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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거리를 완전히 차단한 채 섬뜩한 분위기 아래서 공개재판은 진행되었다

  • 김형효
  • 조회 3028
  • 2005.09.05 21:49
- 겨레의 소원 통일을 이루기 위해 가슴을 활활 열어제치고 힘써 나가자
 
 

낯선 거리를 걸어왔다. 연길 시내 중심에 신화서점 사거리(한국 같으면 광화문사거리)를 가득 에워싼 군경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스피커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말이 쏟아졌다. 한국 같으면 소 시장에 소를 실어 나르는 트럭 위에 포승줄에 전신이 묶인 사람들이 대 여섯 명씩 실려있었다. 한 죄수마다 두 세 명으로 편성된 군경의 감시가 있었고, 트럭을 중심으로 몇 겹의 방어망이 쳐져 있었다.

<주 및 시 공개체포 공개재판 선고대회>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아찔하고 겁이 났다. 한족, 조선족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가는 비가 내리는 사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고 있었다.

사거리의 차도를 완전히 차단한 채 섬뜩한 분위기 아래서 재판은 진행되었다. 사진촬영을 할까 말까 몇 번을 망설이고 주저하였다. 건물 옥상 위에서부터 사거리를 몇 겹으로 둘러싼 군경이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참 후 이것은 이곳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인 일인 것 같다는 느낌으로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그래도 계속 촬영할 수는 없었다. 한참을 구경한 후 신화서점에 다시 들렀다.

서점을 둘러보고 나오다 우리말을 하는 중년의 사내에게 지금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어떤 것인가 물었다. 그는 도문 종교국에 근무하고 있다는 조선족이었다. 그에게서 나는 촘촘하게 실상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이런 선고대회는 보통 1년에 한번씩 열리는 데 근간에 자주 열렸다고 한다. 이는 재판절차가 모두 끝나고 이미 형이 확정된 죄수들이라고 했다. 당국은 죄수들을 통해 시민들을 계도할 목적으로 공개수모를 주는 절차를 밟는 것이라 했다. 이는 죄수들의 인권과는 거리가 먼 탈법적인 것이었다.

죄수들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한시간 삼십 분 동안 진행된 재판절차가 끝나고 죄수들을 실은 차량이 빠져나가는 그 꽁무니를 보며 손짓을 하면서 자신들끼리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았다. 낯설다. 잠시 후 연길시 복무대로라는 냉면집에 들러서 잃어버렸던 카메라를 잘 보관해주었다는 답례를 하였다. 이곳에서도 인기가 있는 가수 김건모의 CD를 건네주었다. 감사의 표현이었다.

석화 시인은 약속시간보다 조금 이른 열시 이십 분 신화서점 앞으로 오셨다. 우리는 함께 북한에서 운영하는 두만강 호텔에 들러 석화 시인의 일행인 배재대 교수들을 만났다. 잠시 후 전 길림성 신문사 사장이셨던 이송영 선생, 연변라디오국장, 연변텔레비전국장, 연변일보사 사장과 문화부장, 국장 등을 만났다. 서로 수 인사를 나누고 호텔 커피숍에서 녹차를 한잔 씩 하며 안면을 익혔다. 기다리던 일행이 모두 도착하자 2층에 있는 호텔식당에 가서 북한식 식단으로 식사시간을 가졌다. 모두들 식사 도중에도 뜻깊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특히 이송영 선생과 연변일보사 허사장님, 배재대 학생처장님의 이야기가 감명 깊었다. 민족의 내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나름대로의 방법들을 제시하며 훈훈한 자리가 마련된 것이었다. 맨 처음 따라 건배를 청한 술은 공교롭게도 주도가 38°였다. 모두들 38°인 술을 삼팔선에 빗대어 우리 겨레의 소원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 가슴을 활활 열어제치고 힘써나가자고 제창하였다. 마침 시중을 들던 북한 처녀인 복무원의 입가에 미소가 흐르는 것을 보고 일순간이지만 훈훈한 겨레의 심성을 엿볼 수 있었다. 45°가 되는 술을 몇 잔 마셨지만 얼굴이 붉어질 뿐,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호텔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한 후 곧 연변대학을 찾았다.

일 년만에 다시 찾는 연변대학이 구면이라고 낯설지 않았다. 물론 지난 해 방문으로 안면을 아는 교수님도 있고, 학생들도 있으니, 당연한 것이기도 하였다. 반가운 것은 허휘훈 선생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다. 허휘훈 선생은 북한문학을 전공한 학자인데 지난해 필자가 발행하는 격월간 <시와 혁명>에 북한의 시인 김순석에 대한 평문과 시를 보내주셨던 분이다. <시와 혁명>에 원고를 주신 것에 대해 허휘훈 선생께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또한, 연변대 조선어문계의 경륜 있는 교수님들과의 인사를 마치고 현관을 나서다 권철 선생님과 마주쳤다. 그간에 안부를 묻고 권철 선생님, 석화 시인, 배재대 교수 한 분과 기념촬영도 하였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한국 상품 전용백화점을 찾아 아이쇼핑을 하고 신화서점을 거쳐 천지출판사로 향했다. 천지출판사의 부주필 등과 명함을 교환했다. 또한 장지민 사장과 커피를 마시며 한국과 북한 그리고 중국 조선족의 교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연변과학기술대학으로 향했던 일행이 천지출판사에 도착하자 곧 성당술집이라는 중국식 식당을 향했다. 둥근 원형탁자에 회전 음식판에 잘 차려진 음식을 들며 담소를 나누었다. 역시 이송영 선생과 장지민 선생이 축이 되어 민족의 문제를 화두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다시 사진 촬영이 있었다. 하루의 바쁜 일정, 시내에서만 이리 바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니 놀랍다.

다시 숙소인 조용남 선생 댁으로 향했다. 도무지 종일토록 무소식인 권순진의 행방이 궁금해서 주정부 청사를 지나 공중전화에서 그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부인인 오선생이 받았다. 어제 기후가 좋지 못해 관광 온 한국 분들이 바로 떠나지 못해서 장춘까지 안내를 하고 돌아오는 길인데, 밤 열 한 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할거라 했다. 밤거리를 걸어 선생 집을 향했다.

선생님께서는 연변조선족 21세기 문학선집을 부탁한대로 구입해주시고 다른 두 권의 책까지 선물로 주셨다. 고맙고 아늑한 마음을 느낀다. 다시금 감사할 따름이다. 선생님에게 내일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 또 오늘 만난 분들에 대해 소상하게 이야기하였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정리하며 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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