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옷빨래를 했었다.
등산복은 아니고, 따뜻하게 입을 만한 옷이었는데
길을 걷는 여행자라도 깨끗해야 할 것 같아서...,
사실 긴 여행 마치고 꼭 수염을 기르고 나타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니
면도기 칫솔도 꼭 챙겨가지고 다니는 입장이다.
그래 단단히 마음먹고 옷빨래를 했는데 아침이 되었어도 마르지 않았다.
어쩔건가? 가야할 길에 푹 쉬었으니 그냥 가야지...,
혹여 쉬는 시간 그리고 도보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입으려고 준비한
간단한 개량한복을 입을 수 밖에...,
그런데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남원까지 와서 광한루를 구경하지 않고 가자니 아쉽다.
국도 24호선에서 조금은 멀어진 길이지만 광한루를 찾기로 마음을 먹고
우산을 받쳐들고 길을 나섰다.
추운 바람이 느껴졌지만 그냥 강행하기로 했다.
남원의 명물 중에 하나인 추어탕집이 광한루 앞에도 있었다.
나는 아침 식사를 추어탕으로 하고 길을 가기로 마음 먹고 식당을 찾았다.
계속 비가 오고 있었다.
어제와는 다른 빗줄기니 오늘은 우산을 받쳐들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식사를 마치고 광한루를 찾았다.
그러니까? 아주 먼 옛날이다.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 와 본 곳이다.
그리고 지금...,
아물한 기억뿐, 오작교를 걸었을 것이고 광한루에도 올랐을 것인데
전혀 기억에 없다.
그저 찾았었다는 것 말고는...,
내가 즐겨 부르는 "직녀에게"란 노래에서 오작교를 자주 불렀던 것이 유일한 기억일까?
우리들 조상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사실 아름다운 것만은 아닌 듯도 하다.
아픔이 가득한 해피엔드스토리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무튼 우리 민족에게 가득한 사랑의 메시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국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이기도 하다.
나는 5년전쯤 북한판본 춘향전을 구해보려고 애썼던 기억도 있다.
연변의 시인과 문화예술인들을 통해 북한판본 춘향전을 구해보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물론 뜻대로 되지 못했지만, 의미있는 일을 기획하고 시도했었다는 점에서 성과없는 뿌듯함은 있다.
춘향사당과 광한루, 오작교를 두루 건너고 월매집을 찾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이 길을 함께 걸음걸으며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연인이 있다면,
아마도 이 빗소리의 파음을 따라 그 어딘가에 그대에게
나의 메시지가 전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함이라...,
그래, 사람이 살고 지는 동안 이런 저런 엉뚱한 궁리도 하며 사는 것이겠지.
자문자답의 현명함도 오늘을 사는 여유를 주는 것 아닌가?
광한루를 빠져 나온 다시 국도24호선을 향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춘향교를 지나는데 춘향교에도 여지없이
한미FTA에 반대하는 격구가 비바람을 맞으며 나부끼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의 농촌 분들과 노동자들도 저렇게 비바람 맞은 마음은 아닐까?
춘향교 아래로 지리산에서부터 흘러들었을 물줄기가 강을 이루며 유유히
빗방울을 맞으며 물보조개를 띄우면서 나즈막히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우아한 걸음 사뿐한 걸음 저런 걸음처럼 우리의 삶도 유연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그네가 길에서 걸음을 멈춰서지 않고 길을 가며 이런 저런 잡념에 휩싸인다.
나그네의 잡념은 무죄이겠지만, 왠지 편안한 걸음은 아닌 듯하다.
한참을 길을 걸었을까?
학자 유자광의 사적비가 이틀전에 들어선 남원시 외곽을 지나게 되었다.
시대를 풍미한 학자 유자광을 이렇게 빗속에서 만나다니...,
그가 현세에 눈뜨고 살아 있다면 지금을 무어라 평할지...,
길이 여러 갈래를 이루며 갈라지는 삼거리 길을 지났다.
남원시내를 이제 겨우 빠져나왔다.
아침 빗길을 2시간은 족히 걸어온 듯하다.
바람이 세차다는 것, 우산은 비를 피하기도 하지만
오늘 내게는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걸었다.
마침 작은 상점이 있어 그곳에 들러 커피를 한잔하고 쉬어가기로 했다.
잠시 쉬면서 오늘 갈 길을 정하려는 것이다.
며칠 간의 경험에 의해 국도상에서 어느 곳에서 묵어가야할 지
머물 수 있는 곳이 어디 어디인지
그런 거리를 물어볼 사람이 흔치 않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미리 대비해야지.
사실 상점 주인도 거리가 어찌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오늘 가려고 마음먹은 함양까지는 무리가 있을 듯도하고
날씨도 그런 나의 계획을 쉽게 허락할 것 같지 않고,
아무튼 상점 주인을 통해 운봉을 지나 인월면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게는 아주 중요한 정보가 된다.
나는 오늘 일정을 인월면까지 가는 것으로 정했다.
가다가 거리가 나타난 이정표를 보니 20KM는 좀 넘는다.
그럼 내일 갈 곳이 함양을 지나 거창 근처가 될 듯하다.
오늘과 내일은 지리산 기슭을 맴도는 구도다.
운봉은 구름을 만끽하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니 더하겠지만, 평소라도 구름에 잔뜩 끼어있을 듯한 느낌이다.
사방에 산들이 높고 거기 구름이 끼어 운봉을 감싸고 흐른다.
나는 운봉에 멈춰섰다.
점심식사를 위해서다.
허벅지에 근육통이 일어 힘도 들고 좀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이곳에서 푹쉬었다 가자.
운봉에서 인월은 8KM 정도 되는 거리니, 보통 때 같으면 2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오늘은 악천 후에 걷는 것이니 그것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나그네가 정한 길을 멈추기에는 참으로 어려움이 많다.
몸을 정할 곳이 정해지는 것이 제일 우선시 할 일이기 때문이다.
옛날 옛적 같으면 길손을 반겨 청하는 곳도 제법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 내가 가는 국도변에서 그런 기대를 갖기는 어려운 일이다.
바람이 너무 세다.
멈출 수도 없다.
간다.
계속 길을 뚫고 가는 무쇠처럼 우산을 이용해 바람을 돌려세우고 길을 걷는다.
간혹 세차게 달려가는 자동차가 두렵다.
다행히 그들도 알아서 멀찌감치 거리를 유지하고 주행해준다.
동편제의 거두 <가왕 송흥록>과 <국창 박초월>의 생가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비바람 거세니 그 길을 그냥 지나칠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난 두 거두의 흔적을 결코 외면할 수 없었다.
그 거두를 외면하기에는 나의 맷집이 약한 모양이다.
지리산 운봉<바래봉>을 향하고 있는 두 사람의 생가터는 초가로 잘 조성되어 있었고
방명록이 놓여져 있었는데 그 방명록에 흔적을 보니
어제도 그제도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고 있다는 흔적이 나타났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가왕과 국창이라면 두 사람이 어느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는지 세삼 설명하는 것이 우스울 일 같다.
나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
두 사람의 생가 마을 앞을 흐르는 강둑을 따라 길을 나섰는데
풀밭이었다.
바바람에 젖은 풀밭을 걷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지금은 겨울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만큼 오싹한 몸으로 걸음을 걸어야했다.
가혹한 걸음걸이다.
24호선 이제 4KM 정도만 더 걸으면 오늘의 목적지 인월면에 도착한다.
전에는 국도24호선이 인월면을 관통했으나, 지금은 우회도로가 생겼다.
24호선의 많은 면소재지나 읍소재지는 신국도 24호선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말았다.
도보 여행을 하는 사람도 신국도 24호선 길에서 외면당한 서운함을 느낀다.
인월면에 들어서니 지리산새마을금고가 있다.
바로 멀리 운무에 휩싸여 산의 우듬지를 감추어버린 산이 지리산자락인 것이다.
사연많고 눈물많은 우리의 역사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지리산을
내일과 모레 이틀 동안 만끽하며 걸을 것이다.
오늘은 그 품안에서 조국을 생각하며 살고 그렇게 떠난 의인들을 생각할 일이다.
지리산을 중심에 두고...,
아! 매천야록의 황현 선생도 지리산 근처를 서성이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