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너의 강 나의 강 동해로 가다

  • 김경희
  • 조회 9883
  • 기타
  • 2010.10.19 21:24
  • 문서주소 - https://sisarang.com:443/bbs/board.php?bo_table=dooman1&wr_id=1144
1
바람이 휘익 몰아치면서 목으로 찬 바람이 쑥 들어왔다.가을은 이렇게 자취없이 사람들에게 다가서나보다.서늘한 기운으로 가을이 왔음을 남자는 안다.
머리 들어 하늘을 보니 하늘이 시원히 높아졌다.떠가는 구름이 눈을 상쾌하게 한다.
문득 남자의 눈이 커진다.앞에 한 여자가 나타났다. 꽤나 눈익다.옷차림이 화사하진 않지만 우아하고 기품이 있다.그리고 디자인이 간단하면서도 곡선이 알리는 은회색 적삼이 얼굴을 환하게 받쳐주는가 하면 수수해보이면서도 대범한 느낌을 주는 핸드빽이 녀자를 기품있게 해준다.
자길 스쳐 총총히 멀어져가는 여자를 눈주어 보다가 갑자기 한 여자가 떠오른다.소리쳐 부르려다가 입을 다문다.이어 머리를 절레절레 젓는다.저 여자는 절대 자기가 생각하고있는 그 여자가 아니다.
남자는 자기가 오늘 하려던 일을 다 잊었다. 그 여자가 남자 머리속을 헝클어놓고 사라진것이다.남자는 친구를 호출했다.한살 아랜 친구인데 남자를 형이라고 부르는 이 친구는 우락부락하기는 해도 진투이고 누구든 부탁을 하면 자기일처럼 직심으로 해주는 사람이다.언젠가 어리벙방한김에 밀수사건에 개입되였었다가 구류된적 있는데 그때도 덕칠이가 변방짬에 있는 자기 사촌형님을 찾아가서 빌다싶이 사정을 해서 남자를 빼낸적이 있다.비록 손에 있던 돈을 조금 쓰기는 했지만, 아무튼 일이 커지기 전에 무사히 넘겼던것이다.피가 안섞였을 뿐, 덕칠이와 남자는 형제나 다름없었다.
술 먹다가 왜 멍청해서 그러지?하고 덕칠이가 의아하다는듯 쳐다본다. 남자에게는 꽤나 버팀목이 되여있는 친구였다.
그 여자를 본것 같아. 남자의 말에 덕칠이가 웃는다.
여자 생각에 허기져서 헛깨비를 본거 아니구?
아무래도 그녀가 아닐가 하는 의심이 들어. 차림새나 모양새는 다른데, 표정이나 입매나 걸음걸이나 몸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야. 그래서그렇게 눈에 익었나봐!
그래? 그럼 잡지 그랬어?
생각할새도 없이 바람처럼 표연히 사라졌다구.
그녀 생각에 너무 절어서 아무 여자를 봐도 그 녀자란 느낌이 온거겠지. 덕칠이는 이렇게 말하며 맥주잔을 기울인다.
그럴가? 하면서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맥주잔을 기울인다.


2
깊은 산속이였다.우거진 숲속을 걷고있는데 앞에는 안개가 자욱했다.안개속으로 산자락이 보일듯말듯 했다문득, 여자가 안개속에 서있었다.눈을 쪼프리고 다시 보아도 틀림없는 그녀였다.남자는 여자를 감싸안았다.여자가 다소곳이 안겨왔다.
어떻게 이렇게 만날수가 있지? 이렇게 여잘 다시 만날수 있으리라고 꿈에도 생각못했다. 아니, 언젠가는 여자가 꼭 다시 찾아오리라고 믿고있었다.
이렇게 여잘 안고있는데도 여자가 사무치게 그리웠다.여자가 빠져나가는걸 두려워라도 하는듯이 남자는 여자를 가슴에 꼭 안았다.여자도 남자에게 깊이 파고들었다.누가 먼저랄것없이 둘은 풀밭에 쓰러졌다.
남자는 여자속에서 산산히 부서지는 자신을 느꼈다.황홀했다.사정을 했다.

남자는 꿈을 깼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남자는 진짜 사정을 하고있었다.속곳이 흠뻑 젖었다.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했다. 한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던 풍경, 부서질듯한 격정의 파도, 그 절절하고 생생한것을 어찌 꿈의 현장이라고 할가!

꿈속에서의 그 살아숨쉬는듯한 그 촉감들이 아직도 손에 입술에 그리고 몸 구석구석에 묻어있는데, 이 모든것이 형태조차 없는 꿈속의 환영이였다니. 낮에 눈앞을 스치는 여인을 본것이 아마 여자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몰아와서 이처럼 생생한 꿈을 꾼것일거라고 남자는 생각했다.꿈은 여자에 대한 그리움을 남자에게 안개처럼 몰아왔다.꿈을 꾼 이후로.그리움의 파도속에서 남자는 헤여나오질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3
그날은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밤이였다.
잠이 오지 않아 이리 궁싯 저리 궁싯 상념에 빠져있는데 무슨 기척소리가 났다.
바람 소리겠거니 하고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이번에는 문 두드리는소리가 똑똑히 들렸다.낮고도 조심스러운 노크였다.
누구요? 하고 남자가 물었다.
좀 쉬였다 가게 해줄수 있나요? 하는 낮은 소리가 문쯤으로 들려온다.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문고리를 벗기고 문을 열어주었는데 파랗게 젊은 여자가 쑥 문안으로 들어선다.머리에 얇은 수건을 두르고 엷은 홑옷바람인 여자는 추워서 돌돌 떨고있었다.남자는 직감으로 이 여자는 강을 건너온 여자란걸 알아차렸다.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은 국경을 가르는 강치고는 이 마을에 와서는 너무 강폭이 좁다.그래서 겨울이면 강건너에서는 이렇게 언 강을 건너 변경초소의 눈을 피해 와서 쌀같은거 가져가는 사람이 드문히 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건너온 사람에게 동네 사람들은 너무 린색하게 굴지는 않고 다들 쌀을 퍼담아주어 돌려보내군했다.그래서 남자는 이 여자도 배고파서 쌀 가지러 온거라고 자기멋대로의 생각을 했다.
녀자의 얼굴은 조금 창백했다.남자는 말없이 그녀를 집에 들여놓고 따뜻한 가마목에 앉히고 감자국과 밥을 담은 소랭이를 내놓았다. 그러자 녀자는 게눈감추듯 먹어버렸다.그런데 밥을 다 먹고난후에도 여자는 일어설념을 않는다.
그래서 남자는 주머니에 남아있던 쌀 반자루를 넘겨주면서 갖고가라고했는데 녀자는 엉덩이를 붙인체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저 여기서 자고 내일 가면 안돼요? 밤이 깊어서.하고 녀자가 말했다.
남자는 뒤수더기를 썩썩 긁더니 그럼 그러라고하면서 가마목에 요와 이불을 펴주었다.그리고 자기는 구속쪽으로 가서 낡은 검정 솜외투를 덮고누웠다.
남자는 정신이 맑아지면서 잠을 잘수가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여자의 움직임에 정신이 쏠렸다.
겉옷을 벗어 발치에 놓고 자리에 눕더니 여잔 조용해졌다.근데 조금 지나서 버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왜 그러죠? 하고 남자가 어둠속에서 물었다.
넘 목이 말라서 물좀 마시려구요.하고 여자가 일어서 움직인다.
남자는 전등을 켜준다.가서 물을 퍼서 넘겨주다가 여자 얼굴이 벌겋게 열이 오른걸 발견했다.눈도 겨우 뜬다.
열이 나는거 같네요.
남자말에 여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마를 짚어보니 몹시 뜨겁다.
어떡하죠? 열이 몹시 나는데…남자는 마음이 급해진다. 이대로 둬두면 일이 날것 같다.
서랍을 둘추니 어느 옛날에건지 감기약이 보여서 두알 녀자를 먹이고 수건을 적셔 여자 이마에 올려놓아 준다. 그제사 여자는 눈을 붙인다.그러는 여자를 보면서 남자는 가슴이 아파진다.이밤만 지나고 내일이면 돌아갈 여잔데 뭐,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 한구석으로 서운함이 들기도 했다.
더벅머리 총각이 혼자 사는 집구석에 여자가 하나 있는것이, 집안이 많이 환해지고 따뜻해진것 같았다.

4
이튿날 아침 잠을 깨니 벌써 해가 떠있었다.여느때같으면 눈을 뜨면 늘쌍 해뜨기 전이였다.어제 밤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잠들었던것이다.근데 여자가 누웠던 자리가 비여있었다.인사도 없이 갔나? 하고 마음이 서운했다.
근데 부뚜막쪽에서 인기척이 있어 머릴 돌려보니,여자는 마치 안주인이듯이 부뚜막에서 돌아친다.그제야 남자는 부뚜막에 이미 불이 지펴졌고 집안이 훈훈하며 가마에서 뜬김이 서려오르고있음을 발견했다.
세수하세요 하고 남자에게 따뜻한 물을 소랭이에 담아 내놓았다.여자는 목소리가 낮은 편이다.
아프던것은 다 나았소?
네. 감사해요. 페를 끼쳐서 죄송합니다.하고 여자가 고개를 숙인다.여자의 입매가 참 곱다는 생각이 든다.
세수를 끝내고 밥상에 마주 앉으니 가슴이 따뜻해난다.
언제 밥상을 차리고 밥 먹어보았던가? 그것은 너무도 오래된 기억이다. 엄마가 세상 뜨고나서 홀로가 된 후, 남자는 그냥 혼자 되는대로 먹지 않으면 나가서 친구들과 술을 먹었다.
밥상에는 김이 몰몰 피여오르는 새하얀 입쌀밥 두 공기와 감자를 넣고 만든 장국 두 그릇, 그리고 볶은 달걀, 수저 이인분이 보기 좋게 정연하게 놓여있었다.
내가 먼저 일어나 차려줘야 하는데 늦게 일어났구려.남자가 사람좋은 웃음을 씩 웃어보인다.
그러자 여자도 하얀 이를 들어내며 조용히 웃는다.
별말씀을요, 여잔데 제가 해야죠.
여잔데 하는 그말이 가슴을 찡 울린다.여자지만 내 여자는 아니지. 지나가는 여자잖아 하고!
식사를 끝내고 설걷이를 끝내고나자, 남자가 쌀 반자루를 꺼내준다.
이걸 가져다 먹소.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아프지 말구.
여자가 받을 념을 않고 까딱 움직이지 않는다.
돌아가고싶지 않는데, 집에 쌀이 모자라는데 저 하나라도 입을 덜고싶은데, 저 여기서 살면 안되나요? 여자는 남자를 쳐다본다. 눈빛이 간절하다.
남자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늘에서 선녀가 내리듯 이렇게 절로 찾아온 여자.하지만 다음순간 얼굴에 어둔 그림자가 비낀다.
필경은 월경인데, 나라 배신하는거 아니오?나도 이러면 죄인이 되는거구.
그건 아는데, 올해따라 장마때문에 흉년이 들어서 먹을것이 없어요.여자는 분명히 눈물을 훔치고있다.
그래도 남자는 선뜻 대답을 못한다.
한참 조용하던 여자가 눈을 들어 남자를 보는데 그 눈빛이 아릿하다.
그럼 절 그냥 잠간만 여기 있게 해줘요.몸이 조금만 나아지고 기운이 나면 저 아무곳으로나 떠날게요.
그말조차 안들어줄수가 없어서 남자는 머리를 끄덕였다.
여자가 처음으로 밝게 웃는다.그 웃는 모습이 그처럼 화사하다.맑은 날 해빛을 보았을때처럼 남자는 눈을 쪼프린다.
.

5
하루는 아랫집의 문철이가 노크도 없이 문 떼고 들어서다가 눈이 둥그래졌다.난생 처음 보는 여자가 마치 안주인처럼 끌개신을 신고 손에 물통을 들고 막 밖으로 나가려던 참이라 얼굴을 정면에서 딱 맞띄우게 되였다.
왔니? 어서 올라와!남자가 이렇게 말해서야 문철이는 어정쩡해서 신 벗고 올라서는데 그러면서도 뒤를 돌아본다.여자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며 밖에 나갔다.
저 여자 누구지? 형! 문철이는 남자보다 몇살 아래라 무랍없이 형이라 부른다.여자 귀한 마을에 난데없이 이쁜 여자가 혼자 사는 집에 있는것이 놀랄만도 하다.
먼 친척이야. 신경쓰지 마.남자는 용케도 둘러댔다.
먼 친척? 문철이는 믿지 못하겠다는 눈길이다.
엄마가 세상뜬줄 모르고 왔나봐, 엄마의 먼 조카라는데 엄마사 면목 알겠지.난 잘 모르지만.
그래? 문철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형, 그럼 나를 소개해주지.나 저 여자에게 장가들게 말이야!꽤나 이쁘게 생겼잖아!
임마!하고 남자는 문철이 머리를 툭 친다.
나두 장가 못갔는데 니가 갈려구? 하고 악의없는 눈총을 쏜다.
그래서 문철이는 히죽히죽 웃는다.형도 꽤나 엉큼하다.ㅎㅎㅎ
문철이 입도 입이려니와 숨이 있는 여자가 아무리 겨울이라도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을리가 만무한지라 동네에 오래잖아 소문이 나갔다.로총각이 혼자사는 집에 친척 처녀가 놀러왔는데 꽤나 눌러있다고 한입 건너 두입 건너 다 알게 되였다.
그러던 하루, 더벅머리 총각들이 다섯이나 들이닥쳤다.남자가 정신 차릴새도 없이 그네들이 구들에 올라왔다.
무슨 일이 있지?남자가 묻는데.
아참, 형두 야박하기는?우리가 모여앉은지 얼마나 오라오? 요새 형이 왜 까딱 두문불출하는가 했더니 집에 형수를 감춰두고있었구만.너무 하다. 인사 시키는데 옳잖소? 속에 있는 말이면 감추지 않는 덕칠이다.
아니라니깐. 남자가 꽤나 긴장해진다. 친척이래두. 오라잖음 간다니깐!그러면서 여자를 힐끔 보는데 여자는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말이 없이 고개를 수굿하고 반찬을 준비한다.
이-,거짓말!다른 사람은 속여도 난 못속여! 하고 덕칠이는 흔들림이 없다.
형수님, 저쪽에 올라가 쉬오.우리 절로 하겠소.하더니 덕칠이가 갖고온 꿩과 식칼을 들고 나가고 문철이가 불을 지핀다.여자는 말없이 솥에 물을 붓는다.잠간 지나지 않아 꿩을 앉힌 가마가 끓기 시작하는데 구수한 맛이 집안에 차넘친다.
덜먹 총각들이 니 한마디 내 한마디 여자를 보고 집은 어디냐 저 형하고 어떻게 되는 친척이냐 심문을 하는데 여자는 생글생글 웃을뿐 크게 대답이 없이 슬쩍 슬쩍 잘도 넘긴다.
이 형님이 이거, 형수를 훈련 잘 시켰구만! 역시 덕칠이다.
형수가 아니란 말 마오. 그러면 우리가 혈투를 벌릴지도 모르오. 저 여자를 하나 놓구 말이오. 하고 덕칠이가 익살 부린다.
아니, 저 여자가 형수님이 아니면, 내가 제일 먼저 보았으니 제  차례 아니요? 이렇게 문철이가 한마디 께끼다가 덕칠이의 주먹에 강하게 한매 얻어맞았다.
쥐뿔같은 새끼! 어떻게 니 차례가 되냐? 니 앞에 형님들이 이렇게 수두룩 한데?
에씨! 문철이는 이마살을 찡그리며 손에 들고있던 부지깽이를 확 던져버린다.
그러니깐 이 더벅머리총각들은 남자집에 웬 이쁜 여자가 왔다는 말을 듣고 술 마신다는 핑게를 대고 한꺼번에 들이닥친것이다. 술도 좋고 여자도 좋고., 자기 여자는 아니더라도 이쁜 여자를 눈요기라도 하고싶었다는것이 진심이였다.
처녀라는 처녀는 원체 몇이 없는데, 싹쓸이 하듯이 싹 어딘가 가버리고 마을에는 더벅머리 총각들만 넘쳤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남자는 여자를 다시 건너다 본다.여자는 다소곳하고 조용한 여자다.여자가 자기도 모르게 속에 자리를 잡아가고있는줄 남자는 모르고있었다.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은 여자.
이래저래 달포도 지나갔는데, 여자는 떠날념을 않는다.여자도 말을 떼지 않고 남자쪽에서 그렇다고 손님을 내쫓듯이 인젠 갈때도 되였는데 왜 안가냐 하는 말을 뗄수가 없다. 아니, 그것보다 문제는 요즘와서, 점점 남자는 여자가 떠나갈가봐, 떠나가는 날이 닥쳐오는것이 걱정스러웠다. 여자가 있는 동안 집안은 화기가 돌았고 더벅머리총각들이 모여들어 재미도 있었다.그네들은 이 핑게 저 핑게 오면서도 술이나 안주감을 꼭 갖구 왔었던것이다.
여자도 힘겨워 하는 눈치가 아니였다.여자는 올때보다 얼굴이 발가우리 해졌고 살이 올라 낯이 뽀얗다. 생긋이 웃을때면 참 귀염상스러운 여자였다.
어느날 저녁, 밥상을 마주 하고 식사를 하던 여자가 무슨 말을 할듯 말듯 주춤거리고있었다.
남자의 가슴은 긴장했다. 이별이 다가오는가 싶으면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조금 더 있다 갔으면 하는 심정이였다.하지만 어떻게 그런 말을 할수 있을가!리유없이!
제가 있는 동안 많이 불편했죠? 페를 많이 끼쳤죠?여자는 입을 열었다.
아니, 괜찮았소.
남자 입에서는 괜찮다는 말이 나갔다. 괜찮다니, 참, 아주 좋았는데 말은 그렇게 나갔다.보름동안, 여자는 마치 안주인처럼 남자를 돌보아왔다.여자의 손은 기름손이런듯, 집안 구석구석은 기름기가 찰찰 돌았다. 물독으로부터 가마, 색이 바랜 낡은 식장안의 그릇들로부터 여자 손이 안간곳이 없었다.겨울이라 회칠은 못하고 먼지를 싹싹 턴 집안은 진짜 윤기가 돌았다.
인제 이 여자가 떠나가면 어쩌지? 남자는 가슴이 서늘해났다.
저---.여자가 남자를 올려다본다.
남자는 밥술을 놓고 여자 눈을 마주 본다. 눈망울이 맑은 여자, 그 눈에 빠져들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저 어디도 안가고 여기서 그냥 살면 안되나요?
남자는 귀를 의심할 지경이다.
제가 맘 안드셔요? 절 받아주시면 저 여기서 살고픕니다.
남자는 여자를 정시한다.
여자는 눈길을 피하지 않고 남자를 바라본다.남자는 가슴이 와들와들 떨린다.담배를 한대 입에 문다. 불을 붙이려는데 손이 후둘후둘 떨린다. 녀자가 불을 붙여준다.
말이 나가지 않는다. 안되는 일이지만, 그만한 위험을 감내하고라도 갖고싶은 여자다.
여자는 눈빛 하나 흔들림 없이 자기를 쳐다본다. 남자는 머리를 끄덕인다.
남자는 눈길을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달빛이 유난히 밝은 밤이다.여자도 머리 돌려 창밖을 본다. 둘은 동시에 마주 보며 웃는다.오랜 부부같이 아주 스스럼없이.

6

일년후에 녀자가 귀여운 남자아이를 낳자 남자는 아버지가 되였다는 마음에 하늘을 날듯한 기분이였다. 아이는 눈빛이 아주 초롱초롱했다. 이 아기가 자기 피줄이다. 그것이 신비하고 꿈만 같다.남자는 짬만 나면 아이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이를 안고놀았다.갖난 아기가 이렇게 귀여운줄 남자는 난생 처음 알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남자는 여자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여자가 자기를 바라볼때의 눈빛은 하냥 사랑에 젖어있었다. 두 사람은 아이를 중간에 놓고 세월이 가는 줄 몰랐다.
당신, 아기 이름을 지어야죠? 어느날 여자가 이런 말을 해왔다.
그렇지, 이름을 지어야지, 근데 뭐라 지을가? 하면서 남자는 머리를 썩썩 긁는다.
당신 맘대루 해요. 멋지게 지어요.여자는 기대에 찬 눈길로 남자를 본다. 아기도 아빠를 보며 해쭉 웃는다.
운봉이라고 짓기오. 구름이라는 운에 봉우리라는 봉!
아, 그게 멋지네요. 구름봉우리! 넘 멋진 이름이네요
그래서 둘은 마주보며 웃고 떠들었다. 집안에는 아기로 인해 내내 웃음이 떠날줄 몰랐다.
하지만, 남자는 미처 몰랐다. 자기들의 피줄은 세상의 인정을 받을수 없다는것을. 호적을 올릴수 없었다. 결혼등록을 할수도 없었다.생명은 생명인데, 그 생명의 위치가 없었다.호적에 못 올리면 뭐라나? 사람이 세상에 태여날때는 다 자기앞의 밥그릇은 갖고 태여난다지 않는가? 호적이 없더라도 이렇게 구석에서 살면 되는거지하고 자아 위안을 했다.
사십여호 되는 마을에 애기가 태여난것은 신기한 일이거니와 밥 먹고 할일없는 시골사람들에게는 마침 즐거운 소일거리가 생겼다. 문턱이 다슬게 오늘은 이사람이 오고 래일은 저 사람이 오는데, 다들 빈손이 아니면 달걀 바가지를 들고 오는것이 상례였다.
그러던 어느 하루, 문철이 엄마가 애기 보러왔다.문철이 엄마는 허리통이 굵고 말이 다사한 오십대의 여자인데,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여자였다.
문철이 엄마는 아유, 이집에 귀한 아드님이 생겼다면서? 하고 들어서면서부터 떠들었다.
들어가보세요. 하고 남자는 싱글벙글 말했다.여자가 빨래를 씻다가 고개를 돌리며, 어서 올라가 앉으세요. 하고는 일어서서 바줄에 걸려있는 수건으로 손을 닦는다.
문철이 엄마는 구들에 올라가자, 아유 숨차라 하면서, 헝겁더미위에 엉덩이를 털썩 던진다.머리 돌리던 여자가 안돼요 바사지는 소릴 지르며 달려와 밀칠때는 이미 늦었다.
문철이 엄마는 아기위에 앉았던것이다.
아기는 소리 한번 못지르고 숨이 멈췄다. 죽은 아기를 안고 한창 들여다보던 여자가 기혼해 쓰러졌다.문철이 엄마는 이걸 어쩌지, 이걸 어쩌지 하며 동네 사람들을 불렀다.
남자는 눈앞이 캄캄해났다.그는 문철이 엄마를 확 밀치고 아기를 여자손에서 빼내 옆사람에게 안겨주고는 여자를 둘쳐업고 진료소로 달려갔다.
아기를 잃고난후 여자는 눈동자가 비여있는 사람처럼 늘 멍청해 있었다.말도 적어지고 전에 처럼 생긋생긋 웃는 일도 없었다.그런 여자를 마주하는 남자마음은 뭐라 형언할수 없이 아팠다.일이 생기고나서 동네 로인이 한분이 그런 말을 했다.
이름이 너무 큰거야. 운봉이라니, 구름위에 솟은 봉우리라니, 예로부터 이름은 크게 짓는게 아니지. 이름은 개똥네, 똥똘이, 이렇게 치새없이 지어야 사람이 무탈하게 산다네. 그리고 운봉이란 이름 뜻을 풀이해도 그래, 구름봉우리라니, 피뜩 듣기는 멋지지만, 구름은 흩어지기 마련이잖은가? 구름은 오래 머물지 않고 인차 흩어져 형체마저 없는거잖은가!
로인의 말을 들으며 남자는 맥없이 털썩 주저 앉았다.그러고보면 아기를 잃은것은 자기가 무식한 탓이렸다.
여자는 여자대로 아기생각을 하면 가슴을 치며 울군했다. 다 제탓이에요. 그날, 아기를 그렇게 구둘 한복판에만 눞히지 않았더라도, 그리고 여러가지 천 쪼박으로 이은 헝겁누더기같은거로 애기를 덮어주지 않았더라도, 문철엄마는 아기를 헝겁누더기로 잘못 보진 않았을거에요. 다 제탓이에요. 하고 여자는 통탄했다.여자는 눈만 뜨면 아기가 눈에 밟혀서 미칠것 같았고 눈 감으면 머리속에 온통 아기모습뿐이여서 울다가는 지치고 또 울고했다.
그런 여자를 동네사람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동정하고 위안의 말을 하고 문철이엄마를 욕하고 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여자는 또 아기가 떠올라서 한바탕 울군했다.인젠 너무 울어서 기운이 빠지고 목이 쉬고 더 울 맥도 없어졌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꼭 가슴에 안고 잔등을 다독여주었다.
길이 다른거지, 잊어.
어떻게 잊어요? 하고 여자는 절규한다. 여자에게 있어서 애를 잃고 사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였다.
인제 당신 몸이 춰서거든 하나 더 낳음 되잖아?남자가 달래였다.
열을 더 낳아도 그 아기가 잊혀지지 않아요. 가엾어 어떡하죠? 한달도 못살고 그렇게 죽다니!
그러던 어느날, 여자가 사라졌다.여자는 쪽지 한장 남겼다.
운봉이 아버지, 제가 이렇게 떠나는걸 용서해주세요. 저 영영 떠나는거 아니에요.아기가 죽던 모습이 눈에 삼삼해서 이 집, 이 동네, 그리고 이 동네 사람들을 볼 신심이 없어요.미칠것 같아요. 그래서 저 목표없이 이렇게 무작정 떠나요.
오갈데 없는 절 사랑해준 당신을, 저도 사랑했어요 아니, 사랑해요. 지금도, 나중에라도…당신 말을 믿어요. 우린 또 애를 낳을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당신, 절 믿어줄수 있죠? 저 어딘가에 자릴 잡게 되면, 꼭 당신을 데려갈거에요. 우린 우리 아기가 죽어간 그곳에서 살지 맙시다.당신을 첨 보는 순간부터 사랑했어요.저 언제고 당신을 찾아 다시 올거니깐 꼭 기다려주세요.
안녕히 계셔요.
쪽지를 쥔 손에서 맥이 풀려나갔다. 그러자 종이장이 공중에서 춤추며 떨어져내린다.
남자는 흰술을 병채로 벌컥 벌컥 입에 부어넣었다.
그렇게 떠나간 후로 여자는 종무소식이였다.바람처럼 스쳐간 여자, 그 여자와 잃어버린 아기를 그리며 남자는 술로 마음을 달래군했다.

7
눈을 의심할 지경이다. 세상에 어쩜 저렇게 똑같이 생긴 녀자도 있을가싶을 정도로 닮아있었다. 근데 그녀는 아니였다.
저 당당한 걸음걸이나 흔들리지 않는 표정이나 단아하고 도고한 모습이 어디 하나 그 엉거주춤하고 말 한마디에 깜짝 놀라고 그런 어리숙한 촌 녀잔가? 더우기 그녀는 현대류행에 짝지는 그런 차림새가 아니였다. 하지만, 그녀와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남자는 굳어졌다. 아니, 녀자는 틀림없는 자기의 옛 녀자였다. 녀자의 눈이 둥그래지고있었다.남자는 녀자 어깨를 부여잡았다.
아니, 진짜 당신맞아? 그러니깐 여자가 눈에 눈물이 고이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살아있었구나, 다행이다, 난 또 들통나 잡혀가 죽었을가봐 속태웠어!남자말에 여자가 연신 눈물을 훔친다.
살아있었으니 다행이구만. 다행이야. 근데 왜 소식 하나 없었지?
소식전하면 위험해서요.
근데 어디가 어떻게 지내지?
이번에는 진짜 시간이 없어요. 나중에 제가 꼭 당신을 데리러 올거에요. 그때 모든것을 다 말씀드릴게요.
여자의 말을 믿으면서도 너무도 확연하게 달라진 여자모습이 낯설어서 남자는 기가 죽는다.
집으로 가자니 녀자는 그럴시간이 없다고했다.정말 급한 일이 있다고했다.
그러면서 여자는 남자와 같이 호텔로 들어섰다.남자는 눈이 둥그래졌다.자긴 호텔에는 진짜 첨이였다.
남자가 어안이 벙벙해서 서있는데, 여자가 남자가슴에 안긴다.그제야 남자는 정신이 번뜩 들어서 여자를 꼭 껴안고 입술을 탐닉한다.둘은 그렇게 서로에게 심취한다.남자가 여자를 침대에 눞히려는데 여자가 남자손을 끌고 세면실로 들어간다.
여자는 먼저 자기옷을 훌훌 벗더니, 남자옷도 벗겨준다.그러는 여자가 너무 낯설다.전에는 부끄러워서 불을 끄고나서야 옷을 벗던 여자가 아니였던가?
뭘 그렇게 봐요? 여자가 생긋 웃는다.
샤와기를 틀고 몸에 물줄기를 받는 느낌 참 좋다.욕실이 서서이 뜬김으로 차오르고 남자는 서서이 온몸의 힘이 아래로 쏠린다. 여자는 남자몸 구석구석을 비누칠 해주고 자기도 비누를 몸에 바르고 그리고는 샤워기밑에 둘이 같이 선다.
여자는 마치 아기를 다루듯이 남자몸을 구석구석 싹싹 씻어준다.남자는 참지 못하고 여자를 얼싸 안는데 여자가 남자 페니스를 입으로 문다…
남자는 전율했다.널 사랑한다고 남자는 속으로 말하고 또 말했다.
녀자는 몸으로 말하고있었다. 나 널 사랑한다고. 그들은 세상이 보이지 않았다. 몸이 부서져 내렸고 한곳에 집중되였던 열기가 전신으로 확확 퍼져나가는 희열을 맛보았다.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할만큼.이렇게 좋은 일을 왜 여태 안하고 살았을가 하는 회의가 들 정도로 남자는  이 순간을 영영 비끌어매두고싶었다.
나 당신을 안 놔줄거야 하고 남자가 말했다.
여자는 울었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 말해줄수 없소?
그럼 말해줄게요. 저요, 그사이 별별 짓 다 했어요.돈도 조금 벌고 여러모로 애써서 여기 신분증도 만들었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여기서 살면 언제고 위험하기에 저 한국나가려구 서서이 준비해왔는데, 내일이면 저 한국에 나가게 돼요. 오늘이 여기서의 마지막 날이에요.
남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신 절 믿죠?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줄? 한국에 가 발을 붙치게 되면 저 어떤 방법을 대서라도 당신도 한국에 데려갈거에요. 믿고 기다려주세요.
남자는 많이 놀랐다. 금방전의 그 희열은 말끔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공허가 스며든다.
여자는 대체 무슨 일을 하며 살아왔을가? 돈은 얼마나 벌었을가? 왜 여태껏 소식 한번 안전했을가? 이렇게 한국 날아가버리면 진짜 나를 데리러 다시 올가? 너무도 묘연했다. 난생 처음으로 회의가 들었다.이렇게 어벌이 크게, 신분증마저 가짜를 만들어서 한국행을 하는 여자를 믿어도 좋단 말인가? 안 믿음 또 어쩔텐데?
남자는 그 어떤 배신감같은걸 느꼈다.순간, 이 여자가 옛날의 그 자기를 처음으로 찾아왔던 그 여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오늘 이렇게 우연히 길가에서 만나지 않았더면 여자를 자긴 만나지 못했을것이고 여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고 그냥 그녀 걱정에 쌓여살아갈것이 아닌가?그리고 이렇게 돈도 많아지고 그사이 세상 물정에 눈 뜬 여자가 자기같은 시골 남자를 다시 찾아온다는것이야말로 천방야담이 아닐가?
안가면 안되겠어? 나 이렇게 당신 사랑하는데, 나 당신 없인 못살아…제발 가지 마! 그는 와락 녀자의 가슴에 무너지며 눈물을 쏟았다.
녀자는 남자를 머리를 꼭 안으며 함께 흐느꼈다.말없는 그 눈물은 녀자의 대답이였다.
참담하던 긴 긴 밤들이 떠올랐다. 이 녀자가 영영 자기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남자를 안절부절 못하게 했다.
여자는 할일이 있다면서 택시를 잡아탔다.남자도 택시를 잡아탔다. 기사보고 앞의 차를 들키지 않게 따르라고 했다.여자는 시내에서 좀 떨어진 작은 려관앞에서 내리더니 려관안으로 쑥 들어갔다.
남자는 여관간판에 적힌 전화번호를 눌러서 려관주인을 밖으로 불러내서 여차여차하라고 하면서 돈을 좀 쥐여주었다. 려관집주인이라는 나이 든 남자는 허리를 굽석이며 들어갔다.
좀 있자 핸드폰이 울렸다. 놀라운 정보가 입수되였다.려관안에는 여자의 친정식구들이 있는데 부모와 남동생이라고했다. 그들은 내일 아침 일찍 떠난다고했다.
남자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사람이 변해도 어쩜 저렇게 변할수가 있단 말인가!

8
변방짬 짬장은 남자의 말을 듣고난후, 쌀쌀하게 말했다.
알았으니 나가보시오! 근데 그 말투가 차거웠고 눈길에 경멸같은것이 흘렀다.속으로 남자는 자기 변명을 했다.여자가 자기를 배신했는데, 여자를 혼자 가서 잘살게 놔둘수 있는 남자가 몇이나 될가?하지만 남자는 이렇게 생각할수는 없었을가?여자가 전에 자기랑 그렇게 잘해줬는데, 인제라도 좋은 곳에 가서 좋은 사람이랑 만나서 잘 살아라 이렇게!
그날 저녁무렵, 술을 먹는데 덕칠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너 어디 있어? 당장 나와!여느때같지가 않다. 너라니? 줄곧 형님이라도 불러왔지 않는가?
너 취했니?남자가 묻자 저쪽에서 호통을 친다.
취했다, 왜? 넌 정신 나갔지? 정신 나가지 않구야 어찌 그런짓을 해!
전화를 끊고 얼마 안지나서 덕칠이가 집에 왔다.덕칠이는 미친놈처럼 남자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주먹을 날린다.
니 놈두 사람이야? 그 여자를 변방짬에 고발해? 지금 잡혀서 갇혀있어. 인제 됐어?
그제야 남자는 덕칠이 사촌형이 변방짬에 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남자는 흐르는 코피를 손으로 쓱 닦으며 변명을 했다. 참을수 없었어! 날 배반했어.친정식구들을 데리고 영영 달아나려고했단 말이야.
니놈이 이런 놈팽이였어? 너같은 놈을 그래도 남자라고 믿고, 너에게 그 중요한 비밀까지 말해준 여자, 그 여자 기실은 언녕 한국에 정착을 했어, 이번에 친정식구들을  데려가려구 온거구, 다음번에는 방법을 대여 널 데려가려 했대! 그 여자가 울면서 그랬대. 세상에 참 믿을게 없다구. 이렇게 믿을게 없는 세상을 죽어도 좋다구….임마, 너 아니? 내일쯤 여자는 강 너머에 끌려갈거구, 간다음 어떻게 되는지 너두 알지?
덕칠이는 한매를 날리구는 한마디를 하군 하면서 질펀하게 남자를 때려주었다.매를 맞으면서 덕칠이가 이새로 뱉는 말을 들으면서 남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기가 얼마나 인간 쓰레기인가를 통탄했고 가슴이 못견디게 아팠다. 자기때문에 죽게 된 여자, 그리고 그 부모 형제…
덕칠이앞에 철썩 무릎을 꿇었다.한번만 도와줘!
달도 구름속에 모습을 감춘 흐린 날이라 하늘은 여느때보다 캄캄했다. 별조차 보이지 않는 칠흙같은 밤이였다.그네들이 갇혀있는 방을 남자는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문은 잠궈져있는데 밖에는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 저쪽 이삼십메터 상거한 초소에 사람이 있을 뿐이였다. 벽에 붙어서 안의 동정을 살폈다.세사람은 부둥켜 안고 울고있었다.
남자는 덕칠이가 준 열쇠로 자물쇠를 열었다.안에 네사람은 너무 놀라서 숨을 딱 죽인다.
놀라지 마십시오, 구하러 온 사람입니다. 소리가 안나게 제 뒤를 따르십시오.하고는 여자의 손을 잡고 앞에서 살금살금 움직였다.급한 와중에도 남자는 열쇠를 빼는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열쇠를 어둠속에 던져버렸다.
변방짬에서 조금 나오자 거리였고 택시를 잡을수 있었다. 네 사람은 그 택시는 시내안에서만 뛰는 택시라는데도 한사코 장로를 뛰라고했다. 돈은 달라는대로 주겠으니 뛰라고 하니 조금 머뭇거리던 운전기사는 고개를 끄덕인다.
택시에 앉은 다음에야 여자는 비로서 남자를 알아보았다.여자는 노해서 남자를 노려보는데, 남자는 나 죽었소 하고 들이댄다.니가 안죽여도 난 인젠 너와 마찬가지로 도주의 길에 오른 놈이잖아? 우린 한배를 탄거야! 무작정 먼곳으로 가는 길밖에 없다.
차창밖으로 어둠만이 차넘치고 차안에 네사람은 공포와 절망속에 한줄기 삶의 희망을 향해 앞으로 질주한다!
변방짬짬장이 어둠속에서 이쪽을 이윽토록 지켜보고있었다.
                                2009년 9월 19일
P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