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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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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회귀선

  • 김경희
  • 조회 7454
  • 기타
  • 2010.10.19 21:17
바다가에 몸에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 여자의 시체가 있었다
한 남자가 지나다가 여자의 시체를 보더니 웃옷을 벗어 여자의 몸을 가려주었다. 그리고는 가던 길을 갔다.
또 한 남자가 지나게 되였는데 그는 여자를 바다가의 모래톱에 묻어주었다. 그리고 가던 길을 갔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 옷을 벗어 여체를 가려준 남자는 여자의 첫사랑으로 남났고 모래톱에 여체를 묻어준 남자는 여자의 남편이 되였다.
그리고 또 한 남자가 있었다.
---그녀가 라체일때 그녀의 앞에 잠간 머물면서 그녀를 감상하고 떠가난 남자,그 남자는 예술가였고 세월이 흐른뒤에 그녀의 애인이 되였다.

1
두터운 카텐, 질서없이 누운 술병들, 돼지간을 썰어 담았던듯한 피가 흥건한 빈 접시에 짝을 잃은 저가락 한가치가 일그러진 주인의 일상처럼 삐뚤게 놓여있는 차탁,매캐하고 퀴퀴한 냄새가 골똑 찬 방안, 쏘파위에 늘어진 쏘파보다 긴 남자의 몸체 …
  질식할것 같았다.카텐을 열어젖히고 창문을 열었다.
  당장 내려앉을듯 낮게 드리운 하늘이 잔뜩 찌프리고있다.구질구질한 날씨, 봄이라는데 철답지 않게 싸늘한 기온이다.그렇지 않아도 답답해 견딜수 없는 가슴을 한결 더 침침하게 내리누르는 낮은 기압, 숨이라도 끊겨야 이 숨막힘을 모면할수 있을가싶다.
  순간, 세상이야 어찌 돌아가든 술에 취해 단잠에 빠진 동생의 모습이 부럽다.그 태평스런 모습이 부럽다.저렇게 한번 시름놓고 단 십분이라도 잤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지는 남자.
  이틀전,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한후로, 지금껏 눈을 붙이지 못했다.집에가 자려다가 근심스러워 동생집에 달려왔더니 이 꼬락서니다.
형님 왔소? 동생이 찬공기에 잠을 깼는지 부시시 일어나 앉는다.잔뜪 꼬부라진 혀.그리고 저 망가진 상통이란…벌컥 화가 치민다.
저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버지가 죽는다 산다 야단인데 넌 술이나  처먹고 자빠졌어?
나두 속타 술 마셔…
속타? 그래 니가 속타 술 마셔?
너나 다른 사람 속태우지 말아! 아님 뒈지든가…
그 주제에도 뒈지란 말은 그렇게 노여운가? 침실에 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버린다.그리고 쿨쩍거린다.
그런 병신 동생을 보니 가슴이 쓸쓸해난다.
십여년전의 시내를 들썽하게 한 그 권총사건, 그때 총알이 관통해서 운동신경을 다쳐서 반신불수가 된 동생,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남은 전생을 보험최저보장금으로 지탱해야 하는 사내에게 남은것은 무엇일가?
동생 여자는 자기만 살겠다고 애를 남자에게 팽개치고 떠나갔고 동생은 자기힘으로 해낼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세상에서, 할수 있는 일이 술 마시는 일뿐이다.
일메터 팔십의 체격이 본의아니게 망가지고있다.절망이란 이렇게 한순간에 오는것임을 당해보지 않구야 누가 상상이나 할가?
잘 살겠다고 출국을 한 아내라도 곁에 있으면 남자는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으리라. 초중생인 아들애를 돌보는 일, 출근을 하는 일, 양로원에 계신 아버지를 드문히 보살피는 일, 그리고 병신 동생을 보살피는 일 이 모든것이 지금 하나같이 남자의 가슴을 천근무게로 내리눌러서 남자는 숨 막힐듯 한것이다.
문득, 어머니가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빈자리는 가슴에 구멍이 펑 뚫린만큼, 모습을 보이지 않는 태양의 빈자리 만큼이나 컸다.
두달전 어머니가 그렇게 훌쩍 지나가는 이야기 같이 떠나버리고 나서, 어머니가 가녀린 몸으로 감내했을 그 산악같은 삶의 무게를 조금씩 느끼고 있다고할가.
아버지가 술을 돈이나 여자보다 더 즐기는것에 겪는 어머니의 아픔을 보면서 남자가 한방울도 술을 입에 대지 않는 반면에, 형과 동생은 누가 자기들을 아버지의 피줄이 아니랄가봐 그런다는듯이 술을 좋아했고 형보다 동생이 더 술쪽에 기울어졌다.
 드살이 센 형수님덕분에 형은 술을 량껏 마시지 못하고 형수님과 함께 출국한지도 두해나 흘렀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의 특색이랄가, 형의 언약은 실속이 없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형은 목소리마저도 들려주지 않는다. 들려주지 않는지 못하는건지 그건 알수가 없는 일, 이쪽 상황에선 형수님 대하기 조금 어렵기도 하다.그걸 너무 깜찍하게 활용하고있는 형의 내외간.
삼촌이 아버님과 동생을 돌봐주오, 우리가 인제 돌아가면 다 알아처리할게.형수님은 이렇게 애매한 언약을 할뿐이다. 그 인제가 언제나 될가, 알아처리한다는 말은 돈을 쓴만큼 준단 말인가 아니면 아버지와 동생중 한사람을 책임진다는 말인가, 대중이 잡히지 않는다.
아버지의 약간한 퇴직비와 동생의 사회보험생활보조금으로는 생활 지탱할 정도밖에 안되는데, 아버지는 술쥐정에 앓음 자랑까지  하시고 병신 동생에겐  영양제품을 들이대고있는 상황이다.어머니가 생전에 모여놓은 약간한 돈으로는 얼마 지탱할것 같지가 않은데 앞길이 묘연하기만 하다.
맏아바이…
어디선가 미미한 부름소리가 들려온다.침실이다.
아홉살의 조카가 때자국이 꾀죄죄하고 눈만이 올롱해서 침대모서리에 앉아 남자를 쳐다보고있다.
너 왜 학교가지 않았니?
나 배고픔다.아이가 쿨쩍거리기 시작한다.남자의 가슴에 가슴시리게 파고든다.
잠간만 기다려, 맏아바이 밥 해줄게.
아이가 입을 다신다. 얼마나 배고팠을가…
저런걸 떼두고 떠나간 여자가 리해안된다. 하지만 동생을 돌아보니 생각이 바뀐다. 어느 여자가 병신에 쥐정뱅인 남자를 견딜수 있을가 싶다.
갑자기 진동하는 탄내음.
장을 끓인다는것이 넘쳐 흘러 가스불이 꺼지고 장 탄 냄새가 집안에 넘친다. 제정신이 아니다.식은 땀이 흐른다.그래도 취사칸에 뜬금이 서리니 집같은 분위기가 돈다.
밥에 장국을 말아서 주니 아이는 게걸스럽게 꿀떡꿀떡 넘긴다.저 아이가 대체 몇때를 건넜을지를 알수가 없다.
삶이 주는 감당할수 없는 이 모든것들이 일시에 자기를 쓰러뜨리려고 작심을 했나 의혹이 들만큼 초부하를 느끼는 남자.
엊저녁 형수에게 전화를 했었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구, 돈 보내줄수 있냐구. 그랬더니 형수가 그랬다. 먼저 어머님이 모여놓은 돈 쓰라구. 돌아가서 다시 보자구. 다시 보자구, 그 말투에서 남자는 불확실한 그 무엇을 읽었다. 그 다음의 말에서 대방의 진심이 보였다.
병을 치료하면 뭘해요? 술 마시면 또 재발할건데? 돈은 뭐 하늘에서 떨어지나요?
듣고보니 형수님을 무작정 탓할일도 아니다. 일리 있는 말이니깐.
돌아보아도 어디에서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할가.모든것은 남자가 홀로 해내야 했다.상황은 바람소리에도 기대고플만큼 남자를 허허롭게 했다.
아이가 밥 먹는 사이 남자는 깜빡 잠이 들었다. 한 십분쯤이였을가. 누가 부른 사람도 없는데 잠을 깼다. 그러고나니 문득 살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벌써 오후 네시다. 초중생인 아들애가 다섯시면 밥먹으로 온다. 밥먹구는 또 학교에 나간다. 마음이 저으기 급해진다.그때였다.
갑자기 핸드폰이 울린다.
여보세요, 보모 구한다구 하셨죠?
사뭇 부드러운 음성의 여자다. 목소리에 침착함과 따뜻함이 실렸다.
네, 힘들건데요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할게요.
전화를 놓는 순간 가슴속에서 무거운 짐을 부려놓은듯 후련하다.
하지만 없지않아 근심이 머리를 쳐든다. 전번에 왔던 보모들도, 한사람은 사흘만에, 한사람은 달포만에 항복했었다..
굶어죽어도 이집 보모는 못하겠소. 오십대의 여인은 도리를 젖는다. 쥐정에다가 심기 비뚤었지, 오줌까지 질질 흘리지 남자를 어느 여자가 받아낼수가 있으랴!
목소리를 들어보아선 젊은 여자같은데, 이번 보모는 또 며칠이나 견딜만할가?
창밖으로 자욱한 안개가 휩싸여오는걸 보면서 남자는 창을 닫았다.

2
삼십대후반의 무표정한 여자다.
하다가 힘들면 중도에서 그만둬도 괜찮습니다. 남자의 입에서는 시작도 하기전에 힘들면 그만둬도 좋다는 말이 나갔다.
알겠어요 하고 여자는 간단히 대답했다.
여자가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다소곳하는 순간, 남자는  이 여자를  어디선가 보았던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익숙한 눈길, 고집스런 느낌을 주는 단정하면서고 잘 다져진 입매, 그 여자도 저렇게 잘 다져진 입매였었지, 그런 생각을 잠간 하다가 어이없어 웃고말았다.
퍽 가라앉은 표정의 이 여자에게서는 란이의 락천적인 그림자나 인상같은것은 없었다.란이는 밝은 성격으로 인해 어디가나 그곳 분위기를 환하게 하는 그런 여자다. 그리고 아무리 나이 들었다해도 이건 란이의 목소리가 절대 아니다.이 여자의 목소리에는 어둔 그림자가 깔려있다.
동생이 운신도 바로못하고 술도 과하게 마셔서 힘들겁니다. 말도 잘 안듣구, 그리고 아버지도 나중에 퇴원하면 오시게 되구…
말하다가 남자는 부지중 여자의 눈초리가 젖어있는것을 보았다.남자가 의아해하자, 여자가 눈에 티가 들어서요..하고 말끝을 흐리며 손등으로 눈을 비빈다.
아까부터 까칠해진 눈초리로 여자를 훓어보던 동생의 눈길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핸드폰이 울린다. 병원인가보다. 아버지에게서 온 전화인가봐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니다.
담임선생의 목소리가 급하게 울린다.
집의 학생이 손가락을 상했어요. 철창에 긁히웠는데 심하게 상했어요. 그래서 백원줘서 학생하나 딸려 택시에 앉혀 병원 보냈는데 어서 가보세요.
청천 벽력이다.
급하게 나가는 남자의 뒤모습을 여자는 한참 응시하고있었다.
처치실에 아들애가 있었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다. 오른손으로 상한 왼손중지를 꼭 감싸고있음에도 불구하고 피는 그냥 흐르고 손이고 옷섶이고 온통 피투성이다. 곁에 함께 온 아이가 막 울고있는데도, 치료를 시작하지 않고있다.
왜 이러고있니? 왜?
돈이 모자란다고, 돈이 오기전엔 깁지 못하겠담다.
아들애가 얼굴이 피기하나 없으면서도 그렇게 또렷이 말한다.대뜸 속에서 불기둥이 솟구친다.
손가락 기워매는데 130원 드는데 애 호주머니엔 100원밖에 없기에, 아버지가 인차 돈갖구 온다고 애가 말해도 돈을 지불하기전엔 치료를 시작못한다고 의사가 그런단다.
하얀 위생복을 정갈하게 입고 단정히 앉아있는  의사는 삼십대쯤 돼보이는 안경 건 남자였다.
그는 다짜고짜로 의사에게 들이댔다.
당신들 눈에는 애가 피를 흘리고있는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30원이 무슨 큰 돈이라고 그 30원때문에 치료를 지체한단 말입니까? 저도모르게 언성이 높아진다.
병원입니다. 떠들지 마십시오. 이것은 규칙입니다.
자기 혈육이면 저렇게 침착할수 있을가 하는 반발이 생기면서 남자는 그러는 의사얼굴에 발길이라도 날리고싶은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사람이 죽어가도 규칙을 운운할겁니까?
격동하지 마시고 어서 가 돈을 물고 수속을 밝으십시오.
의사는 흥분하는 남자에게 한마디 던졌다. 수속이란 말에 정신이 퍼뜩 들어서 남자는 그제야 허둥지둥 돈물러갔다.
손가락이 거들거리고있었다. 그걸 보는 남자는 아프고 분한 마음이 뒤섞여서 견딜수가 없었다. 아들은 용하게 버티고있었다. 너무도 끼끗하게 잘 커주는 아들.
열두바늘을 기워맺다.
점적 주사를 맞히고 나니 어느덧 저녁 일곱시….갑자기 아버지 저녁을 장만하지 못한 생각이 났다.
아, 기진할것 같다. 근데 기진할때가 아니다.
몸을 세쪽으로 쪼개 쓸수 있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도 숙명이라면 숙명인가, 삼형제서 위와 아래 두 사람은 난봉을 피울때 남자는 커서  참한 학생이였고 그렇게 커서 조금 편히 살수 있을것 같으니깐 집안의 모든 압력이 일제히 남자의 어깨에 내려지는 이 현실, 정녕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는 힘든 이 길은 언제가야 끝이 보일가..
아버지가 계시는 병실문을 밀고 들어서는데, 아버진 식사를 하고계시고 그옆에 조카애가 서있었다.식탁으로 사용하고있는 약상자위에 놓여있는 눈에 익은 밥곽을 보면서 남자는 많이 놀랐다.
너 어떻게 왔니?
아지미가 가져가라해서 왔어요.
겉보기에 꽤나 차거워보이는 보모가 아버지의 때시걱까지 맡아줄줄은 진짜 생각을 못했었다. 그것은 그녀의 책임 범위가 아니였으니깐. 너무도 고마운 여자였다.
느닷없이 한 여자가 떠올랐다.자기의 첫여자, 란이도 저렇게 따뜻하고 늘 한발 앞서 남을 배려할술 아는 여자였었다.
어느 방학이였던가, 그해 방학엔 거의 전부시간을 시골 큰아버지댁에 가서 보냈는데 때는 마침 오얏철이라 남자와 사촌형은 동네에서 가장 먹음직한 오얏이 달리는 란이네 오얏을 훔쳐다 먹군했다.
그러다가 한번은 덜미를 잡혀 란이 할머니에게 경을 치를번했는데 그때 란이가 자기가 준것이라고 돕고 나섰던 기억이 지금 생각해도 입가에 웃음이 돈다.
달이 횅창 밝은 그날밤, 그날은 진짜 큰 경을 치를번 한것이다.란이 할머니가 언제부턴가 개를 기르고계셨는데, 자그마한 자취에도 개가 알아차리고 짖어대니 다가설수가 없었다. 그때 그들이 올것을 기다리기라도 한듯 란이가 개의 목을 그러안으며 이미 뜯어놓은 한 소랭이가 잘되는 오얏을 넘겨주었다.
무엇해서 고개를 그냥 썩썩 긁는데 란이가 남자 등을 떠민다. 어서 가라고…그렇게 재촉하는 달빛아래 유순한 란이의 눈망울과 조화를 이루는 고집스러운 꼭 다문 입매가  남자에겐 너무도 인상적이였다.


3
어서 술 가져와! 하고 호통치고있었다.
여자가 가져온 술은 고급술이였다. 병신남자는 놀랐다.그리고 곁들여서 가져온 안주로 여자는 물만두를 갖고왔다.
입이 벙글써해지는 병신주인.
물만두외에도 어느틈에 만들었는지 도라지무침, 오이김치,녹두랭채도 곁들어올라왔다.
문득, 이여자가 온지 며칠 안되는 사이에 집안이 일신했다는생각이 떠올라서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회칠한것도 그렇고 카텐이나 이불요도 다 뜯어씼었고, 아무튼 잽싸고 깨끗한 여자였다.
보모를 여럿을 바꾸어도 저렇게 부지런하고 자기일처럼 하는 여자는 처음인지라 병신남자는 조금씩 여자에게 치던 호통을 줄이고있었다. 아니, 목소리의 힘이 절로 무뎌지고있었다.
술을 따라주며 함께 마시자구 하자 여자가 눈물을 흘렸다.
왜?
저 술 먹음 죽어요.
죽는다는 말에 가슴이 쓰르르해졌다.
술 먹는데 죽긴?괜히 억양을 높였다.
저 많이 아파요. 술 먹음 의사가 죽는다구했어요.
참 오랜만이다. 여자가 부어주는 술 마시기, 아니, 여자 아니구 남자가 부어주는 술도 마셔본지 오래다. 그냥 혼자 싸구려 술로 목을 추겼으니깐.페인이나 다름없는 자기에게 언제 술친구가 있을가.
문제는 이 여자가 자기를 사람대접을 하는것이 기분이 좋았다.전에 다른 보모들은 자기가 술 마실라 치면 자기앞 일을 하고나서는 그날 임무는 완성이라는듯 가버렸고 아이가 학교가고나면 자기는 또다시 혼자가 되군했었다.그런 여자들과는 대비할수 없는 여자였다.
이렇다하게 이쁘다하기보다는 아련하면서도 수양이 엿보이는 그런 여자였다.여직껏 여자는 자기를 닥달하거나 귀찮게 구는 일도 없었고 그렇다고 자기앞에서 굽실거리는 그런 여자도 아니였다.조용하면서도 범접못할 그런 기질이 있었다.
술 먹음 죽는 병 어딨어요? 저도 모르게 존대어를 쓰고있다.
좋은 술에 안주가 좋아 그런지 속이 바쁘지 않고 전처럼 그렇게 엎어지게 취하지 않았다.
술 끊음 안돼요? 여자가 그렇게 남자를 빤히 쳐다보며 간절히 물었다.
술도 안 먹구 이 세상을 내가 무슨 멋에 살아요?
그리고 쭉 술잔을 굽냈다.
술 그냥 먹음 죽는데두요?
이렇게 살바엔 죽어도 뭐 무섭진 않구요. 하면서 또 술잔을 굽냈다.
그럼 이 약드시구 죽을수 있어요? 제가 함께 죽어드릴수 있어요.
여자가 약병 하나 자그마한거 내놓았다.
지금 무슨 짓이요? 남자는 술을 깨고있었다.
혼자 죽게 하면 억울해하실거 같아서 제가 동무해드리려구요…여자는 거짓말같지 않았다.
저는 이렇게 살고픈데, 큰 병이 있어요. 오래 못살거야요. 근데 댁은 오래 살수 있는데 술 마심 인차 죽을거 알면서 마시고있네요. 그러면서 여자는 눈물을 보인다.
저는 정말 살고싶어요. 살수만 있다면 무슨 일을 시켜도 다 할수 있을만큼.
여자는 입을 꼭 다문다. 입매가 고운 여자, 그러면서도 강함이 내비치는 입매.
제가 동무해 드릴게요, 죽을래요?
미쳤어? 이 여자? 술잔을 탁 내려놓았다.
저와 언성 높이지 마세요. 저 이집 돈 받고 일하는 여자지만 돈 받은만큼 그돈에 미안치 않게 열심히 일하고있으니깐요. 그러니깐 댁 저와 큰소리 칠 자격 없어요.
너무 야무진 여자다.
하나 묻자요, 제가 보모로 맘 안들어요?
괜찮지.
그럼 저의 말 들어야 해요. 앞으로 술 조금씩 량 줄이는거야요. 아셨어요? 안그러면 저 댁이랑 함께 죽을거니깐요.
자기를 살리겠다구 보건품이랑 갖구오는 형과는 달리, 이 여자는 독약을 갖고와서 이걸 먹겠냐 술 끊겠냐 하고 들이댄다. 세상에 참!
병신이지만 밑바탕은 선한 그는, 둬날째 술 한방울도 안댔다. 메스꺼워 견딜수가 없었다. 화장실에 와 토하면 여자는 와서 잔등을 다독여주고하면서 함께 애를 쓰는데 그럴때면 병신남자는 눈물이 날것같이 여자가 고마웠다.
자기가 왜 이여자말을 이렇게 고분고분 듣는지 자기자신조차도 어리둥절해지는 그였다.
그는 지금도 자기가 취해서 실수했을때 여자가 자기몸을 닦아주던 생각을 하면 한없이 부끄럽다. 취한것처럼 눈을 감고 모른척 하고있었지만, 이 여자에게만은 왜 부끄러운지 알수가 없다.
그날, 여자손이 하복부에 닿자 본의아니게 자기 물건이 일어섰고, 조금 놀라는가 싶더니, 여자가 마치 어린 자기 아들애를 다루듯이 손가락을 튕겨서 그런 자기 남자를 눕히고 무감각하듯이 자기 할일을 끝내고는 나가버렸다.
그날, 자기로서도 몹시 놀랐다. 자기가 여전히 건강한 남자임을 그날에야 그는 알았다.
그래서일가? 이 여자앞에선 실수를 안하고 싶고 맘 먹음 뭐나 다 할수 있다는 멋진 모습도 보여주고 싶고. 많이 아프다는 이 여자를 웃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여자가 지금 자기를 살리려구 무척 애를 쓰고있는것이다.
여자의 진심이 고마웠다.그래서 그는 여자에게 약조를 했다.
이 술만 마시구 나 인제부터 술을 끊겠으니까 그리 알아요.
여자의 눈이 커지고있었다.
고마워요, 하면서 여자가 눈굽을 훔친다. 눈물이 헤픈 여자, 고맙긴 내가 고맙지, 날 살리려구 애쓰는 여자.
자기가 힘드는걸 막으려고 여자도 노력을 엿보이고있다. 음식 입에 맞는걸 자꾸 바꾸려고 애쓰고 과일이나 과자 같은거 매식 들이대고 함께 마당에 나가 산책하는것도 거들어 주고 이야기도 재밋게 나눠주고 그랬다.
그리고 고마운것은 자기 아들애 공부도 배워주고 마치 안주인처럼 집안 구석구석에 신경을 썼다.전에 쩍하면 학교안가겠다고 떼를 쓰는 애가 요즘은 학교가기 좋아하고 집에와 숙제하기 좋아하고 표정이 밝아지고있었다.
그런 아이와 자기를 마주보며 밝게 웃어보이는 보모, 세상에 어쩜 저렇게 좋은 여자가 다 있을가 하는 생각을 한다.
4
아버지병이 조금씩 완화되고 숨 조금 돌릴만하게 되자 남자는 오랜만에 동생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동생도 보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여직껏 병원에 아버지밥까지 해나른 보모를 찾아서 감사하단 말도 하고.
진짜 하늘아래 어디가서 또 이렇게 착하고 약싹빠른 보모를 구할수 있을가싶었다.
문을 여는 순간, 일신된 동생 집안을 보고 놀라고있는데, 세수도 하고 깨끗이 옷 입고 멀쩡해 앉아있는 동생을 보는 순간, 남자는 입이 하벌어졌다.
동생은 생각외로 침실에서 텔레비를 보고있는데, 반신불로수 얼굴이 조금 한쪽켠이 부어있긴 했지만 그래도 정신나보였다.
형님, 나 술 끊었소..
남자는 속으로 기쁘고 놀랐지만, 괜히 입으론 말을 야박하게 했다.
이번 맹세는 승냥이 맹세가 되는건 아니구?
언젠가 술을 끊는다구, 새끼손가락을 깨물어서 피로 하얀벽에, 인제 다시 술 마시면 나는 개새끼다!!!하고 커다랗게 쓰고서도 술을 끊지 못하고 또 입에 대자, 그때 형이 그랬었다.
너 술맹세 개맹세가 됐구나, 인제 다음엔 뭐라구 써야할가? 인제 술 다시 마시면 난 승냥이새끼다? 그러구는 찔 흘겨보던 형이였었다.
아니요, 진짜, 사내대장부가 일언중천금이라지 않소.
동생은 진짜 맑은 정신으로 맹세를 하고있다.
그런 동생을 보니 형은 숨이 나온다. 그리고웃음이 나간다. 참 오랜만에 웃어본다.
니놈이 사람이 되나부다.그 맘만 있으면 된다. 자식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인생은 포기하는것이 아니잖니?
걱정 끄오 형님!
그렇게 형 시름놓으라고 말하는 동생이 참 름름하단 생각이 든다.
보모가 덜 힘들게 니라도 말 좀 들어라. 너를 돌볼라 아버지에게 밥 나를라 니 자식을 돌볼라 바쁘잖니?
형님이 말안해도 나 단단히 결심했소.
오랜만에 동생이 사람같은 말을 한다. 늘 술 먹고는 쓸데없는 말만 지절지절 거려 귀찮아 죽을번했었다.
반신불수인 몸에 술이 그렇게 들어가고 또 삶에 비정적 생각을 갖고있는 동생이라 생각없이 하루하루를 지냈었다.
점심때가 되여오자 보모가 점심 먹고가라기에 주저앉았다.
밥상엔 반찬으로 소고기 쪼림, 깍뚜기, 콩반찬, 명란젖 그리고 장국에 삶은 달걀이 있었다. 밥은 입살에 기장을 섰었는데 이 계절에 어디가 구입했는데 완두를 넣어서 풀기도 좋고 먹음직해보였다.
참 오랜만에 시름놓고 좋은 식사를 해보았다. 남자를 환희롭게 한것은 동생이 술 안먹는것이였다.
식사가 끝나고나서 과일을 들여온다. 대뜸 의심스럽다. 이런 식탁을 꾸리기엔 자기가 준 생활비로는 엄청 모자랄텐데…
여자는 그저 한마디를 할뿐이다 걱정마세요, 그냥 저에게 맡기면 돼요.
동생의 사회보험보장비래야 사오백원 정도밖에 안되는데 반찬 이렇게 해도 지탱할수 있을가?
글쎄 인제 아버지 로임 칠백원까지 합하면 되겠지만, 약은 뭘로 사드시구?암튼 타산없어보인다. 그럴 여자같진 않는데…
보모비를 올려드릴게요. 남자가 입을 여는데, 여자가 단호하게 막는다.
그럴 필요없어요. 돈이 모자라면 제가 그때 말을 할게요.
남자가 돌아가려고 일어설때, 여자가 보자기를 하나 안겨준다.
가져다가 드세요.
물만두에요. 입에 맞겠는지는 모르겠는데, 하면서 말끝을 흐리운다.
물만두는 미나리 속이였다. 흰고기점 한점도 안보이구 살고기 조금 넣구 풀을 많이 넣었다. 그리고 그렇게 맛이 순수하다.천천히 씹으며 보니 들깨도 들어갔고 참그림도 들어간것것 같고 생강 맛도 나고…..문득 음식은 정성이 곧 맛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정성이 슴배인 음식!
란이 집에 가면 란이 할머니가 미나리 물만두를 늘 빚어주었었다. 돈도 들지 않고 늪가에 그렇게 죽 깔려있는 미나리를 낫으로 캐다가, 만두를 빚었었다.
물만두옆에는 밑반찬도 둬가지 챙겨넣었다.
겉보기에 그렇게 차거워 보이는 여자가, 이렇게 자상하고 따뜻할줄은, 그리고 이렇게 자기까지 돌볼줄은 천만 뜻밖이다. 이런 여자라면 돈을 얼마 줘도 아깝지가 않다.
5
전에는 동생집에 발 들여놓는 일이 죽기보다 싫었다면 지금은 괜히 경쾌해진다. 남자가 들어서는것을 모르고 보모와 동생은 음악이 흐르는 방안에서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았다.보모가 아마 동생이 파리를 잡는걸 원치 않는 모양이다.
잡지 말고 밖으로 몰아내요. 하고 아까부터 보모는 자꾸 때려잡질 말란다.
생명보다 더 중한게 세상에 없잖아요?
미물 목숨도 목숨인거라구요.여자의 목소리는 낮으나 맵다
다른 사람이 이런 말 하면 동생은 버럭 고함을 지를텐데, 지금은 그냥 못 들은척 한다. 갑자기 온순한 양이 된 동생이 놀랄만큼 이상하다.
창턱에 마침 파리 두마리가 붙었있었다.
요것만 잡구 다시 안잡겠슴다. 말소리가 먿기전에 파리채가 파리를 향해 찰싹 떨어진다.
다른 때 같으면 바람결을 느끼고 언녕 날렵하게 날아났을 파리가, 두놈이 다 납작하게 죽어버렸다.
장난기가 발동한 동생이 두놈을 좌우로 죽 당기니, 숫놈의 물건이 길다랗게 고무줄처럼 늘어진다. 암컷몸에서 그렇게 늘어지며 빠져나오며 암놈과 떨어진다.입이 하 벌어진다.
이놈들이 놀고있었나?어른앞에서 버릇없이!
그렇게 죽이는게 아니라잖아요?
이 바보들이 둘이 좋아하느라구 목숨이 위태로운데도 피할념을 않았습니다그려.
동생이 큰 소리로 웃는다.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된답니다.
그런 말을 하는 여자를 남자는 놀랍게 바라보았다.저말은 란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였다.
사랑이라는 낮말을 떠올리기전에, 자기에게 처음으로 여자로 다가온 란이, 그렇다, 바로 그날 란이가 자기에게 여자로 다가온것이다.
얼음이 채 풀리지 않은 이른 봄, 강물을 건너야겠는데, 계집애가 따라오지 말거지 따라오구선 강을 건너지 못해 서성이고있었기에, 남자는 주저없이 란이를 업고 강을 건넜었다.
근데, 란이가 자기 잔등에 업히는 순간, 몽클하는 따뜻한 감각이 전해지는 순간, 그는 휘청했다.전신에 이는 전율!
무릎을 치는 강물을 건너는 시간은 너무 짧을 만큼, 남자는 란이를 업고있는 그 시각들이 감미로웠다.
사랑을 해보셨어요?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는다.동생에게 묻고있었다.
사랑이란 황홀한 낯말이 남자를 아득한 옛날을 떠올리게 한다.
별이 파란 밤, 복숭아꽃향기가 사람을 취하게 하는 복숭아꽃나무아래서 란이를 가볍게 포옹했던 그 순간들은 세월이 이렇게 흘렀어도 선연한 기억들이였다. 그것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남자의 가슴에 살아있는 추억이였다.
사랑을 해보았는가는 물음에 동생도 사색이 되여있다.
고개를 젖혀 천정을 쳐다본다. 하얀 천정에는 아무것도 없다.
몰려다니며 싸움하며 부모 속 태운짓거리외에 또 무엇이 한게 있단 말인가?
동생은 진짜 싸움군이 아니다. 그는 싸움을 그냥 좋아서, 그냥 그 나이에 걸맞는 유행처럼 따랐을것이다.싸움은 많이 하지만 늘 맞아서 당해서 돌아온다.
그날, 큰 무리싸움이였다. 자기네 패거리들이 다 피투성이 돼 쓰러지는걸 보자 동생은 몸을 돌쳐 집까지 도망쳐왔다. 근데 그놈 자식들이 집문앞에까지 따라와서 나오라고 문에 돌맹이를 던지며 고래고래 소리지르고있었다.
그때 형이 나갔었다. 웃으면서 말했다.
너네 이러지 말고, 진짜 겨누고싶다면 일대일로 하는게 좋지 않냐?
동생은 기고만장해서 풀쩍풀쩍 뛰며 덤벼라, 덤벼라 하고 뒤에서 고함을 질렀다.
그네들이 서로 서로 쳐다보면서 어쩔가 눈치들을 살피는 사이, 남자는 눈깜짝할사이에 제일 앞애에게 턱받이를 드세게 했다. 깜짝할사이에 그 아이가 쓰러졌다.
다들 눈이 둥그래지면서 달릴 태세를 취했다.
임마! 너 항복안할거니? 하고  버럭 언성을 높이는데 엎어진 애가 머리를 조아렸다. 그렇게 다들 물러갔다.
동생은 눈이 화잔등만해졌다. 형님 언제 주먹치기 배웠어?
임마, 싸움도 배워서 하니? 이기지 않음 안되는 싸움이기에 이긴것뿐이야!하고 뚱겨주었다. 사실, 이 세상 어느것인들 정신으로 하지 않을것이 있는가?정신이 이기면 이긴거다. 이것이 남자의 신조다.
그런 형이 있는것이 동생은 참 든든했고 자랑스러웠다.
그런 동생이 언제 사랑이란걸 해보았을가? 그래도 운이 좋게 여자가 생겨서 결혼은 했는데, 얼마 못가 외톨이가 된거 아닌가?
사랑을 하면 세상이 아름다워보여요. 사랑을 해보세요. 하고 말하는 여자는 너무 진지하다.
지금 여자는 사랑을 해보았냐는 물음만 던지고는 그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시름없이 창밖을 내다보고있다.그렇게 그린듯 서있는 여자의 뒤모습을 보면서 남자는  저 여자는 참 많이도 란이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전에 란이도 늘 저렇게 창밖을 내다보군했었지.
뭘 그렇게 내다보고계시죠? 하고 남자가 말을 하며 역시 창가로 다가간다.
여자는 남자를 바라보며 방긋 웃는다.
창밖을 내다보던 남자의 눈에, 복숭아꽃나무가 시야에 안겨온다.
옛날, 란이네 집 울안에도 커다란 복숭아나무가 있었었다. 그리고 복숭아꽃나무가 흐드러지게 필때, 남자는 처음으로 여자의 체취를 맡아보았고 그 체취는 복숭아꽃향기처럼 그를 아찔하게 했었다.
오늘 여자는 연한 하늘색 반팔 적삼을 입은 여자, 그렇게 입으니 그렇지 않아도 우아한 여자가 오늘따라 한결 밝아보인다.
여자는 엷은 미소를 머금고있었다.
동생이 많아 좋아졌군요. 어떻게 감사를 드렸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저 지독한 쥐정뱅이를 사람 만들구 아이를 이렇게 밝아지게 만들구, 이런 보모를 어데 가 구하겠습니까? 여기 오래 계셔주셨으면 합니다.
순간 여자의 얼굴에 어둔 그림자기 비껴간다.
글쎄요.
남자는 이 여자가 언젠가는 떠날거라는 불안함을 느꼈다.남자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이 여자가 말한다.
괜찮을거에요. 인젠 자길 아낄줄도 알구 아이도 자립력이 생겼구, 자식을 위해서라도 자기를 그렇게 포기하지 않을거에요.
그럴가요?
그럼요.
그날 저녁, 남자는 보모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6
여자와의 밤산책, 문득, 물씬하는 진한 꽃향기가 페부에 쑥 들어왔다. 취할것 같은 향기. 머릴 들어보니 살수꽃 복숭아꽃나무가 즐비하게 늘어섰고 미풍이 불면서 꽃즙이 흩날렸나보다.
복숭아꽃 나무 아래서 여자는 걸음을 멈춘다. 가까이에서 향을 맡아보기도 하고 화사한 꽃을 쳐다보기도 하면서, 꽃이 진짜 아름답죠? 하고 혼자말처럼 중얼거린다.
란이도 저랬었다.
그 즈음 삼월이 이면 복숭아꽃 살구꽃이 울긋불긋한 마을은 꽃의 날마다 꽃의 축제의 기분이였다. 그런 꽃향기속에 남자와 란이는 늘 잠겨있었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별은  지켜보았다.
전에요,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더랬어요.
차분한 음성으로 여자가 말을 꺼내고있었다.
그때도 이렇게 복숭아꽃이 필 무렵이였어요.
근데요, 그 남자와 난 분명 두 세계의 사람이였나봅니다. 그냥 그렇게 스칠수밖에 없었으니깐요.그남자와는 거기밖에 인연이 아니였을건데,  난 그 남자가 왜 끝까지 내 가슴속에 이렇게 자리 잡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체념도 했는데,  아, 기억력이라도 갑 자기 망가져서 잊을수 있다면 훨씬 편했을지도 모르죠 뭐.
보모의 이야기를 듣고있으면서 남자는 지금 줄곧 란이 생각을 하고있었다. 란이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있을가? 저 여자가 혹 란이가 아닐가? 그런 생각이 번개처럼 스치기도 한데 …
허구픈 웃음이 난다. 사람의 마음이란게 요사하기 짝없단 생각이 든다. 복숭아 나무를 보고 시골 복숭아나무를 떠올리고 보모를 보고 옛사랑 여자를 떠올리고.
여자가 발걸음을 멈추었다.저 앞이니깐, 인젠 돌아가세요.그러면서 가로수가 즐비하게 선 그 뒤의 아빠트를 가르킨다.
여자가 고개를 숙여보이고 돌아서는데, 그 뒤모습을 보면서 남자는 마지막으로 본 란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쓸쓸히 웃으면서 말없이 돌아서던 란이의 뒤모습, 바로 그것이였다.
그날 밤,궁싯궁싯 거리다가 겨우 잠이 들었는데 남자는 꿈을 꾸었고 꿈에 보모를 보았다. 꿈에 란이가 아닌 그녀랑 복숭아나무아래서 키스를 했는데,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보니 몽정을 했다.아내가 출국한 몇년래 난생 첨으로 해보는 몽정.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내가 왜 이러지 할 정도로!
그후로 남자는 동생집에 가기 저어되였다. 꿈에 보았던 그녀, 그녀와의 키스, 그리고 몽정, 그런 생각을 하면 그녀를 대하기 부끄러웠다. 꿈이란 너무도 요망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동생집에 갔는데, 보모는 그날 따라 일찍 집에 가고없었다.그녀가 없는 빈집인데도 동생은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려는듯 술을 안먹고 여자가 챙겨놓구 간 포도를 먹으며 음악을 시청하고있다.
김종환의 존재의 리유였다.애잔한 노래만 들으며 떠오르는 란이….
세수도 하고 머리도 씻었는지 멀끔하다. 워낙 잘난 남자라 동생은 희멀쑥해졌다.
뭘하고있었니?
아 형님 오셨소? 반긴다. 정말 너 약속 지키는구나. 남자의 칭찬에 동생은  의기양양해한다.
동생이 보는 목책에는, 보모가 요새 동생집에 와서 쓴 지출, 그리고 그외에도 일기삼아 짤막짤막한 글들이 있다. 근데 책갈피사이에서 하얀것이 날려 떨어지기에 보니 복수아 꽃잎이다.
이 여자는 너무도 란이를 닮았다. 책을 유난히 좋아하고 아끼는 란이에게는 책갈피에 꽃잎이나 나무잎을 끼워두는 습관이 있었다. 아니, 꼭 확인하고프다. 인제 다음번에 만나면 꼭 확인하고프단 생각이 간절하다.
형님, 보모가 좋지?
응!
저런 여자랑 딱 한번이라도 살아봤으면 죽어도 원이 없겠소.
남자는 아연해졌다.
동생의 눈과 표정에서 남자는 진지함을 읽었다. 동생은 이 여자를 좋아하고있었다. 근데 여자가 널 좋아할가? 그말을 차마 입밖에 내뱉을수가 없다. 사람이기에 형이기에. 건 너는 삶을 포기하라는 말과도 통하니깐.

7
달빛이 교교한 밤, 남자는 그녀를 데려다준다는 명목아래 그녀하고 산책할 기회를 또 한번 만들었다.
옛날에 말입니다 하고 말을 뗐다.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어요.
그 여자를 많이 좋아했나요? 여자의 눈길이 강하게 느껴진다.
네, 많이 좋아했죠 뭐.
아, 많이 좋아했다구요..하고 여자는 되받아 되뇌인다.
지금처럼 이렇게 늘 복숭아꽃나무아래서 밤 산책을 했답니다.
복숭아꽃 좋아하시나보죠?
네, 향이 짙잖아요? 복숭아꽃처럼 살다가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느덧 여자집문앞에 당도한 모양이다.
근데, 여자집문 앞에는 커다란 복숭아꽃나무가 한그루 서있었다. 삼월이라 꽃이 부서지는 달빛아래 하얗게 만개해있었다.
여자가 저 다왔어요. 잘 다녀가세요 하고 인사하며 뒤모습을 보이고있었다.복숭아 나무아래에 선 여자의 가냘프면서도 선이 고운 어깨선을 보는 순간, 남자는 이 여자가 너무도 란이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저도 모르게 란이 하고 불렀다.
여자가 문득 그자리에 멈춰선다.
란이 맞지? 심장이 터져나올것 같았다.
여자가 까딱 움직이지 않고 그림처럼 서있다.
가슴이 터질것 같다. 성큼성큼 다가가서 뒤에서 여자를 끌어안았다.틀림없는 자기의 옛여자였다.가슴깊이 아득히 간직하고있던 그녀만의 특유한 체취, 복숭아꽃 향기를 닮은 란이만의 익숙한 체취가 보모에게서 풍기고있었다.
남자는 여자를 와락 돌려세웠다. 그리고 눈이며 코며 입이며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너 란이 맞지? 하고 여자 눈을 정시한다.
응, 맞아, 오빠!
란이가 웃는다. 너무도 해맑은 웃음이였다.
아,란이, 너 정말 란이였구나, 어쩜 세상에…
남자는 여자를 으스러지게 안는다.놓으면 날아나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꼭 심신으로 껴안는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남자가 여자 귀가에 대고 속삭이듯 묻는데.
란이는 울고있었다.
여자가 남자에게 파고든다.흐느끼는 여자를 어깨를 다독인다.
    나 이러자고 찾아온게 아니에요. 그냥 곁에서 한번 지켜보고싶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싶었어요.
이게 꿈이 아니지? 남자는 이것이 꿈이면 제발 깨지 말기를 바랬다.
오빠, 이게 우리 집이니깐 우리 어서 집에 들어가요. 하면서 란이가 남자를 팔을 잡는다.
남자가 주춤한다.
여자가 알아차리고 웃는다.
오빠, 괜찮아요, 들어오시라구요. 제가 혼자 있는 집이라구요.
그말에 남자는 또 한번 가슴이 저릿해났다.
생각밖에 우아한 집안, 장식부터 가구와 전기제품에 이르기까지 질좋은것들이였다.
남자의 의혹스러워하는 눈빛에 여자가 입을 열었다.
오빠, 시내 여자가 되면 오빠 부모들이 절 받아줄수 있다고생각했어요 그래서 공부를 했구, 합자기업에 발 붙일수 있었어요. 그리고 언젠가 오빠여자가 될 자격을 갖춘거 같아서 오빠를 찾았는데, 그땐 오빠 이미 여자가 있었어요….
란이는 거기서 입을 다물어버렸다.눈에 눈물이 골똑 맺혀있었다. 언제보아도 고집스러운 입매는 이 시각, 긴 사연을 그렇게 둬마디로 일축해버렸다.
그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터질것 같았다. 남자는 후둘후둘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근데 불을 붙일수가 없었다.
여자가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여주었다.담배를 길게 한모금 빨아들였다. 하얗게 뿜겨져나가는 담배연기에 시선을 주며 남자는 지금 자기가 어떤 환상의 세계에 빠진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와인 한병 꺼내왔다.너무 정교롭고 이쁜 병이였다.
목이 긴 우아한 하얀 컵에 와인을 삼분의 이쯤 가량되게 부어서 , 한잔은 나에게 주고 한잔은 자기앞에 놓는다.
일본에 갔을때, 이 와인을 가져왔어요.인젠 참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직 뚜껑을 떼지 않았는데 끝내 이렇게 뗄수가 있었네요. 고마워요 오빠.
여자가 웃는 모습, 자기의 첫사랑의 여자가 웃는 모습, 너무도 오랜만이다.
너랑 이렇게 와인잔을 함께 기울일줄은 꿈에도 생각못했다.고맙다.자!
여자와 잔을 마주치면서, 남자는 여자를 마치 그림을 흔상하듯이 그렇게 꼼꼼히 뜯어본다. 여자는 활짝 웃어보인다.
와인도 최고급이고 와이잔도 일품이다. 사람은 더욱 진품이였다.
조금 입에 넣었다. 맛을 음미했다. 삽시에 부드럽고 연한 향이 입안을 감미롭게 채웠다.
지금 앞에 있는 이 여자, 처음 자기를  설레이게 한 여자, 그리고 복숭하꽃향처럼 자기를 오랜 기간 취하게 한 여자, 한잔의 와인같은 여자가 자기와 마주하고있다.
훌륭한 여인은 맛좋은 한잔의 와인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일수록 취하는 그런 맛좋은 와인, 아니, 값을 매길수 없는 진귀한 예술품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예술품을 알아볼수 있는 남자야말로 예술가라는 생각을 했다.
두사람은 그렇게 서로에게 취해서우아하게 와인을 마시고있었다.
근데 여자는 눈이 젖어 있다.
순간 남자는 여자를 와락 끌어안았다.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프다.이어 여자에게 깊은 키스를 한것도, 몸을 밀착시킨것도 한순간의 일이였다. 여자도 물리치지 않았다. 아니 남자에게 무너지고있었다.
남자의 모든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있었다. 근데 남자의 손이 가슴에 닿자 소스라치게 놀라고있었다. 그러면서 눈을 꼼 감았다. 가슴은 아직도 탄력이 있었고 아담한 여자였다.남자는 몸이 뜨거워지고있었다. 여자가 몸을 여는 순가.
문득, 저 여자와 한번만 살아봤음 죽어도 원이 없겠소 하던 동생의 눈이 환영처럼 떠오른다.
그순간 남자는 맥이 스르르 풀렸다. 란이를 안았던 팔이 스르르 풀리고있었다.
여자가 의아한 눈길로 남자를 쳐다본다.
이어 눈물이 줄 끊어진 이슬처럼 굴러내린다..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그녀는 눈물만 흘릴뿐이다.마치 여직껏 참아왔던 눈물을 다 뽑으려는듯한것처럼 보였다.
그날,  우는 란이를 동댕이치고 어떻게 거기서 나왔는지 남자는 기억이 없다. 아마 술도 안마시고 취했나보다.
8
며칠째 줄창 흐리터분해 있는 하늘, 드문히 비 내리는 날씨다.동생집에 가봐야 할텐데  란이를 마주할 용기가 없다.
마음이 산란해서 밖에 나갈가 어찌할가 서성이는데 조카애가 왔다.그 아이는 헐레벌떡 달려왔다.
맏아바이! 하면서 들어서고있다.
아이는 숨을 헐떡이며 손에 쥔 봉투를 내민다. 봉해있었다.
왜선지 불길한 느낌이 드는걸 떨쳐버릴수가 없었다.역시, 그것은 떠나면서 남긴 란이의 메모였다.

오빠, 안녕하세요?
남편이 차사고로 그렇게 숨졌어요.이건 이미 오래전의 일이예요.
참 좋은 분이였는데, 어느날 아주 우연하게 저의 일기책을 본거에요..그후부터 남편은 술을 가까이했어요. 그리고 술 마시고 그렇게 사고를 당한거에요.
그가 혈육이라도 남겼더면 제가 속죄하며 살수도 있으련만, 우리사이엔 애가 생기지 않았어요. 병원에 갔었어요. 근데 제탓이 아니래요. 그말을 전 그이에게 하지 않았어요.
오빠도 아시잖아요? 저 어려서 부모를 잃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걸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저에겐 오빠밖에 없어요.
오빠가 우리집 복숭아꽃나무아래서 절 처음으로 포옹해주던 날, 전 그때 제가 이 세상에 오빠를 내놓은 어떤 남자도 인젠 저에게 매력이 없으리란걸 알았어요.오빠는 저의 가슴에 너무 깊이 들어왔었으니깐요.
오빠, 연변방에서 낙화란 아이디 만났었죠? 그것이 저에요. 오빤 행복은 가까이란 아이디였죠?
그래서 제가 오빠 상황을 알게 된거구요, 그렇게라도 하면 도움이 될것 같아서 그런거에요. 그리고 지척에서 오빠를 보고싶었구요., 지켜주고싶었구요..
한가지 사과드릴게요. 그날, 제가 오빠 맘을 흔들어놓았던 일, 사실 그날 밤, 저 오빠의 여자가 되고싶었어요. 단 한번은 오빠의 여자가 되고싶었어요. 그러지 못하면, 그러지 못하면 나 울보가 되여버릴것 같아서…근데 그러면 안되겠죠 뭐, 오빤 아내가 있잖아요? 아니, 그러고 그렇게 좋은 아들, 그렇게 좋은 가족, 그런 행복한 오빠를 제가 불행하게 만들면 안되니깐요.
딱 한가지 부탁만 들어줄래요? 오빠 동의없이 제가 오빠 동생저축통장에 적금을 했어요. 그냥 저의 성의니 받아주세요..부담갖진 마세요. 왜냐하면 저에겐 돈이 필요없으니깐요.제가 오빠에게 해드릴수 있는 일이 있다는자체가 전 행복이에요.
래생이란게 있을가요? 정말 있다면 래생에는 오빠의 아내로 태여나도 돼요? 오빠의 첫 여자이자 마지막 여자로, 오빠에게 저의 전부를 드릴수 있는 여자로!
부디 행복하세요.저, 오빠와 같은 하늘아래 숨쉬고있는것이 너무도 행복했었어요.
힘들더라도 하늘을 쳐다보면서 살아요. 산다는것 워낙 그렇찮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있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 아닌가요!
오빠, 저 오빠가 너무 좋아요. 이런 저를 용서해주세요.
오빠, 부디 행복하세요!
오빠의 란이로부터…

가슴에 널장같은것이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듯 했다.다리가 휘청이였다.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에 택시를 잡아타고 급히 란이가 살던 집에 가보았다. 주인이 바뀌여있었다.
아니, 뉘신데? 머리가 허연 옆집 할머니가 눈을 잔뜩 쪼프리며 묻는다.
어디 이사 간다든가요?
동네서 하는 말 못들었수? 암이래유…혼자사는 여자가…..
현기증이 일었다. 암이라니…
남자는 제정신이 아니였다.
란이는 연변병원에도 없었다.종양병원에도 없었다. 시병원에도 없었다……
병원 울안에서 남자는 가로수를 안고 소리를 죽이며 울고있었다.가슴에 통증이 일었다.
행인들이 흘끔흘끔 돌아본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멀리 바라보았다.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짙푸른다. 오늘따라 왜서 이렇게 하늘을 쳐다보고픈지? 이별의 인사같은걸 할 짬마저도 자기에게 주지 않는 야속한 그 여자는 지금쯤 저 흰구름처럼 어딘가에서 떠다니고있겠지?
봄바람이 가슴을 후비고 지나갔다.
문득 복숭아꽃향기가 페부에 쑥 들어온다. 남자는 자기가 안고있는 나무가 복숭아꽃나무임을 그제야 알았다.
아, 란이의 체취를 빼어닮은 복숭아꽃향기!
하얀 꽃, 오늘따라 복숭아 꽃이 왜 이렇게 색상이 죽어있을가?  화사하긴 한데, 바람이 휘익 불어치니 눈이 흩날리듯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저 흰 꽃의 몸짓!
바람부는대로 한잎 두잎 아래로 춤추듯 떨어진다. 하얗게 웃으며…

미동 하나 없는
깊은
그대의 하늘속으로

5월은
신록을 휘뿌리며
녀왕으로 군림한다

찰나를
영원으로 달리게 하는
이 봄, 5월의 훈향은

나무를 나무이게
꽃을 꽃이게

그대 하늘의 푸름을 저며딛고
계절속으로 걸어들어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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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트명 : 시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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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이메일 : tiger30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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