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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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11.1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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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숙경

항상 건강하고
맑은 모습 기대할게
그리고 비가 올때
우리의 생각을 같이
하고싶어

    1998년 1월 16일
      사랑하는 이가

숙경이가 누구인지, 그녀에게 편지를 쓴 이는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그런데 그 편지가 지금 내손에 있다.
이것이 내 손에 들어온지 언제인지 딱히 기억나지 않는 지금에 와서, 왜서 인제야 이것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류시화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시집, 내가 참 많이 좋아하는 시집인데, 오래전에 내손에 온책인데, 그 뒤표지안에 이런 글이 굵은 펜으로 씌여져있다.
그러고보면 숙경이를 사랑하는 이가 숙경이를 주려고 마련한 책이 어찌하다보니 내손데 들어온 모양이다.책을 주려다가 못준것인지, 그랬다가 어찌되여 누구에게 빌려주었는데 그 사람이 그 책을 돌려주지 않은것인지, 아니면 숙경이가 그 책뒤에 있는 글을 보지 못하고 그 책을 나중에 누굴 빌려준것인지 혹은 페품으로 팔아버린걸 페품수구소에서 낡은 책 파는 사람이 가져다 파는걸 내가 거리서 산것인지 너무 오라 알수가 없다.
이 책이 내손에 들어온 시간조차 생각나지 않는걸 보면, 그리고 이 책을 내가 읽은지 꽤나 오랜거 생각하면, 그 당시 난 시를 읽으면서도 뒤표지안은 살펴보지 않은것이 분명하다. 그때 당시 내가 읽었더라면 어쩜 혹시 누구에게서 온 책인지 안다면 돌려주었을것을.
숙경이가 누구인지, 숙경이를 사랑하는 이는 누구인지는 알수 없지만, 꽤나 행복한 사람들인것 같다. 사랑을 하는 사람과 사랑를 받는 사람…
그저 그것이 만약 고백 편지였다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든다.사랑하는 사람사이, 잇겨질수 있는 그 끈을 내가 무의식중에 끊어놓았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
그는 왜 밝은 모습 이란 대신에 맑은 모습 이라고 표현했을가? 순수를 잃지 않는 투명한 맑은 모습을 기대한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숙경이는 밝은 여자인가 보다.
그리고 비가 올때 생각을 같이 하자고했다. 서로가 서로를 그리는 생각, 문득 비 내리는 창가에서라는 나의 시가 떠오른다.


비 내리는 날이면
누군가가 그리워진다
땅의 목마름을
하늘이 알아주듯
나의 이 고독도
누군가가 알아주실것 같아
비 내리는 날이면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본다
찬비에 적셔지는
저쪽의 세상은 흔들리는 섬
흐려지는 시선속에
점점 더 깊이 가라앉는다

비 내리는 창가에 서서
또 하나의 나를 바라본다.

비 내리는 날이면 숙경이를 사랑하는 남자는 숙경이를 그리는 마음으로 비를  바라보리라. 숙경이도 비오는 날이면 그를 생각할가? 그녀는 이일을 알가?
참 미안하다. 숙경이 그리고 숙경이를 사랑하는 남자에게.

지금은 비 내리는 계절이 지나갔다.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지금은 비가 아닌 눈이 내리고있다.
눈이 내리는 날에는 나도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다.눈이 내리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지금 먼곳에 간 사람을.
그도 이 즈음이면 나를 떠올리고있으리라.
아마 그도 지금쯤 어딘가에, 사랑하는 경 하고 메모해놓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비가 내리던 눈이 오던 바람이 불던 꽃이 피던, 다가오는 모든것이 아름다워 보이는것은 내 마음이 그것을 볼 여유가 있는 때문이리라.
이쯤 쓰고보니 또다시 류시화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시를 혼자 입속으로 나직이 읊고있다.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시인이 말한 그대는 사랑하는 사람이였을가, 아니면 자신이 신앙하는 절대적은 존재였을가?
어느것이여도 좋다.그리움이 절실하면 곁에서 마주 보고있어도 사무치게 그리운것을!
하물며 만져지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면 그 그리움이 몰고오는 아픔의 크기는 어느만할가!
오늘 밤에는 편지를 써야지!
눈 내리는 날 우리의 생각을 같이 하자고 편지를 써야지!

        2010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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