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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온다. 친구야!

  • 김형효
  • 조회 5593
  • 2006.01.10 06:06
완치되지 않은 몸살 감기 기운에 조금은 불안스런 출근이다.
택시드라이버의 일상은 참으로 고독한 듯하다.
산발한 듯 내리는 눈발에 을씨년스런 분위기다.

해질녘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일터에서
일과를 정리하고 집으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이다.

30분은 그냥 허송한 시간...,
사납금이 걱정이다.
몸살 기운에 일당제로 바꾸고 10만원은 입금을 한다고 생각하고
그 이후 추가되는 금액이 일당벌이다.
겨울 찬바람처럼 싸늘맞은 일이다.

성수동 근방에서 헤매기를 한 시간 정도...,
헌법재판소까지 가는 손님을 태웠다.
중거리 정도는 되니 시작은 양호한 편이다.
이런 저런 대화를 좀 나누는데
여러가지 생각이 다른 느낌에 조심스럽다.
진지한 토론의 시간을 보내기는 어수선할 듯한 느낌에 말을 줄인다.
되도록 논박은 피하는 것이 기사노릇하는 사람에게는 상책이다.
세상에 수준과 학벌과 여러가지 종합적인 위치를 보았을 때
그 깊이가 겉에 머문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리고 외국 건너 둘러다되는 습속도 여전한 듯하다.
조금은 괴롭고 짜증스러우나 그것을 어쩌랴!

되돌아오는 길에 택시 정류장에서
외국인 부부이거나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을 태웠다.
그들은 서울타워에 가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을 태우고 유창한(?) 회화실력을 스스로 자랑삼으며 운행했다.
택시운전 참 할 만하다.
어디서 이런 실체험의 영어를 구사해 보겠는가?
짧은 대화들이었지만, 어렵지 않게
그들을 목적지까지 안내하고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도보로 타워까지 가려했으나
나의 안내로 케이블카를 이용하게 되었다.
아마, 케이블카를 타기를 잘 했다고 생각할 것이란 생각이든다.
서울의 야경이 아름답잖은가?
물론, 내 집이 있는 전남 무안의 월선리 반딧불이 빛나는 밤에
달 밝은 밤과는 다른 아름다움이지만....,

그리고 용산고 부근에서 젊은 청년을 태웠다.
그는 2년 미국유학을 다녀온 정치학 전공의 학생이라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국가보안법 이야기가 나왔다.
제법 진지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상대란 느낌이 들어
좀 더 깊이 이야기를 진행했다.
나는 개방적 민족주의자라고 나를 소개했다.
민법, 형법, 상법, 등으로 제도화 되어있는 법치국가에서
이념의 끈을 붙잡듯이 억지로 붙잡고있다는 생각을 이야기했으나...,
그는 아직은 이라는 전제를 달아... 개선은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독소조항도 인정한다면서... 방어적으로 태도를 바꾸어갔다.
그러나 막무가내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에게서 무언가 모를 진실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나는 벌이 양봉을 치는 벌도 있고
말벌에는 쏘이면 사람이 죽기도 한다고
그 벌통이 불필요하면 차라리 없애야 한다고
현실에서 사장된 국가보안법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도 그건 그렇지만 이라고 하면서도..., 유보적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그는 종각에서 내리면서 이야기 잘들었다며
감사하게 왔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의 태도에서 진심을 느꼈고...,
이런 진지하고 경청하는 태도에
논리적으로 수긍하며 대화해가는 풍토가
하루 빨리 우리 사회에 일반화 되기를 홀로 기원했다.

동묘앞역에서 창신동 방향으로 차를 몰아갔다.
아주머니 한분이 타셨다.
퇴근 길이었다.
미아리에서 내렸다.
이런 저런 세상 이야기를 하며 삶의 고락을 아울러 보았다.

테크노마트에서 연인으로 젊은 남녀가 차에 탔다.
자양사거리에서 여성이 먼저 내리고
잠실대교를 건너 가락시장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잠실대교는 마비상태였다.
자정 이전 시간인데
다리 중간부분에서 5중 이상의 추돌사고가 난 것이었다.
조금 더 진행해보니 건너편에서도 추돌사고가 나 있었다.
빙판길에 폭설처럼 내리는 눈이 갈 길을 불안하게 한다.
남단 끝에 도착하기 이전
잠시 아찔하게 밀리는 자동차를 애써서 제동에 성공했다.
안도의 순간이었다.
하마터면 사고의 주인공이 될뻔한 순간이다.
물론 경미한 추돌사고였겠지만..., 반가울리 없는 일인 것은 분명하다.
젊은 친구의 이런저런 인생 경험담을 들으며
참 열심히 사는 친구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에게서 희망의 손짓을 보는 느낌이다.
지금은 손해보험영업을 한다는데 성과 있는 날들이길 바란다.

이번에는 수서에서 장안사거리가는 손님이다.
손님은 차에 오르자 마자 부인과 전화통화를 한다.
여동생이 이혼여부로 고민한다면서 상담을 청해온다.
어려운 이야기들을 서로 풀어가기는 하지만
서로 답이 될 수 있는 이야기는 없다.
그저 사람살이가 억지로 되지 않더라는 결론으로 이야기를 마친다.
그렇게 눈발 휘날리는 서울 도심에서
수심 깊은 50대 형님 되시는 분을 쓸쓸히 모셨다.
바람에 날리는 눈발이 하늘길을 열고 왔으니...,
무슨 답을 좀 주었으면..., 좋으련만,

어린 친구들의 패기섞인 건방진 태도도
젊은 친구들의 시건방진 패기도
이래저래 바라보고 살펴보는 내성을 기르며
저들의 앞날에도 평화가 있기를 기원해본다.
술에 젖어 가슴에 맺힐 멍울을 바라보지 못하는 그들을 어쩌랴!
하지만, 지나고 보면 다 그들의 눈으로 볼 것이 있으리라.

천호동에서 중곡동 영화사 근처에 가는 손님은 젊은 여성이었다.
한참을 차를 대기시키고 기다리던 차에 오르는 손님을 살펴보았다.
차에 오르기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여성이 누군가 물었다.
친구란다.
친구가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단다.
내가 내린 눈처럼 망연자실 짠한 생각이 든다.
광진교에 야트막히 쌓인 눈발을 걷어내듯
그의 안타까움도 걷어내주고 싶다.
그러나 다 무망한 일...,
스스로 견디는 것도
인생을 사는 법을 익히는 가혹이란 것을 나는 안다.

그렇게 하루가 갔다.
아니 나의 하루가 갔다.
이제 잠자러 가야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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