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쁜 녀자입니까? > 문학(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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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쁜 녀자입니까?

  • 주향숙
  • 조회 7294
  • 기타
  • 2007.08.06 16:43
감성으로만 살면서도 자신의 감성에 대해 그 빛갈을 채 느끼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 나는 좋은 녀자가 되기를 수없이 그리고 단단히 다짐하면서 그렇게 해야만 하는줄로 믿어버리면서 좋은 녀자가 되는 조건을 열심히 배우며 몸으로 익혀왔습니다.

과분하게 넘치지 않고 현명하며 자기를 다 바쳐 헌신하며 흐트러짐이 없이 단정하고 차분하고 정갈하게 사랑하며 투정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인내하며…

허나 언제부터였던가 조금씩 빛나가는 자신을 발겮하면서 내가 여태 모범으로 알아온 모습들에서 살아있는 인간이기보다는 차라리 말라버린 표본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봄이 와서 봄바람이 불어가며 창문을 노크해와도, 여름이 와서 그 진한 푸르름이 뚝뚝 흘러 몸을 적셔와도, 가을이 와서 그 화려함이 허영을 찔러와도, 겨울이 와서 벌거벗은 순수가 랑만을 부풀려주어도 감감 모르듯이 꽁꽁 여미며 철저한 고상함을 출연해왔던 자신에 이제는 화가 나 있습니다. 감정적인 노예의 근무로 바꾸어온 알뜰한 주부, 착한 며느리, 현명한 안해, 훌륭한 어머니… 등등으로 축복의 면사포를 쓰고 더 단단한 조임으로 다가왔던 횡포의 이름표들에 더는 행복해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조작해내는 실정에 되려 내가 두려워진채 도망가고있는지도 모릅니다.

가끔은 엄청나게 술을 마시고싶습니다. 독한 술을 입안체 털어넣으며 <<녀자는 녀자로 태여나는것이 아니라 녀자로 키워질뿐이다.>>고 한 보봐르녀사의 말을 가슴으로 자꾸만 중얼거리며 한번쯤은 육체로만 구실해온 내 머리로 성찰을 행하고싶습니다. 그러면서 여태 자신의 느낌 한쪼각이라도 변변히 챙겨보지 못한채 작은 둥지안에서 수인으로 살며 남에게 거름이 되여온 자신에 굳이 환멸은 하지 않더라도 남을 위해 나의 시간과 정력을 허비해왔던 나의 녀자때문에 알알해지는 심장을 실컷 아파하고싶습니다.

때로는 나 하나만 달랑 지니고 어딘가로 휘이휘이 방랑하고싶습니다. 덕지덕지 내개 붙어오는 내가 없으면 안되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싶습니다. 그리고 내게 엄격하게 주어진 나의 아름다운 시간들을 내 스스로의 정신과 정열로 충만케 하고싶습니다. 하여 오로지 내 스스로의 자유만으로 산뜻하게 살아보고싶습니다.

또한 은밀하게 누군가를 못견디게 그리워하고싶습니다. 그래서 흐르는 사람들 사이사이로 그 사람을 떠올리며 가만가만 헤픈 상상으로 행복해보고싶습니다. 그의 얼굴에 어린 미소와 장난도 쳐보고 그의 몸짓에 배인 체취를 껴안아도 보고 그의 목소리에 묻은 빛갈고 세상과는 무관한이야기를 섞어보기도 하고…그리움조차도 없으면서 그리움을 그리워할줄조차 모르는 표준화된 가슴으로 실수하기 쉬운것만으로 여겨온 감성을 출렁이고싶습니다. 그리움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으니까.

나는 언제부터였던가 늘 이렇게 마구 범람하는 감성과 잘 다져져온 리성사이를 오가며 그것들의 순수와 도덕, 자유와 관념, 충동과 질서에 대해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그러는 한편 좋은 녀자의 끈을 놓지 못한 내 체면은 자신의 속의 그 파괴력을 눈치채고있어서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다스려서 늘 아슬아슬하게나마 좋은 녀자가 되여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자신에 회의를 느끼군 했습니다. 이제는 더는 흔들림이 없는 지성을 소유해야 하는 30대에 단호한 자기 세계가 없이 흔들리기만 하기때문입니다.

나는 정말이지 좋은 녀자와 나쁜 녀자의 그 기준에 대해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과연 남자들이 규정지어주는 <<좋은 녀자>>의 기준은 깨뜨릴수 없는 철칙입니까? 그 옛날 녀자들을 전족으로 만들어놓고 그 작고 유연한 발을 만지며 일종의 향수를 누렸던 남자들의 시커먼 속내쯤으로 여기려고 억지를 부린다면 나의 실례입니가? 우리는 여태 남자들이 어떠하다면 따라서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착하지만 미련스러운 존재는 아니였습니까?

남을 위해서는 기꺼이 밑거름이 되면서도 결코 자신을 위해서는 한없이 린색한 피가 식어있는 녀자가 과연 좋은 녀자입니까? 나는 그녀들에게 무더기로 현란한 칭찬과 요란한 박수소리속에서 부서질것같은 건조한 가슴을 더 혹독하니 말리워가는 잔인성을 봅니다. 어쩌면 그들이 부정은 하겠지만 그들의 속에도 여태 고개돌리고 안보며 살아왔을뿐인 자기만의 욕망이 꿈틀대고 있지는 않을가요? 시간도 조금은 내 몫으로 돌려 리상을 위해 적극적인 모습으로 당당해지고싶고 돈도 조금은 내 몫으로 돌려 예쁜 잠옷도 사입고 아름다운 장신구도 걸치며 허영을 떨고싶고 교제도 조금은 내 몫으로 돌려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어울림속에서 요란한 행복을 느끼고싶고… 그것이 아니라면 그녀들은 총명해서 자유로 자기 세계를 구축하며 책임을 지기보다는 타인에 의해 자기 세계를 만들어 나중에 책임을 전이시킬 누군가가 있다는것에 깨달아있는건 아닐가요?

녀성해방을 웨쳤던 스탠톤은 <<자기 실현이 자기희생보가 더욱 고귀한 여성의 의무>>라고 말했습니다. 허나 철학 또한 여러 사람들의 개성적으로 뻗어간 사상갈래일뿐이며 때로는 한 사상을 받아들이면 다른 사상을 버려야 하는 반대적인 사상도 있을 정도로 기준치가 확정된것도 아니며 게다가 <<인간은 자유롭지 않을수 있는 자유외에는 모든 자유를 소유한 존재>>이니 더욱이 우리의 생각 또한 복잡하기 그지없으며 기어이 어느 한 시대를 믿고 살아가는것도 우둔한 짓임이 증명되여버린것이니 우의 말을 어느만큼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우리의 몫일뿐입니다. 허나 어쩌면 자신의 속깊이로부터 울려오는 목소리에 잠간씩 귀를 기울여가며 그런것들을 내 가슴 어느 한자리에 가꾸어가며 산다면 한결 더 아름다운 녀성상이 되지 않을가요. 남만 위하여 허위허위 살아가며 비대하게 추앙되며 자신은 훌쭉하니 말라버린채 너덜거리는건 아마도 아름답지만은 않을거 같습니다.

우리 저 하늘의 별도 나때문에 피여난다고 믿어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별을 보며 별만큼으로 작고 따스한 꿈 하나 만들어봅시다. 우리 이 땅의 꽃들도 나때문에 피여난다고 믿어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꽃의 향기만큼으로 진동하는 아름다운 자신으로 꾸며봅시다. 우리 저 태양도 나때문에 솟는다고 믿어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태양의 빛만큼이나 뜨거운 정열로 자신의 시간을 가꾸어봅시다. 착하지만 아름답고 단정하지만 참신하고 헌신하지만 자기를 잃지 않은 한결 옹골찬 녀자로 피여나지 않을가요.

나는 이제 더는 그 가혹한 좋은 녀자의 요구에 따르기만 하지는 않을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건 자기 자신일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린색하지만 인정해야 하지 않습니까. 어느 관객에게서 나쁜 녀자라고 질타를 받더라도 내 생각을 양보하고싶지도 않습니다. 자기 삶은 자기가 책임지는 더 열심히 사는 삶이라고 우겨보고싶습니다.

허나
이 모두는 결코 지금 이 순간까지의 나의 의식일뿐입니다.
결코
의식으로부터 행동으로 구체화하는 사이 어느만큼 빗나갈지도 또 다른 어떤 의식이 도출돌지도 나는 모릅니다.
변하는게 인간의 속성이라며 래일의 나자신의 모습을 약속해주지 않는 나는 정녕 나쁜 녀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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