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박꽃이여, 어서어서 열매 맺어라

  • 김형효
  • 조회 3700
  • 2005.09.05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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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변의 민족 시인들(10) 송미자 시인
   
 
 
길림성 용정시는 우리 민족 문화가 개화(開花)한 본거지이다. 그것은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만 알려진 사실이 아니라, 중국내 교포사회에서도 여전하게 중요시 되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문명 개화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용정사람들은 어느새 소외의 쓴맛을 겪으며 용정에 대한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연변과 우리 사회의 교류가 급속하게 발전되면서 상대적인 소외감을 겪고 있는 것이 용정시에 사는 우리 교포들의 현실이다. 우리의 더 큰 관심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송미자 시인이 바로 용정에서 태어나 용정에서 살고 있는 시인이다. 대개의 교포 작가들이 그러하듯 그도 역시 수필과 산문도 많이 선보이고 있다. 그가 쓴 아래의 시편에서 보여지듯 그는 여전히 눈물 많은 시인인 모양이다.

그가 쓴 수필 박 꽃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혈육의 피,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육친의 정이다. 천리만리 떨어져 있어도, 철조망이며 국경이 가로 놓여도 박꽃은 해마다 피여나고 혈육의 정을 잇는 뉴대로 되고 있다.

하기에 할머니께서는 해마다 박꽃을 피우셨고 언제나 박바가지를 쓰셨다. 조선(북한)에 계시는 큰 어머니도 해마다 박을 심으시면서 남편과의 상봉을 고대하고 있단다.

하얀 전수건을 하얀 머리에 두르시고 꼬부라진 허리도 펴시지 못하시면서 담너머로 강너머로 산너머로 기다림에 지치신 할머니, 오늘은 흩어진 혈육의 정한이 서린 이 자리를 어머니께서 메우며 서 계신다.

하얀 박꽃이여, 어서어서 열매 맺어라.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의 기다림으로 이루어진 숙명의 완성을 위하여, 피맺힌 수난의 력사에 종지부를 찍는 혈육의 만남을 위하여.....,"

위의 박꽃에서 우리는 여전히 현 세기나 지난세기나 할 것없이 우리 한 민족이 숙명적으로 이산의 한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이 결국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땅이라면 만주벌이든 남과 북이든 일본이든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유효한 민족 갈등의 요소이면서 우리가 극복해야할 과제란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그러해서 눈물에 맺힌 시적 정한을 풀어내느라 무던히 애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젊은 시인은 이미 늙은 노인의 눈을 깊이 있게 응시하고 바라보는 처지에 다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눈물이 맺히고 천리 만리 홍수라도 질 정도로 눈물을 쏟아놓고 무지하다할 정도의 큰 화해의 강을 간절하게 염원하면서 눈물을 쏟아낼 그날을 기약하며 박꽃이 피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시인이여, 조금 이제는 조금만 더 참고 서로를 바라보노라면 우리가 염원하던 민족의 대동세상이 오지 않겠습니까? 시인이여. 이제 서로 바라볼 생각은 하는 때이니, 조금 더 참고 기다리며 앞장 서 나가십시다. 슬픈 시인이여!


노인의 눈(眼)

송미자

기인 긴
그리움의 터널
기인 긴
서러움의 터널
그 눈속(眼里)을 다시
걸어 들어간다해도
장-장
반백년이 걸리리


눈물

고목의 눈에서 흐르는 것은
뼈가 녹은 뼈물이요
피가 려과된 피물이리
반 백년 삭여낸
마을의 정수(淨水)로
사책(史策)에 얹힌
먼지 씻어낼 듯


홍수

칠천만의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에
반도가 잠긴다
태평양 수위가 오른다

그리움이 터진
서러움이 터진
정감의 홍수여

지심(地心)이 흐느끼는가
이글거리는 용암같은
뜨거운 피 걸죽한 피

쏴-쏴
마지막 방파제를 터친다

피를 속일수 없더라
다섯 번 변한 강산이라도
피는 변할 수 없더라 
 
 
 
송미자(宋美子):
중국 길림성 용정시 개산툰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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