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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투명한 자기 고백이 있을까?

  • 김형효
  • 조회 3013
  • 2005.09.05 21:41
- 연변자치주에 몇 안 되는 젊은 시인 '권인호'
 
 
연길의 드넓은 땅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 소개되는 권인호 시인과 김순녀, 차영화 시인은 모두 60년 이후 출생한 시인이다. 연변자치주에 몇 안 되는 젊은 시인 중에서도 연길 출신이다. 우리 문단에도 노령화 현상이 깊어지고 있다. 연길 또한 마찬가지다.

문화활동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연변자치주에 급격한 변화는 한류의 영향이다. 아니 한류 뿐이 아니다. 일본으로, 미국으로 그들은 급속하게 빠져나가고 있다. 그렇다. 문화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먹고사는 일이 우선시되고 있는 그들의 절박한 현실이 그런 환경을 예비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 사회를 유지하고, 이해하는 인구수의 감소는 어찌보면 당연하다. 사실 요즘 들어 그 사회를 이해한다해서 특별하게 어찌 할 수 있는 것도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다만 소통한다는 것, 소통한다는 것은 그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한창 젊은 시절의 왕성한 삶을 살아갈 시인 권인호의 눈에 비친 고뇌는 그런 점에서 정직하다. 우리가 소통하고 기약하다보면 그의 시 "못난 비둘기"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처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 "창백한 꿈을 부둥켜안고" 함께 몸부림도 쳐볼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시인 권인호의 고뇌에 찬 모습이 눈에 선하다.


못난 비둘기(연길시인 4)


네가 서 있다
안절부절 서 있다

어느 일몰의 광장에
흐르지 못하는 오염된 슬픔으로
창백한 꿈을 부둥켜안고
구구구 붉은 빛깔을
혼자 울고 있다

날으려 한 하늘은
갑자기 낯설고
칼칼한 바람속에서
가냘픈 네 이름 석자가
네 목을 휘감는다

어느 때이고
빈혈된 몸뚱아리가
자꾸 스러지려 할 때
진한 네 피빛내음은
질기게 저항을 한다

1989년 9월 작



권인호 약력
1961년 연길시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현재 연변작가협회 회원
연변문연 <예술세계>잡지사 편집


대개의 연길시인들의 시편에서 동화적인 느낌이 많다. 아래의 김순녀 시인에 작품 또한 그런 느낌이 많다. 어린 소녀의 감수성이 "녀인의 마음은 항구"라고 자기 고백적인 체험을 노래한 듯 하다. 작품의 수준에 높낮이를 따지기 보다 현재 소개되고 있는 젊은 시인의 시편이 드물어서 곁들여 소개한다. 사실 마음에 드는 작품은 아니다. 여전히 소박하기만한 그런 서정은 연변 시인들에게 갖는 불만이다. 하지만 또 그런 시작이 장점으로 읽힐 때가 없는 것도 아니다. 아무튼 김순녀 시인이 희망의 돛을 달고 시인의 길을 진지하게 성찰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녀인의 마음은 항구



머나먼 인생길에 지친 나그네
고요한 항구에 잠들었습니다
스러져가는 저녁노을 고이 지켜주는
아, 녀인의 마음은 생의 마지막 항구

세찬 파도 넘나들며 싸우던 사나이
파도 잠든 항구에 다리쉼합니다
거치른 숨결 고르로이 펴주는
아, 녀인의 마음은 장미빛 항구

여린 것 펼쳐 날아간 소년
생활의 바다에서 물보라 헤칩니다
파아란 동심에 등대불로 반짝이는
아, 녀인의 마음은 미련짙은 항구

떠나보낼 땐 희망에 부푼 돛폭 달아주고
기다릴 땐 진정에 목메인 기도 드려주다
맞아줄 땐 환한 미소로 닻을 내려주는
아, 녀인의 마음은 따사로운 세계
영원히 지칠줄 모르는 신비론 항구


김순녀
1965년 5월 연길시 출생
18세에 처녀작 <들국화>를 발표 문단에 데뷔
현재 연변재무학교 수학중


다음은 차영화 시인의 시이다. 그의 시에서처럼 연길 시인들과 우리 민족에게 "봄의 푸른집"을 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그가 시에서 기대하는 님처럼 아니 님과 함께 그런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차영화 시인은 참으로 순정한 사람같다. 단 한번도 그와 대면하지 못했지만 그의 시편을 대하고 있으면 참으로 맑은 영혼이 느껴진다. 아니면 깊은 고통과 번뇌의 끝에서 건져 올려진 투명함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그의 시구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거울같이 투명한 맑은 물속을/순정을 바닥까지 숨기지 않고"에서도 잘 읽어낼 수 있다. 시어는 시인의 말과 같다. 그런 점에서 차영화 시인의 말은 투명한 맑은 물속을 순정을 바닥까지 드러내듯 숨기지 않고 싶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보다 더 맑고 투명한 자기 고백이 있을까?


나는 너의 기억속에



나는 너의 기억속에 흘러가버린
한줄기 가냘픈 시내물일지도 몰라
거울같이 투명한 맑은 물속을
순정을 바닥까지 숨기지 않고

나는 너의 기억속에 날아가버린
한 마리 작은 새일지도 몰라
울음울음 여린 나래 퍼덕이면서
창공에 점을 찍고 멀리 사라진

아니, 나는 원한다. 너의 기억속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비취색 호수이기를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너의 마음에도 한복판을 차지한...



1985년 12월 작



숫눈



숫눈길 우로
겨울의 어린아이 태양이
맨발로 달려갑니다
푸른 봄의 집으로

젖갈은 하얀 얼굴에
짧은 흰바지 입고서
솜같은 눈을 전주르며
조용히 걸어갑니다. 봄의 가슴으로

꽁꽁 여민 옷깃 밑으로
파란 아씨 선물 줄 댕기 간직하고
눈발같은 머리카락을
바람처럼 휘날립니다

문창지 드렁드렁 울리며
고향집 처마 밑 지날적엔
성에장 어린 유리창에 이마 맞대고
파란 눈동자 소녀와 입을 맞춥니다.


1983년 12월 작


봄의 푸른집



봄이여, 문을 열어라
젊은 애인 나의 님이 들어오리니
창가의 하얀 카텐 벗기고
해빙기의 강을 바래주자

봄해살은 얼었던 손 녹여주고
처마 밑의 고드름 옷고름 푸누나
개울은 개울마다 눈석임물이
손에 손을 맞잡고 발맞춰 나가누나

눈이 시계 빛을 내는 봄태양이여
메말랐던 땅에 젖꼭지 물려주어라
조약돌은 언 가슴에 봄을 안고
백사장은 잃었던 발자취 찾누나

봄옷 입은 종달소녀야
오선보에 곡을 붙여 노래불러라
언덕에서 바느질하는 잔디아씨
풀피리소리에 귀 기울이누나

봄이여, 문을 열어라
젊은 애인 나의 님이 들어온다
머리에 너울쓰고 가슴에 꽃을 달고
봄의 푸른 집으로 들어온다-


1983년 11월


차영화
1965년 2월 연길시 출생
1983년 처녀작 <가을은 어머님>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현재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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