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명절 한식을 기억하고 지켜가는 모습이 애처롭고 고맙고 아름답다
지난 주 7개월 동안 수업을 진행해 왔던 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 제일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후 새로운 공간을 찾느라 마음 고생을 했다. 물론 그 고생이 필자의 고생만은 아니다. 이곳에 고려인들의 한글교육과 세시풍속 그리고 생활문화를 가르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는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의 몸과 마음고생이 가장 큰 일이었다. 필자는 마음만 아플 뿐이었다. 딱히 공간 마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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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한주일 동안 소식 없이 기다리기 답답해서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에게 교실 문제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물었지만, 금요일까지 답이 없었다. 토요일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필자로서는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다행히 토요일 오전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곧바로 만나기로 하고 찾아간 곳이 예빠토리야 제16학교 인근의 아파트 지하였다. 그곳은 이미 독일어학교가 오래전부터 사용해오고 있는 장소였고 한글학교는 바로 옆 빈 공간을 임대해서 사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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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협소하지만 10여명의 학생이 수업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공간이다. 자체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니 실내장식도 가능하다. 토요일 수업을 진행하고 일요일에는 평소보다 일찍 가서 실내장식을 했다. 이틀째 진행하는 수업인데 아이들도 오래전부터 익숙한 공간처럼 자유롭고 활발한 느낌이다. 남의 집 살이와 좁아도 내 집 살이가 좋은 것이 무엇인지 실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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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수업에는 종교와 상관없이 이 나라에 보통사람들이 명절로 삼는 부활절을 맞아 작은 파티가 열렸다. 내일은 한식이다. 이곳의 동포들은 내일 성묘를 한다고 했다. 이곳 고려인 동포들이 가장 큰 명절로 여기는 것은 설날과 추석 그리고 한식이라고 한다.
그중 설날과 한식에는 가족이 함께 성묘를 간다고 했다. 아주 오래전 떠나온 조상의 나라의 말을 잃어 버렸지만, 음식 문화, 생활 문화 모두 잊혀져간 일이지만, 끝끝내 남은 명절의 기억으로 한 민족임을 자각하고 지켜가는 모습이 애처롭고 고맙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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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한국에 모대학 교수님께서 한복 20여벌을 모아 보내주신다는 이메일을 받고 보낸 답장이다. |
안녕하십니까?
잘 알겠습니다. 보내주시는 한복을 잘 입도록 하겠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우리의 세시풍속을 잘 몰라 때로 제가 곤혹스럽게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란 생각도 하고, 문화란 참 생명력이 길다는 생각을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내일은 4월 5일이니 한식입니다.
이곳 동포들은 설날과 한식에 우리네 무덤과는 다르지만, 부모님이나 조상의 산소를 찾습니다. 그 길고 긴 가혹한 세월을 너머 이곳까지 왔지만, 그들이 말을 잃어버리고 많은 세시풍속을 잃어버렸지만, 끝끝내 지켜지고 있는 것이 있으니 말입니다.
어제는 새로운 공간을 찾아 한글학교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그 동안 사용하던 제일학교는 지난 주 수업을 끝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없다고 해서 이번 주부터 새로운 공간에서 수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곳 고려인 협회장인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 말에 의하면 임대해서 사용하게 되었는데 아파트 단지의 지하 공간입니다. 바로 옆 교실은 이곳의 독일인들의 독일어 학교 강의실이 있어서 분위기는 학원 같은 느낌이 나더군요. 학생 수가 많지 않으니 공간이 좁지는 않고 바로 그 옆에는 학교가 있더군요. 운동장도 곁이라서 쉬는 시간에도 뛰어놀 공간도 있고 놀이기구들도 있어 같은 학교 같은 느낌이 납니다.
이제 정해진 공간이 생겼으니 교실 단장도 좀 하고 하렵니다. 보내주신 한복은 의미에 맞게 잘 입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의 아이들이 기뻐할 것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두 분 선생님께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맑은 하늘이 있지만, 그곳을 바라보고 가는 사람들의 몫이란 생각입니다. 맑은 하늘이라도 바라보는 이 없으면 주인 잃은 하늘이란 생각도 합니다. 험하고 어두운 그늘도 바라보고 대비하면 맑은 하늘로 열린 길이 있지만, 그저 외면하고 고개를 돌린다면 그 어떤 희망도 다가설 길이 없다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고맙고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그리고 고려인 할머니, 부모님들이 참 기뻐하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