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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의문사! 내 친구 선일이

  • 김형효
  • 조회 3418
  • 2005.09.05 20:40
- 친구의 죽음을 시로 쓸 수 밖에, 다른 것은 알 수가 없어요.
 


***아래의 시는 나의 어릴 적 친구를 생각하며 쓴 시(詩)입니다. 이미 저의 첫 시집에 발표된 부분이지만, 80년 5월, 그후 3년이 지난 그 자리에도 광주는 적막강산 말없는 침묵을 강요당했었습니다. 그때 광주 시외버스터미날에서 전 친구를 보고도 편안하게 만날 수 없을 만큼 위협적인 분위기를 절감했고 친구 또한 그런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터미날에서의 만남을 뒤로 한 채, 시의 구절에서 처럼 눈인사 목인사만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나의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그가 죽음으로 시외버스에서 내린 이야기를 어머니를 통해 들었습니다. 청천벽력이란, 이런 실감인가? 아! 어찌 이런 일이,

지금에야 밝히지만, 그 친구의 이름은 김선경이라고 합니다. 고향분들이 이 시를 읽고 아픔을 되새김질 할 것이 걱정되어 저 혼자서 저만의 코드로 친구 선경이를 생각하며 눈물로 절 다독이느라, 썼던 시입니다.

장시 <대월 가는 길, 10>

이방의 타향을 내려두고 들어선
신작로 어귀에서
선일이의 죽음을 맞았다.

선일이와 나는 한패였다.
그런 선일이는 죽었다.
모두가 의분했던 입 하나를 나누었던 그때
선일이도 운호도 규식이도
한 입을 나누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삼년 후 이십칠 일
시외버스에 몸 실었던 선일이는
광주서석고등학교 2학년의
학생부군신위로 종적을 감추었다.
지상만가를 남겨두고
가버린 친구에게
나는 더 이상 할 말도 없다.

나는 이십오 일
광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선일이를 만났다.
길거리에 가면을 쓴 진압대원들이
구석구석을 요란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의분의 입 하나로 살아났던
80년 5월도 잊은 채
나는 그대로 주눅이 들고
친구와의 만남도 잠시
한 잔의 찻잔을 나누지도 못하고
의례적인 목 인사와 수 인사로 작별을 고했다.

그렇게 가버린
선일이와 한패로 지냈던
진한 추억의 그림자는
황혼 녘의 꽃씨로 떨어지며
고향 마을 굴뚝연기로 산화하고 있었다.
운호도 규식이도 아무 말 못하고
선일이 아버지 종천 아제는 눈물만 흘리시고
아무 말 없이 입을 닫았다.

광주 유학 3년째의 날벼락을
어떻게 해명하랴
시외버스 안 2시간 30분 고향 길에서
그대로 기대고 죽어버린 선일이
무엇이 선일이를 죽였는가?

아직 누구도 해명 못하고
그저 종천아제는 "부검은 말라!" 하신다.
토요일 오후 3시의 주검 앞에
아무런 해명을 못하고
우리는 선일이와 작별했다.

어쩌면 황천길가에 질서 잡겠다고
먼저 간 길이겠거니
무질서한 지상의 만가로
두고두고 애통절통의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 어머니 친구들의 삶을
두고 못 본 선일이의 출구였겠거니
그러나 주검의 비밀 알 것 같은
친구들은 모든 해석들 상간(相間)에서 두리번대며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
철가면을 쓴 진압봉의 위세와
아버지의 근엄 앞에
강요된 침묵은 눈물을 쏟고 있다.

선일아! 왜 네가 쥐약을 마시냐!
난 못 믿지.
넌 나와 한패였고
넌 극렬분자도 아니었지.
그렇다고 센티멘탈리즘에 빠질 친구도 아니었지.
그렇지 않았지. 분명

넌 나와 한패였고
어린 시절 잣치기를 할 때도
기마전을 하며 잿등과 운동장을 휘돌 때도
너는 차분하고 진실한 친구였지.
그리고 남 위할 줄 알았지.
그런 네가 왜 죽어야 했나.
분명 너의 죽음은 쌍수의 죽음과는 다른 거야.

질서를 잡던
시대의 비겁 앞에
너의 영혼도 앗기고
우리의 신들도 잠들었다.
모든 신들이 잠 깨고
모든 사람들이 잠 깼을 때
너와 나는 평화한 웃음으로
광장의 날개를 꺾고
지나가는 무력을 보았지.
그리고 참지 못한
너의 어깨 죽지 잘려 나가고
나는 살아 너를 보았다.

훗날의 기약 앞에
머물렀던 너의 영혼
내 기억의 편편마다
뿌리 박혀 내리고 있다.

그날!
그날의 주검은 의문사!
의문의 주검 앞에 놓인 버스
살아서 탄 버스에서
죽음으로 내린 선일아! 안녕!

선일이, 규식이, 운호, 쌍수
우리는 단짝 친구였다.
늘상 함께 하던 유년의 동산에서
함께 나누던 정들이 낮과 밤을 얘기하고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자매 다음으로
떡 하나 밥 한 끼를 나누었다.
함께 풀베개를 나누고
함께 꼴망태를 졌던 친구들
우리는 대월산 산머루와 다래 함께 따고
산토끼 몰이 함께 하며 대월산 오르고
칡뿌리 함께 나누던 친구였다.
옆마을 쟁갱이 아이들과의 시합에도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팀을 이루었고
투수 포수 미드필더 센타포드를 자처하며
하루도 헤어진 적이 없는 친구였다.
등·하교길 백사장과 회충에 시달리던 친구가
지쳐 걷지 못하면 우린 서로 어깨를 빌려가며
친구를 업고 책보를 메고 백사장을 걸었다.
보리개떡을 함께 나누었고
학교에서 나누어준 보리 빵도 아껴 함께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
병들어 죽어버린 쌍수
그리고 5년 후,
선일이의 주검 앞에 우리는 무어라 못한다.

우리는 "학진"이에게
대항하기 위해 한패가 되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었다.

이렇게,
죽어버린 육신과 교우(交友)하게 되는 지금
대월산 정금산 산자락에 걸려 있는
햇무리만 보아도
친구 친구들의 음성이 그립다.
친구야! 안녕!

***친구야! 나는 지금 널 생각하며 눈물이 난다.
도대체 왜 우리가 이렇게 헤어져서 알알볼 수도 없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의 갈림 속에 살아 있고 죽어 있는 지 알 길이 없구나! 훗날 만남의 그 날에 깊은 주름을 서로 펼 수잇기를 소원하며, 네가 길을 간 그날도 잊은 친구가 너에게 인사를 대신한다. 친구야! 부디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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