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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이동하는 종점

  • 김경희
  • 조회 9862
  • 기타
  • 2010.10.19 21:26
소년속으로

처음 보는 남잔데 낯익어 보였다.하지만 본적 있는 사람은 결코 아니였다.본적은 없는데 이렇게 낯익어보인다는것은 리해되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상한 일은 아니였다.꿈에서 보았었거나 자기의 스타일이라든가 혹은 좋아하는 누군가를 닮았다던가 하며는,아무리 본적 없는 사람이라해도 낯익어보일수는 충부히 있는것이다.내가 이렇게 생각하는것은 남자를 보는 순간,먼 기억속의 소년이 아련히 떠올랐기때문이다.
소년은 눈앞의 남자처럼 170을 웃도는 키에 마른 몸매였었다.얼굴이 여자처럼 흰 소년은,크지 않은 눈을 해살아래 쪼프릴때면 여름날의 하늘처럼 상큼하고 맑은 느낌을 주었었다.
눈앞의 남자를 보면서 난 왜서 소년이 떠올랐을가?남자에게서 풍기는 조용함과 차분함이 너무 소년을 닮았기 때문일가? 아니면 내 가슴깊은곳에서 원하는 부드러움과 차분함과 맑음이 남자와 소년과 일치를 이룬것일가?
“조문계를 나왔습니다.”
조문계를 나왔다는 말에 나는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얼마나 가고펐던 곳인가.먼 소녀적에 나는 대학생이 되고펐고 그중에서도 조문계를 나오고싶었었다.그것은 문학을 꿈꾸는 소녀에게는 망망한 밤바다 항해속에 보이는 먼 등대같은 그런 존재였다.그런 나는 결국 대학도 못 갔고 조문계는 더구나 나와 요원해졌다.
문단에 이미 발을 들여놓은 지금에 와서도, 체계적 리론을 배우지 못한것은 한처럼 남아서 가슴 깊은 곳에 아릿하게 응어리져있었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가 내가 그렇게 가고프면서도 못간 대학을 나왔고 더우기 조문계를 나왔단다.그 부러움, 뒤따르는 남자에 대한 존경심과 친근감이 나와 남자의 거리를 좁혀주었다.그래서 아까보다는 달리 난 남자의 눈을 아주 자연스럽게 마주 보고있었다.
“대학다닐때 한반에 다니는 여자애가 소설을 발표하군 했습니다.키가 자그마한 여자였는데, 그렇게 우러러 보이더라구요”
조용한 톤을 유지하는 남자의 목소리에는  존경심 같은것이 깃들어있었다.하지만 나는 남자가 채 하지 않은 말이 무엇인지도 알아들었다.나는 문학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래서 너도 존경한다…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는 일은 꽤나 신나는 일이다.괜찮은 글이 내손에서 탈고되여 지면에 나갈때면 문우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에서 나는 이런 즐거움을 종종 맛본 적이 있다. 특히 모르는 독자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는 사람을 들뜨게 했다.하지만 괜찮은 남자가 지척에 마주 앉아 이렇게 긍정해주는데는 일종 야릇한 설레임같은것도 동반되여 있어 즐거움에 무게를 한결 더해주었다.
차잔을 기울여 녹차의 담담한 맛을 음미하면서 나는 팔을 상에 얹어 두손을 맞잡고 자세를 고정시켰다.남자는 자세를 풀더니 담배를 꺼냈다.한가치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던 남자가 갑자기 나를 본다.
“담배 피워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술 냄새는 싫어 하는데 담배 냄새를 거부하지 않는것이 나로선 이상하다.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여서 길게 한모금 빨아들이는 사이,나는 남자의 아름다운 손을 흔상하고있었다.남자의 길고 미끈하고 감각적인 손, 담배를 끼운 손가락이 내눈에 아름답게 비쳐왔다.
“담배 피우시나요?”
하고 남자가 담배 한꼬치 내민다.그제서야 나는 내 눈길이 남자의 담배 쥔 손가락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음을 느꼈다.
“아니.”하고 머리를 젓는 순간 나는 갑자기 담배를 피우고싶어졌다.
“한대 피워보고싶은데 돼요?”
난생 피워본적 없는 담배를 내가 왜 초면의 남자앞에서 피워보고싶었는지는 나자신도 알수 없었다.
엷은 미소를 띄우며 남자가 담배를 건네주고 라이터를 켜 불을 붙여준다.나는 신기해서,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이 담배를 조금 빨아보았다.일단은 기침이 나왔다.하지만 목구멍에 담배 연기가 조금 넘어가자 종래로 느껴보지 못한 기묘한 감각이 들었다.기분이 홀가분해지고 정서가 안정이 되고 사유가 맑아지는 그런 느낌이였다.내가 담배를 한모금 빨고 기침을 깇고 진정이 되는것을 남자는 유심히 지켜보고있었다.
“미안해요.”
난 왜 미안하다는 말이 나갔을가?초면의 남자앞에서 여자가 담배 피우는것이 상식적으로 보아선 실례가 분명한데, 그래서 난 미안하다는 말이 나갔나보다.미안한줄 알면서도 이 남자앞에서는 어쩐지 어떤 행동도 편한 느낌이 드는것이 이상했다.
“괜찮아요.”
사실 남자는 편히 받아주고있었다.
나는 남자가 한것처럼 담배를 손가락사이에 끼웠다.그리고는 남자를 바라보았다.그러는 나를 보며 남자는 웃었고 나도 마주 웃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아까 보다 많이 친숙해졌다.
“대학을 나오고 현조선족중학교에 교원으로 배치를 받았었습니다. 하늘이라도 뚫을듯 싶은 혈기를 가졌을때니깐, 뭐나 잘하느라고했죠.”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남자는 담담했다.남자가 혈기 충천한 젊은날의 모습이 나는 떠오르지 않는다.조용하고 차분하기만 한 사람이 열성을 부리는 모습은 낯설었으니까.외향적인 내가 오히려 훌륭한 청중이 되였다.내성적인 남자가 분명한데, 좋은 청중잡았을때 하고펐던 말을 다 쏟기라도 하고펐다는듯이 남자는 긴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주었다.
“그러다가 현위에 좋은 자리가 나졌죠.그 자리를 보고 학교에서 나와 현위에 옮긴건데, 뜻대로 원하던 그 자리에 못가게 되더라구요..”
남자의 표정에 어둔 그림자가 떠올랐다.그때 당시의 쓸쓸하고 막막하던 감각이 아프게 남자를 찔렀으리라.
“일이 꼬일라부터는 연이어 꼬이더라구요.짜증이 나서 싹 버리고 훌쩍 나와버렸습니다.”
남자는 말을 여기서 끊었다.긴 이야기를 서두르지 않고 짧게 해냈다.
“그리고 나서 출국을 했던거에요?”
나는 남자가 한국에가 오래 있다가 돌아온지 얼마 안된다는걸 알고있었었다.
남자가 머리를 끄덕여보인다.그러면서 담배 하나 또 새걸 붙여문다.그 어떤 의식을 치르듯 성스러워 보이기까지하는 남자의 우아한 손놀림과 어둡지만 조용한 표정이 나는 은근히 멋져보였다.
“아내가 그러잖아요, 괜찮은 남잔줄 알았는데 아니라구요.”
그 말을 하면서 남자는 막막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냥 마주 웃어주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하지만 속으로 나는 이만하면 진짜 괜찮은 남자인데 그 여자는 왜 괜찮은 남자와 살면서 괜찮은줄 모를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남자가 한국에 가 있는사이, 아내도 미국갔다고했다.전번에 와서 한 달포쯤 있다가 갔는데, 고중 나온 딸애를 미국에서 공부시키겠다고 데리고갔다고했다.
“오래 갈라져있다가 만나니 많이 서먹서먹한거 있죠.”
남자는 담배연기를 뿜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러는 남자에게 왜선지 안쓰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갈라져있지 말아야죠.”
나는 마치 자신은 뭔가 다 정확히 하는투로 말을 하고있었다.어느사이에 내가 남자와 이렇게 허물없는 사이가 되였단말이지?
“내가 남편구실 못하니까 그렇게 된거죠.그렇지 않았다면 아내도 미국 안갔을거구.”
남자는 뜸을 들이고 말을 잇는다.
“그 생각을 하면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듭니다.진짜 미안하다구요.”
나는 남자의 표정에서 그의 말의 절실함을 읽었다.
“그럼 인제 어찌해야죠?”
남자는 담담히 대답했다.
“뭔가를 하긴 해야겠는데 아직은 생각이 잡히지 않습니다.”
남자의 말에 그제야 난 내가 남자를 만난 이유가 생각났다.난 남자에게 다단계판매를 권유하려구 만남을 생각했었고 또 이렇게 만남을 만든것이다.
하지만 만남을 약속하고나서 갑자기 그 어떤 느낌이 간것인지, 엊저녁 남자는 전화에서 물었었다.혹 다단계를 하느냐구, 그래서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자긴 그쪽엔 의향이 없다고 분명히 말을 끊었었다.
여자로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가 퇴자를 맞는다는것은 체면 깎이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서너번의 챗팅에서 받은 느낌이 좋았던지라 나는 대뜸, 다단계를 떠나서 만나는것은 괜찮지 않냐구 했다.남자는 대답을 했고 그래서 만남은 이루어진것이다.
만남의 목적을 내가 깜빡할만큼 대화는 편했고 사람도 감각이 좋았다.나는 리성적 사고보다는 감각을 믿는 사람이다.
나는 남자에게서 오는 꾸밈없는 맘 가짐이 좋았고 차분함이 좋았고 자기 표현에 급급해 하지 않는 담담함이 좋았으며 상대의 말에 귀기울이는 모습이 좋았다.솔직히 남자가 내 말에 귀기울여주는걸 좋아한다는것이 어쩜 내 허영심의 표출일지도 모르지는 않지만 이것이 사람이면 다 갖고있는 공통점일수도 있지 않을가고 난 생각한다.그리고 남자가 내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자체는 그 어떤 예의를 떠나서 남자는 어쩜 진짜 내말에 쏠려서 듣고있을수도 충분히 있으니까.
아니, 남자는 내가 남자말에 끌리듯이 그도 나의 말에 끌리고있었다.그것은 내 감각이 말해주고있었다. 내 감각은 적중하니깐.오래전부터 난 그렇게 믿고있었다.
“생각이 잡히지 않으면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이것은 헛말이 아니였다. 뭘 하든지 천천히 생각해서 결정을 하고 일단 결정을 하면 정력을 집중하여 내밀어야 하는것이니깐.내 욕심은 남자로하여금 다단계를 했으면 하나, 내 욕심같은걸 떠나서 난 남자의 의도를 존중해야 했다. 남자는 분명히 자기는 거기엔 관심이 없다고 표명했지 않은가? 인제 나는 남자와 다단계를 련계시키지 않기로 했다.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정확히 말해서 남자가 나에게 태도를 분명한 후에도 말은 그렇게 하고나서도 나는 그래도 단념하진 않은 상태였었다.내가 아는것을 다 동원하여 아직 할일을 택하지 않은 남자에게 내가 하는것을 함께 하게 마음을 움직이게 할것을 생각하고있었다.하지만 남자를 만나고나서 내 생각은 변했다.
이 남자는 사업같은걸 떠나서 그냥 만나도 좋은 사람이라는것을 나는 느꼈던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하이네의 창가의 창백한 얼굴의 소녀이며 도연명의 국화며 김소월의 진달래며 윤동주의 서시며를 흥이 도도해서 이야기했고 남자는 내가 들먹이는 이름들을 알고있었다.그래서 대화는 물이 흐르듯 한곬으로 잘도 흘렀다.마치 물이 흐르듯이…
그 흐르는 물속에는 소년과 소녀의 모습이 빗겨있었다.시 한수를 놓고 소설 한편을 놓고, 아니 지금 돌이켜보면 내놓기 부끄러운, 그러나 열정이 들어있는 글들이였지만, 그걸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던 소년과 먼날의 나의 모습이 해빛아래 맑은 물속에 굴절되여 흔들리고있었다.소년의 모습은 때로는 소년으로 때로는 남자로 엇바뀌여 내앞에서 흔들리고있었다.
남자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나의 생각을 소년에게로 향하게 한것이다.그건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것이였다. 그리고 어쩌면 남자와 소년에게는 아주 미소할지라도 나의 일부라고 할수도 있는 어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는것임에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한다.보이지 않는 나의 일부때문에 나는 먼 소녀적에는 소년에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에는 눈앞의 이 남자에게 끌리고있는지는 아닌지 모르겠다.

흔들리는 섬

그렇게 한번 만나고나서 전화 연락은 드문히 있었지만 누가 먼저라없이 둘의 연락이 없어졌다. 특별히 찾을 리유가 떠오르지 않았고 문득 찾아가서 바쁘게 군다던가 페를 끼친다던가 그런것이 게면쩍었다. 또 다른 하나는 필경은 가정있는 남잔데, 일없이 찾기도 별로 신통치가 않았다.그러는 사이 시간은 반년이 흘렀다.
그러다가 어느날 가슴에 다가오는 소설책을 읽다가, 책장을 번지는 어느 찰나, 남자가 갑자기 떠올랐다.
나는 갑자기 남자에게 전화를 하고싶었다
“안녕하세요.”
생각밖에 남자는 내 목소리를 즉각 알아들었다.그것이 고마웠고 즐거웠다.
“어떻게 지내는가 전화드리고싶었어요.”
“저두요.”
둘다 서로 속에 서로를 깨끗이 잊어버린것은 아니였다.
이런 말 저런 말 오가던중 남자가 하는 말중에 내 귀를 솔깃이 하는 한마디가 있었다.
“인제 첫눈이 오면 만나요.”
나는 가슴이 부풀었다.
“그래요, 연길이든 도문이든 눈이 내리면 만나기로 해요.”
“네. 첫눈이 오면 우리 산책도 하고 사진도 찍고 술도 시름놓고 마시고 그럽시다.”
눈이 하얗게 내리면 하늘도 땅도 나무잎도 하얗게 눈부시겠지, 그 눈부신 속을 눈처럼 차분하고 내성적인 남자와 어깨 나란히 거닐고 사진찍고 술 마시는 상상이라니…..
“근데, 저 한국 수속이 내려왔습니다.”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럼 언제 떠날건데요?”
“천천히 갈려구요, 석달전에 가면 된다니깐..”
남자가 한국 가게 된다는 말에 나는 리유없이 마음이 급해졌다.만나고 싶어진 나는 이튿날 일도 없으면서 남자에게 련락했다. 일이 있어 연길 가니깐 시간을 내달라고.
남자는 나보고 식사를 뭘로 하겠냐구 물었다. 난 아무생각없이 맥주를 마시자고했다. 사실 맥주를 마시면 난 왜선지 얼굴이 뽈처럼 통통 부어오르고 소변이 막힌다. 그래서 난 많이는 못 마신다.그러면서도 마실수 있는것은 또 맥주밖예 없다.그 이상 독한 것은 나는 신심이 없으니깐.
남자는 나를 깨끗하고 분위기가 우아한 명태집으로 안내했다.
그 매운 명태찜에 맥주를 마시는데 술이 약한 나는 나답지 않게 그날만은 맥주를 잘 받아넘겼다.그러느라니 얼굴이 발가우리해졌고 기분이 둥둥 떴다.
“쌈 사줄가?”
상추쌈을 천천히 싸면서 남자가 자기에게 혼자 하는 말처럼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나는 분명히 그말을 들었다.나는 아주 짧은 시간을 주춤했다.하지만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남자가 싸서 입에 넣어주는 상추쌈을 먹는데 익숙하지 않은 나는 선뜻 대답을 할수가 없었다.또한 대답을 하면 그에 뒤따르는 상황을 예측할수가 없었다. 음식을 입에 넣어줄 사이라면 조금 더 나아가면…?
하지만 남자가 정작 쌈을 산것을 자기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나는 그 어떤 실의를 느꼈다. 대답을 안했어도 나는 남자니깐 주동적으로 나에게 쌈을 건네줄것을 은근히 기대했었던것 같다.그 서운함이라니…
한편, 말을 꺼냈다가 내가 응해주지 않아서 느낀 남자의 실망은 또 얼마나 클가.하지만 남자는 내 생각까지도 넘겨짚어야 했었다.이것이 도를 벗어난 행위인것을 남자도 나도 알고있겠지만, 아니, 행위라기보다는 그 행위속에 웅크리고있는 생각이나 바램같은 그런 보이지 않는것들이 무서웠지만, 그 순간 우리는 서로가 그것을 원했던것만은 사실인것 같다.
나중에 돌이켜보아도 그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였는지 모른다.아내를 담론할때의 남자의 표정과 억양, 딸애 이야기를 할때의 남자의 눈빛같은것에서 나는 우리가 아무리 가까워지고싶어도 넘어서지 못할 벽이 있다는것을 절감했다.
그것은 하얀색상이였다.투명한속에 깃든 순백같은것이였다.그것은 남자와 나 사이의 3.8선같은것이였으며 남자도 나도 누구도 선뜻 그걸 깰 념두도 못했거니와 거기까지 감히 생각을 못했었다.아니, 아주 순간적으로, 떠올려보았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투명한 남자,부끄러워서 나는 애매한 맥주만 자꾸 들이켰다.
밖에 나서니 이슬비가 소리없이 내리고있었다.
이슬비는 자취없이 내려서 내 옷깃을 적시고있다. 그렇게 소리없이 차분히 내 얼굴에 내 어깨에 떨어져내려서 가슴속 깊은 곳까지 차분히 적셔준다.
나란히 걷다가 고개를 돌려 남자를 보았다.담담한 미소를 머금고있는 남자, 그의 눈길에는 이슬비처럼 부드러운 미소가 담겨있다.
너랑 같이 걷는 지금 난 너무도 좋다. 그의 눈은 그렇게 말을 하고있다.
저렇게 우아하고 분위기 있는 사람의 눈길을 받을만큼 나는 아름다운 녀자일가?
“저혼자 인젠 길을 아니깐 먼저 돌아가시죠..”
하는 내말에 그는 나에게 피끗 시전을 주며,
“진짜? ”
하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웃음을 머금는다.
“당신을 념려해서! ”
하는 나의 말에,
“조금이라도 함께 걷고싶어 그러는데….”
하고 대답한다.
순간 솜사탕을 입에 문득 달콤함이 전신에 구름처럼 피여오른다.
“당신같은 신사가 저처럼 수수한 녀자랑 함께 거니면 당신 위상이 내려가질 않나해서…”
하는 나의 말에,
“아니지, 경희같은 녀자와 함께 거니다는것만으로도…”
그는 나에게 존경하고싶은 녀자란 말을 습관처럼 하고있다.소년같은데가 엿보이는 남자!
나는 휘친했다.남자가 날 부축해주려고 손을 내밀다가 내가 몸 가누니깐 손을 되가져가는것을 나는 보지 않고도 옆시선으로 느꼈다.
필경 그는 남의 남자다. 그렇다, 그는 다른 여자의 남자였었다.
나는 쓸쓸해지려하고있다.
“인제 가면 언제 오시나요?”
내가 왜 가기도 전에 온제 오냐구 묻고있는걸가 어쩜 이것이 떠나기전의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한것이다.
“거야 알수 없지만, 올일이 있으면 와야죠.”
그 말을 하면서 남자는 나를 본다.한껏 부드러워진 눈빛이다.
“무슨 올일?”
내가 남자눈을 정시한다.
“경희 보러…”
나는 가슴이 설레였다.남자입에서 불려지는 내 이름이라니…,남자를 쳐다보자 남자는 웃는다.그 웃음의 진미는 무엇일가?
“롱담!”
시선을 돌리는 남자,보고싶다는 말이 롱담이란다.나는 쓸쓸해진다.그는 진짜 긴 시간 나를 못 만나도 만나기 싶지 않은가봐….나는 아닐거 같은데…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어느사이 내가 이 남자에게 마음을 기울이고있는것일가,근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
옷깃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휘친거린다.
“힘내, 오빠가 지켜줄게!”
그소리는 바람속에서 아스라니 들려오듯, 남자가 자기혼자 되뇌이듯 한 말이지만 나는 들었다.
“오빠라 부르고싶어요 되죠?”
나는 왜서 그를 오빠라 부르고싶어졌을가!남자가 그러라고 머리를 끄덕였고 나는 하얗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며칠후, 남자는 나에게 전화를 쳤다.
“어떡하죠? 내일 갑자기 떠나게 돼서요.”
나는 너무도 돌연스런 감을 느꼈다.그리고 뭔가 잃어버리는듯한 허전함을 느꼈다.
“왜 갑자기…”
나는 뭐라 말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일이 그렇게 됐습니다.저쪽에서 일을 찾아놓았으니까 당장 건너오라네요. 뭐 크게 준비할것도 없고 그냥 내일 가기로 했습니다.”
남자는 조용하게 말했지만 나는 억울했다.그래도 한번쯤은 가기전에 만나고가야 도리가 않을가? 하지만 그 도리란것이 대체 무엇인지 나도 몰랐다. 그냥 나의 느낌이였다.남자는 나와 약속없이 이렇게 문득 떠나는것이 남자는 진짜 아무렇지도 않을가?서운했다.
남자는 갑자기 떠났었다.첫눈의 약속을 뒤에 남기고 단풍이 짙어가는 무렵에 남자는 내가슴에 그리움만 애잔하게 남겨놓고 한국으로 훌쩍 떠나갔다.
그러고보면 그날의 나의 연길행은 얼마나 다행한것인가!

빗나가는 초점

열두시간이 지나서 점심 열두시경에 전화기를 타고  익숙한 목소리가 내 가슴을 적셨다.
“잘 있어?”
한국에 가서 걸려오는 첫 전화였다.
“힘들지 않어요? ”
내말에 그는 글쎄…,한다.
글쎄, 내 말에 그는 글쎄라는 표현을 참 잘 쓴다.
“명태집 생각이 나는데…”
넌 그에게 명태집 생각이 난다고했다. 우리는 늘 명태집에서 만났지.
“그럼, 그 명태머리 순대도….”
나도 명태머리 순대의 그 감칠맛이 생각났다.
“나 인제 혼자 명태집 찾아갈게요. ”
난 왜 그런 말 했을가?
그는 의아해했다.
난 오빠 생각이 나면 명태집가 오빨 떠올릴 생각인데,속으로 이런 말을 되네인다. 그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종종 련락할게! ”
그렇게 그는 전화를 마무리했다.
보고픈 사람…가슴이 아릿하다.아련한 그리움이 인다.
일요일이면 남자는 어김없이 컴에 오른다.시골에서 일한다는 남자는 휴일이면 시내에 가서 pc방을 찾는다.
근데 진짜 같은 시간에 동시에 챗팅방에서 만난다는것은 쉽지 않은 일이였다.그리고 하루는 내가 급한 사정이 있어 오르지 못하는것도 모르고 그는 꽤나 긴 시간 날 기다렸었다.
남자가 나에게 만남을 갈망하는 크기만큼 나는 그 어떤 강한 구속감같은것을 느꼈다.왜서인지 조금 언짢아지고있었다.
그러던 남자는 컴퓨터를 갖추었다.그리고 나보고 메신저 하나 등록해 달라고했다.이런 련락은 물론 남자가 국제전화로 했다.언젠가 한번 아무것도 모르고 한국에 남자에게 전화를 했다가 얼마 안한것 같은데 200원인민페가 훌쩍 날아간후로 나는 어지간해서는 그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근데 정작 메신저로 서로 대화를 시작해서도, 그의 타이핑이 어찌나 더딘지 안타까웠다.근데 대화를 시작하면 그는 언제나 컴퓨터에 관한걸 나에게 묻군 하는데 사실 나도 컴퓨터에 대해 숙맥이였던지라 꽤나 짜증이 났다.
“한멜 하나 만드러줄래?”
남자에게 한멜 하나 등록해주느라고 난 꽤나 애를 태웠었다.그후로 그가 컴에 대해 뭘 묻는것 같으면 나는 아예 모른다고 잘라버렸다.
나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아니, 그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자기의 가장 약한 면을, 아니 가장 부족한 모습을 적라라 하게 내게 보인것이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나는 메신저서 남자를 만나는 일이 점차 덤덤해졌고 차차 남자에 대한 그리움같은것이 담담해져갔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서먹서먹해져갔고 서로 멀어져갔다.그러다가 언젠가 부터는 연락이 뚝 끊어졌다.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그렇게 소리없이 끊겼다.남자가 내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나는 의식치 못하고있었다.나는 그냥 그도 여느 사람들처럼 곁에 있으면 만나고싶고 눈앞에서 멀어지면 곧 잊혀지는 그런 사람인줄로 알았다.
남자는 아마 나의 이런 심드렁함을 느낀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멀어져가는 나를 잡지를 않았다.필경 우리 사이엔 그 어떤 약속같은것은 없었으니까.그런것이 있을 계제도 못되였고.그저 나의 남자에 대한 무관심이 남자에게 보이지 않는 상처를 주었을거라는 죄책감같은것이 느껴졌다.하지만 그것도 잠간이였다.
날이 감이 따라 나는 또다시 외로움에 익숙해졌고 남자를 떠올리는 횟수가 점점 적어졌다. 아울러 남자의 그림자는 내 일상에서 점차 아스라니 희미해져갔다. 나무잎이 나무에서 떨어져나가듯이 기억이 희미해져갔다.
그 틈서리를 비집고 한 남자가 나에게 친구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정열적이고 적극적인 남자였다. 나는 나에게로 다가오는 그 남자를 하나도 경계하지 않았었다.
그 남자와 마음의 방선이 무너진것은 강변산책길에서였다.
꽃향기가 진동하는 여름날의 밤 강가를 나란히 거닐며 나는 홀가분함을 느꼈고 나답지 않게 내 삶의 아픈 모습들을 보였다.약한 모습을 보인것이다.그것은 금해야 했었던것들이였는지도 모른다.친구라해도 필경은 남자가 아닌가.
문득 남자가 입을 다문다.열정적이고 외향적인 남자가 입을 다무는것이 난 당혹스러웠다.
“그렇게 밝은 겉모습속에 그런 보이지 않는 아픔이 있었나요?”
그런 말을 하며 남자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어깨를 한팔로 감았다.나는 숨이 딱 멎는것 같았다.잠간 그렇게 주춤 했을 뿐 아무 내색도 내지 않았다.남자도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할말을 그냥 했고 그날은 그렇게 흩어졌다.
집에 돌아와서 그날 밤 난 잠을 이루지 못했다.남자의 팔이 내 어깨를 휘감던 그 느낌이 살아숨쉬듯이 잠자던 내 세포를 깨우고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우린 다시는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근데 그러고나서 한주일 지나서인가 우리는 또 만났고, 강변을 다 내려와서 달빛아래 서로 막 갈라져야 하는 시점에서, 전날 그랬듯이 남자는 또 한팔로 내 어깨를 감쌌다.그 찰나, 난 왜서 그랬을가?
난 기다렸다는듯이 몸을 돌쳐 남자가슴에 가슴을 대였다.남자가 날 안은 팔에 힘을 준것은 직후였고 우린 아무 말없이 그렇게 아주 잠간, 일이분쯤 그렇게 누구도 말없이 서로 꼭 가슴을 대이고있었다.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남자의 가슴이였다.
남자를 감아안은 내 손에 남자 잔등의 단단함이 느껴지는 순간 나는 가슴이 세차게 뛰였다.당혹해서 난 몸을 뗐다.남자도 선선히 풀어주었다.솟아오르는 해가 바다위에서 힘들게 떨어지듯이 나는 무게같은걸 느꼈다.
“친구라했잖아요? 이럼 안되죠?”
내 목소리에는 억지같은것이 깃들어있었다. 남자도 낮은 소리로 힘없이 말했다.
“그럼요.육체적인것은 잠간이지만 정신적인것은 영원한것이잖아요.”
그 말을 하는 남자는 말을 하고있다기보다는 성전같은것을 외우고있는 중학생같아보였다.아니면 진짜 남자는 그럴것인가?
남자는 어쩜 리지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남자 음성의 무기력함을 읽었다.
그 며칠후 우린 또 만났다.그번의 만남에서, 남자는 전에답지 않게 날 포옹해왔다.난 안깐힘을 쓰며 거부했다. 남자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으려했고 난 있는 힘껏 얼굴을 돌려버렸다.싫진 않지만 난 본능적으로 피하고있었다.
“왜죠?”
남자가 묻는다.남자가 내눈을 가까이서 들여다본다.
“왜서죠?”
건 내가 묻고싶은 말이였다.부끄럽다.하지만 난 할말을 했다.
“언제부터 절 갖고싶단 생각 한거죠?”
“그날부터요, 가슴을 맞대인 날…”
나는 남자를 활 밀쳤다.
“친구한다면서 왜 강변에서 절 안은거죠? 그러니까 저 흔들렸고 먼저 그렇게 안으니까 저 안기운거 아닌가요?”
인제 와서 이런 말이 무슨 필요하겠냐만은 남자의 다음 말에 나는 아연해졌다.
“전 같은 남자를 어깨 안듯이 그렇게 안은것뿐이라구요. 두번 다…, 근데 저에게 몸을 돌쳐 확 안겨오는거있죠, 가슴이 그렇게 맞대인후부터 이렇게 마주서면 평온하게 만날수 없는거 어떡하나요?”
난 놀라도 어지간히 놀라지 않았다.세상에 이럴수도 있단 말인가?하지만 난 남자의 말을 믿었다.그의 눈빛에는 추호의 거짓같은것이 보이지 않았다.
“와, 그렇게 말하면 제가 그럼 먼저 안겨버렸다는 얘기네요? 이걸 어떡하지?”
나는 진짜 경악했다.
“그날 그렇게 갈라지고와서 꿈에 당신을 보았어요. 아침에 깨여나니깐 몽정을 한거 있죠….그후로 당신이 친구 아닌 여자로 보이는거 있죠. “
나는 아무 말도 나가지 않는다. 역시 아내가 외국간지 여러해가 되는 남자, 여자없는 생활에 진저리가 났을 남자, 그런 남자를 친구로 생각할수 없었던것도 아니였다.거기까진 괜찮은것 같았다.
문제는 나였다.남자가 끌어당겨도 뿌리쳐야할 내가, 그냥 자연스럽게 어깨를 감았다는 남자를, 내가 제멋대로 남자가 날 끌어안는것으로 착각하고 그대로 안겨버렸다는그것이다. 왜 그런 착각을 한걸가, 내가 오히려 그쪽으로 더 원했던것이 아닐가,언제부터 나는 이렇게 절제할줄도 없는 여자가 되였던것일가, 이러한 생각을 굴리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이 참 많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 실수는 찰나였지만, 만회할수 없는것이였다. 인제 다시 남자는 나를 예전처럼 담담히 대하지 못하리라
그렇게 그날은 남자를 어정쩡하게 뒤에 남겨놓고 나는 뛰쳐나왔다.머리가 뒤죽박이이였고 가슴이 들뛰였다.
그리고 며칠후 남자가 나를 만나자고하자 나는 만나주었다.이번의 만남은 여느때보다는 색체다른 만남이 될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귀신에게 홀리운 여자같이 난 나가버린것이다.그러는 자신이 나는 낯설었지만 나는 자제하지 못했다.나는 자신이 참 부끄러웠다.하지만 그 부끄러움과 자책감과 죄책감같은건 남자와의 랑만을 익혀가는가운데 점점 잊혀져갔고 희미해갔다.
나보다 두살 아래인 남자, 그는 말을 할라치면 흥이 도도해 하는 남자였고 사람을 바다볼때는 정이 함뿍 담긴 그런 눈빛의 남자였다.축구를 좋아했다는 남자,그를 마주 안으면 나는 몹시 설레였다.
남자는 내 손을 꼭 잡고 강변과 숲길을 산책했고 강물을 끼고 야외로 드라이브도 했으며 오늘은 훈춘의 옛도로로, 내일은 일광산으로 곳곳에 우리 랑만의 자취를 남겼다.
“천당에 보내줄게요.”
남자는 함께 할때면 곧잘 이런 말을 했다.천당은 실체가 아니였다.그것은 보이지 않는 불꽃이였고 감각이였다.아니, 그것은 둘이 부딫쳐 하나로 타버리는 소리이기도했다.그럴때면 나는 해빛속에 산산히 부서지는 나를 보기도 했다.
그러고난 후면 남자는 나를 꼭 안고있었다.혹은 마주, 혹은 뒤에서, 특히 뒤에서 나를 꼭 안을때면 남자는 몸과 머리를 내 몸에 꼭 대이는데 그럴때면 나는 세상 전체가 평화에 잠기듯 마음이 평화로워졌다.그리고 잠들었다.
함께 하기 참 멋진 남자, 마치 꿈만 같은 나날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날,남자로 부터 전화가 왔다.
“와이프가 돌아왔어요.”
나는 많이 놀랐다.
“언제 가죠?”
“아프다네요. 다시 갈것 같지 않네요.”
순간, 나는 꿈에서 깨듯 소스라치게 놀랐다.아름다웠던 시각들은 인제 다시 없을거라는걸 나는 예감했다.인제 다시 있으면 안되였다.인제 나는 남자를 그 여자에게 돌려줄때가 된것이다.
“그럼 우리 인제 다신 만나지 말아요.”
이 말은 가슴에서 우러러 나는 말이 아니다.그렇게 밖에 말할수 없는 상화이 온것이다.나의 말에 남자는 대답했다.
“그래야 겠죠.”
예상했던 대답이였지만, 그리고 내가 먼저 제기한 말이지만, 그 대답은 나를 슬프게 했다.남자는 결국 내 남자가 아니다. 그는 남의 남자다!그걸 나는 잠깐 깜빡했을뿐이다.
우린 연락을 딱 끊어버렸다.마음으로 그 남자를 영영 깨끗이 잊을수 없음을 나는  알고있지만 나는 잊어야 했다.잊기엔 내 몸에 내 기억속에 그의 흔적이 너무 력력했다. 시간이 그걸 천천히 없애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내 삶에 웃음을 선사한 남자, 내가 여자임을 의식케 해준 남자, 하지만 그는 내 남자가 아니였다.
긴긴 아픔과 곤혹이 이어졌다.나는 아내있는 남자와는 결과 없음을 절감했다. 아니, 그걸 전에도 모른것은 아니였다.곡혹스러움도 아픔도 있었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후회하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감각이 였기에.
인제 다시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는것으로 난 나를 용서하기로 했다.인제 다시 내 남자가 아닌 남자에게 시선을 머무는 일은 않기로 했다.

지평너머의 부름소리

신열이 났다. 전등을 켜고 서랍을 뒤져보아도 해열제 같은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시게를 보니 밤 아홉시 반을 치닫는데, 약방이 문 열려있을리 만무한 시간, 갑자기 공포가 엄습해온다.이대로 혹…, 그런 생각에 오싹해진다.
누구든 부르고싶다. 갑자기 그 남자가 생각난다. 하지만 그를 부를순 없었다.그 남자곁에는 지금 그의 아내가 있다.
갑자기 아무에게라도 전화를 걸고싶다. 그래서 상해에 있는 딸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있니?”
“응, 엄마는?”
“나두 잘있지.”
애 목소리를 들으니 즐거워지고 아픔이 가신듯 없어지는듯하다.짐짓 목소리를 밝게 내느라 노력할 필요도 없이.
“근데 혹 무슨 일이 있는건 아니야?”
“아니, 그냥 니 생각이 나서.”
“그래, 나두 엄마 보고싶은데.”
“얘가, 널 사랑한다.”
“나두 엄마 사랑해.”
“잘 있어라!”
“엄마, 내 걱정은 마, 돈 걱정도 마, 앞으로 연구생공부하거나 출국할 일이 있더라도 내 일은 내절로 해결할테니까, 노트북 사게 되면 아르바이트 하나 장학금쪽으로 방법 대겠으니까 엄마 속 태우지 마, 걱정안해도 돼.”
애의 말을 듣고있느라니 가슴이 뭉클하다.전화기를 놓고나서도 가슴이 따뜻해난다.
애가 언제 벌써 저렇게 컸나? 눈물이 난다!
아픔이 조금 가시니 피곤기를 느낀다.눈 꺼풀이 무거워 눈이 떠지지 않더니 정신이 흐리터분해진다.
하늘이 짙푸르게 맑은 날씬데 나는 산길을 걷고있다.내 곁에는 내가 아스라니 잊고있던 조용하고 차분한 남자가 나란히 걷고있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돌아왔지?”
“경희 보고퍼 왔지.”
어쩐지 그가 피로하고 맥없어 보인다. 그래서 가방에 전에 넣어두었던 썬보 한알 있던거 내드렸다. 이걸 드세요…그리고 나도 입에 한알 넣었다.
그가 깨물었다. 조건반사랄가 나도 깨물었다. 비릿했다.
“올해의 비린내군.”
그는 이 영양품이 새로 생산한것이군요 하는 말을 그렇게 한다.그래서 난 웃었다.
“오빠 때문에 나도 깨물었어..물로 넘겨야 하는거 아니야?”
난 왜 갑자기 그를 오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그런 나를 보며 그는 씽긋 웃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달리고있었다.
저 앞에 갈림길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있었다.
“저네들이 우리를 기다려, 어서 가자.”
 말하면서 앞에서 뛰던 나는 문득 뒤에서 그가 자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돌아다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그가 들었던 배낭이 뒹구는데, 마개가 열린 병에서 무슨 액첸가 흘러나오고있었다. 나는 그것이 그가 사진 씻을때 쓰는 약인것을 알았다. 그외에도 다른 물건도 나 뒹굴고있었다. 내릴막이였으니깐..
문득 저쪽 옆에서 쓰러진 그를 보았다.난 그를 부르며 울먹거리며 그쪽으로 달렸다.
난 틀림없이 그를 안았을것이다.
근데 그때 난 꿈을 깼다. 눈 뜨니 새벽 세시 25분이다.
꿈이 어쩜 이 처럼 절실할가? 생생할가? 울고싶을만큼 난 그를 념려할가? 그가 너무 좋은 사람이여서 그런가부다…
왜서 그를 보았을가? 꿈에서조차 그렇게 실수 하나 없이 우아한 사람….,지금쯤 그는 어떻게 지내고있을가!
창밖으로 바람이 나무잎을 흔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움직이는것의 실체

첫눈이 내리는 날, 그는 내곁에 없었다.나는 혼자 밤 거리를 거닐고있었다.그를 아련히 잊어하다가도 첫눈을 대하는 날이면 난 어김없이 그를 그리워하군했다.근데 연락이 끊겼다.
그렇게 첫눈의 도래를 한번, 두번, 세번을 혼자 맞이할때즈음, 이상한 감각이 내 머리속을 훑고 지나갔다.
왜서 그의 와이프는 긴긴 7년이란 시간을 갈라져있었으면서도 오랜만에 어쩌다 집에 와서 겨우 보름만 체류하고 간걸가? 왜서 애까지 데리고 간걸가? 혹 리혼 수속 밟으러 온게 아니였을가!
내 사유가 그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자 나는 남자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갔다.그 그리움은 계절이 깊어가면 점점 짙어가는 나무잎의 색체처럼, 점점 깊어갔다.련락을 해야 했다. 확인해야 했다.
남자의 한국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고객님은 사정으로 이 번호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록음을 풀어놓는 감정이 제외된 녀직원의 소리가 들려온다.이 선뜻함이라니…
이번에는 남자가 중국있을때 사용하던 핸드폰번호를 눌렀다.
“쎄이 야?”
쨍쨍한 중국말이 귀를 진동한다.
“뚜이부치,따 춰라.”
나는 맥없이 전화를 놓아버렸다.련락할 방법이 없다.나는 갑자기 전에 남자의 한멜을 내가 등록해줬던 생각이 났고 그때 비밀번호를 남자의 집 전화번호로 했던 생각이 갑자기 났다.헌데 그 번호가 생각이 날듯하면서도 안났다.어디다 적어라도 두었을것을!
기묘한 생각이 언뜻 나서, 나의 한멜 우편함에서 나는 남자가 나에게 보냈던 받은 편지제목을 하나 찾아서 펼쳐보려했다. 근데, 사용이 자동정지가 되여있었다.
너무 오래간 사용하지 않아 사용정지가 돼버린것이다.나와 련락이 끊어져서 메일함을 사용하지 않은것인지, 아니면 원체 컴맹인 남자가, 거기에 또 나를 제외하고 메일을 주고받을 사람이 없어서였는지, 암튼 남자는 나에게 부탁해서 그렇게 내가 짜증나게 등록해준 한멜편지함을 사용이 불가하게 만들어버렸다.
어쩜, 인제 다시는 남자와 련락할수 없다는 막연함이 가슴밑바닥에서 스멀스멀 연기처럼 차올라왔다.그냥 련락이 되면 남자가 진짜 싱글인지 아닌지만 확인하고싶었다. 인제와서 그가 가능하면 혼자사는 남자라는 느낌은 그처럼 강하게 날 휩싸오고있었다.
그러다가 참 오램만에 그동안 잊고있던 챗방에 들어섰다.다른 사람과 심드렁하니 대화를 시작한지 오분이 될가말가 할즈음, 나는 가을사나이란 아이디가 뜨는것을 보았다.그 아이디를 보는 순간 내 마음은 두서를 잃었다. 그 남자의 아이디가 가을사나이였었다.
나는 바삐 원래 하던 대화를 끝냈다.그리고 남자가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렸다.
한창 기다려도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기다리다 못해 나는 관습을 깨고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바다에 돌 던진 격이였다.대구조차 없다.혹 그 남자의 아이디로 친구나 혹은 다른 사람이 올랐단 말인가? 그것도 불가능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전 그 사람이 아닙니다 하고 간단한 설명은 할텐데.
남자는 나가지도 않고 그 자리에 있으면서 날 무시하고있었다.
“안녕? 오빠, 나란 말이야, 경희를 몰라?”
“미안했어. 이렇게 사과할게.”
“사실 나 오빠를 좋아했어, 근데 오빠는 가정 있는 사람이잖아,결과가 없는것이 뻔하잖아, 그래서 멀리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잖아.”
그래도 묵묵부답.
“오빠, 단단히 삐졌구나.맘 좀 풀면 안돼? 오빠, 그냥 하나만 대답해줘, 그럼 내가 더 묻지 않고 물러갈게. 오빠 아내 왜서 미국갔다 칠년만에 돌아와서 보름만 체류하고 그냥 간거지? 그때 와서 둘의 사이 정리한거 맞어? 나 그런 느낌 갑자기 들어서 그래.”
“그런거라면 그냥 대답않고 가만있어. 아니면 대답해야 해.”
침묵.
내 예감은 맞았었다.
“오빠, 내가 어찌해야 오빠 맘속의 얼음덩어리가 녹을수 있을가?어떻게 사죄할가? 신문에 공개사과를 할가, 아니면 직장이고 뭐고 다 버리고 당금 한국으로 오빠 찾아갈가?”
그래도 묵묵부답.
나는 자제력을 잃어갔다.
“좋아, 용서안한다는거지? “
그래도 말이 없다.
“나 남편이 돌아가고 혼자 산지 사년철 잡는다.당초 오빠도 혼자인줄 알았더면 나 절대 오빠랑 멀어지는 일은 없었을거야. ”
“안믿어? 좋아! 나 인제 오빠앞에 나타나는 일 없을테니까, 그리 알아!”
나는 안녕히란 말도 없이 내려버렸다.아니, 내리기 전에 십분쯤은 기다렸었다. 근데 그는 그냥 까딱 말이 없었다.
그것으로 난 남자의 마음이 어느만치 얼어들었댔는지 실감했다.얼마나 상처를 받앗을가.
깊은 밤, 자리에 누워서 답답한 가슴 쥐여뜯고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오래 울리다가 소리가 멈춘다.그러다가 잠간후 또다시 울린다. 나는 짜증이 나서 와락 잡아다가 확 꺼버렸다.
밤에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얼마나 소중한 사람인데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을가.이슬비처럼 나를 차분히 적셨던 사람이 아니였던가. 숲처럼 청신하고 맑은 느낌을 주던 사람이 아니였던가! 지금 보면 틀림없이 내 스타일지 않는가!
아침에 깨여나니 흐리터분하다. 머리가 무겁다.출근시간과는 아직도 삼십분이나 있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쥐여 가방에 넣으려다가 꺼져있기에 켜보았다. 들어온 전화번호를 보는 순간, 난 놀랐다.한국전화가 틀림없다. 카드로 치면 이런 번호가 가능하다.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으로 그는 틀림없이 남자였다. 한국에서 올 전화라면 그밖에 없다.나는 화들짝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어찌하나?
내가 어쩔바를 몰라 헤매일때, 핸드폰이 울렸다. 화들짝 놀라 들여다보니 국제 전화다.
전화는 걸렸는데, 그는 말이 없다.나 역시 가슴이 두근거려 말을 못했다.소리를 내면 울것 같았다.
그래도 맘 가라앉히고 내가 먼저 말을 했다.
<<왜?>>
약간 턻은 소리로.
<<미안해.>>
전화선을 타고 귀에 익숙한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가 내 가슴에 울린다.
<<뭐가 미안한데?>>
나는 많이 진정돼가고있었다.
<<그냥.>>
역시 차분한 목소리다.그의 마음도 차분할가?
미안하다면서 왜 미안한지를 모르는 남자,아니 모른척 하는 남자, 어쩜  말하기 싫어하는 남자, 미안하기는 내가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나는 끝내 원래의 나로 돌아와서 역시 부드러운 소리로 가슴에서 우러러 나는 말을 했다.
<<미안해, 오빠!>>
그말은 목구멍을 나와 공기와 접촉하고나서는 울음소리로 변했다.그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먼먼 길을 돌아왔는가!
                                2010년9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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