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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을 느끼는 시, 희열이 있는 시를 쓰고 싶다

  • 김형효
  • 조회 2865
  • 2005.09.05 21:52
-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인 리선호
   


잰걸음으로 걸음걸어가는 시인의 눈길을 보는 듯하다. 멀리 있는 혹은 먼 이야기가 아닌 내 주변의 일상에서 소박하게 펼쳐진 풍경을 사랑스럽게 갈무리한 시인의 모습이 눈에 비친다.

박꽃같은 웃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한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는 박꽃은 깨끗하고 순박한 시인의 마음같이 푸근하게 꼬부랑할머니를 찾아내고 있다. 손자 손녀의 재롱같은 박꽃넝쿨이 넝쿨을 뻗듯이 손자 손녀를 비롯한 가족사가 이어지기를 고대하는 듯하다.

잔잔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인의 심성 안에서 나도 평온한 농촌 마을 풍경을 그려본다. 어린 시절의 고향에서 박꽃 넝쿨을 보았다. 그때가 세삼스럽게 새김질되는 것은 거짓없는 순박함 속에서 돋아나는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시인이 한 무더기로 펼쳐 놓은 이야기의 아름다움에 있는 것일 게다.

다음 시 <개암맛>을 읽어가면 해학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특별나게 비틀거나 의도적인 아이러니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편안한 서술 속에 있는 정황을 <있는 그대로> 드러냄 속에서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우리들, 독자에게 웃음을 심어준다. 시를 읽는 독자에게 해맑은 웃음을 웃게 한 시인이라면 시인의 만면에 얼마나 넘치는 희열이 있었을까?

시인 리선호 선생이 부럽다. 자본주의 철창이라 부르면서 서울 속에서 시를 쓰는 필자는 스스로 쓴 시에서 항상 절망과 고통을 절감한다. 아프다고 마치 생떼라도 쓰며 몸부림하다보면 마치 어리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문한다. 그런데 웃음을 선물로 갖다 바치는 시인은 얼마나 행복한가?

필자는 연변의 시인들에 시를 보면서 기쁨을 느끼는 시, 희열이 있는 시를 쓰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자본주의 철창, 사막의 도시 서울을 걸으면서도 제국의 굴레에 갇혀 있으면서도 의연히 웃을 수 있는 그런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되새기면서, 거짓과 위선의 가면을 벗어던지길 숱한 시인들에게 청한다. 오늘 시인 리선호 시인의 시를 청하면서.

그것이 아마도 분희의 마음은 아닐까?

박꽃

리선호

달빛이 단잠든
북두칠성인가봅니다
조롱조롱 열린 박
재롱스레 뻗은 넌출

아들 며느리 가꾼
손자손녀의 조롱꿈에
하얗게 웃음짓는 할머니
가냘픈 박꽃인가봅니다

교교한 밤
삼라만상 꿈길 헤매여도
남몰래 함함히 되었다
동살에 고요히 지는 꽃

아 소문없이 피였다
가뭇없이 사그러진들 어쩌랴
티없이 깨끗한 풍치 -
꼬부랑할머니의 소원이랍니다

1988년 7월


개암맛

분희는 저녁마실 나온 나더러
애꿎게 담배만 태우지 말고
자기 따온 개암이나 맛보라
넌지시 광주리 밀어놓겠지요

내가 벌씬 웃으며
한송치 잡아 깨무니
알알이 옹골찬 개암알
그 맛 그 마음 고소하겠지요

어느덧 내 손부리
파랗게 개암물 올랐는데
분희는 새물새물 웃음담고
- 개암맛 어때요?

홀로 까먹는 내 마음
못내 송구스러워
얼결에 깨문 개암알
쌍알 든 개암이 아니겠어요!

- 임자와 나눠먹으라
오누이알이구만!
내가 입심좋게 빠개주니
분희는 얼굴 빨개지겠지요

호함진 오누이개암알
둘이서 나눠먹는 그 맛
개암도 오누이
마음도 오누이

1982년


약력
1936년 3월 9일 화룡 로과 출생
필명 천명, 1954년 8월 연변사범학교 졸업 후 교육업 종사
1963년 8월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1984년 8월 연변텔레비전 문예부 주임편집
1950년대부터 시창작 1984년 연변문학 <천지문학상> 수상 후 중앙, 성, 주에서 시행하는 상 수차례 수상, 연변작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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