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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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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산행

  • 김경희
  • 조회 9806
  • 기타
  • 2010.10.19 21:12
아스라한 산꼭대기를 쳐다보노라니 아득하기만 했다. 아버지를 따라 버섯을 따던 내 어린 기억속의 남산의 미연한 모습은 아니였다. 숲에 가리워 길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길이 없을수도 있는것이다.
    ___오르느라면 길이 보이겠지.
    그래도 남자가 다르긴 다르다 앞에서 숲을 헤치며 씨엉씨엉 걷는 남자의 미더워 보이는 뒤모습이 깊이를 알수 없는 산이 주는 공포를 반나마 날려보냈다. 시야를 가리우는 그 너부죽한 두 어깨는 내 마음에 자리잡은 산의 뒤모습이였다. 마라손경기에서 앞선 사람의 발뒤축을 보면서 달리는 두번째 선수마냥 길게 늘어진 남자의 그림자를 저며디디며 나는 바싹 남자의 뒤를 따라섰다. 그렇다고 마지막 코트에 가서 남자를 따라잡고 그앞에 서려는 의향은 결코 없었다.남자가, 좋아하는 남자가 앞에 있다는 것이 무형의 힘이 되여 옹근 나를 든든하게 해주고있었다. 걸을수록 나무가 빽빽하고 숲이 우거져 힘에 부쳤다. 잘못 들어서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전신을 휘감았다. 순간 은주가 떠올랐다. 남자들이 일생을 사업에 거는 대신 녀자는 일생을 사랑에 건다는데 가련한 은주는 길이 아닌줄 번연히 알면서도 잘못된 길로 간것이다.
    얼굴이 희다못해 병색이 내비치는 은주는 생김생은 물론 몸매와 행동거지마저 아주 얌전했다. 말소리가 부드러운가 하면 성미 또한 온화한 그녀와 락천적이고 외향적인 나, 다시 말하면 너무도 상이한 성격의 두 소유자가 어쩜 이처럼 가까이 그리고 오래 그림자처럼 지내왔는지. 물론 앞으로도 여전하겠지만, 나는 한마디로 해석하기가 어려웠다. 조용한 애여서 학교때에도 은주와 말썽을 일으키는 애가 적었지만 혹시 시비거리라도 붙으면 당하는 쪽은 언제나 은주쪽이였다. 그때마다 몸을 반쯤 돌리고 말없이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던 그녀였다.
    복속에 들어 복을 모른다고 쩍하면 술을 먹고 걸고드는 수양없는 남편 때문에 은주는 늘 우울해있었다.
    ___너 그 남자와 갈라져.
    ___애를 데리고 어딜 간다고. 갈수록 심산이라잖아?
    ___정 그러면 혼자 살면 되잖아? 그깟 남자 하나 없다고 못살겠어?
    ___아니야, 팔자가 그렇게 주어진걸 뭐. 인제 다시 간다고 좋은 델 갈 것 같애?
    ___세상에, 정신 좀 차려. 그러니까 너 늘 당하며 사는거야.
    은주는 울고있었다. 이 세상은 은주 같은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문뜩, 일매진 나뭇잎이 시야에 안겨왔다. 아, 일본싸리! 그러는 내 말을 남자가 시정해주었다.아카시아야! 나는 대뜸 어정쩡해졌다. 어린 시절부터 쭉 일본싸리로 여겨온 나무가 원래는 아카시아였나?

    산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풀이 있다
아니. 나무가 있다
어머니 가리마처럼 정답고
누나의 주름치마처럼 일매진
나의 그 나무는 어린 내 기억에
일본싸리로 익혀져왔다

고향의 산에 올라
    그 나뭇잎 만지작 거리는데
바람처럼 맞쳐오는 소리
    그게 바로 아카시아야

아닌 이름을 불러온 나와
모르면서 아는척
아카시아 이름 불러온 나와
무엇인지도 모르고 좋아한 나는
지금 산정에 서서
    내가 대체 누군지 모르겠다

    처음 남자를 보았을 때 난 소낙비가 지난 뒤의 해빛을 보았을 때처럼 기분이 들떴다. 바로 이 남자다. 가슴 깊은 곳에서 이런 울림이 전신의 세포를 흔들어 깨우며 메아리쳐 흐르고 있었다. 흔들림이 없어 내가 시름 놓고 기대일수 있는 남자, 앞에 산이든 물이든 관계없이 가야할 길이면 주저없이 성큼 성큼 나가는 이 남자를 기다려 내가 스무일곱을 먹도록 그 어떤 남자도 만나지 않고 처녀로 고스란히 지켜왔는가 싶으면서도 남자가 아직 입을 열기도전에 내가 먼저 그런 엉뚱한 제의를 했다는 것이 지금 생각에도 얼굴이 화끈해난다.
    ___왜 지금껏 약혼을 안했죠?
    남자의 시선이 따갑게 내 얼굴에 멎는 순간 난 내가 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이였다. 난 잔뜩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이 시게 파란 하늘을 무심히 쳐다보았다.
    ___남이 다 고르고난 나머지 돌이라고 생각해도 억울할것 없습니다.
    ___전 그저 돌이면 족한데요.
    남자가 날 홱 돌아보았다.. 그 형형한 눈길을 나는 피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___난 계모를 모셔야 합니다.
    ___친시어머니든 후시어머니든 저에겐 다 손등이지 손바닥은 아닌걸요.
    ___걸작인걸요.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미희씨는 어떻게 되여 여태껏 임자가 없지요?
    ___피차 일반이지요. 주어가는 사람이 없으니 남을수 밖에요.
    ___그러고보니 다리 부러진 노루 한자리에 모였구만요.
    ___하하하…
    ___호호호…
    우리는 숲이 떠날 지경으로 웃었다.

수북이 쌓인 마른 나뭇잎 때문이랄가, 높다고 디디면 무릎까지 쑥 빠져들어갔고 내가 허둥대는 사이 남자는 우리 사이를 넓혀가고있었다. 남자를 부르려고 혀끝까지 나온 말을 삼키면서 나는 바짝 정신을 도사렸는데 한창 그러고나니 얼마 안가 힘이 쭉 빠져버렸다. 그걸 알기나 하는지 고개 한번 안 돌리는 남자는 여전히 그 보폭으로 슬쩍슬쩍 숲을 헤치며 잘도 앞으로 나간다 나는 그 자리에 펄쩍 주저앉아버렸다.
    산에서 내려다보니 내가 사는 도시가 생각외로 작아보였다. 문뜩 남의 눈에 나도 이처럼 왜소해 보일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이상스럽다. 하늘은 맑게 개이고 해빛 또한 찬연하다. 내 기분과는 관계없이 자연은 제멋대로 활짝 열려있었다.

    하늘이 열리는 아침에
    계절은 찾아오고
    귀 기울이면 들리는
    망울 터치는 소리

    세파에 찌든 살결
    향기로 펴주고
    그늘진 가슴에
    꽃씨를 심어주네

    하늘이 열리는 아침에
    하늘물이 들었나
    가슴이 파랗게
틔이는 소리

    3.8절이면 의례 그랬듯이 올해도 점심은 한 과실의 동료들과 함께 나가 먹었다. 우린 좀 구석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실내 장식은 산뜻했다. 술이 둬순배 돌자 술병이 굽이 났다. 한잔씩 부으려고 복무원을 부르려던 나의 입이 굳어졌다. 며칠전에 맞선을 보았던 남자가 나의 눈에 비쳐들었다. 나와 정면으로 앉았는데 흥이 도도해서 뭔가 얘기하고있었다. 아주 낮은 음성으로. 3남 1녀중 녀자가 나와 등을 대고 앉았다. 어깨를 넘어오는 부드러운 머리채를 하얀 손수건으로 슬쩍 맸는데 아주 소박하고 산뜻해서 하얀 벽체와 조화를 이루고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다소곳하고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순간 서늘한 바람이 가슴저변을 훑으며 지나갔다. 나도 필경은 녀자구나 하고 자탄한것도 역시 그 순간이였다.
    ___멍해 뭘 그렇게 내다보오?
    누군가 나를 툭 쳐서 그제야 나는 정신이 펄쩍 들었다.
    ___아니, 아는 사람인가 해서요.
    나는 얼버무렸다. 나는 미닫이를 닫아버렸다. 그날 , 난 술을 붓지 않았다. 우리가 술상을 파했을 땐 그쪽상은 끝난지 이슥한 것 같았다. 그날 난 무슨 정신으로 집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저녁에 남자가 전화로 부르자 난 평소의 나답지 않게 자존심 같은건 구중천에 팽개쳐버리고 지정한 장소로 달려갔다.
    ___3.8절을 쇠주려구 불렀소.
    ___점심엔 뭐하고 인제야 불러요?
    ___친구 모임이 있었소.
    괜한 일에 기분이 잡친 것이 스스로도 어처구니 없다. 그날 나는 기분이 둥둥 떴다. 필경은 남자가 나를 다시 찾아주지 않았는가? 솔직히 나는 며칠을 애타게 기다렸었다.

    혼자 쥉쥉 오르던 남자가 돌아다보며 웃더니 도로 내려와 말없이 내곁에 앉았다.나뭇가지로 땅을 뚜지던 내가 느닷없이 물었다.
    ___짝 사랑 해본적 있어요?
    남자가 내 의향과는 달리 고개를 끄덕였다.
    __어떤 녀잔데요? 이야기 해줄수 있어요?
    ___고중 졸업반 때였소.
    잠간 말을 끊고 먼곳을 응시하더니 남자는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루는 학교대문에 막 들어서는데 은철이가 내팔을 잡아흔드는게 아니겠소? 그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버드나무밑에 서있는 노란 운동복차림의 단발머리 녀자애가 눈이 시게 안겨들어오더구만. 가까이에서 보니 살결이 희고 아련하게 생긴 애였는데 눔매가 곱고 눈빛도 아주 맑았소.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그녀가 바로 잃어버린 나의 반쪽이라는 생각이 들었소.
    상학종이 울리고 좀 지나서 선생이 들어섰는데 놀랍게도 그 노란 운동복의 녀자애가 따라들어왔소. 선생은 그녀를 나한테서 한줄 건너 앞줄에 있는 빈 자리에 앉히더구만. 그녀는 보과생이였소. 눈이 어글어글한 그녀를 보기만 해도 마음이 차분해났소. 노란색은 그녀에게 참 잘 어울렸소. 나의 눈은 저도 몰래 자꾸 그쪽으로 쏠렸소. 그녀는 버릇처럼 왼손으로 귀밑머리를 쓸곤 했는데 그때마다 하얀 목이 몹시도 상큼해보였소. 그녀가 우리 반에 온지 한달이 되여올 때 내 성적은 이미 많이 내려갔소. 내 머리속은 온통 그녀 그림자로 꽉 찼으니깐
    그날 선생은 다른 현시의 시험지를 가져다 친 물리시험지를 발급하였는데 반급에서 물리라면 첫손을 꼽던 내 성적이 80점도 아닌 74점일줄을 누가 알았겠소. 그런데 이때 은철이가 나를 툭 쳤소.
    ___저길 좀 봐. 93점이야.
    노란 운동복은 시험지를 보고있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93점이였소.
    ___훈인 이러면 곤란한데. 왜 성적이 급작스레 내려가지?
 어느새 선생이 내곁에 와섰소. 나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파고들어가고싶었소. 그녀를 나를 휙 돌아다보더구만. 어찌나 창피하던지.
    그녀앞에 당당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정신을 차려야 했소. 그 다음번 시험에서 나의 성적은 과연 반급의 최고점수였소.
    휴식시간이 되자 뜻밖에 노란 운동복이 내곁에 오더니 시험지를 보자고하지 않겠소? 어리덩덩한김에 넘겨주었더니 자기것과 맞춰보는 것 같았소. 그녀는 날 아주 부러워 하는 눈치였소. 나에게 시험지를 돌려주면서  그녀는 말없이 생긋 웃어보일뿐이였소. 나는 잔뜩 긴장하기만 하여 그저 받아서 책상밑에 쑥 집어넣었소.
그후 얼마 안되여 학교에서 반급과 반급끼리 축구시합이 있었소. 우리 반에서 주력인 내가 나가는 것은 결정적이였소. 그런데 생각밖으로 노란 운동복도 그날 관중석에 있었소. 나는 기분이 날듯했소. 운동장 중간에서 날아오는 뽈을 받은 나는 앞에 넘겨주지 않고 뽈을 몰고 100메터 속도로 전진했소.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지만, 아무튼 그때 나는 중간에서부터 혼자 뽈을 몰고 뚫고 들어가 멋지게 꼴을 넣었소. 먼발치에서 나는 그녀가 내쪽을 바라보고있음을 보아냈소. 그런데,  하반전에서 그만 대방의 다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생각밖에 팔이 상해서 피가 플렀소. 내가 운동장금밖을 나서니 초조해 서있던 그녀가 달려와서 하얀 손수건으로 내 상처를 싸매주더구만. 난 그렇게 고운 손을 난생 처음 보았소.
    그후부터 그녀는 수학이나 물리문제를 가지고 종종 물어보러 왔소. 문제풀이를 함께 하느라니 서로 눈길이 마주칠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황황히 눈을 내리깔았소.
    하루는 영어단어를 암기하려고 학교 수림속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그녀를 만날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소. 오후 두시의 해빛은 그녀의 노란 운동복에 수없는 나무그림자를 별처럼 수놓았소. 그것이 하야말쑥한 그녀의 얼굴과 얼마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던지. 내가 화가가 아닌 것이 너무나도 유감스럽더구만. 그녀는 손에 책을 쥐고있었지만 나무에 비스듬히 기댄채 먼곳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또 깊은 생각에 잠긴 것 같기도 하였소. 내가 다가가는 기척도 모를 정도로 말이요.
    ___무슨 생각을 하고있어?
    ___어마나…
    그녀가 깜짝 놀라더구만. 이어 얼굴이 익은 사과처럼 물이 들었소.
    ___기척이나 좀 내며 오지. 뭐야? 마치 도적놈같이.
    그녀가 가쯘한 흰 이를 드러내며 생긋 웃었소.
    ___내가 기껏 도적놈으로밖에 안 비쳐들어? 그럼 인제라두 달아나야지.
    ___아유, 능청스럽기두요.
    그날  나는 처음으로 그녀와 많은 말을 했소. 화제는 모두 공부를 둘러싸고 오갔는데 그녀는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내 말을 많이 듣는 쪽이였소. 지금도 나는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했던지 기억이 안나오. 너무 흥분됐으니깐.
    ___오늘 참 유쾌했어요.
    갈라질 때 그녀가 이런 말을 했소. 기실 진짜 유쾌한건 나였소. 나는 그녀의 비밀을 엿보았던거요.
    그런데, 이튿날 그녀는 영문없이 등교하지 않았소. 난 안절부절 못했소. 그녀에게 그 어떤 일이 생겼으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걸 떨쳐버릴수가 없었소.
    ___한주일이 다 가도록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소. 그렇다고 어디 가 물어볼데도 없었소. 사전에 그녀의 집을 알아두지 않은 것이 어찌나 후회되던지.
    그런데 어느 하루, 하학하고 강변을 지나는데 난 내 눈으로 믿기 어려운 장면을 보았소. 역시 은철이가 먼저 보았는데 그 노란 운동복이 글쎄 웬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고있었소. 우리와 눈길이 마주치자 그녀는 머리를 살며시 돌려버리는것이였소. 남자는 우악스레 생겼는데 얼굴이 검은 것이 불결한감을 주더구만. 또 나이도 많아보이고.
    나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녀앞으로 다가가서 그녀의 팔을 잡아챘소.
    ___왜 갑자기 이러는거야? 대학은 안갈거야? 저 남자한테?
    그녀는 눈물이 골똑 들어찬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돌리더구만.
    ___어디서 이 따위 새끼야?
    갈린 음성을 들은것과 뒤통수에 강타를 느끼며 정신을 잃은 것은 거의 동시였소.
    정신이 들었을땐 난 이미 집에 와있었소. 그녀는 왜 급급히 시집을 갔는지, 대학은 안가고. 그렇게 온밤을 나는 뜬눈으로 새웠소.
    그후, 나는 그녀가 다닐상 싶은 길과 골목들을 헤매고 다녔지만, 난 끝내 그녀의 혼적조차 찾아내지 못했소.
    남자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는 먼 곳에 시선을 주는 것이였다. 눈빛에 애수가 담겨있었다. 나는 가슴이 쓰렸다.그녀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가슴이 아팠다. 나의 그림자가 남자의 가슴에서 그녀를 밀어내고 비집고 들어설 자리가 얼마나 있는지 그걸 나는 대중할수 없었다.

    그날 나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은주 집에 갔다가 집안의 초상난듯한 분위기에 가슴이 덜컥했다. 은주와 은주 엄마는 눈이 붓고 목소리도 쉬여있었고, 은주 아버지는 땅이 꺼지게 한숨만 쉬고있었다. 내가 묻는 말에 은주 엄마는 그저 은주가 큰병에 걸렸다고만 알려주었다. 가슴이 스르르해서 나는 그만 은주를 와락 끌어안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바로 이때였다. 웬 남자가 찾아왔다. 남자는 다짜고짜 털썩 무릎을 꿇더니 일어설념을 하지 않았다.
    ___자넨 대체 누군데 여기 와 이러고있는가?
    은주 아버지가 물었다. 그래도 남자는 죽은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은주 아버지가 재차 물어서야 남자는 입을 열었다. 집의 따님을 나에게 줍소. 은주 아버지와 엄마의 시선이 동시에 은주쪽으로 향하고있었다.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은주의 눈이 점점 커지고있었다. 나는 갈래판을 잡을수 없었다. 문뜩 은주가 튕기듯 일어나 남자에게 달려들어 물고 뜯으며 행악을 썼다. 단추가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울렸다. 은주 엄마가 달려들고 은주 아버지도 달려들어 남자의 머리를 벽에 짓찌어놓도록 남자는 죽은듯이 몸을 내맡기고있었다. 남자가 피투성이 되였을땐 은주네도 기진맥진해졌다.
    ___죽을 죄를 졌으꾸마. 너무 욕심나 한 수작이니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합소.
    남자는 간신히 이런 말을 토했다.
    ___여봅소. 인제 다 쓴죽이 밥이 되겠슴둥? 방법이 없읍지. 저 애를 일찌감치 주고말깁소.
    인제 어쩌겠니, 그 말을 숙명처럼 따라야 했다. 인제 와서야 나는 어찌된 일인지 대개 알수가 있었다. 밤길에 은주는 겁탈을 당했던것이다.
    잔칫날, 은주는 말없이 창밖만 멍해 내다보고있었다. 그러는 은주가 가엾어서 나는 그녀 어깨를 살며시 그러안았다. 은주가 무너지듯 나에게 몸을 기대왔다. 그녀는 흐느끼고있었다.
    ___얘, 인제라도 싫으면 돌아서도 돼.
    은주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___혹시 좋아한 남자는 없었니?
    은주가 문뜩 조용해졌다.
    ___있지? 그래 누구야?
    은주는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___그 남자도 너를 좋아하니?
    ___딱히 모르겠어.
    ___좋아하는 남자가 있으면 거기에 시집가는게 옳지, 너 이러는게 아니야.
    ___그럴수가 없어, 그러면 그 남자에겐 너무 불공평해.
    ___널 진정 사랑하는 남자면 그걸 크게 개의치 않을거야.
    그래도 은주는 머리를 가볍게 저으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있었다.
    은주 엄마는 어쩌라고 은주에게 하얀 류동으로 첫날옷을 선택했는지 모르겠다. 한생 울며 살라고? 급한 김에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으리라.
    신랑이 와서 데려갈 때 은주는 참느라고 애쓰는 것 같았는데도 끝내 눈물을  쏟고말았다. 품을 넣어 한 화장이 얼룩이 갔다.

    산정에 거의 대이고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고있었다.

    창을 열면 바라보이는 산에
    한잎 두잎 떨어져 나가는 나뭇잎 마다가
    어쩌면 당신을 감싸고있는 옷가지가 아닐가요?
    언제부터 계절이 오는 소릴 가려들을만큼
내 귀는 열렸을가요
나뭇잎이 지듯 나의 세포처럼
내가 아닌 나의 옷가지들을
한잎 두잎 버릴수는 없을가요
나뭇잎이 내리는 소리는 머얼리
나를 아프게 때리는데
나는 언제고 버려야만 할 것을
꼭 잡고 놓지를 못합니까 당신처럼.

남자의 반쪽이라는 녀자, 그럼 난 남자에게 무엇인가? 마음이 어수선하다. 나의 반쪽은 그 남자라고 나의 감각은 이렇게 나를 일깨워주고있는데.
마지막 바위를 톺아오를 때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슴이 후둑후둑 뛰였다. 남자가 내손을 잡고 우로 당겨주어서야 나는 겨우 올라갔다. 산행에는 남자가 없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오르고보니 잘못 올랐다. 내가 오르려던 산이 아니였다.
 처음부터 이상한 감각이 없은 것은 아닌데, 남자를 믿고 그 뒤를 따른것이다. 주봉은 저쪽에 있었다.
 문뜩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저쪽 산에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내려오고있었다.
    ___우리도 저쪽 산에 오릅시다.
    남자는 뜻밖에 머리를 저었다.
    ___그럼 나 혼자 가요, 여기서 기다리세요.
    나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오르고보니 그 산이 옳았다.
    산정에서 사위를 둘러보니 가슴이 확 열렸다. 구름 한점 없이 파란 하늘아래 산을 안고 흐르는 강은 해빛에 눈부신 은띠를 방불케 했다. 북쪽을 향해 서니 산과 산사이로 내가 떠나온 도시가 산뜻하게 안겨오고 서쪽 산허리엔 여기저기 풀을 뜯는 소와 양들이 푸른 산을 이색하게 만들어주고있었다. 이처럼 높은 산꼭대기에 벌이 붕붕 날아예는것도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내려다보니 남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다. 가슴에 찬바람이 일었다. 생각밖에도, 아까 한무리의 사람이 사라진 그쪽에서 남자의 모습이 눈에 비쳐들었다. 혼자가 아니고 웬 녀자와 함께 오솔길 옆에 나란히 앉아있었는데, 녀자는 머리에 하얀 손수건을 매였었다. 두사람은 그린듯 앉아 먼곳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나는 아까 지나간 사람들속에 그녀도 들어있었다는걸 문뜩 떠올렸다. 밸이 울컥 치밀었다. 누구와 함께 왔는데 누구와 소곤거리고있어?
서산에 해가 지고있었다. 석양은 아름답게 타고있었다. 내가 없는 풍경과 제멋에 펼쳐진 하늘과 해빛은 나와 그처럼 멀었다. 난 문득 추워났다.
나는 남자가 나를 찾느라고 헤매며 고생 하는걸 보고싶었다. 그래서 산을 에둘러 내려왔다. 남자의 얼굴이 정면으로 보이는 순간, 난 초풍할 지경으로 놀랐다. 은주였다. 은주가 저처럼 활짝 개인 얼굴을 하고있다는걸 보아온지가 언제였던가, 남자의 눈빛 역시 나에겐 낯선 풍경이였다.
___은주야, 넌 불행한 애만은 아니였구나.
난 은주를 미워해야 할 하등이 리유도 없다. 그렇다면 동정해야 하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난 너무도 잘 알고있다.
난 형연키 어려운 심정으로 그들을 에돌아 살며시 산을 내려왔다. 혼자 소리없이 울면서. 난 나의 하산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모르겠다. 아니, 생각해본적도, 또 그럴 마음의 여백도 없다. 내가 들어서는 오솔길이 집으로 가는 길이 옳은지도 딱히 모르겠다. 마치 산을 오르느라면 잘 못 오를수도 있는것처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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