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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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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허공멜로디

  • 김경희
  • 조회 9598
  • 기타
  • 2010.10.18 22:22
오늘도 나는 여느때와 같이 나의 서재로 쓰이는 조그마한 현관에 앉아 소설책을 펼쳐들었다. 하지만 이윽토록 시간이 지났으나 한페이지도 넘기지 못했다. 선이 분명하던 글자들이 희미하게 엇갈리면서 그우로 하나의 모습이 뚜렷이 떠올랐다. 기인 눈빛의 미소 띤 모습이였다. 순간 갓 베인 상처에 소금기가 묻었들때의 그런 아릿한 아픔이 심신을 저며온다.
___흥!
나는 히스테리적으로 보던 책을 탁 엎었다.
___무슨 일에 그렇게 성났지?
말소리와 함께 귀에 익은 발걸음소리가 들려오고 이어
___누가 순흴 성나게 했나? 하면서 크고 따스한 손이 어깨우에 놓여진다.
순간, 얼었던 가슴이 살며시 녹아내림과 동시에 말못할 비애가 마음의 구석구석을 채워왔다..
약혼을 하는것이 그렇게 좋은걸가? 그 좋아하는 모습에 나는 아픔을 느낀다.
오빠눈에 난 한낮 어린애로 비쳐드는것이다. 20대중반의 오빠는 열일곱소녀의 마음에도 봄이 찾아왔음을 모르고있는것이다. 더구나 이런 오빠한테 색시를 얻어준다고 열성보이는 엄마가 아니꼬왔다.
___엄만 참 싱거워요.
일전에 내가 엄마보고 이렇게 핀잔했더니 엄만 펄쩍 뛰였다.
조 암팡진걸 보지. 그게 엄마와의 말버릇이냐?
다정스레 내려다보는 오빠의 두눈을 일별하면서 내 마음은 바위에 부딪친 파도마냥 산산이 부서져내렸다.
아, 어쩜…

그는 나의 친오빠가 아니였다.
내가 그를 처음으로 만난것은 네해전의 어느 싱그러운 봄날이였다.
그날 하학하고 집에 돌아오니 웃방에 낯모를 청년이 아버지와 마주앉아있었다.
풍성한 바지에 티셔츠 차림인 그는 후리후리한 몸매에 아주 끼끗해보이는 청년이였다.
아버지가 손짓해 불러서 나는 웃방으로 올라갔다.
___순희야, 이분은 내 친구의 자제분이니 너 그저 오빠라 불러라.
___오빠! 나는 부끄러워 기여드는 소리로 겨우 불렀다.
___김서기께선 참 귀여운 따님을 두셨군요.
청년은 말은 아버지께 하면서도 길고 따뜻한 눈길로 나를 응시해왔다. 얼굴이 확 달아오른 나는 재빨리 몸을 돌려 정지방으로 내려왔다.
후에 그는 나의 아버지 소개로 아버지네 공장에 들어갔고 하숙도 공장합숙에 자리잡았는데 종종 우리집에 놀러 오군 하였다. 나는 차츰 그를 오빠라 부르는데 습관이 되여갔고 서먹서먹하던 기분도 점차 사라졌다.
오빠의 출연은 호수처럼 고요하던 나의 생활에 생기를 부여했다.
어느 하루였다.
길을 사이둔 련화네 집과 우리 집 문고리에 고무줄 량끝을 매놓고 우리가 한창 뛰놀기에 성수났는데 저쪽 굽인돌이에서 오빠의 모습이 나타났다. 내 마음은 금시 환해졌다.
___오빠!
환희에 찬 나의 부름소리에 오빤 밝은 미소를 띄우며 나를 바라보았다.
___순희야, 아버진 그래 집에 계시니>
___계셔요, 오빠
나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___그럼 놀아라, 나는 들어가보아야겠다하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___얘, 누구니?
련이가 호기심에 찬 시선을 던져왔다.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___응, 저인 말이야, 배초구에 집이 있는데 오빠네 아버지와 우리 아버진 총각때부터 친구래. 오빤 군대 갔다왔는데 지금은 울 아버지네 공장에서 일해.
부러움에 차 솔깃이 듣는 련화를 보며 나는 내밀한 즐거움을 느꼈다.
어쩐지 나는 더 놀고싶지 않았다.영문없이 집에들어가 보고싶어졌다.
___얘, 이만 놀자꾸나,응?
___벌써?
아쉬워 하는 련화를 뿌리치고 나는 고무줄을 감아쥐며 집으로 막 달려들어갔다.
나는 오빠가 부르기라도 한듯 한창 아버지와의 얘기에 집중해있는 오빠옆에 바싹 붙어앉았다.
___너 벌써 들어왔니?
___인젠 다 놀았어요.
그러자 오빤 다시 아버지와 중단되였던 대화를 이어나갔다.
___너 오늘 숙제 다했니?
아버지가 묻는 말에 나는 머리를 저었다.
___그럼 가서 공부나 하거라, 어른들 말에 삐치지 말구.
___아니, 그저 듣는데두 안돼요? 하고 나는 말하려다 말고 억울한듯 오빠를 쳐다보았다.그런데 오빤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할뿐 아무말도 하지 앉고있었다. 난 이런 오빠가 몹시 야속해났다.
(자기를 좋아서 옆에 앉았다가 야단맞는데두 편들어주지 않구, 흥!)
내 가슴은 온통 원망으로 가득 찼다.
그후부터 나는 오빠가 오면 숙제를 하는척 현관에 앉아있다가 이야기가 시작되기만 하면 또다시 못 참고 웃방문옆에 붙어앉아 가만히 엿듣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끝내 오빠때문에 울고야 말았다.
그날도 오빠는 여느때처럼 아버지와 담소하고있었는데 아버지가 문뜩 오빠가 어렸을때 여차여차하게 개구쟁이였다는 얘기를 들춰내여 나는 그만 듣다 못해 폭소를 터뜨리고말았다. 내가 소리내여 웃는 바람에 얼굴이 지지벌개졌던 오빠가 갑자기 현관으로 나오며 내 어깨를 콱 밀쳤다.
___너 아무데나 삐치니? 애라는게 어른들 얘기를 엿들으면서.
그 서슬에 나는 하마트면 넘어질번 했고 그래서 화난김에 두눈을 부릅뜨고 오빠를 노려보았다.
___너 성났니? 그가 어정쩡해서 물었다.
나는 발딱 일어나 씽하니 참실로 들어가며 문을 탕 닫아버리고 침대에 마구 얼굴을 묻어버렸다.
그 남자가 내게 도대체 무엇일가? 아무리 보아도 보고싶고 아무리 들어도 듣고만 싶은 말소리, 나는 자신이 미웠다. 그이 앞에서는 집식구나 련화앞에서의 그런 당당함과 여유를 보여줄수가 없고 기가 죽어있는것이 참으로 평소의 나답지가 않았다.
___순희야, 너 진짜 골났니?
어느새 왔는지 오빠가 내 잔등에 커다랗고 따스한 손을 얹고있었다.
나는 튕기듯 일어나며 그 손을 탁 쳐버렸다.
___저리 가요, 미워요. 오빠가 미워!
나의 유리부서지는듯한 소리에 오빠는 잠간 주춤하다기 인차 허허 하고 사람좋게 웃으며 내 눈물을 훔쳐주었다.
___순희야, 오빠가 잘못했구나. 이렇게 사죄하면 안되니? 정 속이 내려가지 않으면 옛다, 이걸로 날 때려!
나는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오빠가 손에 든것은 나의 필통이였던것이다. 내가 무슨 바보게 필통안의 수십대 연필속대를 놀래우면서 오빠를 때리겠는가? 나는 그만 킥 웃고말았다. 인젠 한시름 놓았다는듯 오빠는 내 손목을 잡고 문을 나섰다.
무르익은 한여름의 강변은 짙은 록음의 여파로 무더위를 밀어내고있었다.오빠와 함께 청신한 숲의 숨결을 한껏 들이마시며 잠자리를 마음껏 잡아든 나의 기분은 180도의 전환을 가져왔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집근처에서 련화와 맞띄웠다.
___련화야!
내가 먼저 소리쳐 불렀다.
___어데가 이렇게 많이 잡았니?
오빠와 나를 번갈아 보는 련화의 눈에 부러움이 가득 어려있었다.
___오빠와 같이 강변에 갔댔지 뭐!
너 우리 순희하고 한반이냐?
뜻밖에도 오빠가 느슨한 웃음을 띠우며 물었다.
그러자 련화는 어울리지 않게 수집음을 내비치며 낯을 살짝 붉히는것이였다.
___빨리 가자요.
나는 서둘러 오빠의 팔을 당기며 빠이빠이 하고 련화에게 손을 흔들고는 인차 그 자리를 떠났다.

주말이면 오빠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엄마는 물만두를 빚겠다며 아침 일찍 남새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문을 나섰다.
나는 우선 장판을 말끔히 닦고 찬장과 이불장까지도 마른 걸레질을 하였다. 마당까지 쓸고나니 더 할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전에는 종래로 없었던 일이였다.
그다음 세수를 하고 체경에 붙어섰다. 엄마의 크림을 약간 떼발라보았더니 차분한게 촉감이 좋았다. 량태머리를 풀어 한쪽으로 비끄러매니 보기가 썩 좋았다.
(이젠 뭘 한다? 그렇지.)
나는 머리를 탁 치며 서랍에서 머리삔 두개를 꺼냈다.
10분도 채 안되여 내 앞머리는 꼬실꼬실하게 지져졌다. 빗으로 몇번 내리 빗으니 구실구실한게 아주 자연스럽고 멋졌다.
___너 오늘 고와졌구나? 집두 거두고.
언제 들어왔는지 남새구럭을 든 엄마가 희색이 만면해서 나를 치하해주었다.
엄만 이런 분이였다. 꽤 엄하면서도 크게 구속을 주지 않는 사려깊은 엄마를 나는 무척 좋아했다.
엄마는 남새 구럭을 헤치더니 씻고 썰고 하면서 바삐 돌아쳤다.
___엄마, 난 뭘할가요?전에 없던 거동에 엄만 약간 눈을 치뜨더니 날더러 가서 오빠를 불러오라고했다. 이야말로 내가 희구해오던 일감이였다.
___순희 왔니?
침대가에 걸터앉아 책을 보던 오빠가 례사롭게 반겨주더니 갑자기 나를 유심히 뜯어보는 통에 나는 그만 얼굴이 화끈해났다.
___너 오늘 굉장히 예뻐졌구나.
나는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여 와락 오빠에게 달려들어 그 우람진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려 주었다.
___얘, 갈비뼈 부서진다야. 너 평생 오빨 먹여살릴래?
___네.
___이 바보야.
오빠가 식지로 내 이마를 뚝 찍어주니 그것이 즐거워서 나는 캐드득 웃었다.
열다섯평이 되나마나한 작은 방안이였지만 밝은 해살이 창문유리를 통해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아담한 칸에 침대 네개가 아래 웃층으로 정연하게 진렬돼있었는데 그중에서 오빠의 침대가 제일 깨끗하고도 정연해서 좋았고 머리맡에 만들어놓은 책 꽂이가 유표하게 눈을 끌었다.
손가는 대로 하나 집어든것이 <<홍루몽>> 1책이였다.
___오빠, 빌려줘요, 네?
오빠의 눈이 금시 커졌다.
___네가 그걸 볼수 있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는 대견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잠간 동안을 두었다가 맺고끈듯 말했다.
___빌리는게 아니야, 영 주는거야.
___야___!
나는 환성을 지르며 옆에 있는 신문지에 책을 정히 싸서 품에 깊숙이 넣었다.
오빠가 온지도 어느덧 한해 세월이 흘렀고 나는 중학생이 되였다. 오빠는 종종 나를 데리고 영화보러 다녔는데 영화가 재미있건 없건 나는 오빠하고라면 무조건 좋았다.
___너 방금 영화 재미있었니?
___재미있었어요.
___넌 진짜 영화 귀신이야, 이런 영화도 재미있다니.
조금 그닥잖은 영화를 본 날이면 의례 이런 대화가 오갔고 진짜 재미있는 영화를 본 날이면 그 정절에 대해 다시 얘기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함께 영화 보는것도 오래가지 못했다.한번은 일본 애정편인 <<사랑과 죽음>>을 보게 되였는데 남녀주인공의 숨막힐듯 지루한 키스가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긴장하고 어색해서 나는 그만 눈을 감고말았다.오빠의 옆 얼굴을 훔쳐보니 아무렇지도 않은듯한 모습이여서 좀 시름을 놓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가슴이 쿵쿵 뛰고 무엇해서 어쩔줄을 몰랐다.
그후부터 나는 다시는 오빠와 함께 영화보러 가지 않았다. 오빠가 이상해하건 말건 나는 인젠 영화보다 소설책에 더 취미가 있노라고 슬쩍 둘러댔다. 오빠는 더는 영화보러 가자고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겨울이 오고 미구하여 방학이 왔다.나는 <<홍루몽>>1책을 꺼내였다.이미 한번 읽어보았건만 또다시 읽어보고싶어서였다.나는 대옥이의 애상에 젖은 시구에 마음이 쉽게 젖어들었다. 내가 한창 국화를 쓴 대옥이의 시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대문이 여닫기는 소리와 함께 유리창넘머로 군용외투차림의 오빠 모습이 나타났다.나는 재빨리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으며 일어섰다.
___순희, 옜다. 사탕이다.
___웬 사탕이얘요?
오빠가 오늘 한턱 내는거다.
여느때보다도 훨씬 밝은 표정의 오빠를 나는 의혹의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오빤 알겠다는듯 호주머니에서 차곡차곡 접은 신문 한장을 꺼내 내밀었다.놀랍게도 3면 웃쪽켠에 오빠의 시가 실려있었다.
___와아___!
나는 기쁨을 가무리지 못해 환성을 지르며 오빠의 팔을 잡고 퐁퐁 뛰였다.
두련밖에 안되는 짤막한 시였지만 오빠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새로운 삶을 상징하는 리정표였다.
___축하해요, 오빠.
___감사하다, 순희.
나는 오빠의 이 자그마한 성공이 우연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내가 찾아갔을적 마다 책속에 차묻혀있고 늘 뭔가 끄적거리고 하냥 깊은 사색에 잠겨있는 오빠가 아니였던가. 이는 오빠의 삶의 방식이였고 지혜와 노력을 표적이였던것이다.
언제부터였는지 오빠의 이런 모습은 내 마음의 한구석에 깊이 뿌리내리고있었다.

지금 바로 그 오빠가 약혼을 하려고 서두는것이다. 아니, 오빠보다도 엄마가 더 춤추는것이다.
일하다가 온양으로 오빠의 머리가 뿌예보였다.
오빠는 외투를 벗어 내치더니 내려오는 수도물에 머리를 씻기 시작했다.
___아, 시원해!
이른봄의 쌀쌀한 날씨에 찬물에 머리 적시면서도 시원하다는게 오빠만의 언어가 아닐수 없었다.
___얘, 수건 좀 줘!
나는 냉큼 일어나 수건을 건네주었다.
___빗.
또 건네주었다.
___크림 있니? 한다
___아유, 성가셔. 오늘 오빠 괜히 이상해.하고 말하며 나는 크림 가지러 몸을 일으켰다.
___멋 좀 부리지 않을수가 있니? 선보러 가는데…
(오호, 원래는 이런 영문이였구나.)
나는 급기야 샐쭉해져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___크림 안주니?
___없어요.
___진짜?
___네.
___거참 유감인데.
오빠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실, 크림따위가 없다손쳐도 오빠의 기품에는 손상하나 없었다.
엄마가 들어와서 사촌짜리 채색사진 한장을 오빠에게 건네주었다.
___이 녀자요.
내가 흘끔 건너다보니 뜻밖에도 우리 반 영철이의 큰 누나였다.
___난 또 누군가 했더니…
내가 쫑알거리자 오빠가 다그쳐 물었다.
___네가 잘 아니?
___영철이 큰 누나얘요. 그 앤 우리반에서 공부가 꼴찌인 아둔하기 그지없는 애얘요. 그 누나라고 다를리 있겠어요?
___너 콩새처럼 짹짹거리지 말고 입 좀 다물구 있어.
엄마가 훈계해서 나는 입을 다물고말았다.
___그래?
오빠는 약간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복성스런 처녀의 사진을 눈여겨 보았는데 아까보다는 퍽 심각해진 표정이였다.
___철순 왜 애들의 말에도 그렇게 솔깃하오?영철이가 둔하다고 누나까지 둔하다는 법이 어디 있소? 또 둔한데는 어떻소? 맏며느리감을 얻는데 수더분한 녀자라야 좋지 너무 역어 빠져 되겠소?
그래서 오빠는 끝내 엄마와 같이 선보러 갔다.
반시간도 되나마나하여 돌아오는 오빠와 엄마의 표정을 보고 나는 대뜸 일이 뒤틀렸음을 직감했다. 나는 은밀한 기쁨을 느끼며 코노래까지 흥얼거렸다.
3월 중순에 나는 공부에 전력하였다. 비록 반급에선 1,2등을 다툰다지만 중점고중에 진학하자면 시름놓을수 없었던것이다.
넉달이란 시간이 번개처럼 지나가고 고중 입학시험이 닥쳐왔다.
첫과목인 수학시험을 치던 날, 오래동안 보이지 않던 오빠가 찾아와서 나는 더없이 즐거웠다.
___긴장하지 마, 네가 못 붙으면 우리 시에 붙을 사람이 없어!
내 기분을 돋구어 주는 오빠가 눈물겹게 고마왔다.
___요걸 마저 먹으렴, 응?
엄만 남은 닭알을 기어이 마저 먹으라는데 나는 딱 먹기 싫었다. 오빠가 저가락에 그걸 집어 꽂아들고 억지로 내 손에 쥐여주었다.
___너 왜 십점을 맞고싶니?  이 오빠 낯을 깎고싶어?
그 익살에 구미가 동하는것 같아 나는 냉큼 닭알을 받아먹었다.
___그럼 그렇겠지. 됐다. 인젠 어김없이 100점이야!
오빠의 표정은 금시 밝아졌다.준비가 끝나자 오빠가 시험장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문제를 풀고 첫 사람으로 시험장을 나서니 보슬비가 소리없이 내리는 운동장 저 멀리 대문옆에 한사람의 모습이 그림처럼 뽀얗게 시야에 안겨들어왔다. 그것은 틀림없는 오빠였다. 나는 뜨거운것이 가슴에서 울컥 치밀어오름을 느꼈다.
___오빠! 나는 소리치며 달려갔다. 오빠도 내쪽으로 움직이는것 같았다.운동장 중간쯤에서 만났으나 나는 헤아릴새 없이 오빠품에 와락 안겼다.
___시험 잘 쳤니?
___네.
___가자, 오빠가 시원한 랭면 사줄게.
오빠는 내 어깨를 감아안으며 대문께로 몸을 돌렸다.
포장도로에 나서니 제법 처녀티가 나게 단장한 련화가 자기보다 몇살 년상의 처녀 둘과 함께 걸어오는것이 보였다. 그 앤 작년에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뜨는 통에 초중 2학년도 채 마치지 못하고 아버지 대신 공장에 들어갔는데 오빠네 공장이였다.
___순희야!
련화가 환성을 지르며 다가왔다.
___오래간 만이야. 공장일이 재미 어때?
___재미있어. 언니들이랑 아주 잘 관심해줘.
잠간 말을 끊은 련화는 오빠를 쳐다보며 방긋 웃었다.
___어딜 가세요?
___련화구만, 오 그리구 순실이두…,어딜 이렇게 재밋게 가오?
___영화보러 가요.
련화의 대답이였다.잇달아 그네들은 사라졌다.
조선족 음식점은 조그맣고 아담졌다.음식을 기다리는 사이 오빠가 느닷없이 련화말을 꺼냈다.
___련화 그애가 아주 오되구나.벌써 그런데 눈을 다 뜨고, 무랍없이 대하려 하는데 제쪽에서 어울리지 않게 수집음을 보이니 말이다.
오빠의 말을 듣고 나는 그제야 련화 역시 공장의 오빠숭배자처녀들패에 가담한줄을 알았다. 멋진 오빠에겐 추구자가들이 많았던것이다.
(야속하다. 오빤 왜 나와 동갑내기인 련화의 감정은 알아차리는데 내 마음은 조금치도 몰라줄가?)
나흘간 시험치는 동안, 오빠는 매일 와서 위로해주고 점심을 사주었다.
성적 발표를 애타게 기다리던 어느날, 이모네 집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니 문에 들어서기 바쁘게
___순희야, 축하한다. 그럴줄 이미 알았지만.하고 오빠가 즐겁게 축하해주면 마중나왔다.오매에도 그리던 나의 소망은 끝내 실현된것이다. 아니, 소망을 이루는 발판에 오른 것이다. 중점고중에만 가면 대학은 문제없는 것이고 이름 있는 대학을 넘볼수 있는것이였다.
___오빠 덕분이얘요.
___저런, 너 이후 사업에 참가하게 되면 랭면 사준 값을 톡톡이 받아내야겠다.
그래서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나는 웃음보를 터뜨렸고 오빠도 허허하며 명쾌하게 웃었다.그날 우리는 시원한 강뚝길을 오래오래 거닐었다.
란간에 기대서서 하늘에 오연히 나래치는 제비며 밑으로 늠실대며 흐르는 강물이며 강너머 록음 우거진 이국의 푸른 산맥이며를 둘러보노라니 나의 마음은 걷잡을수 없는 감동에 젖어들었다.
나는 머리를 살며시 오빠의 왼쪽 어깨에 기대였다.
___오빠__
조용한 나의 부름에 오빠도 한손으로 내 어깨를 감싸안으며 물었다.
___무슨 생각에 그렇게 심각해졌니?
오빠 생각에.하고 나는 대답하고싶었지만 차마 이런 마음의 웨침을 그대로 발로할수가 없었다.
___오빠, 진짜 따나자니 섭섭한게 많아요. 아버지와 엄마, 동학들과 두만강바느 그리고 오빠곁을 떠난다니 더구나 마음이 젖어들어요.
오빠는 내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
오빠가 틈나는대로 널 보러 갈테니 잡생각을 말고 열심히 공부하거라. 들었니?
길옆의 꽃우로 하얀 나비 두마리가 팔랑대며 날아왔다. 뒤쫓고 쫓기우고 하는 그네들의 모습을 보노라니 내 마음은 안타까움에 빠작빠작 타들고있었다.
(오빤 바보야, 왜 내마음을 조금도 몰라줄가?)
나는 저도 몰래 부푼 가슴을 두팔로 꼭 껴안았다. 그리고 풍만해진 허벅지를 내려다보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오빠, 나도 이젠 어른이 됐어요. 완연 처녀가 된거얘요. 한번 날 자세히 살펴보세요. 오빠, 빌어요…)
하지만 오빠는 내 심정에는 아랑곳도 않는듯 전연 딴소리를 했다.
___순희, 넌 꼭 청화대학같은 좋은 대학에 가야 해. 될수 있다면 석사 공부도 하고 박사공부까지 하여 출중한 인재가 되거라. 오빠처럼 이렇게 살지 말구. 너 신심있니?
깊고 그윽하고 기대에 넘치는 오빠의 두눈을 들여다보며 내 마음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___오빠, 그러자면 적어도 10년 하나는 있어야 해요.
오빠의 못 마땅해하는 시선이 내 얼굴에 못박혔다.
___넌 이제 겨우 열일곱살밖에 안되니까, 십년 더 있어봤자 스물일곱이지, 너 벌써 거기에 생각이 미치니?
흐르는 강물을 응시하며 나는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___오빠, 그런게 아니라 그때 가면 난 임자도 없을건데요.
___아니야, 너같은 녀자를 싫어할 남자는 아마 세상에 없을거다.
___그럼 오빠…날…기다려 줄래요?
오빠는 천천히 내 어깨를 감았던 팔을 풀며 전에 없이 유심한 눈길로 나를 훑어보았다. 순간 후둑후둑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에 나는 금시 까무러칠것만 같았으나 두눈을 내리깔고 애써 마음을 전정시켰다.
__-네가 어느새 이렇게 컸니? 참 몰라보게 컸구나!
오빠는 말하면서 웃고있었으나 그 웃음이 어쩐지 나에게는 막막하고 쓸쓸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오빤 분명 나를 어른으로 보아주고있는것이다. 오빠는 종래로 이렇게 유심히 나를 바라본적이 없었다. 따라서 아버지와 얘기하듯이 장난기 없이 아주 정색하고 숙연한 태도였다. 그것이 나는 고마웠고 눈물겹게 즐거웠다…
그로부터 한주일이 지나도록 오빠는 나타나지 않았다. 숙사에 가서 물어보니 시골에 갔다는것이였다. 나는 끝내 오빠를 보지 못하고 떠나고말았다. 한쪼각의 엷은 불안이 내 가슴의 구석구석을 연기처럼 채워왔다.
연변1중에서 공부를 시작한지 달포가 되였을무렵, 나는 문득 편지 한통을 받았다. 그것은 기대하던 오빠의 편지가 아니고 엄마의 편지였다.
문안으로부터 시작하여 타이름이 뒤따른 후 오빠의 이름자가 나타났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유심히 읽어내려갔다.
___순희야, 참으로 놀라운 일도 다 보았다. 여직껏 아무 말없던 철수가 글쎄, 이번에 집에 가서 덜컥 잔치를 하지 않았겠니? 한공장의 처녀인 모양이더라…
나는 더 읽어내려갈수 없었다. 손에서 편지지가 미끄러져 떨어지고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애렸다. 오빠가 결혼을 하다니? 나는 믿을수가 없었다. 아니, 믿기에는 너무도 가슴아픈 소식이였다. 나의 뇌리에는 문득 그날 강변에서의 그 적막하고 쓸쓸한 느낌을 주던 오빠의 마지막 웃음이 선연히 떠올랐다.
오빠는 그날, 끝내 나를 포옹해주지 않았다. 린색한 오빠, 더는 말고 단 한번의 포옹이라도 남겨주었더면 그것이 열일곱살 소녀의 추억의 세계에 한오리의 훌륭한 선물로라도 되였으련만.
어뻐면 내가 흐느끼고 있는 이 순간에도 오빠는 내 아닌 다른 녀자를 껴안아주고있을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시각도 못견디게 보고싶다. 오빠가 나의 오빠가, 아니 그이가!
나는 눈물을 훔치면서 책꽂이에서 <<홍루몽>>을 꺼냈다.
나는 정히 책을 포장해가지고 우체국으로 향한 길에 나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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