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이 넘실대는 동해의 푸른 물빛사이로 봉고프론티어에 의지한 우리는 이번에는 감추사를 향해갔다. 사실 차안에 몸을 실은 상태에서 어디로 가는 지 정확히 안 것이 아니고 나중에 가서 그곳이 감추사란 것을 알았다. 여행의 과정에 흠뻑 취해서 오늘도 그 일정을 상세히 기억이 나질 않아서 박창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그 여정을 메모한 후 지금 자판을 두들기며 짧지만 짧지 않은 여정을 되새김질하며 사람살이의 편린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감추사는 절이다. 동해바다를 관망할 수 있는 철길을 건너 바다로 향하면 감추사란 절이 나온다. 사실 너무나 바싹 바다와 붙어 있어서 위태롭기까지 하다. 이 절의 유래를 알아보면 "한국불교태고종에 속하는 사찰로 창건설화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의 셋째딸인 선화공주(善花公主)가 창건했다고 한다. 선화공주는 백제 무왕과 결혼한 뒤 백풍병(白風病)이라는 병에 걸렸다. 여러 약을 써보았으나 낫지 않자 전라북도 익산시 용화산(현재의 미륵산) 사자사(師子寺)에 머물던 법사 지명(知命)이 공주에게 동해안 감추(甘湫)로 가보라고 권하였다. 공주는 감추로 가서 자연동굴에 불상을 모시고 매일 낙산 용소(龍沼)에서 목욕재계를 하는 등 3년 동안 기도를 하였다. 공주가 마침내 병을 고치고 부처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절이 바로 감추사라는 것이다. 선화공주는 노후에 용왕에 대한 보은을 갚기 위해 이곳에 와서 동해를 바라보다 죽었으며, 묘를 이곳에 썼다고 한다.
오랫동안 폐사로 있던 것을 1902년 절을 세우고 신건암(新建庵) 또는 대은사분암(大恩寺分庵)이라고 하였다. 1959년 해일이 덮쳐 석실과 불상이 유실되었으며, 1965년 인학(仁學)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은 관음전과 삼성각·용왕각·요사채가 있다. 창건 당시의 절터는 찾을 수 없고 선화공주의 전설이 서린 석굴만 남아 있다. 절 입구에는 1979년 조성된 오층석탑이 있는데, 한 여신도가 죽을 때 자신의 아들 박복수(朴福壽)에게 유언을 남겨 만들었다고 전한다. 바닷가에 가까워 주변이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절 입구 샘물에서는 약수가 흘러넘쳐 늘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마을에서는 가뭄이 심할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낸다고 한다."
그런 절간 앞에 무속인들이 돼지를 잡아서 날것으로 엎어두고 긴창칼을 두자루 돼지 등위에 얹어 놓은 모습은 잔인한 살풍경 그대로였다. 참으로 지나친 것이다. 종교나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다 하지만 그러한 종교와 신앙이란 것도 인간이 하는 행위라면 인간의 법도가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튼 그렇게 동해바다가의 한풍경을 접하고 천곡동굴을 향했다. 총 연장 1400미터가 넘는 그 동굴을 본 사람은 일행 중 두 사람이다. 몸도 지치고 여비도 넉넉하지 못한 것을 고려해서 마치 선수선발이라도 하듯 선별해서 두 사람을 보냈다. 바로 용길대사와 무쏘님이었다. 우리 일행은 그저 그런 동굴이겠지. 동굴이란게 뭐 그리 색다를 것 없잖아! 하는 태도로 일행이 나올 때까지 커피나 한잔하며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 영상자료실을 잠깐 둘러본게 고작이다. 두 사람중 무쏘님은 정말 좋다는 것이고 용길대사님은 좋은데 좀 아닌 것처럼 좀 헛갈리게 했다. 아닌가? 내 기억으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우린 과감하게 촛대바위를 향했다. 추암 촛대바위는 "애국가의 배경화면으로 나오기도 했으며 한국관광공사에서 가볼 만한 겨울철 관광지로 선정하기도 했다. 추암의 촛대 바위는 동해시와 삼척시 경계지점의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추암마을 동쪽은 촛대바위 북쪽에는지방유형 문화재 제63호로 지정된 해암정(海岩亭) 과 바닷가에는 금강산의 해금강에 버금가는 추암 해금강이 있고, 마을 앞 해변에는 천연 해수욕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한편 추암 촛대바위 파도소리는 환경부에 의해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해돋이 명소인 동해시 추암의 촛대바위 파도소리가 전국 바닷가의 파도소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소리 후보로 선정됐다.
환경부가 최근 ‘ 한국 아름다운 소리 100선’의 후보소리를 발표하면서 추암 촛대바위의 파도소리를 여수시 돌산읍 금오산 향일암 파도소리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파도소리 후보로 선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는 했지만 우리는 풍경만 더욱 눈여겨 보려했었으니 좀 더 두루두루 오감을 살려가는 습성을 기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낯선 여행지에서라면 진정으로 중요한 여행 습관이라고 생각된다. 어설픈 빗줄기가 흩뿌리는가 싶어 내심 걱정을 했는데 잠시 머무르다간 바람처럼 이내 멈추었다.
우린 이제야 이른 일정인데도 최종 목적지인 무릉계곡을 찾기로 했다. 처음가는 길이라 그런건가? 동해의 갯내음에 절어 맑은 정신을 잃기라도 했던가? 아니면 동해와 계곡의 조화가 낯설어서인가? 무릉계곡을 장장 15킬로미터나 지나쳐 다시 되돌아오는 우여곡절 끝에 현장에 도착했다. 부산하게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피서지의 계곡에는 인파로 넘쳐났다. 차량도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이런 곳에서의 민족예술제란 참 독특한 발상이고 참으로 자연스럽게 우리민족예술에 일반인들과가깝게 다가설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란 생각을 내심다지면서 기쁜 희열같은 것을 잠시잠깐씩 되새겼다. 참 기발한 착상에 기쁜 일이었다.
더구나 내가 평소 좋아하는 박창근과 함께라니..., 사실 성환우 님과 박성운 님의 노래는 들어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기대감까지 아니 새로운 만남 속에 설레임까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야영장에 여장을 푼 후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창근이가 다녀간 경험으로 안내한 식당에서 된장국에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동해에 가수 박향미 님의 동생분이 경영한다는 카페 만남에 가서 술잔을 기울였다. 가게 주인은 젊은 여주인이 분명한데 그의 마음 씀씀이는 시골 아낙처럼 정겨운 그런 풍모를 보여주었다. 한 잔 술 두 잔 술 나누다 보니 너무나 정겨워 흥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A4지 한 장과 펜을 집어들고 그 분위기, 만남카페라는 곳에서 바라보이는 계곡과 산의 어우러짐처럼 사람들도 그렇게 정겹고 쟁탈없이 어우러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한편은 시를 지어 선물로 전하였다.다행인지 불행인지 전해진 원본이 없어 이 자리에서 소개하지 못한다.
그리고 해가 서산을 넘어갈 무렵이 되었고 리허설을 하고 금세 시작된 행사는 진지하였고 한여름밤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너무나 자연스런 피서지에서의 문화축제가 펼쳐진 것이다. 시낭송과 사물놀이패의 공연, 어린이 소리패의 가야금 연주와 민요공연은 으뜸가는 것이었다. 일상적으로 즐기지 못하고 행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여전히 한민족의 몸살에 긴밀히 스며있음을 모두가 이해하는 자리였다.
이어서 우리 일행의 노래가 불려질때 상황은 최고조로 향했다. 멀리 텐트에서 바라보며 듣고 술마시며 공연을 관람하던 이들이 깔자리를 든 채로 와서 자리를 펴고 노래를 경청해 줄 때는 마치 내가 무대에 선 것처럼 흥겨웠다. 그런 흥겨움에 어설픈 노래를 따라 부르며 제자리에서 춤을 추었다. 춤이라기에 좀 민망한 율동이 적합한 표현일 것이리라.
독창과 어울러 부르기가 너무 좋아서 율동을 멈추지 못했다. 짜여진 기획이겠지만, 한정되고 제한된 관객이 아니었으니 어쩌면 철저히 관객의 기획대로 움직여지는 그런 공연이었던 것이다. 대상 불분명에 관람객이 특정화 되지 않은 가운데 기획이란 무의미 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상을 뛰어넘는 기획만 있을 뿐,
공연이 끝나고 술잔과 함께 밤을 깊게 하며 우리는 이런 저런 공연 후일담을 나누며 다시 동해바다를 찾았다. 도중에 박성운 님과 부인은 먼저 집을 향했고, 아쉬움 때문에 가는 길에 전화를 주시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아쉬움들이 사람들에게는 있는 것인가?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만나서 즐거우리라. 우린 그렇게 대진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고 다시 돌아온 무릉계곡 제2야영장에서 잠자리를 헤매다 자리를 잡고 아침을 맞았다.
아침을 맞아 다시 우리들만의 식사를 위해 된장국집을 찾아 식사를 하고 제2야영장으로 돌아와 동해지부 민예총의 저간의 사정과 민족예술의 강원도내 흐름들에 대해 듣는 기회를 가졌고 행사에 대한 평가가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우리 일행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섰고 지난 번 그냥 지나쳤던 천곡동굴을 타망하기로 하고 천곡동굴로 향했다.
천곡동굴은 "총길이 1,400m의 석회암 수평동굴로, 4~5억 년 전에 생성된 천연동굴이다.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시내 중심부에 있는 동굴로, 1991년 6월 천곡동 신시가지 기반 조성 공사 때 발견되어 총 1,400m 가운데 700m가 개발되었다. 동굴 내부는 한국에서 가장 긴 천장 용식구, 커트형 종유석, 석회화단구, 종유폭포 등과 희귀석들이 어우러져 있으며, 동굴 입구에는 우주생성과 동굴 생태계 전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전시관과 영상실을 꾸며놓은 자연학습관이 있다.
동해항에서 금강산관광선이 입출항하면서 관람객이 늘어나자, 동해시가 동굴의 관람 여건을 개선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2000년 170m를 연장 개발하여 관람로를 늘리고 각종 전시 조명 음향시설을 보완하는 공사를 벌였다. 동절기인 1월 1일~3월 31일, 11월 1일~12월 31일에는 9시부터 17시까지 관람할 수 있으며, 하절기인 4월 1일~10월 31일에는 19시까지 2시간 연장 관람할 수 있다. 동해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자동차로 5분, 동해 종합버스터미널에서 3분밖에 걸리지 않으며, 주변에 무릉계곡, 망상해수욕장, 추암 촛대바위 등의 관광명소가 많아 관람객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 한다."
감추사는 절이다. 동해바다를 관망할 수 있는 철길을 건너 바다로 향하면 감추사란 절이 나온다. 사실 너무나 바싹 바다와 붙어 있어서 위태롭기까지 하다. 이 절의 유래를 알아보면 "한국불교태고종에 속하는 사찰로 창건설화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의 셋째딸인 선화공주(善花公主)가 창건했다고 한다. 선화공주는 백제 무왕과 결혼한 뒤 백풍병(白風病)이라는 병에 걸렸다. 여러 약을 써보았으나 낫지 않자 전라북도 익산시 용화산(현재의 미륵산) 사자사(師子寺)에 머물던 법사 지명(知命)이 공주에게 동해안 감추(甘湫)로 가보라고 권하였다. 공주는 감추로 가서 자연동굴에 불상을 모시고 매일 낙산 용소(龍沼)에서 목욕재계를 하는 등 3년 동안 기도를 하였다. 공주가 마침내 병을 고치고 부처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절이 바로 감추사라는 것이다. 선화공주는 노후에 용왕에 대한 보은을 갚기 위해 이곳에 와서 동해를 바라보다 죽었으며, 묘를 이곳에 썼다고 한다.
오랫동안 폐사로 있던 것을 1902년 절을 세우고 신건암(新建庵) 또는 대은사분암(大恩寺分庵)이라고 하였다. 1959년 해일이 덮쳐 석실과 불상이 유실되었으며, 1965년 인학(仁學)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은 관음전과 삼성각·용왕각·요사채가 있다. 창건 당시의 절터는 찾을 수 없고 선화공주의 전설이 서린 석굴만 남아 있다. 절 입구에는 1979년 조성된 오층석탑이 있는데, 한 여신도가 죽을 때 자신의 아들 박복수(朴福壽)에게 유언을 남겨 만들었다고 전한다. 바닷가에 가까워 주변이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절 입구 샘물에서는 약수가 흘러넘쳐 늘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마을에서는 가뭄이 심할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낸다고 한다."
그런 절간 앞에 무속인들이 돼지를 잡아서 날것으로 엎어두고 긴창칼을 두자루 돼지 등위에 얹어 놓은 모습은 잔인한 살풍경 그대로였다. 참으로 지나친 것이다. 종교나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다 하지만 그러한 종교와 신앙이란 것도 인간이 하는 행위라면 인간의 법도가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튼 그렇게 동해바다가의 한풍경을 접하고 천곡동굴을 향했다. 총 연장 1400미터가 넘는 그 동굴을 본 사람은 일행 중 두 사람이다. 몸도 지치고 여비도 넉넉하지 못한 것을 고려해서 마치 선수선발이라도 하듯 선별해서 두 사람을 보냈다. 바로 용길대사와 무쏘님이었다. 우리 일행은 그저 그런 동굴이겠지. 동굴이란게 뭐 그리 색다를 것 없잖아! 하는 태도로 일행이 나올 때까지 커피나 한잔하며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 영상자료실을 잠깐 둘러본게 고작이다. 두 사람중 무쏘님은 정말 좋다는 것이고 용길대사님은 좋은데 좀 아닌 것처럼 좀 헛갈리게 했다. 아닌가? 내 기억으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우린 과감하게 촛대바위를 향했다. 추암 촛대바위는 "애국가의 배경화면으로 나오기도 했으며 한국관광공사에서 가볼 만한 겨울철 관광지로 선정하기도 했다. 추암의 촛대 바위는 동해시와 삼척시 경계지점의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추암마을 동쪽은 촛대바위 북쪽에는지방유형 문화재 제63호로 지정된 해암정(海岩亭) 과 바닷가에는 금강산의 해금강에 버금가는 추암 해금강이 있고, 마을 앞 해변에는 천연 해수욕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한편 추암 촛대바위 파도소리는 환경부에 의해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해돋이 명소인 동해시 추암의 촛대바위 파도소리가 전국 바닷가의 파도소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소리 후보로 선정됐다.
환경부가 최근 ‘ 한국 아름다운 소리 100선’의 후보소리를 발표하면서 추암 촛대바위의 파도소리를 여수시 돌산읍 금오산 향일암 파도소리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파도소리 후보로 선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는 했지만 우리는 풍경만 더욱 눈여겨 보려했었으니 좀 더 두루두루 오감을 살려가는 습성을 기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낯선 여행지에서라면 진정으로 중요한 여행 습관이라고 생각된다. 어설픈 빗줄기가 흩뿌리는가 싶어 내심 걱정을 했는데 잠시 머무르다간 바람처럼 이내 멈추었다.
우린 이제야 이른 일정인데도 최종 목적지인 무릉계곡을 찾기로 했다. 처음가는 길이라 그런건가? 동해의 갯내음에 절어 맑은 정신을 잃기라도 했던가? 아니면 동해와 계곡의 조화가 낯설어서인가? 무릉계곡을 장장 15킬로미터나 지나쳐 다시 되돌아오는 우여곡절 끝에 현장에 도착했다. 부산하게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피서지의 계곡에는 인파로 넘쳐났다. 차량도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이런 곳에서의 민족예술제란 참 독특한 발상이고 참으로 자연스럽게 우리민족예술에 일반인들과가깝게 다가설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란 생각을 내심다지면서 기쁜 희열같은 것을 잠시잠깐씩 되새겼다. 참 기발한 착상에 기쁜 일이었다.
더구나 내가 평소 좋아하는 박창근과 함께라니..., 사실 성환우 님과 박성운 님의 노래는 들어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기대감까지 아니 새로운 만남 속에 설레임까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야영장에 여장을 푼 후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창근이가 다녀간 경험으로 안내한 식당에서 된장국에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동해에 가수 박향미 님의 동생분이 경영한다는 카페 만남에 가서 술잔을 기울였다. 가게 주인은 젊은 여주인이 분명한데 그의 마음 씀씀이는 시골 아낙처럼 정겨운 그런 풍모를 보여주었다. 한 잔 술 두 잔 술 나누다 보니 너무나 정겨워 흥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A4지 한 장과 펜을 집어들고 그 분위기, 만남카페라는 곳에서 바라보이는 계곡과 산의 어우러짐처럼 사람들도 그렇게 정겹고 쟁탈없이 어우러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한편은 시를 지어 선물로 전하였다.다행인지 불행인지 전해진 원본이 없어 이 자리에서 소개하지 못한다.
그리고 해가 서산을 넘어갈 무렵이 되었고 리허설을 하고 금세 시작된 행사는 진지하였고 한여름밤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너무나 자연스런 피서지에서의 문화축제가 펼쳐진 것이다. 시낭송과 사물놀이패의 공연, 어린이 소리패의 가야금 연주와 민요공연은 으뜸가는 것이었다. 일상적으로 즐기지 못하고 행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여전히 한민족의 몸살에 긴밀히 스며있음을 모두가 이해하는 자리였다.
이어서 우리 일행의 노래가 불려질때 상황은 최고조로 향했다. 멀리 텐트에서 바라보며 듣고 술마시며 공연을 관람하던 이들이 깔자리를 든 채로 와서 자리를 펴고 노래를 경청해 줄 때는 마치 내가 무대에 선 것처럼 흥겨웠다. 그런 흥겨움에 어설픈 노래를 따라 부르며 제자리에서 춤을 추었다. 춤이라기에 좀 민망한 율동이 적합한 표현일 것이리라.
독창과 어울러 부르기가 너무 좋아서 율동을 멈추지 못했다. 짜여진 기획이겠지만, 한정되고 제한된 관객이 아니었으니 어쩌면 철저히 관객의 기획대로 움직여지는 그런 공연이었던 것이다. 대상 불분명에 관람객이 특정화 되지 않은 가운데 기획이란 무의미 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상을 뛰어넘는 기획만 있을 뿐,
공연이 끝나고 술잔과 함께 밤을 깊게 하며 우리는 이런 저런 공연 후일담을 나누며 다시 동해바다를 찾았다. 도중에 박성운 님과 부인은 먼저 집을 향했고, 아쉬움 때문에 가는 길에 전화를 주시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아쉬움들이 사람들에게는 있는 것인가?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만나서 즐거우리라. 우린 그렇게 대진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고 다시 돌아온 무릉계곡 제2야영장에서 잠자리를 헤매다 자리를 잡고 아침을 맞았다.
아침을 맞아 다시 우리들만의 식사를 위해 된장국집을 찾아 식사를 하고 제2야영장으로 돌아와 동해지부 민예총의 저간의 사정과 민족예술의 강원도내 흐름들에 대해 듣는 기회를 가졌고 행사에 대한 평가가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우리 일행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섰고 지난 번 그냥 지나쳤던 천곡동굴을 타망하기로 하고 천곡동굴로 향했다.
천곡동굴은 "총길이 1,400m의 석회암 수평동굴로, 4~5억 년 전에 생성된 천연동굴이다.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시내 중심부에 있는 동굴로, 1991년 6월 천곡동 신시가지 기반 조성 공사 때 발견되어 총 1,400m 가운데 700m가 개발되었다. 동굴 내부는 한국에서 가장 긴 천장 용식구, 커트형 종유석, 석회화단구, 종유폭포 등과 희귀석들이 어우러져 있으며, 동굴 입구에는 우주생성과 동굴 생태계 전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전시관과 영상실을 꾸며놓은 자연학습관이 있다.
동해항에서 금강산관광선이 입출항하면서 관람객이 늘어나자, 동해시가 동굴의 관람 여건을 개선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2000년 170m를 연장 개발하여 관람로를 늘리고 각종 전시 조명 음향시설을 보완하는 공사를 벌였다. 동절기인 1월 1일~3월 31일, 11월 1일~12월 31일에는 9시부터 17시까지 관람할 수 있으며, 하절기인 4월 1일~10월 31일에는 19시까지 2시간 연장 관람할 수 있다. 동해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자동차로 5분, 동해 종합버스터미널에서 3분밖에 걸리지 않으며, 주변에 무릉계곡, 망상해수욕장, 추암 촛대바위 등의 관광명소가 많아 관람객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