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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만주대장정]18.도문역 식당과 김경희시인

  • 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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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02 20:10
■제13편 서지월시인의 흑룡강 7천리

[제3편/흑룡강 7천리]18.도문역 식당과 김경희시인

18.도문역 식당과 김경희시인

만주식 가옥의 경우 서양에서 입식으로 생활하며 누울 땐 침대를 마련해 사용하듯 그것과 엇비슷했다. 침대 대신 실내에 높이 쌓아 온돌을 사용하는 경우다.한국의 경우는 앉아서 생활하는 풍습이라 실내 방안 전체가 온돌로 이뤄져 있는 것에 비해 돌바닥이라는 풍습은 같으나 실내공간은 다르다.

이곳 식당의 경우도 바닥에서 신발 벗고 올라가 앉아서 판을 펴고 식사를 하게 되어있는 구조였다. 판이라야 옛것은 아니지만 무늬가 얼룩얼룩한 낡은 베니어판이었는데 그게 더욱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가 국밥을 시켰는데 쇠고기 국밥이긴 하나 곰국이었다. 곰국에다 삶은 쇠고기를 갈기갈기 찢어 넣은, 아! 그러니까 옛 시골에서 어머니가 해 주시던 그런 퍽 오래된 맛이었다.

김경희씨는 “맛 없더라도 많이 먹어요. 모자라면 더 시켜요. 마음껏 드세요”. 라고 하는 주문이 정말로 보기 드문 시골인심이었다. 좀 남성적인 성격이라 듣긴 했지만 그게 오히려 서로에게 더욱 친근감이 가고 좋았다. 또, 이 식당의 반찬은 어떤가. 별 모양없는 깍두기가 조그만 접시에 담겨져 나왔는데 새콤한 게 얼마나 맛있던지 우린 한 접시를 더 시키기도 했다. 문제는 빨리 먹어야 한다. 바로 도문역 옆이지만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김경희씨는 “여러분들 처음 오셨는데 시간이 없어 이렇게 대접해 미안해요.”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런 소고기국 어릴 때 먹어보고 처음이었으며, 이런 우리의 전통음식이 이곳 두만강 접경지역인 만주땅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니 참으로 놀랍고도 긍지가 생기는 것이었다.

김경희씨는 남편은 식사를 안 해도 된다면서 밖에서 기다린 모양이다. 우리 일행은 어디가서 밥도 굶은 걸식군같이 허둥지둥 쇠고기 곰국에 밥을 말아 깍두기와 함께 얼른 뚱땅 해치우고 밖을 나와 쏜살같이 도문역으로 향했다. 기껏해야 3시간 남짓 새벽부터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허둥댔던 것이다. 꼭 남의 잠 깨우고 남의 볼일 못 보게 마구 불러내어서는 이제 떠나야 한다는 맹목적 행동같이 돼버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가야할 길은 멀고 가야할 곳도 한두 군데가 아니니. 정말이지 만주땅을 한바퀴 빙 돈다고 해도, 이렇게 급히 움직여도 보름이라는 기간이 걸려 그나마 가볼 데를 가봤다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다음에 이곳 도문에 오면 꼭 하룻밤 정도는 지세는 일정으로 잡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서로 만나 하루동안이라도 이야기도 나누고 그렇게 만나고 헤어져야 정분있는 만남이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열차에 올라 우리 일행이 내다보는 창밖에는 김경희씨 부부가 소낙비같이 찾아왔다가 다시 열차에 몸을 싣고 떠나는 우리 일행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계속 서 있었다. 열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서로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손을 흔들며……, 이렇게 아쉬운 이별의 장면이 연출되었던 것이다. 우리도 준비해 간 시집을 선물로 주었고 김경희씨도 이곳의 몇몇 여성시인들이 쓴 시를 한 권으로 묶은 동인시집인 ‘란아, 너의 이름으로’(중국조선족 여류시선집)를 10권이나 선물로 받았다.

참으로 대견하고 반갑고 놀라운 일이었다. 늘 말하지만 부유하게 살지도 않은 척박한 이런 곳에서도 시를 쓰는 중년여성들이 있다는게 장하지 않은가. 또한 김경희씨는 인터넷을 통해 서로 연락도 하자고 제의하기도 했으니 참으로 멀고도 가깝게 느껴졌다.‘란아, 너의 이름으로’에는 중년여성 22명의 시가 실려 있었다.

김경희씨의 소개란을 보면 1961년 도문 출생으로 시, 수필, 소설 70여 편 발표, 연변작가 협회 회원, 도문시국가세무국 공무원으로 되어 있다. 중국조선족 여류시인시선집에 수록되어 있는 김경희씨의 시 한 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눈물 없이는 마주할 수 없는
삶의 이야기가
우리의 하늘을 단장할 때
하얀 손수건이 찍어내는 건
눈물만이 아니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여자 앞에서
조용해지는 남자의 마음처럼
죽음과 잇겨진 삶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우리들이 삶과 손젓는 순간은
어둠과 작별하는 유성처럼
주춤함이 없어야 한다
그 찰라처럼 떳떳함을 위해
우리는 기인 긴 날을
조용해야 한다

- 김경희 시 ‘기인 긴 날을 조용해야 한다’전문.

이 작품을 왜 소개하는가 하면, 이 시가 지니고 있는 작품성도 작품성이지만 강인한 여성상을 노래한 데에 있다. ‘눈물 없이는’즉 슬픔없는 인생이 없다는 말인데 그것만이 아닌, 그것보다 더 가혹한 고난이 인생 즉 삶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슬프도록 아름다운 여자’라 표현하고 있는데 여자로서의 운명적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내하고 조금도 멈칫해서도 안 되며 ‘기인 긴 날’인 일생을 참고 살아야 한다는 장한 여성상을 스케일 크게 노래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편하고 쉽게 긍정하며 살아가는 삶이 아닌 지난한 여자의 일생을 감내하면서 견뎌내는 미덕을 담력있게 표현한 작품으로 꼽힌다.

조선족 여인들의 장한 생활상을 보는 듯 하다. 그럼 필자가 쓴 시 한 편도 소개해 볼까 한다. 잠시잠깐 만났지만 같은 동포로소 느낀 동포애가 내 가슴속에 짙게 배어들었으니까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는다’고 한 어느 소설가의 말이 있듯이, 그냥 지나갈 수는 없잖은가.

도문역에 내렸을 때
무장하러 급히 달려오던 그 여인
두만강 물에 손 담글 때에도
곁에 와서 함께 손 담그던 그 여인
아아 강물은 저렇게 말없이 흘러만 가는 걸까
쇠고기 곰국 국밥집에 들어가서도
허름하지만 많이 드세요
김치깍두기도 그릇에 담겨져 나오고
우리 어머니 순 옛 음식맛 그대로인데
더 드세요, 더 드세요
시종일관 싱글벙글
만남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하는 듯
만나자 몇 시간만에 다시 이별이라
도문역으로 가 떠날 때에도
잘 가세요, 다음에 또 들려요
떠나는 열차 지켜보면서
남편과 함께 손 흔들어주던 그 여인

- 서지월 시 ‘두만강 그 여인’전문.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던 짧은 순간의 만남이었지만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다. 중국의 이태백도 가는 곳마다의 풍광과 만난 사람들과의 인정을 술로 노래하지 않았던가. <계속>

<전업시인/ 서지월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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