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청남 시인의 시 <<좋은 날>>에 대한 나름의 시평

  • 허동식
  • 조회 10073
  • 회원시평
  • 2010.01.23 15:11
  • 문서주소 - https://sisarang.com:443/bbs/board.php?bo_table=dooman1&wr_id=1416
좋은 날

산이며 호수며
한없이 다녔다
그대 고운 눈빛 항상 좋더라
혼자가 혼자 아닌만큼 외롭지는 않지만
갈밭머리에 바람이 자면 또다시 달은 떴다
더듬는 봉사의 담백한 느낌으로 걸었던 숲
강뚝 넘어 돌아오는 길은 또 한번 외로웠다.

인간은 고독하지 않을수가 없다.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는 시인은 고독하지 않을수가 없다. <<내가 어찌하여 이 세상에 태여나 존재하는것일가?>>를 수많은 철학가들과 신학가들이 풀이못한 天問적인 <<인간문제>>라고 한다면 많은 凡人들도 <<인간문제>>에 생각이 미치면 인간의 <<천성적인 고독감>>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것은 인간의 유한된 생명과 무한된 객관시간과의 차이성이며 인간의 유한된 인식용량과 객관세계 및 주관세계의 무한용량이 모순되는 결과이다.
세속적인 방법으로 인간은 <<천성적인 고독감>>을 떨쳐버릴 때가 있다. <<그대 고운 눈빛 항상 좋더라>>가 바로 인간이 세속적인 방법으로 <<천성적인 고독감>>을 떨쳐버리는 순간이고 장면이다.
그러나 여러가지 세속적인 방법은 인간들더러 <<천성적인 고독감>>을 순간적으로 떨쳐버리게 할수는 있겠지만 종극에는 무효로 되여있다.
<<갈밭머리에 바람이 자면 달은 또다시 떳다>>라는 객관환경의 변화와 자극은 인간들더러 또다시 <천성적인 고독감>>을 지니게 하며 때로는 << 그대 고운 눈빛 항상 좋더라>>는 세속방법보다는 조금은 형이상학적인 <<더듬는 봉사의 담백한 느낌으로 걸었던 숲>>인 방법과 수단으로 <<천성적인 고독감>>을 떨쳐버리려는 노력을 실행하게 된다.
윤청남 시인에게 있어서는 <<더듬는 봉사의 담백한 느낌으로 걸었던 숲>>이라는 조금은 형이상학적인 방법과 수단이 종극에는 무효로 되여버린다.
그러면서 <<강뚝 넘어 돌아오는 길은 또 한번 외로웠다>> 라는 시어로서 <<천성적인 고독감>>을 좋은 시로 일변해준다.


一日

一日
登临了一座山峰  流连了一湾湖水
温情脉脉的你之目光
使我拥有了
与孤身之时截然不同的满足

风影潜入静静的苇丛
一轮孤月跃升于天幕
我像一位心存平静的盲人
碎步穿过了幽暗的林间

走在月光下的河堤上
我却未能远离袭来的无限孤寂
Pr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