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타에 가다(5)

  • 김형효
  • 조회 4299
  • 2009.11.13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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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도토르 언덕에 기댄 옥탑방 아이가 되다.

  

흑해의 파도가 물살을 일으키는 것을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에 머나먼 과거의 시련의 역사까지 저 거친 파도가 몸살하며 흰 거품을 일으키는 것처럼 제 몸과 마음 에도 그런 화학작용이 일었다가 가라앉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택시기사 니꼴라이 아저씨와 약속한 안톤 체홉의 집, 얄타회담이 열렸던 라바디야(ЛИВАДИЯ)를 둘러보았고 마지막 여정인 아이도토르 기슭에 제비둥지를 보러갑니다. 다시 오르락내리락 흑해 해안선을 달리던 택시가 높다란 언덕에서 바다가 잘 바라보이는 곳에 세워졌습니다. 그곳이 필자가 원했던 제비둥지가 잘 바라보이는 곳이었습니다.

 

마치 옥탑방에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 것처럼 가까이로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마치 아이도토르 언덕에 기댄 옥탑방의 아이처럼 느껴지는 그런 전망대에 선 느낌이었습니다. 제비둥지가 기대고 있는 언덕을 향해 파도가 무한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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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슭 저 멀리 바다 한 가운데는 마치 평원처럼 느껴지는 흑해바다

 

풍요로운 낭만이 저 넓은 바다에 가득하여 우크라이나의 대평원처럼 고른 바다의 벌판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곳을 달려도 빠지지 않을 것처럼 어쩌면 아이스링크를 달리듯 미끄러질 듯도 하고 어쩌면 그대로 달리면 그 오래된 역사의 과거로 달려가는 길이 나올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꿈처럼 슬라이드를 보듯 펼쳐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과 짙푸른 바다와 그 바다가 일렁이며 흰 거품을 일으키는 파도와 마음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여행자 그리고 그를 안내하는 마음을 편하게 하는 동네 아저씨 같은 니꼴라이 그리고 지금은 얄타의 상징물이 되었고 마치 얄타라는 박물관의 전시물이거나 조형물 같은 제비둥지가 아주 멋지게 어우러지는 시간이었습니다.

 

필자는 벌써 세 시간을 넘게 안내한 니꼴라이에게 오늘 제비둥지 보는 것은 이걸로 마치자고 제안했습니다. 당초 약속한 장소를 다 가본 것은 아니지만, 시간은 많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람 좋은 아저씨를 위해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훗날 다시 한국에서 누군가 찾아오면 함께 초행처럼 그곳을 걷고 싶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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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꼴라이 아저씨의 자동차다. 제비둥지를 보기 위해 차를 세운 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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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둥지와 어우러진 흑해...흰 거품이 두드러져서 바다가 몸살하는 느낌이다.

 

오후 한 시가 다되었습니다. 당초 2시간 이내면 세 곳을 다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체홉의 정글이라고 해도 좋을 체홉의 집에서 사색 깊은 관람을 하느라 예정보다 긴 시간을 보냈고 이어서 라바디야에서도 달음질치듯 둘러보았던 것 같은데 사색이 깊은 시간여행이 길어진 모양입니다. 사람 좋은 니꼴라이 아저씨가 그래도 미안한 듯 왜 그러느냐?며 고개를 갸웃하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되었습니다라 말하고 맨 처음 지나쳤던 얄타의 또 다른 명소인 알렉산드르 네브스키 교회에 세워달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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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산기슭의 경관을 헤치는 건축물들이 많다.

그런데 저 교회는 저 산기슭의 오두막 같이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드라이브 하듯 부담없이 달리는 택시 안에서 거친 동굴 속을 빠져나온 사람처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음에 무게가 실렸던 모양입니다. 홀가분함으로 이제는 교회를 둘러본 후 흑해바닷가를 산책할 생각입니다. 예정된 시간은 세 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그렇게 하루 짧지만 편안한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주신 운전기사 니꼴라이와 작별하고 나중에 오면 서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연락처를 주고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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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차르) 알렉산드르 2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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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네브스키 교회 전경

 

알렉산드르 네브스키 교회는 제정러시아 시대의 가장 위대한 차르(황제라는 러시아식 칭호, 우리의 왕)인 알렉산드르 2세가 1881년 3월 암살되자 이를 애석하게 여긴 얄타 시의회가 기부금을 거두어 세운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 남쪽 벽면에는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대형초상화가 걸려있는데 이 시대에 러시아의 농노 해방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실내에서 사진촬영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전해집니다. 더구나 평일이어서 내부를 보려면 낯선 여행자는 불편한 대상이 될 수도 있으리란 생각에 그냥 바깥에서 사진촬영을 하면서 살펴보는 것으로 족했습니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모두 신앙을 갖은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한결같이 멋진 교회 건축물에는 감탄을 자아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여러 곳의 교회 건축물을 보았고 카메라에 담기도 했습니다. 교회 정문을 나오면 바로 도로를 가로지르는 지하보도가 바다 쪽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니꼴라이 아저씨의 이야기를 따라 길을 갔습니다. 바로 알아볼 수 있는 지하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길을 따라 5분 정도를 걸었더니 탁 트인 바다가 바로 눈앞에 펼쳐집니다. 생각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그 바닷가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그 안에 낯선 이방의 나그네로 섞여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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