃, 이름도 없는 산속의 꽃
이 세상 가장 꽃다운 꽃
너는 올 봄도 그 적막한 산길에 피어나
막연한 세월을 외로이 기다리리라
 
 
 
 
조용남

1935년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생
1951년 초중학생시절 <연변문예>지에 처녀작 발표
1957년 정치 풍파 후 장기간 추방생활
1984년부터 연변인민출판사 <아리랑> 문학 총간 편집
시집으로 <그 언덕에 묻고 온 이름> 외 다수
그 밖의 수필 아동문학, 번역작품 다수가 있고,
연변작가협회 문학상, 전국 소수민족문학상 수상 등 다양한 수상경력이 있음.

중국작가협회회원, 중국소수민족작가회의 이사,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시분과위원회 주임 역임 현 연변시조시사 회장, 연변자치주정협 제7기~제8기 상무위원

시작노트: 시의 기발에 씌여진 눈부시게 빛나는 두 글자는 곧 <서정>이다. 한 편의 시의 생명은 그 시가 표달한 진실한 감정에 있다. 우수한 시는 가장 쉬운 말로 가장 깊은 뜻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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