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일동포 시인(3) 송민호 시인
재일교포 시인들이 한결같이 보여준다. 그들에게 시란 자기 정체성의 확인이며 여기 자기 정체성이란 역사적 진실 안에서 확인되는 자신의 실존에 맞닿아 잇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언제 어느 곳을 가더라도 자신의 존재적 근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시인의 노래 속에서 항상 새롭게 용틀임하며 자라난다는 것을.
바로 내 존재가 어디서부터 기인하고 있는지 자신의 삶의 현재적 조건과 미래적 전망에도 자신의 부모가 겪어온 과거라는 틀이 자신의 미래까지를 규정하고 살아가게 한다는 사실을 벗어날 수 없음을 자각한다. 그래서 시를 포괄한 문학에서 사회적 역사적 진실이 절대적으로 도외시 될 수 없는 진실이란 사실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조국을 떠난 몸이 사는 만주나 해외의 어느 곳에서도 그 정신적 줄기가 하나로 통하는 것은 이러한 진실을 증거하는 일일 것이다.
아래의 시들에 해설을 단 사람은 일본의 사가와 아키 시인이다. 그는 현재 동경미술사에 근무하고 있는 47세의 일본 문학계의 중견 여성시인이다. 그리고 이 시편들의 번역은 와세다대학에 교수로 재직중인 김응교 시인이 수고해 주셨다.
부룩클린 다리
송민호
그 흑인이나 그 히스패틱에게도 아이들은 있고
이 아시아 사람에게도 다리는 있다.
어두워지기 시작한 B전철의 치과의사와 같은 안식도
부룩클린의 황혼에 실어
부라이앤드 공원으로 향하는 먼 띠를 풀며
그리고
그 떨어지기 어려운
개인적인 절규
개인적인 비판
꽃잎을 식별하는 것 같은 촐랑이는 여기에 없고
강을 내려가 사진을 찍고 자동차를 탄다
손을 떠난 컵이 순간적으로
얼음조각으로 빛나는 파괴의 기분으로
번갈아가며 발을 꼬아
조각을 둘러보고
광선을
쪼여받는 것 같은, 받고 있지 않은듯한
깊은 잔디의 붉은빛에 대항하는
선의
그림
의 그림들
을 내팽겨치는 기세로
전철은 배는 댐 속에 가라앉고
또한 떠오르고
본선(本線)에 본류(本流)에 되돌아온다.
어깨가 퉁겨지면서
목격을 치면서
치유하는 것도 아니고
부룩클린의 다리를
가는 이 황색 다리들.
<작품해설>
아메리카에 체류했던 적이 있는 작가는, 자신의 조국과 일본이라고 하는 테마로서가 아니라, 다인종(多人種) 속에서 한국인이라고 하는 의식으로 시를 쓰고 있는데, 그런 시각이 매우 새롭습니다. 시집 『부룩클린』에서는, 자신을 아시아 사람으로서 의식하는 것이 많은데, 더 나아가 세계적인 시야를 갖고 있습니다.
처우(處遇)
왼쪽으로 꺾인 버릇이 있는 맹목적인 일본어에 충돌하는 일도 없는 채로 검은 머리를 계속 오인하면서 적출(摘出)되고 조망되고 있는 노란 피부의 팬은 붓끝에서 혐오하는 청결한 짧은 복도를 청소시키고 있다. 가는 입자가 늘어선 피부의 불균등에, 그렇군, 응, 하지만, 이라는 글씨로 결국 칠해진, 과장된 그라프 커브는 달린다 오른쪽 창문에서는 마른 절조(節操)가 없는, 사심(邪心), 내려서 떨어진 유사한 광경이 각각 개찰(改札)된다. 부룩클린 뉴욕 아픔만이 추월한다 확대경의 포켓에서 요철(凹凸)로 그대로 묘사된다. 색체의 선택은 피부색 종류가 아니다. 투명하게 전사(轉寫)되지 않는 세제(洗劑)의 요란함. 수양버들의 유령은 소화기를 예리하게 발사한다. 빠른 말로 두 개의 다리를 소멸할 수 없다 급속한 엘리베이터로 약식(略式)으로 만들어진 지도를 띠고 웃음의 진화행진(進化行進)에 가슴을 펴도 이상한 방언으로 수직으로 흑판은 늘어선다. 예쁜 감정의 근거(根據)를 공유하지 않는다 그 다음에 있는 화려함에 가까이 가려면 호출음이 필요해진다 이중(二重)으로 된 장갑이 바르고 이중의 입술이 발칙한 것 같이 속도나 길이를 관수(關數)로 했던 노란 피부의 팬은 예쁜 청소를 마치지 않고 소속(所屬)된 대로 무관심의 벌(罰)을 받으려고 하고 있다.
<작품해설>
이 시인의 특징은 단어를 자유롭게 쓴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인 의미의 연결은 거부하고, 이질적인 언어를 충돌시켜, 새로운 언어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문법으로도, 일본어 문법을 일부러 비켜가고 있습니다.
야콥슨의 유언
그거 틀리다고 생각한다
단식의
동구(東歐)의
신학(神學)교의 선생처럼
무류성(無謬性)이 어디서라도
모순된
국기(國旗) 중에서
아주 가는 음독(音讀)을 한다
그거 틀린다고 생각한다
일본어에 혹은 소곤소곤
조롱받고 있는
앓고 있는 1994년의
102년전과 16년전
거기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매우 잘 알려져 있지만
그거 틀리다고 생각한다
자기표출(自己表出)이라든지
평행성의 이론이라든지
음독(音讀)의 그리고 주의해서 듣는 귀의
이 높은 건물에 있는 레스트랑에서는
서로 다른 터어키어도, 가까운 러이사어도
주변인물의 열을 흩으려트리지 않는다
굴신운동(屈伸運動)의
자색(紫色)의 고귀한 입술밖에
그것들을
형적(形迹)으로 덧그릴 수 없다
늦게 온 자의
초조함과 방자함의 기분으로
일본의 전통북을 매우 빠르게 두들겨도
문자의 두루마리를 달팽이처럼 읽어도
일본의 간호원은 신비적으로 백의(白衣)로
나고야(名古屋)의 지하철은 나고야 사투리였다
정확한 일본어의 대표와 같은
여기는
우리들의 뜻이지만
그 설명을 가능하게 하는 귀는
지금 여기서 부터
그것 틀리다
신발이 익숙치 않은
푹 들어간 신발의 임산부에게
태교(胎敎)에
활당된다.
<작품해설>
이 시는 제 2시집인 '야콥슨의 유서'에 실려 있습니다. 언어의 실험에 의한 언어의 완전한 사용을 의도하며 써진 작품이다. 로만 야콥슨은 1896년에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언어학자입니다. 현재 일본의 유행어와 나고야 지역의 사투리, 프랑스의 소쉬르의 최신 언어론과 언어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사고가 넘치는 시집입니다.
송민호(宋敏鎬)
1963년 나고야(名古屋)시에서 태어나다.
1989년 나고야 대학 의학부를 졸업하다.
1996년 시집 『부룩클린』으로 나카하라 츄야(中原中也)수상하다. (나카하라 츄야는 일본의 근대시사에서 중요한 서정시인이다. 이 상은 탁월한 젊은 시인에게 수여된다)
현재, 심장외과 의사.
재일교포 시인들이 한결같이 보여준다. 그들에게 시란 자기 정체성의 확인이며 여기 자기 정체성이란 역사적 진실 안에서 확인되는 자신의 실존에 맞닿아 잇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언제 어느 곳을 가더라도 자신의 존재적 근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시인의 노래 속에서 항상 새롭게 용틀임하며 자라난다는 것을.
바로 내 존재가 어디서부터 기인하고 있는지 자신의 삶의 현재적 조건과 미래적 전망에도 자신의 부모가 겪어온 과거라는 틀이 자신의 미래까지를 규정하고 살아가게 한다는 사실을 벗어날 수 없음을 자각한다. 그래서 시를 포괄한 문학에서 사회적 역사적 진실이 절대적으로 도외시 될 수 없는 진실이란 사실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조국을 떠난 몸이 사는 만주나 해외의 어느 곳에서도 그 정신적 줄기가 하나로 통하는 것은 이러한 진실을 증거하는 일일 것이다.
아래의 시들에 해설을 단 사람은 일본의 사가와 아키 시인이다. 그는 현재 동경미술사에 근무하고 있는 47세의 일본 문학계의 중견 여성시인이다. 그리고 이 시편들의 번역은 와세다대학에 교수로 재직중인 김응교 시인이 수고해 주셨다.
부룩클린 다리
송민호
그 흑인이나 그 히스패틱에게도 아이들은 있고
이 아시아 사람에게도 다리는 있다.
어두워지기 시작한 B전철의 치과의사와 같은 안식도
부룩클린의 황혼에 실어
부라이앤드 공원으로 향하는 먼 띠를 풀며
그리고
그 떨어지기 어려운
개인적인 절규
개인적인 비판
꽃잎을 식별하는 것 같은 촐랑이는 여기에 없고
강을 내려가 사진을 찍고 자동차를 탄다
손을 떠난 컵이 순간적으로
얼음조각으로 빛나는 파괴의 기분으로
번갈아가며 발을 꼬아
조각을 둘러보고
광선을
쪼여받는 것 같은, 받고 있지 않은듯한
깊은 잔디의 붉은빛에 대항하는
선의
그림
의 그림들
을 내팽겨치는 기세로
전철은 배는 댐 속에 가라앉고
또한 떠오르고
본선(本線)에 본류(本流)에 되돌아온다.
어깨가 퉁겨지면서
목격을 치면서
치유하는 것도 아니고
부룩클린의 다리를
가는 이 황색 다리들.
<작품해설>
아메리카에 체류했던 적이 있는 작가는, 자신의 조국과 일본이라고 하는 테마로서가 아니라, 다인종(多人種) 속에서 한국인이라고 하는 의식으로 시를 쓰고 있는데, 그런 시각이 매우 새롭습니다. 시집 『부룩클린』에서는, 자신을 아시아 사람으로서 의식하는 것이 많은데, 더 나아가 세계적인 시야를 갖고 있습니다.
처우(處遇)
왼쪽으로 꺾인 버릇이 있는 맹목적인 일본어에 충돌하는 일도 없는 채로 검은 머리를 계속 오인하면서 적출(摘出)되고 조망되고 있는 노란 피부의 팬은 붓끝에서 혐오하는 청결한 짧은 복도를 청소시키고 있다. 가는 입자가 늘어선 피부의 불균등에, 그렇군, 응, 하지만, 이라는 글씨로 결국 칠해진, 과장된 그라프 커브는 달린다 오른쪽 창문에서는 마른 절조(節操)가 없는, 사심(邪心), 내려서 떨어진 유사한 광경이 각각 개찰(改札)된다. 부룩클린 뉴욕 아픔만이 추월한다 확대경의 포켓에서 요철(凹凸)로 그대로 묘사된다. 색체의 선택은 피부색 종류가 아니다. 투명하게 전사(轉寫)되지 않는 세제(洗劑)의 요란함. 수양버들의 유령은 소화기를 예리하게 발사한다. 빠른 말로 두 개의 다리를 소멸할 수 없다 급속한 엘리베이터로 약식(略式)으로 만들어진 지도를 띠고 웃음의 진화행진(進化行進)에 가슴을 펴도 이상한 방언으로 수직으로 흑판은 늘어선다. 예쁜 감정의 근거(根據)를 공유하지 않는다 그 다음에 있는 화려함에 가까이 가려면 호출음이 필요해진다 이중(二重)으로 된 장갑이 바르고 이중의 입술이 발칙한 것 같이 속도나 길이를 관수(關數)로 했던 노란 피부의 팬은 예쁜 청소를 마치지 않고 소속(所屬)된 대로 무관심의 벌(罰)을 받으려고 하고 있다.
<작품해설>
이 시인의 특징은 단어를 자유롭게 쓴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인 의미의 연결은 거부하고, 이질적인 언어를 충돌시켜, 새로운 언어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문법으로도, 일본어 문법을 일부러 비켜가고 있습니다.
야콥슨의 유언
그거 틀리다고 생각한다
단식의
동구(東歐)의
신학(神學)교의 선생처럼
무류성(無謬性)이 어디서라도
모순된
국기(國旗) 중에서
아주 가는 음독(音讀)을 한다
그거 틀린다고 생각한다
일본어에 혹은 소곤소곤
조롱받고 있는
앓고 있는 1994년의
102년전과 16년전
거기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매우 잘 알려져 있지만
그거 틀리다고 생각한다
자기표출(自己表出)이라든지
평행성의 이론이라든지
음독(音讀)의 그리고 주의해서 듣는 귀의
이 높은 건물에 있는 레스트랑에서는
서로 다른 터어키어도, 가까운 러이사어도
주변인물의 열을 흩으려트리지 않는다
굴신운동(屈伸運動)의
자색(紫色)의 고귀한 입술밖에
그것들을
형적(形迹)으로 덧그릴 수 없다
늦게 온 자의
초조함과 방자함의 기분으로
일본의 전통북을 매우 빠르게 두들겨도
문자의 두루마리를 달팽이처럼 읽어도
일본의 간호원은 신비적으로 백의(白衣)로
나고야(名古屋)의 지하철은 나고야 사투리였다
정확한 일본어의 대표와 같은
여기는
우리들의 뜻이지만
그 설명을 가능하게 하는 귀는
지금 여기서 부터
그것 틀리다
신발이 익숙치 않은
푹 들어간 신발의 임산부에게
태교(胎敎)에
활당된다.
<작품해설>
이 시는 제 2시집인 '야콥슨의 유서'에 실려 있습니다. 언어의 실험에 의한 언어의 완전한 사용을 의도하며 써진 작품이다. 로만 야콥슨은 1896년에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언어학자입니다. 현재 일본의 유행어와 나고야 지역의 사투리, 프랑스의 소쉬르의 최신 언어론과 언어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사고가 넘치는 시집입니다.
송민호(宋敏鎬)
1963년 나고야(名古屋)시에서 태어나다.
1989년 나고야 대학 의학부를 졸업하다.
1996년 시집 『부룩클린』으로 나카하라 츄야(中原中也)수상하다. (나카하라 츄야는 일본의 근대시사에서 중요한 서정시인이다. 이 상은 탁월한 젊은 시인에게 수여된다)
현재, 심장외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