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지나면 새벽이 열려오고

  • 주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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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타
  • 2009.10.2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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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왜 꼭 밤 12시일가? 나는 그 불온의 12시를 많이 거부하는 편이다. 그 리유에 대해 나는 똑똑히 아는지 모르는지 따져본적이 없지만 그냥  밤 12시가 되면 주문에라도 걸린듯이 방황이 시작된다. 불안한.

그래서 일찍 자버리거나 하며  피해 도망다니던 밤12시 그 시간에 나는 지금 술을 마시고있다. 한 남자와 함께. 그리고 전혀 12시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나는 앞의 남자를 본다. 적당히 취기가 오른탓인지 아니면 그 탓으로 돌리고퍼하는지 모르지만 지금 넥타이가 풀어지려고 하는 남자.

나는 지금 내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자연스럽게 이끌려가는 그러나 결코 자연스러움이 아닌 이 이끌림을 불안하게 느낀다. 스스로도 어이없지만 또 알수없는 간절함도 느낀다. 그리고 용기가 요구된다는것과 그 용기가 지금 마적인 힘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면서도 또 거두어들이려고 조급해하고있다는것도 느낀다. 또 진행되는 그대로를 즐기려는 방관자역의 자신도 느낀다.

나를 보며 웃어주는 남자. 지금 이 남자는 무엇을 웃는걸가? 이 시간까지 함께 할수있는 나의 녀자를 웃는걸가? 아니면 내속의 생각을 알아버린걸가?  나도 따라 웃어준다.  나도 그의 남자가 어디까지인지 스스로 알게 만들어줄수있다고 느끼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나는 이미 진행으로 몰입해가고있었던것이다. 사람은 늘 그렇게 살아오는거 아닐가? 나는 늘 그랬다. 부딪친 일에 나는 계산이 온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진행한후 해석이 따라가듯이 늘 일을 다 끝내고난후면 어떤 위안이라도 얻을양 자신이 해온 일에 아주 그럴듯한 리유를 붇혀준다. 그래서 그 리유때문에 원래 어정쩡한 나는 분명하게 똑똑해도 지고 선량해도 지고 때론 악하기도 하고 치사하기도 했다. 본의 아니게.

지금의 내가  바로 진정한 나일가? 그러면  얌전하고 정숙하고 현명한척 해온 나는 무엇인가? 오로지 믿음의 산물? 하다면 나는 왜 그 믿음을 깨는데? 어디로부터의 믿음을 깨고싶은 나의 증오일가? 이는 무의식일가? 하다면 내 의식의 밑바탕에는 왜 이런 무의식이 웅크리고 있는걸가? 누구나의 마음에는 다 이러한 무의식이 있는걸가?

하다면 또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토록 복잡하고 섬세하고 날카로운 질문은 무엇인가? 이것이 의식일가? 그런데 왜 나의 의식은 지금 엄연하게 내 몫의 책임인데도 웬지 내가 책임질수 없는 그런 부분인듯이 자신을 해방시켜주고싶어하고있는것일가? 왜서일가?
 
언젠가 누가 주역을 보아주며 <<역마살이 끼였네.>>하고 말해준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데로도 떠나본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나마 기어이  이런 낯선 려행을자주 떠나게 되는걸가? 의미를 론하기에는 더없이 너절한 짓거리이나 해석에 따라서는 더러 고상하게도 될수있는 느닷없는 려행.
… … …
얼마만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그런 자신을 더이상 버티여낼수 없어 그냥 맨 마지막의 맥주 한잔에 다 담아 훌렁 마셔버리고 악화되는 갈등과 환멸과 분노같은걸 느끼며 그곳을 빠져나왔고 집에 돌아와 창가에 멍하니 서있었다.

그런 나에게 구원이라도 줄듯이 새벽이 열려왔다. 온갖 불안이 지난뒤의  조용한 평화가 찾아온것이다. 모든것이 잘 정리되고 잘 균형이 잡혀져서.

고독하지만 상쾌한 정적은 우아했다. 한낮의 피곤하게 까다로운 질서와 밤이면 밤마다 흥청거리던 그 현란한 욕망들과 경박한 혼란 그리고 위험한 반란은 없다. 모두는 흔적조차도 남아있지 않다. 오로지 고요하고 부드럽고 그윽한 평화일뿐이다. 모두를 다 받아들여 껴안아주고 잠재우고 정화시킬것만같다.

포근한 침대에서 혼곤히 잠든이들의 꿈이 보여온다. 오로지  앙금처럼 차분히 가라앉아서 모두가 아름답고 착한 꿈을 탐하고있을것이다. 좀더 깊어지고 좀더 넓어지고 좀더 따듯해진 그런 마음으로 말이다. 쌔근쌔근 숨소리를 뿜어올리며 어떤 은혜를 받은듯이 안정되고 충만한 표정이다.
 
순수하고 힘찬 울림이 마음속으로부터 울려온다. 주어진 삶을 소박하고 충실하게 그리고 묵묵히 살아낼 지혜 얻은듯이 신선한 힘이 생기고있었다. 강한 확신에 차있는 생명의 성장이 있을것만 같다. 근원을 알수없는 먼곳으로부터 울려오는 참 좋은 삶의 시작을 만들어주는 시간이다.

새로운 하루 새로운 한주 새로운 한달 새로운 한해… 이렇게 시작되는 새날들의 련속이지만 우리에게는 늘 새로울것이 없이 권태롭고 따분하기만 했었다. 그속으로부터의 탈출이 가끔은 무작정 흐려지도록 만들어주는가 본다. 하지만 이 푸르른 새벽이면 웬지 맑아지려고 노력하고싶다. 여태 늘 다가온 새벽이지만 오늘 느끼는 느낌이 다른것은 어제의 내가 아니기때문이 아닐가? 더 많은 날들을 늘 이렇게 새벽에 깨여있기를 바라고싶다.

이 모두는 강박적인 리성의 깨우침도 아니다. 아직 덜 염근 내가 기어이 이렇게 눈뜨려 해서 보다 나은 자신을 시도하는 지나친 수확의 욕심스런 짓거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그냥 한번쯤 스쳐가는 감성의 가벼운 깨여남도 아니다. 그래서 파싹하니 메말라진 나의 가슴을 곁눈질해보다가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냥 가버리는 짓거리는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으로서도 정확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할수는 없지만 참으로 깊은곳으로부터 울려오며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주는것이였다. 맑고 순수하고 아름답고 싱싱한… 그리고 진실이나 사랑이나 감동이나 동경이나… 그렇게 그러한 단어들이 완전한 어우러짐으로 만들어내는 신비의 그 무엇이였다. 순간 이 새벽에 깨여있는 이는 바다에서든 사막에서든 아니면 륙지의 어느 작은 귀퉁이에서든 모두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푸르른 새벽의 그 심오한 의미를 이런 새벽을 얼마를 보내도 도저히 깨달을수 없음을 잘 안다. 그래서 시시한 내가 이렇게 새벽에 깨여 시시한 글 한줄 적고있음에 부끄러워한다.

나도 하나의 새벽으로 태여나고싶다.

내가 어찌 감히 새벽으로 피여날수 있을가마는 무엇으로 태여나기를 기다리며 이런 그리움을 축복해주고싶다. 새벽은 위태로운 나를 버리지 않으며 껴안아 다독이고 잠재우고 다시 새롭게 깨워줄것이라  믿는탓이다.

혼돈의 밤을 지나 푸르른 새벽이 열려오듯이 나를 떠나 또다른 나에게로 다가가서는 안될 리유가 없으며 이러한 떠남과 만남의 반복이 무한한 시간과 공간의 어느 작디작은 부분을 채워가며 생명은 아픔답게 황홀한 변화를 창출해내는것이 아닐가. 그러한 변화로 나는 또 한마디 자라고있는것이라면 억지만은 아니리라.

푸르른 새벽이 나더러  지금 어딘가에서 두터운 카텐을 내리고 잠자고있을 누군가에게 따스한 편지를 쓰고싶게 한다.

이 푸르른 새벽을 함께 바라보고싶다고, 아침 깨여 밝은 해님을 보고 씩- 웃으라고.
                                                                200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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