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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연변땅을 가다]29.윤청남시인을 말하다

  • 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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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02 20:23
[제5편/서지월시인의 연변땅을 가다]29.윤청남시인을 말하다

[제5편/연변땅을 가다]29.윤청남시인을 말하다

29. 윤청남시인을 말하다

연변지용문학상 수상작은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이었다.

윤청남 시인은 1959년 중국 흑룡강성 오상현 산하툰 금성 출생으로 오상현 조선족고중학교를 졸업하고 1978년에서 1984년까지 4년 가까이 군대생활을 했으며, 1996년 연변대학 성인교육학원 조문전업 졸업으로 1999년과 2001년에 걸쳐 ‘연변문학’ 주관 윤동주문학상 신인상과 대상을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2003년에는 ‘두만강여울소리 시인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도문시 체육장에 근무하고 있다.

내가 윤청남 시인을 만나서 물어봤을 때도 도문에 직장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했다. 도문은 두만강가의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북한과의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다리가 놓여있는데 두만강 물살 위의 다리 한복판을 경계로 하여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구분지어 놓은 곳이기도 한데, 많은 관광객들이 연길에서 백두산을 가듯이 연길에서 용정 화룡을 지나 계속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도문에 이르게 되는데 우리 한국에서는 민족정서를 잘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윤청남 시인이 흑룡강성 오상현 출생이라 했는데 오상현이란 연길을 기준하면 한참을 위쪽으로 올라가는 곳에 위치해 있는데 흑룡강성의 성도인 하얼빈 부근이 된다.

그래서인지 윤청남 시인은 시집 후기에서도 ꡒ시 하나만을 미행하고 미쳤던 나날, 바람이 되고 등불이 되어 잡아주시고 쓸어주셨던 정몽호 선생님과 한춘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께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ꡓ고 적고 있다. 아마도 내가 잘 아는 하얼빈의 한춘 시인이 윤청남 시인의 문학청년시절 스승이기도 한가 보다.

이 시집의 약력에 보면 재미나는 표기가 눈에 띄는데 윤청남 시인은 자신을 ‘파평윤씨 32대’라 소개하고 있다. 우리 한국의 경우 어떤 시인도 시집 약력 난에 가문을 적지 않는데 이렇게 적고 있는 것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파평윤씨 32대’라 기술하고 있듯이, 비록 중국 국적을 가지고 한국을 건너올 수도 없는 운명적 삶을 살아가는 절실함 속에서 더욱 동족애와 가문에 대해서는 그 어떤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도 문고리 잡은 손놓지 않는 몸부림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시인의 시집에서도 우리들과 다른 변모를 보여주기에 언급해 본 것이다.

직장이 없는 사람은 직장을 희구하고 집이 없는 사람은 집 한 채 소유하기를 갈망하듯 자신의 조상이 존재하기에 ‘파평윤씨 32대’라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대견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파평윤씨란 중국의 성씨가 아니라 윤청남 시인에게는 모국이 되는 우리 한국의 성씨이니까 말이다.

여보
우리집 창가에
초롱을 지키고 있던 새 한 마리를
기억하고 있겠지

여보
그 연두빛이 해살을 물고
우리 신혼의 푸른 숲으로 날아왔던 그때는
어느 해맑은 봄이었던가

그리고 여보
그 연두빛이 짝을 잃고 쓸쓸했던
그 진붉은 황혼무렵은 또
어느 해 황금빛 가을이었고

여보
내 오늘 그 새를 놓아 보낸다오
꽃이 피여 구름 고운 저 하늘로
내 오늘 늦으나마 소리쳐 보내다오

여보
그 연두빛이 울음 곱던
외로움이 찬란한 그 창가를
아직 잊지 않고 있겠지

- 윤청남 시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전문.

윤청남 시인의 연변지용문학상 수상시 가운데 한 편이다. 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만주땅 시인이 갖는 정서를 이 기회에 음미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시를 상징화하여 아주 잘 쓰고 있는데 다소곳이 살아가고 있는 한 가정에 희망처럼 새 한  마리가 날아왔으나 짝을 잃고 외로움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시인은 안쓰러워 그 새 한 마리를 날려보냈는데, 그 연두빛 울음 곱던 봄을 상징하는 새 한 마리가 ‘창가를 잊지 않겠지’하며, 그나마 긍정과 인내의 자세로 노래하고 있다.

그것도 아내를 등장시켜 화법(話法)의 문체로 정겹게 엮어나가고 있는 게 특이하다. 바로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삶이 그것인데, 욕망이란 다 채울 수 없는 것이다. 그 새를 간직하고 싶으나 날려보낼 수밖에 없는 시인의 여리고 푸근한 감성이 퍽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그 새는 무얼 의미하는가. 문학작품에서 꼭 무엇이다 라고 못박듯이 규명할 수는 없지만, 인간에게 저마다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 소중한 것을 나만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깊이 인식하며 그 새에게 희망의 날개를 달아 주려하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이 잘 묻어나 있다 하겠다.

시인의 가슴에 염원처럼 생각되어지는 것은 그 새가 떠나더라도 ‘창가를 잊지 않겠지’ 하는 한 가닥 기대가 이 시를 더욱 간절하게 한다.

‘두만강 원두에서’라는 다른 시를 보면 ‘허허 넓은 진펄은/ 태초의 마을이요/ 둘러선 봇나무 숲은 작고한 조상님네/ 꿈에 비낀 모습일세/ 구슬 꿰는 물소리는/ 경상도 할머니의/ 목이 메는 사투린가/ 삐꺼억 문 여는 소리 들려올 듯 싶소/ 쿠응쿵 절구방아 소리 보여지는 듯 싶소/ 늙은 고목에 간신히 등을 기대면/ 피속 따뜻이 흐려오는 노을/ 그대여 설음이 무엇인지/ 묻지 마시라’ (윤청남 시 ‘두만강 원두에서’전문.)

이 시에서는 흐르는 두만강과 넓은 들 그리고 봇나무숲을 두고 조상님, 경상도 할머님을 떠올리고 있다. 민족의 애환이 서려있는 두만강에 대한 동족의 애환을 그려내고 있는데, ‘등을 기대면/ 피속 따뜻이 흐려오는 노을’의 심정인 것이다. 그러면서 ‘그대여 설음이 무엇인지/ 묻지 마시라’하며 운명적 삶에 대한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심사가 그것이다.

그렇다. 우리 민족에게 두만강은 어떤 강인가. 일제치하 한반도의 많은 사람들이 그 강을 건너 만주 땅으로 이주하지 않았던가. 거기에서 돌아오지 않는 강둑이 되어 이름없는 풀꽃처럼 피었다 저버리지 않았던가. 그리고 지금은 그 후예들이 그 땅을 지키며 살고 있지 않은가.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면 한도 많고 탈도 많은 민족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에겐 질긴 도라지꽃 뿌리가 있고 쓰린 버선발일지라 해도 인내하며 넘어가는 아리랑이 있는 것이다.

윤청남 시인의 연변지용시문학상 시상식과 수상소감이 있고 나서 ‘연변지용예슬제’ 제2부로 조선족 무용가들이 물동이춤과 도라지춤 아리랑 노래들이 펼쳐졌다. 나에게는 그 모든 것이 감개무량으로 안겨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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