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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의 봄에

  • 주향숙
  • 조회 6616
  • 기타
  • 2007.05.23 15:02
서른살의 봄에

  이 봄 무작정 임신하고싶다. 아니 임신이라도 해야 한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만큼으로 나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요에 떠밀리고있었다. 그래서 아직 그 무언가에는 아득하지만 해야 한다는데 절실하게 시달리고있었다.  그런데 결국 나는 단 하나의 그 무엇도 당겨오지 못한채 허망하다. 그런 갈증난 가슴으로 내 빈곤한 상상력은 아예 임신이라는 지극히 육체적인 단어를 떠올렸을뿐이다.
훌훌 털고 돌아앉았던 산들이 아롱한 아지랑이를 흔들며 열락한다. 차겁게 얼었던 강물도 활짝 가슴을 열고 따스한 해빛과 사랑을 시작한다. 거멓게 생기가 죽었던 나무가 파릇한 꿈을 싱싱하게 가진다. 정녕 봄이 오는것이다. 이렇게 봄은 미워져버린 모든것은 다 버리고 고운것만 골라서 꽁꽁 채우며 다가오고있었다.
기실 예전의 내게도 봄은 늘 그렇게 아름차게 왔었다. 괜히 더 꿈을 꾸고 더 사랑하고 더 정열적이며.
십대의 나는 봄이면 봄마다 씩씩한 꿈을 잔뜩 부풀렸고 또 그 꿈만큼으로 세상 다 가질듯한 열정으로 노력해왔다. 그래서 꿈보다는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힘든 농사일로 뼈마저 추스릴수 없는 부모님들과는 달리 좀은 한가해진 날들을 살수있게 되였다. 또 이십대도 돌아보면 꽉 채워진 꿈의 련속이였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날마다 충실해왔었다. 련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하고… 암튼 그 모두도 나는 별무리없이 해내였고 그래서 지금은 착실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이를 갖게 되였다.
그런데 왜 삼십대를 시작하는 이 봄에 나는 새삼스레 텅- 하니 비여버린 공허만 무력하게 들이켜며 비참에 가까운 허무를 느끼는지 모르겠다. 꿈을 가질 한점의 동력마저도 없는 내 삭막한 가슴을 나는 눈치채고있었고 그런 자신에 아득해하였다. 허나  그 리유에는 쉽게 간단한 대답을 던지며 편한곳으로 도망치고싶어했다.
삼십대아줌마로 추락했으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대답해본다. 삼십대란 더는 꿈과 열정과 야망으로 마악  터쳐지는 시적인 이십대도 아니며 생머리의 그 당찬 기운 만큼으로 어디에든 자신있게 덤벼가는 오기도 자유도 충동도 없다. 또 아줌마란 모든 소속이 결정되여버려서 나른하게 안주하는데 길들여진탓으로 더는 래일이 주는 축복인 화려한 희망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삼십대아줌마에게는 결코 봄을 느낄 마음의 자리가 남아있지 않다.
허나 나는 결국 그때문이 아닌 내 허무의 발원지때문에 심히 괴로웠다. 도무지 모른다고 억지를 부리기에는 이미 지나쳐서  도망갈 기회마저  박탈당하고있었다. 그것은 기실 가장 성실하게 자연적으로 유도된 그런 단순한 리유들때문이 아니였다. 그것은 정녕 공부라느라 온갖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던 단계와 직장 구하고 별탈없이 적응하느라 모지름쓰던 단계와 련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하며 분주하던 단계를 끝내고난후였다. 그 평범한 안일함이 주는 여유의 시간들을 내 어둑했던 머리와 가슴은 나이로만 주어먹고 성숙되는 시늉을 하며 심술궂게 훌쩍 늙어버린것이다. 세상의 혼돈스러움에 대해 민감해진채 <<세상을 다 살아버린 할머니의 표정>>이라며 충고를 들을만큼으로 모든것에 철저히 체념했다. 누구에게 져주기도 싫증나서 차라리 실랑이마저도 안 벌이며 살아오느라 지지리도 독한 외로움으로 빠져들었다. 세상을 등지는 못난 도망으로부터 내 손은 차거워졌고 내 눈은 외로워졌으며 내 가슴은 아팠다. 그러면서도 결코  탈출하는 몸짓도 아니 탈출하려는 욕구도 지어 탈출해야 한다는 자각마저도 없이 살아왔다. 아니 살아져온것이다. 기실 그것은 편안했지만 또한 고역이였다.
삼십대는 리상이라고 특징지은 누군가의 말에 유혹되기를 스스로에게 강요하며 내가 할수있는 일들을 의무적으로  찾아본다.
쇼핑을 생각해본다. 허나 지루하게 널려져있는 가계에는 내 구매욕구를 불러줄 아무것도 없다. 거울앞에 마주서본다. 허나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기조차 짜증날만큼으로 허영마저도 없다. 려행을 궁리해본다. 허나 광고지로 책표지에서 죽어버린 풍경들이 싱겁게만 느껴진다. 책을 펼쳐든다. 허나 별 구제도 없을 누군가의 사상을 알아가기가 싫증난다.
결국 나는 내 영혼의 빈곤을 느끼며 임신까지 생각했던것이다. 허나  이 봄에 그런 순수한 정열로만 다가와줄 남자는 결코 없다. 또 이 봄에 어울리는 그런 임신을 할수있는  내 마음의 순수한 영역도  없다. 더욱이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서 아이를 부른다는것은 아무래도 용서가 가능하지 않은 죄인줄 안다.
난 차라리 감기라도 콱 앓고싶다고 생각해본다. 홀로 무덤같이 고요히 누워 심한 고열로 앓으며 한쪼각의 꿈마저도 챙길수 없는 내 어리석은 영혼을  잠시나마 잊고싶다. 허나 그 기회마저도 현실은 당당하게 뺏어가버려서 나는 유난히 단단한 몸뚱이로 서있다.
나는 결국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더욱이는 하고싶은 일이 무엇인지조차도 찾아내지 못한다. 그리고 고집부리는 체념에게 이미 길들여질대로 길들여진 자신을 경멸하듯 쉽게 버릴수 없음을 안다. 또 새롭게 자신을 챙겨야 한다는 이 봄의 몸부림을 어떤 의무나 사명감같이 느끼는줄도 안다. 그러느라 그 사이에서  그냥 이렇게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허둥대기만 하는것이였다.
오늘 그런 자신을 처음으로 환히 들여다본다. 이 모두는 작은 둥지안에 안주할수 있도록 다 가진 아줌마의 사치라고 빈정대기에는 좀은 무거웠다.  아마도 어떤 객관적인 질서로 주어져있었던 여태의 일들을 끝내고난  이십대의 결미인 서른살은 판단력을 갖추고 자신을 들여다볼수 있는 성찰의 단계인것같다. 그리고 삼십대의 시작인 서른살은  이제부터 행야 할 일을 스스로 구축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음미하도록 지혜롭게 만들어진 단계임이 분명한것같다. 이를 위해  서른살의 봄을 앓은거 아닐가? 이 봄은 서른살만의 형벌이면서도 또한 삼십대의 날개짓을 위한 살갗을 뚫는 날개의 아픈 돋아남이  아닐가?
삼십대의 봄을 새롭게 꿈꾸어본다. 더는 삶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오늘처럼 허무해지고 싶지는 않다. 작은 소속으로 희망을 바꾸지 않을것이다. 눈부시게 찬란하지는 못하더라도 소박하지만 곱고 따스한 꿈 하나 가슴에 만들어놓고 아름다운 동경으로 살아갈것이다. 느슨해진 피부로 열정을 살지 않을것이다. 아아히 높은 비상은 못하더라도 편안함과 타협하지 않으며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으로 남을것이다. 다이어트로 사랑마저 짜내지 않을것이다. 누군가를 꼭 사랑해야만 살아갈수 있는 세상이 아닌줄 잘 알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따스한 사랑으로 다가서서 소중한 감동도 할줄 알며 살아갈것이다.
다시 자신을 돌아본다. 어쩌면 어디로 가고있는지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이 머리보다 육체로 살고있는 빈껍데기같이 후줄근한 아줌마의 몸짓으로 여전히 비쳐질수도 있을것이다. 허나 나는 지금 처져버린 자신의 추구와 탄력을 잃었던 열정을 모아 꼬며 자신을 추슬리고 있음에 그 기쁨이 너무 흥건하다.
서른살의 봄 우리는 누군나가 한번쯤은 봄과 사랑을 나눌 일이 아닐가 싶다. 그리고 봄의 씨앗을 소중하게 받아 내 가슴에 잉태할 일이다. 이 봄 봄은 나를 마주하고 어떤 표정이였을가를 생각해본다 어쩌면 자신에게 조금도 회의하지 않았다면 봄이 대신 슬퍼졌으리라. 봄을 잉태하는 <<욕심많은>>  서른살을 위해 봄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사랑을 주는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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