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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시인, 서울에서 소매치기 당하다

  • 김형효
  • 조회 4074
  • 2005.09.05 21:40
- 공허한 하늘에 한점을 찍는 듯한 허무혼의 심장을 간직한 시인 김인선
   
 
 
이번에는 김인선 시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미 앞선 연재에서 김인선 시인에 대해 '연변의 김삿갓'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였다. 그는 준수한 외모에 넘치는 매너도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여성들의 마음 꽤나 사로잡았을 것 같은 모습이다. 거기에다 시 쓰는 사람이요. 술까지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니, 남자들 사이에서도 어디에서도 빠질 것이 없는 화려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보여주는 시편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구구한 섬세함을 보여주는 시가 '곰취를 뜯으며'가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대륙의 평원에서 "찌푸린 하늘을 쳐다보면서/곰취를 뜯는다/한잎 두잎", 바로 이 모습에서 평화로운 한적함을 느끼게도 된다. 공간적으로 드넓은 평원이 많지 않은 우리네 사는 곳에서야 무슨 한적한 평화이겠는가? 허나 드넓은 평원이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중국대륙의 만주벌에서라면 그런 정한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시인이 지금 한국에 와 있다. 불과 일주일전 처음으로 한국에 찾아온 것이다. 김인선 시인은 연변일보에서 파견 나온 기자 신분으로 약 3개월 정도 한국에 체류하게 되었다.

김인선 시인을 엊그제(1월 15일) 만났다. 시인은 지난해 7월 연길시 연변일보 근처의 양고기 뀀(꼬치)집에서 함께 마신 술이 아직도 덜 깬 것인지 낮술에 붉어진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과연 그의 애명이 김삿갓인 이유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가 싶다. 준수한 외모에 정 넘치는 모습으로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을 찾아왔다.

그리고 맨먼저 하는 인사가 한국에 왔지만 자신이 술을 한잔 사겠다고, 그럴 수 있느냐 제가 한잔 사야지요 했다. 그러나 그는 반드시 자신이 술을 사겠다며 후일을 기약하였다. 그는 바쁜 일과를 찾아 커피 한잔만 마시고 자리를 떴다. 아마도 곰취를 뜯으러 간 것일 게다.

곰취를 뜯으며


찌프린 하늘을 쳐다보면서
곰취를 뜯는다
한잎 두잎

검푸르게 윤이 나는 큰잎을 골라
손바닥에 쭉 펴보는 심사
거쿨진 손바닥에 두잎도 작아
여러 잎을 이리저리 겹놓아본다

어린 시절 내가 입던 헐렁한 옷처럼
작은 손에 곰취가 크기도 하더니...
혀 끝에 찡 감도는
씁쓸한 별맛이여

곰취맛은 예나제나 변함이 없으련만
가파로운 아홉고개 세고개 넘어서니
고달픈 인생살이 쓰고단 회포

숨가쁜 인생고개
가벼운 몸가짐의 날새를 보며
취쌈을 씹으며 얼굴 찡그리던
천진했던 동년을 되살펴보며

웃음과 기쁨과 쾌락도 있었건만
량미간의 깊이 패인 세월의 흔적
청춘의 번뇌, 가난의 울분을
곰취잎에 차곡차곡 쌓던
고통과 그리움이 눈물로 고인 웅뎅이에
념원과 실망이 반죽된 쑥밭에
고별의 쓴 미소를 날려보내며
씁쓸한 곰취쌈을 짓씹어 삼킨다

오, 거뜬한 내 마음의 줄달음이여
명랑해질 저 하늘을 쳐다보면서
곰취를 뜯는다
한잎 두잎


무제

기나긴 한겨울
땅밑에서 잠자던 뱀처럼
봄이 오자 땅우로 기여나왔다

거치장스러운 허울을
툭툭 털어버리더니
어허, 빨간 새살의 약동함이여

뼈도 철같이 굳어지고
근육도 울근불근
온몸에 파랗게 피줄이 선다

활랑이는 심장
부푸는 가슴
나는 내 피줄을 늘이리라

내 무덤이 봉긋이 솟아있는 곳
이 땅을 굽이굽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진붉은 피줄을 늘여가리니

바라노라 내가 묻힌 이 땅 우에
마지막 한사람이 살아 숨쉰다면
내 피줄속의 피로 고결한 넋을 키울 것을!


김인선
1957년 5월 연길시에서 출생
1983년 연변대학 한어계 졸업
연변가무단 창작평론실, 길림신문사를 거쳐 현재 연변일보사 문화부장
연변작가협회 회원, 중국 소수민족작가학회 회원

시 <무제>는 시의 언어나 주제로 보아 결코 무제일 수 없을 것 같은 작품이다. 그러나 이 또한 공허한 하늘에 한 점을 찍는 듯한 허무혼의 심장을 간직한 시인의 자기 표상법이 아닐까? 내가 그를 만난 것은 단 세 차례이다. 재작년 연변의 시조문학상 시상식에서 만난 것이 첫 번째인데 그때는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그러나 작년에 만나 세 시간여 동안 낮술을 마시며 느낀 그의 마음은 항상 풀밭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서도 여전히 핏줄이란 존재에 대한 최소한의 애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무제>는 아닐까? 그런 그를 사실 그저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평화가 찾아들 것 같다.

필자는 이 연변의 시 쓰는 삼총사와 형제지정을 나누며 지내기로 했다. 그런데 함께 술잔을 기울였지만 사람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전연 다른 것 같다. 같은 시간 동안 만났지만, 리임원 편집국장이 워낙 사무적인 풍모를 하고 있어서 조금은 어색하다. 오랜 동안 세미나 하듯 토론을 하면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런 반면 김인선 시인은 천상 시인의 풍모를 보여주며 젖은 눈빛으로 사람을 끌어당긴다. 또한 석화 시인은 침묵의 묵계를 간직한 채 서로의 눈빛으로 대화해도 될 것 같은 사람이다. 술잔을 기울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며 암묵적으로 소통하는 동지같은 풍모를 지녔다. 세 사람 모두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는 공통점을 간직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중에 <연변의 김삿갓>으로 불리는 시인이 한국에 와서 맨처음 경험한 것이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라니, 이 안타까움을 어찌할까? 하지만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내게 김인선 시인은 오히려 별일이 아닌 것처럼 안심시키려 한다. 유유자적한 모습이 삿갓 같은 대응 아닌가?

필자는 천상 그 삼총사 틈에 낀 막내라서 침묵의 성으로 뭉쳐진 그들에 잔을 채우는 즐거움으로, 앞으로도 오랜 형제지정을 나누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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