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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 시인 석화의 작품세계/임헌영

  • 김영춘
  • 조회 10526
  • 회원시평
  • 2007.01.29 13:20
중국조선족 시인 석화의 작품세계


                          *임헌영



임헌영(任軒永) : 문학평론가.

◆ KBS시청자위원회 위원장 역임.

◆ 현재 중앙대 국문과 겸임교수.

◆ 민족문제연구소소장.

◆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

◆ <<책과 인생>>주간.

◆ 20여 저서, 2000여 논문, 수필, 칼럼, 평론 발표.


< 1 >

한 사람의 시인을 평가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한 권의 시집만으로는 지극히 도식적인 형식비평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형식주의 비평은 작가의 사상이나 감정, 작품에 다루어진 사회상 혹은 그것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 등을 세밀히 분석하고 평가하는 역사주의 비평과는 달리 작품 자체의 형식적인 요건들, 작품 각 부분들의 배열관계 및 전체와의 관계 등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일찍이 엘리어트는 "시란 시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닌 시 자체"라고 하여 시를 그 무엇으로부터도 독립된 하나의 자율적 구조체로 보았던 형식주의자들의 견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비평가가 작가를 버리고 작품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결국 문학작품의 자리를 작가 쪽이 아니라 비평가, 혹은 독자 쪽에 둔다는 것으로 이 경우 비평에서 예상되는 결과는 그들이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주관주의, 가치의 아나키즘 등에 오히려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돌파구 가운데 하나는 작품 밖에서 유용한 자료를 찾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상의 시정이 될 것이다. 개인이 사용하는 언어나 그것을 끌어들이는 감정의 이면에는 반드시 그 사람의 삶을 말해주는 필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조선족 3세인 시인 <석화>는 1958년 중국 룡정 출신으로 다른 조선족들보다 비교적 넉넉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1982년 연변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뒤, 월간 연변문학 편집을 맡게 된다. 등단과 함께 <천지문학상>, <두만강여울소리시인상>, <진달래문학상>, <해란강문학상>, <장백산문학상>, <아리랑문학상>, <압록강문학상>, <도라지문학상> 등 연변자치 주, 성, 국가 급의 문학상과 문예상을 50여 회 수상함으로써 연변 조선족 사회에서는 일찌감치 자리 매김을 확실히 했다고 할 수 있다. 1989년 시집 <나의 고백>, 1993년 시집 <꽃의 의미> 등을 간행했으며 본 시집 <세월의 귀>가 <지용문학상>에 당선됨으로써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 조선족 사회의 대들보 시인이 된 시인 <석화>의 시를 동시대를 살고 있으며, 같이 시를 쓰는 입장이라고는 하나 태어나고 자란 곳, 그리고 삶의 뿌리가 다른 그가 살고 있는 연변이라는 지역 속에서 이해의 첫 문을 열며 읽어보기로 한다.


< 2 >


우선 그의 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언어의 평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연변이라는 사회가 주는 낙후된 풍경이 그의 시에서는 거부감 없이 나타난다. 발표자가 2년 전 연변에 갔을 때 우선 느낀 점은 시각적으로 20여 년 전의 도시 풍경을 영화 세트장에서 보는 듯한 발달이전의 소도시 모습이었다. 낮은 건물에 비해 지나치게 크게 달린 간판과 불균형의 글씨체, 그 속을 오가는 빨간 택시들, 택시 수보다 더 많은 자전거들, 그리고 40도에 가까운 폭염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상의를 벗어 던진 러닝 차림의 남자들이 나른한 표정으로 길가를 걸어 다니던 모습.......

쉽게 촌스럽다고 말해버릴 수만은 없는 개화 이전의 풍경 속에서 같은 민족이라고는 하나 우린 서로에게 이방인이었다. 언어는 시대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인 <석화>의 시가 가지는 언어의 평이성과 또 나름대로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기법의 시도는 연변이라는 사회의 특수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선 제대로 읽을 수 없으며, 한 권의 시집만으로는 긍정이 불가능한 그의 화려한 문학이력 역시 연변과 조선족이라는 두 개의 화두를 풀고서야 동조할 수 있다.

문학상이 많다는 건 각 나라마다의 특수한 사정이랄 수 있겠으나 아직 사십 중반도 되지 않은 시인이 50여 회나 상을 수상했다는 자체에서 나는 교포들의 지독한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상이라는 것은 축제의 행사이고, 거기에 모인 사람들을 일시적이나마 하나로 묶는 의미가 있으니 말이다. 시인 <석화>가 수상한 상의 이름이 모두 고국인 한국의 지명이나 산하를 딴 것이라는 것에서도 그들, 조선족 시인들이 가지는 향수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본 시집 <세월 의 귀>를 읽어가며 나는 정지용이란 대 시인의 이름을 건 상을 수상한 작품으로서 솔직히 미흡한 부분이 너무 많아 이런 나의 생각의 오류를 잡기 위해서라도 다른 연변 조선족 시인들의 시를 같이 읽어보기로 했다. 월간<천지>에서 발행되고 있는 연변문학 99년 1년 분량이 연변으로부터 공수되어 왔고, 그것을 읽어나가며 - 절대로 그들 연변 조선족 시인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 시인 석화의 시가 그들 사회에서 가지는 가치와 위상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 긍정할 수 있었다.

그들의 시는 한국 시 고유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정한에 뿌리한 서정성에 스토리 위주의 시가 일색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깊이 있는 정신의 사유라든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와 수용의 태세보다는 일상, 그것도 과거에 대한 회상이 주조를 이루고 자연현상 하나에도 억지의미를 돌출해 내려는 무리한 감정이입으로 인해 영탄조의 시가 일색을 이루고 있었다. 물론 그 중엔 연변 문학 99년 7월호에 발표된 황춘옥의 <잎>이라든가 같은 해 1월호에 발표된 <리중>의 <소멸>같이 현대시가 지향해야할 모범적인 시정신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있었다. 이런 여러 정황들을 이해하고 나서야 나는 시인 <석화>의 시를 형식주의가 아닌 미력하나마 역사 전기적인 입장에서 그의 수상경력과 함께 그의 시가 주는 울림을 동포의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 3 >


그의 시는 전편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포 3세라고는 하나 고국을 떠나 남의 나라에 살고 있는 이방인의 향수가 시의 주조를 이룬다. <도문을 가며 3>이라는 부제가 붙여진 <피안>이라는 시를 보면 그런 그의 향수의식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기실 모두가 저쪽에서 건너온 것이지만 지금은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엷은 안개가 가물가물 피어오르는 한 줄기 강물, 먼

서쪽나라의 어느 하늘밑을 흘러가는 요단강처럼 우

리는 누구나가 다 한줄기 강물을 갖고 있다



피안 혹은 대안이라 부르는 저쪽켠의 강기슭 아슴푸레

바라다 보이는 저쪽 기슭으로 늘 건너가 보고 싶지

만 피와 살과 뼈가 너무 무겁다



기실 모두가 다 다시 저쪽으로 건너갈 것이지만 지금

은 그냥 그저 건너가 보고 싶은 생각뿐이다



지금 저쪽 기슭에서 이쪽을 건너다보고 계실 어느

분도 이와 같은 시를 쓰고 있을까


-피안-


피안이란 불교에서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일, 또는 그 경지를 말한다. 시인은 그곳에 고국을 두고 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아니지만 이민족이 가질 수밖에 없는 마음의 정처 없음이 이 시에서는 열반의 세계를 꿈꾸듯 고국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3연에서 <저쪽 기슭으로 늘 건너가 보고 싶지만/ 피와 살과 뼈가 너무 무겁다>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것은 이미 타국에서 정착된 시인의 삶의 뿌리가 깊어 고국이 그리워도 그곳으로 옮겨 심을 수 없다는 한탄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비단 시인만의 한탄은 아닐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남의 나라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 교포들이라면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삶의 무대가 되고 있는 현재의 거주지 사이에서의 이방인적인 방황은 공통분모가 아니겠는가? 시인 자신을 형상화한 시로는 <천지꽃>이라는 시가 눈에 띈다. 센티멘털한 서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 이 시는 연변 조선족 시인들의 공통적인 시풍이 그대로 배어있다.



가는 길 길손이라

갈길 바빠도



다시 돌아 눈길 주며

외우는 이름



어느 날 내 이 허물

다 벗어놓고



너처럼 피어나랴

이 천지간에


-천지꽃 중에서-


그러나 시인 석화는 다른 연변 조선족 시인들에 비해 다채로운 시작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유리컵과 사랑학 개론>이라든가 <작품>연작시가 그것인데, 연변문학에 수록된 다른 시인들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참신성과 기발한 소재채택에서 자본주의로 가고 있는 연변의 문화를 체함 없이 소화해내고 있다. 바로 여기에 연변 조선족 사회에서 그의 시가 주목받는 이유가 있다. 예술이란 그 분야를 막론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도전정신과 그것을 내 것으로 하려는 의지를 필요로 한다. 쉽게 서정이라 불리는 자칫 무력한 시풍에서 벗어나 사물을 기호화하고 끊임없이 뻗어 가는 정신세계를 시로 끌어들이려는 그의 노력은 그래서 귀한 것이다.



포도주

오렌지주스

혹은 냉커피

내안의 너

그 이름으로

그는 다시 명명된다.


-유리컵과 사랑학개론- 중에서




철근 + 시멘트 + 타일 + ...... + 땅 = 벽체

벽체 * 유리 * 페인트 * ...... * 하늘 = 빌딩


-작품36(가감승제와 방정식)- 중에서




1,2,3,4,5,6,7,8,9,10이 차례로 나와서

<너는 수자다>라고 한다

나는 <아니다>라고 했다

<22401580704061이 네가 아니냐>라고 한다

<0433-256-2191이 네가 아니냐>라고 한다



-작품39(협박)- 중에서




자기가 나비인지 나비가 자기인지 누구는 모르겠다

고 했다지만 나야말로 내가 지금 도대체 정말 무엇

인지 모르겠다

필경 전생에 걸상이나 전화기나 유리창이나 그러한

것들은 아니었겠는데 마주 보이는 것들은 모두가 딱

딱하고 빤질빤질하고 윤기 도는 것들뿐이다

개나 돼지나 그와 같은 것들은 하나도 없다.



-작품91(탈출)- 중에서



위의 시들에서는 시인의 언어적 탐구가 외적 세계에 대한 응전의 방식과 연관지어보려는 노력과 맥을 같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한국에 사는 우리가 읽어도 전혀 이질감이나 시적 성취도 면에서 떨어지지 않음을 위의 시에서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모더니즘적인 시적 세련됨은 물론이요, 시인의 사물을 바라보는 엄정한 내부의 시선이 항상적으로 유지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집 전편을 논한다면 인식의 치열함이랄까 아직 완전히 자 기 것이 되지 못한 신문물에 대한 낯설음 또한 배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상으로 간략하게나마 중국조선족 시인 <석화>의 시를 살펴보았다. 시를 쓰는 것도 어렵지만 남의 시를 바르게 읽어내는 일이야말로 책임이 부과된 만큼의 어려움을 동반하는 힘든 작업이었음을 글을 끝내며 밝힌다. 오독이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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