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도 꽃들도 새들도 벌 나비도 살 판난 곳, 하물며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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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자연을 보며 감탄하고 탄복한다. 달팽이도 꽃들도 새들도 벌 나비도 살판난 곳이다. 경제력으로 낙후하다고 하는 이 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봐도 살 판이다. 한국에서 이곳에 오기 전만해도 필자의 상식은 우크라이나는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이 어려운 나라로 알고 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IMF구제 금융을 쓰고 있는 나라임에도 그들의 삶은 과거 한국의 IMF시절과도 비교될 정도로 안정적이고 자유롭다. 우리가 겪었던 IMF는 대재앙과도 같았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지표는 좋으나 어려운 생활을 하는 한국, 지표는 나쁘나 생활은 좋은 우크라이나를 생각하며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할까 생각하게 된다. 어떤 것을 믿어야하나?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지표인가? 생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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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된 일인가? 이해할 수 없어 세세히 살펴보았다. 그것은 서민들의 기초생활이 보장되는 경제적 조건 때문이었다. 구소련 시절부터 이어져오던 사회복지제도는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잘 유지되고 있다. 일자리를 나누는 일도 일상적인 일이다. 필자의 눈, 다른 젊은 봉사단원들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춰지는 일이 있다. 그것은 일자리 나눔의 모습이다. 마치 일을 포기한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먼저 필자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는 미용실이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있어 자주 지나는 미용실인데 요일 단위로 일하는 사람이 다르다. 그 뿐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의 수돗물에는 석회 성분이 들어있다고 하여 물을 꼭 사서 먹는 데, 생수 가게에 일하는 사람도 일주일에 두 세 명이 돌아가며 일한다. 바로 넓은 생수 가게 안에 새로 생긴 의류와 지갑, 아이들 장난감 등을 파는 장난감도 수시로 일하는 사람이 바뀐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들의 삶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다. 그러니 그들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방인들의 눈만 이상한 것이고 그들은 평온 그 자체다. 그렇다고 그들이 결코 생활을 포기한 것도 일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가게 주인이 바뀌었나보다 생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날씨가 풀리고 봄이 지나자, 이들은 곧 휴가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예파토리야는 휴양도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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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동안 철시한 상가들이 문을 열고 노점은 한창 공사가 끝나고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곳 사람들의 긴 휴가가 시작된 것이다. 보통은 6월부터 9월이라고 하는데 필자의 눈에는 5월부터 시작한 휴가는 10월말이 되어야 끝이 난다. 벌써부터 늘씬한 몸매를 드러낸 아가씨들의 비키니 차림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너무나 버거운 우크라이나 중년 여성들의 푸짐한 몸매를 드러내 보이는 흑해 풍경은 참 낯설고 낯설다. 이미 시작된 그들의 휴가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얼마 전 한국에서 찾아온 아우에게 "놀 것 다 놀고 힘들다고 말하는 이 나라 사람들과 할 일 다 하면서도 매일 버거워하는 우리네 삶을 비교하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질문을 던졌던 일이 생각났다. 필자가 여러 지인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에도 그런 질문을 실어 보내기도 했다. 마냥 삶을 즐기며 웃고 사는 사람들, 경제적으로 버거운 현실 속에서도 그들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마도 기초적인 생활비가 적게 들어가고 오래 전부터 있어온 복지제도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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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알고 지내는 많은 고려인들도 야누코비치에 대한 지지 의사를 보냈다. 그것은 구소련시절부터 이어져온 복지정책이 한 이유가 되었다. 필자가 알고 지내는 이랴(64세)라는 고려인 여성은 우크라이나 은행원 초임의 50%에 해당하는 연금을 수령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전보다 줄어든 연금이지만, 과거가 좋았다는 고백을 하는 것을 보면 정말 그들의 과거는 어땠을까, 궁금하고 궁금하다. 하지만 가슴 아프게도 그녀가 받는 연금은 그녀의 지병인 고질적인 담증으로 대부분이 병원비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일에 신경이 쓰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재를 보자면 더욱 더 가슴이 아프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잘사는 부자나라로 알려진 우리 한국의 현실은 복지정책이 시작되자마자 그 정책을 축소지향으로 이끌어가는 듯해서 가슴이 아프다. 시내버스는 우크라이나 대도시는 물론 소도시까지 한국 돈으로 150원에서 250원 이내다. 한국의 전철과도 같은 철로를 달리는 차량의 요금도 150원 전후다. 한국에서 3000원하는 빵이 이곳에서는 400원에서 450원선이다. 그러니 받는 급여가 적어도 생활이 극단적으로 힘들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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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짧은 생각으로 우리나라는 지금 복지정책을 수립하지 못하면 앞으로 더욱 더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든다. 대단한 복지정책을 펴지 못한다 하더라도 도시인들과 대중이 이용하는 공공요금은 최우선적으로 안정시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대규모 공사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그런 대공사를 하는 여력으로 국민 생활개선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직은 바탕이 있는 경제 구조 속에서 그나마 가능한 일인 듯하다. 하지만, 그것을 나날이 갉아먹고 나면, 다가오는 어려울 날은 더더욱 많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나라가 망해도 드넓은 땅, 기름진 옥토는 남지 않는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친다면 진정으로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암담하고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