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파블로 네루다

  • 김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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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시
  • 2010.10.2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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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그러니까 그 나이였다. 시가 날 찾아왔다.

  난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
  겨울에 선지 강에 선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아니, 목소리는 아니었다,

  말(言)도,
  침묵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거리에 선가 날 부르고 있었다.
  밤의 가지들로부터,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격렬한 불길 속에서.
  혹은 내가 홀로 돌아올 때,
  얼굴도 없이 거기에 지키고 섰다가
  나를 건드리곤 했다.


  난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나의 입은 이름 부를 줄 몰랐고,
  나는 눈멀었었다.
  그런데 무언가 내 영혼 속에서 꿈틀거렸다,
  열병 혹은 잃어버린 날개들이.
  그 불에 탄 상처를 해독하며,
  난 고독해져갔다.
  그리고 막연하게 첫 행을 썼다.
  형체도 없이, 어렴풋한, 순전한 헛소리,
  쥐뿔도 모르는 자의 순량한 지혜.
  그때 나는 갑자기 보았다.
  하늘이 걷히고
  열리는 것을,
  혹성들을,
  고동치는 농장들을,
  화살과 불과 꽃에
  만신창이가 된,
  구멍 뚫린 그림자를,
  소용돌이치는 밤을, 우주를 보았다.


  그리고 나, 티끌만한 존재는,
  신비를 닮은,

  신비의 형상을 한,
  별이 가득 뿌려진
  거대한 허공에 취해,
  내 자신이 심연의
  순순한 일부임을 느꼈다.
  나는 별들과 함께 떠돌았고,
  내 가슴은 바람 속에서 멋대로 날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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