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봉우를 생각하며, 휴전선을 생각하며

  • 김형효
  • 조회 3387
  • 2005.09.0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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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고을 오월은 휴전선과 맞닿아 있다

 

1950년대 후반 작품 <휴전선>을 발표하고 문단 활동을 시작한 시인으로 박봉우가 있다. 그는 분단된 민족현실과 미래적 전망을 시적 모티브로 삼았던 신동엽을 발굴한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박봉우의 시 <휴전선>은 당시 문단에서는 물론, 문단 외적으로도 금기시 되어온 휴전선을 시적소재를 선택해서 당시로서 충격적인 사변과 같은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급기야 문학이라는 장르에서 문인들로 하여금 현실문제에서 소외되어 있던 상황을 극복하게 해주는 전기가 되었다. 그러한 연유로 문학에서 현실참여와 통일문학에 이르는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주었다는 것은 우리 문학사에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 왜 그토록 그의 시 <휴전선>이 제기하는 분단문제와 휴전선 자체에 대한 인식이 그토록 크나큰 의미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인지 그 시적 의미를 따져보자.

아래는 <휴전선> 본문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火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姿勢)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高句麗) 같은 정신도 신라(新羅)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意味)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流血)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廣場).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休息)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 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 같은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어야 하는가. 아무런 죄(罪)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火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姿勢)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휴전선> 전문

이 시는 1956년도 그의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얼마되지 않은 당시 상황에서 대단히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과 적대감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민족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그 날을 갈망하는 시인의 절규가 완곡한 산문 율조의 형식으로 절제되어 나타나 있다.

시인(화자)은 1·5연에서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155마일 휴전선을 마주하고 있는 민족의 분단 상황을 전면적으로 가슴에 각인된 서정적 정조로 끌어안고 담담한 어조로 제시하고 있다. 시인(화자)은 휴전선이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꽃'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것은 "꽃"이 실제의 '꽃'이 아닌 잠시 멈춘 전쟁의 상황을 말하는 것인데, 잠시 멈춘 전쟁의 상황에서의 일촉즉발의 긴장감 속에 더욱 깊어진 증오심으로 대치해 있는 분단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요런 자세'라는 구절에서 '요런'은 '겨우 이것 밖에는 안 되는'의 의미로, 일시 포성이 멈추었을 뿐, 평화가 찾아온 것이 아닌 분단 상황을 비아냥거리는 화자의 심리가 내재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시의 대목이 특히 내게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지금 우리의 현실이 잠시 활짝 핀 꽃 같은 상황으로 보여지지만, 실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황이 못된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보수 우익과 자유시장주의자들로 대별되는 독점재벌들이 언제 어느 순간 반역의 농간을 부리려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다, 우리의 나라 형편이 극도로 어려운 현실에서 매국노 이완용과도 흡사하다할 만큼 외세의존적인 세력들이 폐쇄된 언론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민족의 하나됨을 막아내려하고 민족적 반역을 꾀하려는 노골적 저의를 호시탐탐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2연에서 시인(화자)은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의 휴전선의 모습을 통하여 팽팽한 긴장감으로 대립하고 있는 남과 북의 현실을 제시하고 있다. 만주를 호령했던 '고구려 같은 정신'이나 삼국을 통일한 '신라 같은 이야기'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오늘날의 민족 상황을 비판하는 한편, 지금은 비록 남과 북이 허울좋은 이데올로기로 분단되어 있더라도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라며 통일의 당위성을 역설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이냐며 하루빨리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민족의 큰 소망으로 발전한다.

이는 또한 남북정상의 지난해 회담의 상황에서 보여주었던 민족은 결국 하나란 깊은 인식의 바탕에서 시인이 천착한 눈으로 시대를 조망하고 민족의 미래상을 전망한 대목으로 읽힌다. 그래서 그러한 시적 메시지가 지금 바로 우리 앞에 직설적이고 그리고 분명한 현실적 요구로 다가와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한다.

3연에서는 분단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있다. 분단은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정맥'이 끊어진 신체와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시적화자가 분단 상황이 계속되면 될수록 민족사는 더욱 '야위어갈' 수밖에 없음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절규하며 당대의 민감한 논객으로서 시인의 촉수로서 그 고통을 앞서서 감내하고 지적하며 절망에 노래를 이어가고 있다.

4연에서도 시인은 '독사의 혀 같은 징그러운'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함으로써 동족 상잔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모진 겨우살이'와 같았던 6·25의 비극적 체험을 겪은 바 있는 화자는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이 바람에 쓰러지는 것 같은 전쟁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며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라고 외친다.

아무리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장식된 전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죄 없는 백성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정치 지도자들의 허황된 정치 논리라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결국 시 <휴전선>이 민족적 비극과 슬픔에 대한 토로를 넘어서 분단 상황자체를 부인한 시인적 선택이 되고 이어 이를 극복할 분명한 메시지는 민족의 단일한 대오로서 서는 것만이 민족이 모두 사는 길임을 예언적인 메신저로서 나서 절망적인 토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대사의 오욕과 비극점들이 많은 부분 분단에 원인이 있음을 예견하고 있는 것이라 할만하다.

그의 또 다른 시 <또 파고다 공원論 1> 부분은 4·19를 경험한 박봉우가 민족의 자주, 자유와 통일을 노래하는 대표적 시인으로서의 모습을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두운 산천에 봄이 오는가
절단된 강산에 또 3월이 오는가
우리들의 삼월이 뭉쳤던 날
남도 북도 한덩어리였다.
한핏줄은 여기에 흐르는가
슬기로운 넋은 여기 있는가

……(중략)

삼월! 파고다 공원은
쓸쓸한 사람만 모이는가, 아니다.
모든 고향의 봄빛이 집중하는 곳
화산같이 토할 노래이다.

<또 파고다 공원論 1> 부분

동학혁명을 계승하는 반외세 민중항쟁으로서의 3·1운동을 '절단된 강산'을 잇는 원동력으로서 제시한 이 시는 분단극복문학의 출발지점의 핵심적 위치에 놓이는 시이다.

이 시는 민중주체의 통일론을 주창한 문학이 결국 박봉우로부터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문학과 애국적 실천의 필연성이 요구되는 것은 4·19혁명운동의 전개로서 반외세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신동엽과 같은 거대 시인이 나와 민족적 기개의 웅장한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이후 팔십년 오월의 산맥을 넘으며 조태일, 양성우, 김지하, 김남주, 김준태, 기타 오월문학가들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을 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씨앗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이토록 그의 시는 언제나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불의와 비리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이른바 당대적 모순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문학적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애정어린 현실의 눈을 갖고 시를 썼던 시인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50년대 전쟁과 폐허, 60년대 민주 혁명과 군사 독재, 70년대의 정신적 황폐함 속에서 얻어지는 물질적 풍요, 80년대의 민주화 열망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에서 그의 숨결이 얼마나 우리의 현실을 매질하며 숨차게 이어져 왔는가를 이제 우리는 자각하여야 할 것이다.

다시 우리는 우리 사회를 온몸으로 맞닥뜨리고 시를 쓴 시인 박봉우를 기억해야 할 때이다. 아니 언제라도 잊지말고 계승해야 할 것이다. 그의 시가 신동엽 시인과 김남주 시인의 가슴에 차오르는 시정으로 살아났다면 우린 이제 또다시 그들의 시정을 이어 받아 이처럼 가슴 깊이 각인될 수 있는 시적 충만함으로 새로운 위기의 시대를 건져올려야 할 것이다.

2001년 다시 위기를 체감하며, 오월을 생각하고 휴전선이 있는 한 언제나 오월은 여전히 무섭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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