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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쥬꾸는 우리 말로 새로운 숙박지 쯤 될까?

  • 김형효
  • 조회 3944
  • 2005.09.20 08:45
아침 일찍 오늘도 이방의 길을 걷는다.
8시 40분 집을 나선 나는 기타토다 역에 9시에 도착했다.
곧 티켓을 끊고 1번 라인에서 신숙(新宿)=신쥬꾸 역을 향하는 기차를 탔다.
신쥬꾸는 교통의 요지였다.

나는 역 안에서 길을 물어 동구 출구로 나왔으나
더 이상 코리아 타운을 찾는 것은 어려웠다.

신쥬꾸에서 우리는 일상적으로 코리아타운이라 하지만,
일본 현지인들은 그렇게 칭하지는 않는 듯하다.
나는 그곳에서 상점 점원에게 다가가
코리아 타운 도찌라데스까?
코리아 타운이 어느쪽입니까? 라고 제법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했다.
직원은 알아 듣는다는 듯 설명을 하려다 다른 직원에게 묻는다.
어렵게 방향을 잡았다 싶은 데 몇 걸음 씩 옮겨도 낯설기만 하다.
하는 수 없이 평소 알고 지내던 한국인 일본 유학생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신오꾸보라는 곳을 알려주었고 나는 그가 안내해준 길을 따라 걷다가
벼룩시장이라는 생활정보지를 보고서 제대로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오꾸보 병원을 지나 몇걸음씩 옮겨가며
하나 둘 우리말 간판이 나타나서
이곳이 말로만 듣던 코리아 타운이구나 생각했다.
 
이제부터 나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직업을 찾아 나서는 전쟁이다.
낯설지만 익숙한 듯 하고 익숙한 듯 하지만 낯설기만 하고
그렇게 애매모호한 상황이 설정된 나의 처지
아니 그런 애매모호한 상황에 나를 집어넣고 나를 보니
참으로 흥미롭기도 하고 내가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또 다른 일면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지금 나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나는 한참 동안 길을 걷다가 다리를 쉬어 갈 곳을 찾았다.
마침 낙원떡집이라는 간판 뒷켠에 소공원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벼륙시장을 이 잡듯 뒤졌다.

나는 한달음에 이곳 저곳 메모지에 옮겨 적고
전화를 하기 위해 공중전화 부스를 찾았다.

몇 군데 찾아가서 차도 한 잔 얻어 마시고 이야기도 조금씩 나누어 보았다.
마땅한 방안이 없는 곳이다는 생각, 네팔인들이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은
너무나도 쉬울 직장 찾는 일이 너무나 어려웠다.
그것은 직장이라기 보다는 죽으로 오는 사람들이
막차를 타고 저승으로 가는 것처럼
극단적인 선택만을 강요하는 그런 직업들이었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나는 몇군데 이어서 전화를 하고 만나보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정상적 방법의 직업 소개소는 드물었다.
동족이 동족의 피를 빨아 밥을 말아 먹는 식이란 생각으로
가슴 한 쪽이 아려 왔다.

하지만 어쩌랴.
나 또한 그 절박한 구렁을 찾아 들어온 것을
나는 그들과 함께 그런 방식에 젖어 볼 마음을 갖고
저승으로 가는 막차에 오르는 심정이 어쩐지는 모르지만,
맹목의 경험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나만 고상하다 하고서는
척박한 현실을 개선시킬 수 없다는 생각으로 부딪히기로 한 것이다.

어려웠다.
정확히 저녁 7시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뿌자는 출근 준비를 마쳐가고 있었다.

잠시 후 뿌자는 야근을 하기 위해 출근 길을 재촉했고
비스느 디디와 솜 디디가 잇따라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얼굴 익히기에 들어갔다.

오늘의 일정을 통해 일본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일단 한자어로 된 언어에 낯설음이 없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읽기는 되는 점,
듣기는 더 어렵지만, 책을 보며 그리고 10여년 전 독학으로
조금 공부한 일어가 바탕이 되어 길을 묻거나 무엇을 사거나
혹은 스미마셍과 하이 소오데스란 말로 징검다리를 삼아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 일본인들은 적어도 스미마셍과
하이, 그리고 아리가또 고자이마시따. 란 말은 입에 달고 사는 듯하다.
그들에게서 적나라하게 배워야 할 것 중 하나는 그런 습관인 것 같다.

하지만 신쥬꾸는 죽음의 도시라 생각된다.
정상적 사고를 갖고 살아가기에 힘든 종말적 도시인 듯하다.
만약 이런 나의 발언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그곳에 사는 그들이 너무나도 태연하고 평범한 일상을 산다는 것이 문제다. 
그 태연한 평범, 냉혹하리만치 차분한 일상에 대해
냉소적 도발로 밖에 비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신쥬꾸는 신이 죽인 땅과 같다는 것이
내가 처음 본 신쥬꾸에 대한 감회다.

이런 저런 복잡한 사색의 겹장을 붙이며
나는 저녁 늦은 시간 밀런과 컴퓨터로 몇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
내일의 여행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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