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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탕한 도시, 서울 거리를 사냥꾼처럼 휘돌다.

  • 김형효
  • 조회 6689
  • 2006.01.12 06:58
오늘 맨 먼저 기억 나는 분은 성동경찰서 앞에서 차에 오른 손님이다.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손님은 몹시 긴장하고 떨리는 음성이었다.

재수없다는 첫 말씀이다.
분명 내게 한 말은 아니어서 무슨 일 있으신가 여쭈었다.
6개월 전에 구입한 화물차에 불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찰서 조사받고 나오는 길이란다.
2000만원은 들여서 샀는데 참 어찌해야할지 허탈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서울숲 근처의 건영아파트까지 가시기로 하고
차안에서 연신 이곳 저곳 전화를 하신다.
틈틈이 한 숨을 쉬며 내게 구원의 말을 기대하며 말은 건넨다.

나는 아무런 답을 못하고 혹시 차체 결함이 아닐까요?
6개월 정도된 차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면
차체결함일 가능성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자차 보험을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6개월 전이라면
의무적으로 자차 가입금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일러주었다.
내가 아는 바로 자동차보험업법이 1년전쯤 바뀌어서
자차보험에 의무가입금이 차종별로 다르게 적용되고 있음을 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일러주었다.

그리고 안절부절 하다가 이야기를 마치고 목적지에 도착하기전
이 손님에게 위로의 방법이 무언가 고민하다 택시비를 받지 말까?
고민하다 목적지에 도착했고 택시요금은 5700원이 나왔다.
그런데 손님은 6000원을 내고 거스름돈을 두라고 하시면서 내리셨다.
내가 고민하는 사이 손님은 벌써 내리신 것이다.
아무리 일당제 택시운전기사지만, 내 마음의 옹졸에 내내 마음이 걸렸다.
행동하지 못한 후회..., 그러나 또 그런 일이 닥쳐도
내가 어떻게 행동하게 될 지 확신은 없다.
못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여행사 직원을 강변역 근처 현대 아파트에 내려주고
다시 구의역 방향으로 가다가 동부지방법원 앞에서
술취한 손님을 태웠다.

흐느적거리며 택시에 오른 손님은 나 오늘 짤렸어.
어이 오늘 술 한 잔 사!
한잔 사라니까?
대뜸 택시기사에게 술 한 잔 사라는 것이다.
연거푸 짤렸다고 말하고 직진하라고만 한다.
갑오가 무언지 아냐고 말한다.
손님 나이가 54세다. 갑오란다.

말띠 54세 나의 큰형님과 동갑내기시다.
무어라 위로하고 싶고 정말 술 한 잔 하고 싶은 밤이었다.
쓸쓸한 느낌이 한없이 밀려온다.
사실 운전대 놓고 그냥 술이나 한 잔 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런 가혹도 우리에게는 일상인 것을...,
그는 또 집에 가서 어떤 슬픔을 토로할까?

나는 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그를 보면서
터벅터벅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처진 어깨를 보았다.
아프다.
몸도 마음도 그에게서 오는 저림이 있다.
하지만, 또 그 가혹을 굳건히 이겨내시리라 믿어본다.
이렇게 믿음으로 나는 상처받은 이를 바라본 아픔을 잊을 수 있다.

잠시잠깐 스쳐가는 사람들이지만,
그들 속에 나의 혼미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을테니,
나는 그들 안에 나의 둥지가 있음을 믿으려는 것이다.
부디 이겨내소서!

그렇게 상념에 휩싸이며 운전하는 나는 불길하다.
이상스럽게도 하루의 시작대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의 일상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이 타면 그날은 계속 비슷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오늘도 참 서글픔 속에 운전을 하겠구나 생각하고 진행했다.

가락동 경찰병원근처에서 케잌과 선물바구니를 든
40대중후반의 남자 손님이 탔다.
문정동 로데오거리를 가시는 분이다.
고소한 빵냄새가 느껴진다.
생일파티가 있으신가 봅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손님은 딸아이 생일이란다.
그러면서 딸아이들은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고
겸연쩍은 표정에 흡족해보이는 미소를 띠었다.
보는 삶도 그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한마디 오늘도 아버지의 쓸쓸한 일상을 언뜻 비추는 말을 한다.
측은한 아버지의 모습을 느끼게 했다.
한 가족이 둘러앉아 즐거운 시간을 갖을 것을 생각해보니 부럽다.
참 부러운 모습이고 그렇게 조화로운 삶을 살아갔으면 하고 바래본다.
 
송파구청앞 방이동 먹자골목을 두어바퀴 돌았다.
손님 태우기가 너무 힘이들었다.
포기하고 엉금엉금, 어슬렁거리듯 구청쪽으로 빠져 나오려는데
중년의 남성들이 몰려나오면서 한사람이 잽싸게 차에 오른다.
수원엘 간단다.
흥정은 없다.
메타를 누르고 직행이다.
수원 영통지구 가시는 분이다.
하남 인터체인지를 거쳐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고속도로 주행 참으로 무서운 난폭운전자들을 여럿 접했다.

돌아오는 길에 양재 인터체인지로 나오는 길이다.
횡단보도 초입에서 롱코트를 입은 신사 한 분이 탔다.
코트라 직원이시란다.
대한무역진흥공사 직원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오늘 바라본 방이동 풍경을 이야기했다.
무너진 권위가 씁쓸하다는 내 전언에 그런 곳이 있느냐고 반문하셨다.
택시를 하면서 바라본 요지경의 대한민국은
긍정적인 면도 많고 부정적인 면도 너무 많다.

역삼동에서 탄 젊은 청년에게 이곳을 테크노벨리라고들 하던 데
무슨 일을 하시냐고 물었다.
청년은 이곳에서 근무하지는 않지만 아이티 업체에서 일한다고 했다.
보수도 괜찮고 생활이 일반인들보다야 낫겠다고 말을 건넨 내게
그는 제조업의 특성에서 벗어날 것 없는 것이 아이티업체의 특성이라며
별로 특별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네살박이 아이를 보며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나는 내 지론인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 같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사실 가장이란 표현은 무망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성수동 이마트 근처에서 50대중반의 아저씨가 차에 탔다.
친구분과 둘이서 담배를 피우다가 차에 오른 손님은
중곡동에 가시는 분이다.
담배를 피워물고 차에 오르기 싫다고 하시다
차에서 잠깐 몇모금을 피우시더니 이내 담배불을 끄셨다.
그리고 초상집에 다녀온다고 말씀하셨다.
택시 잡기 힘들다고 말하는 손님들...,
손님모시기 힘든 택시기사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간다.
초상집에서 고스톱치시고 10만원을 따셨단다.
돈 벌어가시네요.
손님은 사람좋은 웃음을 웃는다.
내리시면서 5000원권 지페를 내놓으시며
오늘 운이 좋을 것이라고...,
초상집에서 나온돈이라고...,
거스름돈을 두라고...,
거슴름돈은 400원 정도 남았다.
아무튼 운 좋으라고 빌어주는 마음이 참으로 고마웠다.

중곡동에서 건대역 뒷골목으로 차를 몰았다.
파장을 알리는 노래방, 먹자골목의 음식점들...,
손님들이 삼삼오오 몰려나온다.
손님들을 태우려고 흠칫흠칫 눈치를 보아가며 서행을 한다.
분명 택시를 탈 듯한 사람들이 그냥 걸어서 길가까지 나간다.
길가 오뎅집인지 떡볶이 집인지 포장마차에 즐비한 손님들이 있었고...,
한참을 서행해 오던 길에 손님이 한 명 내 차에 올랐다.

20대 젊은 여성이다.
미소도 맑았고 청량감이 있어 신선한 느낌을 준다.
제법 귀여운 티도 나고 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보기에는 학생같아서 무슨과 다니는가 물었다.
아니었다.
직장인이란다.
조금은 놀랍기도 하고...,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만큼 나이 거리가 멀게 보이는가 싶다.
그녀는 혜민병원 간호사란다.
행복해 보이는 그는 발랄하게 미래를 살아갈 사람처럼 보였다.
행복의 조건..., miss song...은 아마도 그런 조건을 잘 찾아가리라..

40세, 50세가 되어서
인생을 반추하는 현상들에 대한 회의를 말하는 그때도 그는 진지하다.
보기에 경청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요즘 20대 여성이나 남성들이
그렇게 다소곳이 경청하는 태도는 드문 태도임에 분명하다.

물론..., 착한 남성도 많고 착한 여성도 많다.
짧은 순간 친절을 다해 듯는 느낌은 운전기사의 피곤을 잊게했다.
앞으로도 그녀가 행복을 찾아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기를 빌어본다.

오늘 제목이 음탕한 도시, 서울 거리를 사냥꾼처럼 휘돌다라고 했다.
무슨 아픈 소리인가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 서울은 난치병을 앓고 있음이 분명하다.
같은 직장에 상무와 평직원이
택시안에서 나눈 음탕한 이야기는 듯기에 민망하고 말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 사회 질서가 일반화 되어가는 서울이라면 그 서울은 슬픈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와 아버지뻘 되는 사람들이
젊은 청년들과 음탕한 눈길을 주고 받으며 거리를 기웃거리는 것은
서울의 음탕함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런 서울 거리에서 나는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으르렁거리듯 자동차 소음을 내며 헤매돌았다.

아! 슬프다.
물론, 아직은 절망만 하고 있으면 안되겠지...,
아니다. 영원히 절망만 할 수는 없지.
음탕한 도시, 서울을 누가 구제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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