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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고향에 갔더라(외6수)/한영남

  • 김경희
  • 조회 9293
  • 추천시
  • 2009.10.25 22:45

꿈에 고향에 갔더라(외6수)

한영남



꿈에 고향에 갔더라
고향은 꿈에도
어릴적 추억이기만 하더라

앞벌 가없이 펼쳐진 논에서는
밤마다 개구리 울음소리 노래가 되고
풀이 미여지게 자란 산골짝
실개천은 숨어서 소리로만 가더라

머리들어 하늘을 보면
아무렇게나 걸려있는 흰구름
기다려도 버스조차 오지 않는 언덕길이
하루내내 고스란히 낮잠에 빠져있더라

어디선가 개구장이 오빠가
물쑥 꺾어들고 불쑥 나타나줄것 같아
순이가 댕기 매고 뿌리내린 고향
흙에 코를 쿡 박아도 옛말이 아홉컬레씩

그리고 하오의 고요로움이
엷은 가락으로 들려오더라

꿈에 고향에 갔더라
고향꿈에서 나는
언제나 클줄 모르는 열네살이더라



내게 꽃멀미나 시켜라


마른 나무에 물이 오르는 계절
내게 꽃멀미나 시켜라

사람사이에 찡기면서 풀이 그리워
서러운 살몸 여미는 초라니 인생
한번쯤이라도 꽃멀미나 시켜라

쟁그런 해살이 부서지는 기껏 부드러운 하늘
파겁을 못한 소녀인양
오무리고 서서 바시시 떠는 가난한 심장
순간이나마 꽃멀미나 시켜라

개나리 복사꽃 개불알꽃 노루궁뎅이
우리 꽃들이 다급히 피는 계절
이슬이 싱싱해 그만두는 민들레의 아픔
양지에서는 저리 픽 웃는 달래의 쨍한 향
더도 말고 그저 꽃멀미나 시켜라

저쯤 바라보이는 저 꽃멀미나 술렁술렁 해보리



꽃잎으로 불러보리라


해빛 쟁쟁한
오전 아홉시

이슬이 아직
사라지기전

그 이슬진 꽃잎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설핏한 향이 코날을 스치는
그 섬섬한 꽃잎으로




님의 이름


조금은 눅눅한 새벽공기가 흐르는가운데  사랑하고 사랑하는 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밤새껏, 바람에 창이 푸르릉거리는 그 밤새껏 련습해둔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저 이륵이륵 밝아오는 하늘에 이제 너무도 예쁘게 피여날 선홍빛 노을같은, 한겨울 수북수북 말없이 내리는 순백의 눈송이같은, 그리고 이슬 함함히 머금은 빛부신 꽃두덩같은 그 이름을 부릅니다
하늘에, 바람에, 아득한 지평에 님의 이름과 더불어 새떼처럼 비껴갈 글자들은 기쁨이나 환희의 의미가 아니요 끝없이 슬픈, 황홀할 지경으로 아름답게 슬픈 약속의 이야기무더기입니다
지금껏 창으로 흘러드는 새벽빛을 온 몸우에 포근히 두른채 혼곤히 주무시고 계실 님의 귀전에 깨울가 깨울가 저어되여 정말 조용히 사랑의 노래도 불러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님을 깨우는 첫사람이고 싶습니다
님만이 알아듣는 나의 언어로, 나만이 알아듣는 님의 언어로, 우리 둘만의 터전에서 소곤소곤 나누던, 우리 둘만이 서로 통하는 그 꽃다운 언어로 순밀의 정을 담은 이야기를 다발로 엮어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님이 아시는 첫남자이고 싶습니다
나무우듬지 새울음이 날아가 님을 깨우기전에 나의 청명한 소리가 님을 부르며 막 달려가게 하렵니다
새벽 안개비 포근한가운데 조금씩 조금씩 푸르러지는 하늘과 오므렸던 호흡기를 시원히 펴게 하는 상냥한 바람과 아슴히 펼쳐진 저 지평으로 이제 막 비껴가서 아뢰일 아아 사랑하는 님의 이름이여!




친구야 이 가을엔 산으로 가자

친구야 이 가을엔 산으로 가자
저 씨 가득히 안고
고개 떨군채 말 한뼘 없는 해바라기와
마른 풀가지만 싱겁게 섰는 우리의 뜰을 벗어나

친구야 이 가을엔 산으로 가자
인사없이 성큼 멀어져 간 하늘아래
저쯤 기슭에서부터 낯익은 이름모를 풀들이
왜 인제야 오니 하며 서늘히 웃는

친구야 이 가을엔 산으로 가자
어릴적 미처 뜯지 못했던
개암이며 머루며 노오란 돌배가
상기도 그렇게 많을것 같은

친구야 이 가을엔 산으로 가자
순이도 불러라
용수에게도 정희에게도
그저 산으로 가자고 한마디만 하렴아

친구야 이 가을엔 산으로 가자
지금 이렇게 막 넘쳐나는 가을을
앞뒤에 옆에 그리고 머리우까지 함뿍 들쓰고
우리는 다시 그 다섯 애군이고 싶구나

친구야 이 가을엔 산으로 가자
보아라 저기
순이와 정희를 울려주던
그 무서운 코바위가 반겨웃질 않느냐

친구야 이 가을엔 산으로 가자
그때 그 잔디밭은 지금도 부드러울게다
아무 풀가지나 하나 꺾어보아도
우리 다섯의 이야기가 그대로 쟁쟁할게다

친구야 이 가을엔 산으로 가자
그리하여 너는 무우를 뽑아오고
순이와 정희가 재간스레 구운 옥수수도
우리 입술이 까맣게 먹어보자

친구야 이 가을엔 산으로 가자
우리 다시 또 한번 새삼스레
수업을 빼먹었다고 선생님께
눈물 뚝뚝 떨구며 꾸중도 들어보자

친구야 이 가을엔 산으로 가자
메뚜기는 잡겠니 그럼 잡아야지
술래잡인 하겐 그럼 놀아야지
곤두박질도 풀싸움도 다 해봐야지

친구야 이 가을엔 산으로 가자
시간이 없다고 제발 그러지 말아라
길이 멀다고 리유를 대지 말아라
저기 가을산이 섭섭해 하누나

친구야 이 가을엔 산으로 가자
너와 나를 키워주고 지금 또 우리를 부르는
이 가을 저 산은
우리 어릴적 코 풀어 메치던 고향이 아니냐

친구야 고뿔도 나눠하는 내 동무야
네 가까이서 서성이는 모든것은 다 제쳐놓고
자 이 가을엔 부디
우리 저 산으로 가자



가을이면 푸른 하늘을 걸어서 오시는 당신

포도알이 상기 푸른 구월
덜익은 해바라기처럼 고개들어
감히 하늘을 우러르면
그 아득한 푸르름속을
걸어서 오시는 당신을 볼수가 있습니다

비 그은 뒤 해살이 찬란하면
쑥스러운 국화처럼
비이슬에 함씬 젖은 머리털 털고
물껍질조차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여
하늘을 우러르면
그 질리도록 아슴한 푸르름속을
걸어서 오시는 당신을 볼수가 있습니다

누구를 바래듯
누구를 기다리듯
산기슭에 이윽토록 엉큼한 바위처럼
온몸이 그리움이 되여
하늘을 우러르면
그 넉넉한 푸르름속을
걸어서 오시는 당신을 볼수가 있습니다

넓은 들에 홀로 선 나무처럼
뚝 뚝 옷을 벗고
수많은 팔뚝을 환성처럼 펼치고 서서
하늘을 우러르면
그 섬뜩하도록 깊은 푸르름속을
걸어서 오시는 당신을 볼수가 있습니다

당신이 가신 뒤 쏟아지는 슬픔을
일기처럼 써두었던 시첩을 마주하고
그속에서 숨쉬는
당신의 향기를 당신의 모습을 당신의 아픔을
술처럼 마시면
시처럼 펼쳐진 푸른 하늘을
가실 때처럼 가벼이 가벼이
걸어서 오시는 당신을 만날수가 있습니다




거기에 추억은 울바자처럼 서있었네

눈이 내리고있었지
동화만큼이나 아름다운 눈이 펑펑거리고있었어
그리고 밤이였지
아무에게라도 전화를 하고싶은
그런 푸근한 밤이였지
열어놓은 기억속으로는
옛날 아슴한 이야기들이
청첩이라도 받은듯이 달려오고
겨울밤은 강물처럼 흐르고있었지
그속을 나는 아이처럼 환성을 지르며
달려가고 그래서 나는 다시 그
손가락을 빨던 소년이 되였지
괜히 네 생각이 나서
나는 너에게 눈줴기를 뿌리고
너는 고드름을 창처럼 꼬나들고
나를 향해 달려왔지
강아지가 갑자기 부끄러워 고개를 드니
더없이 맑은 밤하늘에서는
별들이 눈송이처럼 쏟아져내리고있었지
그래서 울었어
시집 못간 가시내처럼





략력

한영남
중국 길림성 안도현 출생
중고시절부터 시를 발표
'갈대는 저렇게 싱거워가지고', '환절기에 건강을 주문받습니다', ‘굳이 네가 불러주지 않아도 수선화는 꽃으로 아름답다’, '무깍지동네', '우리 서로 얘기 좀 합시다', '보리밭은 바람 아니더라도 설레이는것을' 등 시, 수필, 소설, 평론 200여만자 발표
연변일보 제일제당상,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상,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중국조선족동시 탐구상, 중국조선족수필상, 도라지장락주문학상 등 다수 수상
시집 <하나님 눈을 너무 깊이 감으셨습니다>(2006) 출간
현재 중국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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