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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어수선함 속에도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인상적

  • 김형효
  • 조회 3080
  • 2005.09.05 21:50
- 홍현양 시인은 현재 작가동맹 부주석
   
 

아침이다. 오늘은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할까? 맨 먼저 나는 월간 연변문학에 들르기로 했다. 만나고자 원한 분들은 아직 출근 전이었다. 계단을 내려 밖으로 나오려는데 곧 조성희 부편집장이 출근하였다. 한국과 연변의 문학적 소통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이야기를 나눈 후, 곧 김응룡 시인이 출근하여 다시 다른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2000년 6월에 방문했을 때 만난 적이 있어, 곧 친근감 있게 안부를 묻고 궁금증들을 이야기 나누었다.

이번 방문 목적(조선족 문학기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도중 설인 리성휘 시인의 시집을 선물로 주었다. 여행 목적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고마운 마음이었다. 북한의 김조규 시인에 대한 나름의 자료를 건네 받았다. 설인 선생이 쓰신 원고였다. 잠시 후 장지민 사장을 만나 북한의 민간에서 유통되는 유머와 우스개 이야기에 대해서 출간할 수 있는지, 그럴 의향이 있는지, 그리고 남한에서 판매와 출판의 영업적 효용가치가 있겠는지 알아보고 서로 검토해 보기로 했다.

그것은 북한에서 주간 단위로 발행되는 생활의 우스개를 모은 잡지가 있는데, 사회주의 사상 고취를 강조하는 그런 내용이 배제된 것이니 남한에서 1년에 2회 정도로 묶어서 내는 것은 어떻겠는지 묻는 것이었다. 이어서 북한의 작가동맹과 홍현양 시인의 소식을 들었다. 홍현양 시인은 현재 작가동맹 부주석이시란다. 그리고 나진을 통해 왕래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연변문학에서 나와 연길 시내를 걸으면서 상점들을 구경하였다. 거리의 어수선함 속에서도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인상적이다. 거리가 전체적으로 빨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작년과 비교해서 거리에 간판들의 글씨체가 세련되게 변했다. 한국에서 연길에 올 때 만났던 아주머니를 신화서점 앞에서 만났다. 그리고 권순진 시인과 만나기로 했던 체신호텔로 옮겨 커피숍에서 차를 한잔 한 후 권순진과 함께 만날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권순진과는 헤어지고 그녀의 안내를 받아 백화점 등을 아이쇼핑하였다.

시내를 둘러본 후 다시 권순진을 통해 한국 돈 20만 원을 중국 돈으로 환전하였다. 비가 내렸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빗줄기에 바지가 다 젖었다. 하는 수 없이 조용남 선생 댁에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석화 시인에게서 소개받은 화룡현의 김문회 시인을 찾아 길을 떠나기로 했다.

조용남 선생님은 김문회 선생을 찾는다고 하자. 곧 선생의 이력과 그의 품성 그리고 시적 성취에 대해 상세하게 말씀해 주셨다.

조용남 선생의 말씀에 의하면 "그는 연변 시에 살고 있지 못해서 시인적 재능에 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연길 시외의 시인 중에서 제1에 설 수 있는 시인"이라며 "그런 그가 제대로 평가받고 있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은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고 한국에서의 중앙이라고 하는 서울과 지역문단의 차별성은 이곳 연변자치주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차라리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었다. 그렇게 김문회 시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다시 연길 역전에서 화룡현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13원 50전을 지불하고 차표를 구입했다. 차는 연길 시내를 빠져 나와 연변자치주 조선족의 자랑거리 중의 하나인 사과배 밭을 지나고 용정을 지났다. 용정까지는 20분 정도 소요되었다. 드넓은 농토, 밭에는 옥수수, 콩, 등의 푸른 농산물이 산야처럼 펼쳐져 있었고 논에는 벼가 푸른 벌판을 드넓게 펼쳐 놓고 있었으며 어디에 시선을 두던 사방팔방으로 높고 장구한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비가 오다가도 잠시 잠깐만 지나면 다시 그치고, 그래서 아주 그쳤나 싶으면 다시 소낙비가 내리고 ,다시 멈추나 싶었는데 이제는 먹장구름이 앞을 가리며 장대비가 쏟아져 내린다.

1시간 20분 정도 지나서 황동으로 된 조형물이 나타났다. 화룡을 상징하는 룡일 것이다. 최근에 설치한 조형물인 것 같았다. 참으로 찬란하게 비상하는 룡이 눈앞에 펼쳐지고 화룡현 임업사업소 등등 관공서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공용 버스 터미널이다. 연길이나 도문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유희의 잡지가 가판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니 차라리 덮치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이런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김문회 선생과 통화한 후, 여객터미널에서 기다리는데 낯선 불안이 떠나질 않는다. 중소도시의 삭막함 같은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언어소통의 한계가 주는 불안이기도 하다.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어쩌나, 그것도 한어, 중국말로... 그러다가 여기 저기 눈치를 봐가며 조선족이 있으면 이곳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잠시 후 조선족 여객터미널 종사원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고향이 화룡이며 나이는 42세란다. 월 급여는 중국돈 500위엔을 받는다고 했다. 한국 돈으로 10만원이 채 못되는 돈이다. 그렇게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결코 궁색한 모습을 보이거나 하지 않고 밝고 당당한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멀리서 걸어오는 오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있었다.


송화호


<북녘 시인 홍현양>

바람 한 점
구름도 한 점 없는 하늘
물결도
그 빛을 담아
푸른빛

백두산의 천지가
그대로 옮겨진 듯
첩첩 산발들도
그 기상을 닮은 듯

송화호 물결 우에
떠나가는 유람선들 우에
빨갛고 파아란
처녀들의 옷자락이
구시월 단풍처럼 타고있구나

기숡엔 푸른 산발
숲속엔 휴양각들 눈부시고
한 굽이 돌아서면
물 마시러 흘러내리는
젓소 떼의 영각소리

아, 물을 보러
산천만을 보러 가는
배 길이 아니구나
친선의 바다
단결의 노래로 흥취한
송화호여

눈 덮인 준령을 넘으며
피도 눈물도 함께 나눈 형제들이기에
물을 봐도
산천을 봐도
생각은 하나같구나

산새들이 나는 저 하늘
꿀 향기 넘쳐나는 호반에
조선의 춤 노래
중국의 춤 노래를
송화호의 절경으로 영원히 새겨 가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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