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 어떻게 쓸 것인가 - 시 창작을 중심으로 / 송용구 > 문학(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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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어떻게 쓸 것인가 - 시 창작을 중심으로 / 송용구

  • 김영춘
  • 조회 7433
  • 기타
  • 2007.08.01 16:34
고려대 교수 송용구 시인의 카페 <현대시와 문화 

http://cafe.daum.net/syk6595 >에서 읽었는데

너무 좋아서 퍼왔습니다.



문학작품, 어떻게 쓸 것인가 - 시 창작을 중심으로

                                                                        송용구
1.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좋은 시, 좋은 문학작품을 많이 읽자. 내게 감동을 주었던 작품만큼은 계속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작품 속에 담겨 있는 아름다운 문장과 감동적인 글귀를 가슴에 새기는 연습을 하자. 애정을 갖고서 매일같이 음미하다 보면 마음에 각인이 되어 시의 구절들이 노래부르듯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날을 맞이할 것이다. 이 날부터 우리의 마음은 ‘책’으로 변해가리라. 산에서 초록빛 바람이 불어와 마음의 ‘책’을 펼쳐놓으면, 시의 집에 갇혀 있었던 아름다운 문장들이 새들의 노래를 따라 물결처럼 흘러가서 나뭇잎의 해안(海岸)에 닿는다.


2. 패러디 연습을 많이 해보자


* 정지용의 「산엣 색시 들녘 사내」를 패러디한 작품 「남녘 색시 북녘 사내」



산엣 색시 들녘 사내


        *  정지용 




산엣 새는 산으로,

들녘 새는 들로.

산엣 색시 잡으러

산에 가세.




작은 재를 넘어서서,

큰 봉엘 올라서서,




'호―이'

'호―이'




산엣 색시 날래기가

표범 같다.




치달려 달아나는

산엣 색시,

활을 쏘아 잡었습나?




아아니다,

들녘 사내 잡은 손은

차마 못 놓더라.




산엣 색시,

들녘 쌀을 먹였더니

산엣 말을 잊었습데.




들녘 마당에

밤이 들어,




활 활 타오르는 화톳불 너머

넘어다 보면―




들녘 사내 선웃음 소리에

산엣 색시

얼굴 와락 붉었더라.







남녘 사내 북녘 색시/  송용구




남녘 사내는 북으로/ 북녘 색시는 남으로/ 에헤야 데헤야/ 휘달려 오는/ 남녘 사내 맞으러/

청천강변 마당을 쓸어놓자/ 에헤야 데헤야/ 북녘 색시 품으러/ 임진강을 건너가자/ 슬며시

홍조빛 부끄럼 흘리며/ 사슴처럼 달아나는/ 북녘 색시야!/ 남녘 사내의/ 억센 팔뚝에 못이겨/ 저고리 앞섶을 열었느냐?/ 아니로세 아니로세/ 백록의 신운(神韻)/ 와락 쏟아지는/ 남녘 사내의 노랫가락에/ 넋 놓고 치마끈을 풀었더라/ 꽃다지처럼 터지는/ 북녘 색시의 말소리에/

남녘 사내/ 설악의 고운 흙가슴을 잊었느냐?/ 에헤야 데헤야/ 철조망 위로 날아와서/ 청천강변 초례청의 하늘에/ 하객처럼 수런거리는/ 찌르레기들아!/ 합환주(合歡酒)에/ 소롯이 내리는/ 별빛이 보이느냐?/ 그 별빛에 젖는/ 두 사람의/ 순진한 눈망울이 보이느냐?   




3. 좋은 시를 쓰려면 풍부한 감정을 살리되, 감정을 절제하자.




3-1. 감정이 과잉되면 직설적 표현을 남발하게 된다. 이때, 시의 언어는 진부해질 수밖에 없다.

3-2. 감정을 절제하면 글쓴이의 깨달음에 비유의 옷을 입혀 줄 수 있다. 이때, 시의 언어는 참신해진다. 비유의 모델은 『성경』이다. 예수님은 하늘의 진리를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기에 그분의 모든 말씀은 살아있는 즉흥시였다. 사중복음서는 비유의 궁전이었다. 구약의『아가』는 남녀간의 사랑을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노래한 연애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솔로몬 왕이 자신의 사랑체험(애정체험)을 비유로 삼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노래했다고 볼 수도 있다(신앙시). 『아가』가 훌륭한 문학작품인 것은 연애시와 신앙시 중 어느 관점에서 보더라도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릴케의 시 「나의 눈빛을 꺼주소서」를 읽어 보자.




나의 눈빛을 꺼주소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나의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의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나의 팔을 꺽으소서, 나는 손으로 부여잡듯

나의 가슴으로 당신을 끌어 안을 것입니다

나의 심장을 멈추게 하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나의 뇌에 불을 지르시면, 나는 당신을

핏줄 속에 지니고 가겠습니다.

                            - 1897년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에게 헌정한 연애시가

                              1900년 러시아 여행 후에는 기도시로 변하였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에로스에 비유한 걸작이다.   




4. 좋은 시를 쓰려면 의미와 이미지의 반복을 피해야 한다. 동일한 의미를 나열하면서도 표현만 바꾸는 것이 습작기에 흔히 범할 수 있는 오류이다. 시행과 시연이 바뀔 때마다 의미가 새로워져야 한다. 김현승의 시 「아침식사」를 읽어보자.




아침 식사




                        김현승




내 아침상 위에

빵이 한 덩이

물 한 잔.




가난으로도

나를 가장 아름답게

만드신 주여.




겨울의 마른 잎새

한 끝을,







당신의 가지 위에 남겨 두신

주여.




주여,

이 맑은 아침

내 마른 떡 위에 손을 얹으시는

고요한 햇살이시여.




5. 감각적 이미지를 조화시켜 보자. 안도현의 「땅」에서 보았듯이,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가 변주곡을 울려야 한다(두 가지 이상의 감각이 공존하면서 순간적으로 교체되어야 한다). 정지용의 「향수」에서 보듯이, 좋은 시는 시각, 청각, 촉각 등 세 가지 감각이 공존하면서 꼬리를 물고 교체된다. 「향수」를 읽어보자.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6. 아름다움의 절정, ‘감동’을 안겨줌으로써 감성의 샘물을 솟아나게 하려면 ‘객관적 상관물’을 풍부하게 사용해야 한다. ‘비유’를 상상을 통해 지어내면 아름다움을 안겨줄 수는 있어도 감동을 주기는 어렵다. 그러나 글쓴이의 생활공간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을 ‘비유’로 활용하게 되면 ‘감동’을 자아낼 수 있다. 시 「가을의 첼로」와 「가을나무와 피아노」를 읽어보자.







가을의 첼로

                          송용구                               




영원의 지붕을 향해 날아갈 수 있도록 

하늘 어귀를 비추어 주는

가장 순결한 등불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눈망울입니다.




나는 

당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파랑새가 되렵니다.

당신의 언약을 성결한 이정표로 삼아

당신의 손길 위에 내 영혼을 싣고

잃어버린 에덴을 찾아 날아가렵니다.




동산의 생명나무 아래

포근히 나래를 접을 때 

칠색(七色)의 꽃잎들이 속살거리듯 내려와서

당신과 나의 머리 위에

둥그런 무지개 화관(花冠)을 엮어줍니다.




푸른 강가로 함께 걸어가 

하나님이 꾸며놓으신 초례청 앞에 서면,

하늬바람은 잠들었던 피조물들을 깨우고 

꽃노루, 범나비, 들찔레, 모든 하객들을 모아     

축복의 합창을 불러줄거예요.




합환주(合歡酒)처럼 기쁘게 춤을 추는

한 잔의 포도주 속에

아름다이 내리는 은혜의 선율이여! 

향기처럼 스미는 가을의 별빛이여!




두 줄기의 현(絃)으로

인생을 연주하여도 

한 음(音)의 사랑을 자아낼

당신과 나는

에덴의 생명나무를 닮은

한 몸의 첼로가 되었습니다.

 

가을나무와 피아노

                                  송용구




가을나무처럼 홀로 있어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영혼은 하늘빛에 젖어 두 팔을 허공에 펼치고

열매의 등불을 켜서 사람의 마을을 비추어주는

가을나무를 닮게 하소서




하늘의 뜨락을 매만지는

가을나무의 손가락에서

별빛의 멜로디가 흘러나오듯




내 영혼의 모든 잎새들이

바람의 음계(音階)를 밟고

하늘 궁전의 선율을 울리는

당신의 피아노 건반이 되게 하소서




당신이 내 마음의 우물에

빈 두레박을 내리시면

나는 초록빛 피아노 소리와 가을나무의 향기를

한점 남김없이 쓸어담아

하늘 궁전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빈 두레박에 담겨 올라간 나의 피아노 소리는

당신의 거룩한 서재(書齋)를 향기롭게 해드리고

책을 읽으시는 당신의 말소리를

아름답게 빛내드릴 것입니다




가을나무의 잎새들이 하얀 책종이 위에

하나 둘 떨어지는 날

향기로 물든 나의 피아노 소리는

은하(銀河)의 강물이 되어 당신의 눈빛을 적시고

사색의 갈피마다 스며들어

당신의 푸른 꿈을 고이고이 어루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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