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 / 이시환

  • 김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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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1.1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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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이시환




이제야 겨우 보일 것만 같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한 나의 눈이 정말로 뜨이는 것일까. 그리하여 볼 것을 바로 보고 안개숲 속으로 흘러 들어간, 움푹움푹 패인 우리 주름살의 깊이를 짚어낼 수 있을까. 달아오르는 나의 밑바닥이 보이고, 굳게 입을 다문 사람 사람들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흐르는 강물의 꼬리가 보이고, 을지로에서 인현동과 충무로를 잇는 골목골목마다 넘실대는 저 뜨거운 몸짓들이 보일까.

지금도 예고 없이 불쑥불쑥 들이닥치는 안바람 바깥바람에 늘 속수무책으로 으깨어지다 보면 어느새 주눅이 들어 키 작은 몸을 움츠리는 버릇이 굳은살이 되고, 더러는 살아보겠다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어깨 부러진 활자들의 꿈틀거림이 정말로 보일까. 그런 우리들만의 출렁거리는 하루하루 그 모서리가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칼날에 이리저리 잘려 나갈 때 안으로 말아 올리는 한 마디 간절한 기도가 보일까.

언젠가 굼실굼실 다시 일어나 아우성이 되는 그날의 새벽놀이 겨우내 얼어붙었던 가슴마다 터지는 봇물이 될까. 그저 온몸으로 굽이쳐 흐르는 우리들만의 눈물 없는 뿌리가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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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동日記

      * 이시환

우리 세 식구가 누우면 꽉 차는 방이다. 아들 녀석이 하도 매달리는 통에 이미 틈이 맞질 않는 門 하나. 그래도 그 놈만 열어도 온통 쏟아지는 하늘의 손가락 같은 햇살뿐이다. 눈부신 유리와 빌딩과 자동차, 아스팔트로 城을 쌓고 있는 이 밀림 속에 덩그라니 하나 남은 흙집이지만 아무 때나 다리만 뻗으면 곤히 잠들 수 있는, 도무지 바깥세상의 들끓는 소리 들리지 않아 행복하게도 난 6년째 세 들어 살고 있다. 그동안 한 번도 갈지 않은 벽지조차 헤어진 대로지만 날로 더해지는 건 그 빛바랜 벽지 위로 그려지고 세워지는 아들놈의 너댓 살 꿈이다. 문득, 실비 오는 소리, 바람 소리, 까치 소리가 아니래도 목련꽃 터지고 지는 소리에 눈을 뜨면 안개 같은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는 방벽, 바로 그 속에 박힌 채 깨어있는 깨알만하 사금조각 하나. 어쩌면 먼 하늘에서 반짝이는 우리 세 식구의 별이요,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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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티브 필름을 들여다보며

이시환

      사는 동안 까마득히 잊어 버렸거나 부인해 온 나의 꾀 벗은 모습. 원시림 속의 내가 모니터 화면에 잡혀 暗室로부터 끌려나오고 있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이미 검은 것은 흐옇게, 흐연 것은 온통 검게 변했구려. 솟은 곳은 들어앉아 있고 패인 곳마다 솟아있는 뜻밖의 나는 웃음 하나를 앞니 사이로 물고 서 있었지만 긍정이냐 부정이냐 , 左냐 右냐, 안이냐 밖이냐를 강요받고 있었다. 그의 몸을 포박하고 있는 나의 편견과 독선이 더욱 오만해 지고 있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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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환 약력:

시 집 : 「안암동 日記」(1992) 외 9권

.시선집 : 벌판에 서서(2002)

.영역시집 : 달동네와 부처(2003)

.중역시집 : 벌판에 서서(2004)

·문학평론집 : ① 毒舌의 香氣(1993)

            ② 新詩學派宣言(1994)

            ③ 自然을 꿈꾸는 文明(1996)

            ④ 호도까기-批評의 無知와 眞實(1998)

            ⑤ 눈과 그릇(2000)

            ⑥ 명시감상(2000)

            ⑦ 비평의 자유로움과 가벼움을 위하여(2002)

·문학평론집 : ① 한·일전후세대 100인 시선집 「푸른 그리움」

                양국 동시 출판(1995)

            ② 시인이 시인에게 주는 편지(1997)

            *이시환의 시집과 문학평론집을 읽고 문학인들이 보낸 편지를 모은 책

              (3)고인돌 앤솔러지 말하는 돌 (2002)

·현재 : 격월간 「동방문학」 발행인 겸 편집인, 도서출판 ‘신세림’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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