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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밤 이야기 1

  • 김형효
  • 조회 4213
  • 2008.01.16 13:33
겨울 들판은 을씨년스럽고 슬프다.
그렇다해도 어린 아이의 뾰로통하게 굳은 입처럼
안에서 다짐하는 속말처럼 쉬임없는 꿈틀거림이 있다.
웅크린 소란이 있어 활기가 넘치는 들판은 겉모습과는 다르다.

찬란한  황금빛 가을녘이나 짙푸른 여름처럼
화려한 잔치는 보이지 않지만 그 차가움 안에 소중하게 봄을 안고 있다.
힘차게 언 땅을 뚫고 솟구치는 분수처럼 솟아날 싹아지
그것을 예비하느라 겨울은 슬픈 자화상처럼 싸늘하다.

멀리서 바람이 안고 온 소식들이 들판을 뒤덮은
낙엽과 그 부스러기와 썩어가는 곡식 낱알들과
농투산이의 농구와 그의 흔적부스러기들이 함께
봉투를 뜯어 함께 사연을 읽어가느라 이리 저리
흙먼지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밝은 아침이 오면 들판은 눈물에 젖는다.
속으로만 도란거리며 꿈틀거린 자신을 밝은 아침이
온화한 기운으로 위로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겨울 아침도 스산하고 엄혹한 추위의  들판에
몸을 기대올 때가 있어서 서로를 안는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받아안고 저무는 노을빛에
하루의 안녕을 전하고 나면 바람도 자고 들도 잔다.
사람들은 잠자는 바람의 뒤척임에 놀라 오므라들지만
들판이 웅크린 것처럼 바람이 웅크려 잠들었다 뒤척이는 것을
서로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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