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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 노래는 레드(紅色)

  • 전경업
  • 조회 5476
  • 회원시평
  • 2006.06.26 12:24
생명, 그 노래는 레드(紅色)
 - 김혁 장편소설"마마꽃, 응달에 피다"가 말하는 성장과 그 허무를 두고
                                                                  전경업

이렇게 독자들은 추락했다.
마치도 매의 발톱에 잡혔다 다시 천적(天敵)이 와글대는 황량한 벌판으로 떨어진 병아리 마냥 그 시대로 떨어졌다.
그리고 전날의 기억을 전생 마냥 아득히 잊고, 훗날의 희망을 내세 마냥 묘연하게 조차 상상할 여지도 없이 그 시대에 뛰어 들었다.
"어둠에서 벗어나려 종 주먹을 쥐고 달리는 아이"들, 우리는 방황과 허무 속을 헤매던 우리의 어제 날 모습을 김혁의 "마마꽃 응달에 피다"(“장백산” 2003년~ 2004년)에서 생생하게 재생해 볼 수 있으며 그 시대가 우리들의 신상에 접목한 세포핵이 확산하는 모습을 감지하고 시대와 개체 접전의 메커니즘으로 우리들에게 가져다주는 풍성한 쓸쓸함을 만끽한다.    작품은 작가의 자서전적 성격을 충분히 띠고 있다. 타닥타닥, 회구(懷舊)를 담아 두드리는 키보드의 절주와 더불어 독자들은 작가가 마련한 "타임박스"를 타고 시간을 거슬러 붉은 색으로 란무했던 광란의 한 시대를 려행한다.
 
                        망각된 사회의 성장

작가가 분석하다시피 60년대로부터 70년대까지 해일처럼 중국의 대지를 휩쓸었던 문화대혁명은 그 인류사상에서 전후무후한  특수한 성격으로 하여 여느 제재보다 풍부한 창작의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 이 시대에 대한 재확인은 때 지난 것이 아니며 력사를 소급하는 견지에서 볼 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와 중후(重厚)감을 갖고 있다고 본다.
문화대혁명에 대해 반영한 글은 “상처문학”이라는 하나의 류파를 생성시킬 정도로 많이 나왔다. 분노가 만들어낸 그 류파의 의의와 가치에 대해 문단은 이미 높은 평점을 주었다. 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볼 때 허다한 이 제재의 작품들은  개인의 불우한 체험과 수난사로부터 주관적 색채가 너무 짙게 배여 있다. 청일 색으로 항의와 의분에 넘쳐 마치 “공소문”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력사에 대한 판단이 개인의 단순한 정감으로 대체 되여 나온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이 제재의 도식화를 경향을 보였다
문화대혁명 박물관을 세우려 적극 추진했던 중국문단의 원로 파금 선생은 문화대혁명에 관한 진정 좋은 작품이 산출되려면 수난자뿐만이 아니라 그 2세 3세가 써야 한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오늘의 문화혁명제재의 열독자는 단 문화대혁명의 경력자뿐이 아니다. 때문에 오늘의 새로워지고 바뀌여진 심미관과 력사관으로 어제를 뒤돌아보는 작업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작가는 재래의 문화혁명제재를 다룬 동류소설과는 완연 다른 참신한 기법으로 한 소년의 성장을 통하여 인권이 유린된 어두운 력사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인류의 고난에 대한 련민을 보였으며 그 특정된 환경 속에 인간의 변형된 심태의 궤적을 진맥하려 했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한 무리 악동들의 지극히 비도덕적인 짓거리의 련속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오로지 하나의 "충성"으로 깃발을 휘날리며 노도같이 달렸던 시대, 그들은 한 무리 반역자들이었다. 목적이 없고, 질서가 없는 무의미한 시대를 일탈과 폭력으로 배반했다.
이들은 사회 주류와 유리된 한 무리이다.
친어머니와 친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나" 김찬혁, 두상(頭狀)이 크고 그만큼 생각 많고 감성이 섬세한 "나"는 어느 날 가출하여 "망나니"무리로 이전하게 된다. "똥파리", "회충", "림표" 등 이상한 별호를 가진 부랑배들과 섞이게 되며 거기서 러시아와 조선족 혈통이 반반인  "짜그배 누님", 그리고 촬영을 사랑하는 "홍상청 형님"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가운데 "귀신의 집"에서 사는 "마스크귀신"을 만나게 되고 또 현성의 악명 높은 "마가네 형제"와 "사마귀"무리를 만나게 되고 세력쟁투에서 실세한 "똥파리"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또 그 사이 사이에 사춘기의 안목으로 짜그배누님"에게 반하게되고, "짜그배누님"과 "똥파리", "상철형님" 사이의 삼각관계를 목격하게 되며 세상에 대해 희미하나마 눈을 뜨게 된다.
20세기 나치스의 폭행과 비견된다는 "문화대혁명" 너무나도 풍부한 내용으로 텅 빈 시대였다. 그러나, 시대야 비었든지, 가득 찼든지 인간은 자라나기 마련이요, 생명은 각자 나름대로의 가장 의미 있고 자기에게 알 맞는 방식으로 자기의 생명진로를 계속하기 마련이다. 개성과 관용과 성장과 생명개체를 말살한 시대, "충성"이라는 하나의 모드로 분식된 세상에서도 개체의 생명은 끈질긴 삶의 힘으로 자기의 진로를 계속한다.
"똥파리"무리나 "사마귀"무리들은 모두 이런저런 원인으로 주류사회로부터 배척을 받은 무리들이요, 유리된 무리들이다. 그들을 어른들 세계에서 관개(灌漑)된 뒤틀린 가치관을 주입 받았다. 그 변형된 가치관 때문에 그들은 한결같이 삐여져 나가며 지어 갖가지 악행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해방군에 참가하지 못한 군대 콤플렉스를 가진 "똥파리"는 똥파리대로 싸움만 일삼고, 녀자의 사랑이 결여된 김표는 김표대로 남들의 정사를 훔쳐보고, 이붓아버지가 싫은 나는 "나"는 나대로 가정에서 뛰쳐나온다. 그들의 악취미는 서로 합세 되여  자전거도 훔치고 배우의 무용신도 훔치고, 정신질환자의 물건도 빼앗고  모주석저작 암기표병인 "앵무새"를 빈집에 가두어 넣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의 허무와 황당으로 점철된 성장과정에서 우리는 문화대혁명이라는 인류력사에 전후무후했던 어두운 음영의 연대에 대해 온몸으로 감지할 수 있게 된다.
한 인간의 성장은 사회가 그 인간을 어떻게 대하든 관계없이 자기의 진로를 계속하는 것이다. 사회가 포옹해 주든지, 사회가 배척하든지, 사회가 기시하든지 관계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성장을 계속하는 것이다. 젊고 개체적인 생명의 팽배하는 생리와 정감이 뒤틀린 세월 속에 내쳐짐으로 하여 비롯된 불안과 미쳐난 행위가 전반 소설에서 화자의 심리의 흐름으로 관통된다.
하나의 인간생명 개체는 사회라는 이 거대한 바위틈에 자라면서 환경에 따라 자기의 방식을 택하고 자기의 생명을 가장 적절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작품에서 "나"의 첫 번째 이붓아버지가 악명 높은 "5.7간부학교"에 잡혀가 고역을 치른  빌미로 세상 뜸과 함께 새로운 이붓아버지가 "내"가 다니는 학교의 "공인선전대"로 들어오게 된다. 가장들로부터 드러나 보이는 사회직위의 불평등(공인선전대인 아버지와 "혁명위원회 주임"인 "체육과대표"의 아버지의 불평등과 계급차이), 그에 따른 학교아이들로부터 오는 조소, 이런 복잡한 가정, 사회 환경들은 자연 "나"를 “정 맞은 못처럼 고부라져” 사회의 한쪽 구석으로 내몰고 있다. 
작중인물들은 거의 모두가 그 당시 정치풍토에 뼈 속까지 물든 가장을 둔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또 그런 환경으로 하여 아이들은 너나없이 “굽은 길“을 택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5.7간부학교"에 가서 죽은 적수 "사마귀"가 거의 비슷한 가정 환경을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수용과 리해가 바로 이런 것들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다.
이런 특이한 시대환경은 너무나도 메말랐고, 성장과정의 "나"와 나의 무리들, 그리고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은 문화의 사막에서 헤매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문화의 감로수가 없는 "사막"은 이들을 병적인 인간으로 탈변하게 했다.
포악하기 짝이 없는 성미를 가졌고 여태까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똥파리"가 영화 "꽃 파는 처녀"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용변을 보다말고 얼굴을 싸쥐고 우는  장면이 바로 이런 상황을 생동하고도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다.
풍요로운 사회와 문화의 영양이 수요되는 성장과정과 이와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메마른 사회환경은 결국 허무하고 변형된 인간들과 그 세대를 배출하고 만 것이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우리문단에서 흔치 않는 성장장편소설이다. 성장소설을 첫 장편의 텍스트로 잡은 김혁의 소설에서 우리는 작가의 남다른 감수성과 이 풍부한 령역의 선택이 여태껏 결여된 우리 문단의 둔감을 느껴볼 수가 있겠다. 작가는 소설의 앞머리에 단 “작가의 말”에서 “전대미문의 대 사변 속에서 사회의 정신적 폭력에 의해 결손 감을 갖고있는 아이들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고 그들의 단순한 시각이 대사변속의 가치관과 부딪치며 나오는 변형된 일상사를 보여주면서 력사의 대사기와 진 모습을 도출하려 했다” 고 창작 의취를 밝혔다. 가독성 짙은 작품이 어찌 보면 그저 렵기적인 에피소드의 라렬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기저에는 성장기 소년의 심리의 궤적이 섬세히 깔려 있어 작품의 맥락을 통합시켜주고 련속성을 부여해 주고 있다.
 전대미문의 병적인 역사시기를 거쳐 성장한 이들은 결국 그 유전인자와도 같은 그 음영의 락인으로 하여 문화대혁명이 결속 된 뒤에도 여전히 자기의 낙인을 벗지 못하고 있다.
문화대혁명 때 사진관의 일개 점원 이였던 "홍상청"은 그후 사진관의 경리가 되였고,  바람둥이로 소문났던 "짜그배누님" 역시 개혁개방 후에는 자기에게 가장 잘 알 맞는 "국제혼인매파"가 되고, 사냥총을 가지고 놀다가 눈에 상처를 입어 시력을 상실한 "김표"는 여전히 자기 신상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맹인안마사"로 되었던 것이다.
소설이 말하는 바, 인간은 사회가 자기를 어떻게 대하든 관계없이 자기의 성장진로를 계속한다, 그러나 그 성장과정에 처했던 사회환경은 결국 생명개체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역시 김혁 소설가가 성장소설에서 념두에 둔 내용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건의 진술방식과 인물형상부각에 대한 반란

많은 생동한 인물형상을 주조해 냈던 김혁은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인물형상 부각을 회피하고 있다. 회피가 아니라 소설자체의 발전추세에 따라 부각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작중의 인물이 작가의 의도에 의한 "성장"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의 "성장"을 하도록 방임하면서 다만 자기의 이야기와 정감을 계속 풀이해 나가기만 했던 것이다. 하여 작중인물들은 바로 우리 곁에 와 있게 되고, 살아 숨쉬게 되고, 원시생활의 자연으로 회귀하여 독립적인 "인간"으로 풍만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김혁은 이번 작품에서 작중인물들을 자기 사상표출의 도구로 삼지 않고, 그들을 하나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해 줌으로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의 발전을 가져오도록 하고 있으며, 또 그럼으로 매 하나의 인물들은 모두 자기의 살아 숨쉬는 개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은 것이다.
작품에서는 작중인물의 외표에 대한 묘사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사건의 진술과 "나"의 감각, 다른 친구들의 감각과 표정에서 독자들은 자연 그 인물을 육감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똥파리"의 경우, 그에 대한 묘사는 때 날파람 있게 싸우는 것을 제외하고 상세한 묘사가 거의 없는 듯 하다. 다만 늘 성냥개비로 이빨을 쑤시고 말마디에 마다 “똥” 자를 달아 욕설을 퍼붓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건의 전개와 그 황당한 짓거리들의 속출로부터 독자들은 "똥파리"에 대해 눈앞에 마주서서 보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이로서 "똥파리"는 작가가 자기의 의도를 대변하는 도구가 아닌, 문단에서 그 플롯을 찾기 어려운, 이채로운 반면인물로 나타난 것이다.
어찌 보면 김혁은 인물묘사를 거부하는 듯하다. 피뜩피뜩 스쳐지나가며 한 두 마디에 그치고 만다. 지어 소름이 끼치는 "귀신의 집"에 있는 "마스크귀신"에 대한 묘사도 별로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사건 진술을 통하여 우리는 등꼴에 식은땀이 나도록 공포를 느끼기도 하고, 또 "실눈을 하고 웃었다"는 한 마디에서 그처럼 공포로 떨게하는 "마스크귀신"의 외로움과 괴로움에서 벗어난 마음, 사회가 만들어낸 귀신이 아닌 사람으로 어울리려는 마음가짐을 읽을 수 있고, 한마디 분식도 없지만 콩나물 바가지를 두고 가는 "마스크귀신" 어머니의 행동거지에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삭막한 인정 때문에 목말랐고 아이들이 베푼 작은 인정에 감동하고, 감사해 하느냐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혁은 그 장편소설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이야기"라는, 소설의 가장 근본적인 바탕을 너무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다. 천일야화 같은 흥미 있는 이야기의 흥건한 덩이들이 잘 제련된 언어와 화법 같은 이미지와 함께 어우러지면서 명쾌하게 지속적으로 흐른다. 그 영화각본을 읽는 것 같은  도약적이고 절주 빠른 이야기 방식은 직관적이면서도 핍진하게 독자들을 동란과 미스터리의 30여년 전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따라서 작자와 작품을 이야기만이 아닌 품격(品格)높은 소설작품으로, 이야기꾼만이 아닌 재치 있는 소설가로 격상시키고 있다.
김혁의 첫 장편이지만 우리는 다산작가로 많은 인물을 만들던 작자가 현학적으로 인물을 부각하려는 흔적을 볼 수 없다. 작중 인물들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자라고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작품 속에서 자기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으며 자기의 성격발전을 하고 있다.
이런 "성장"과 발전은 지어 소설이 다 보고 난 다음에도 독자들의 생활과 머리 속에서 계속 하게 되는 것이다. 하여 독자만 소설 속의 인물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 속의 인물 역시 독자와 함께 살아 숨쉬게 되고, 현실의 생활 속에서 자기의 "성장"과 발전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어스름이 보이는 족속의 락인

  작품의 행간에서 우리는 조선족이라는 우리 족속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고, 중국이라는 이 크나큰 땅덩이, 가렬처절한 역사와 파란만장한 수난사를 겪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조선족들의 낙인을 찾아볼 수 있기도 하다.
 작가가 태여나 자라난 룡정의 풍경이 작품의 곳곳에서 극적인 사건들의 무대로 펼쳐진다. 룡정 지명기원우물, 해란강, 말발굽 산, 대포 산, 령수 탑, 그리고 그에 따른 유래와 전설들...
불확실한 연대가 배태한 불확실성을 가진 인물 역시 여느 작품에서 볼 수 없는 인물 형상들이다.
사춘기 "나"의 마음을 그처럼 얽어매고, 그를 위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3층에서 뛰어내리면서 "빨간 무용신"을 얻어주었던 "짜그배 누님", 어떤 사람들은 누님이 그의 어머니가 모스크바에 갔을 때 러시아사람과 "바람을 피워" 난 딸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녀의 어머니와 중국에서 함께 살다가 계선을 갈라 리혼을 한 한족사이에 태어났다고 한다. 작자는 그 출신의 수수께끼를 풀어 보이지 않고 있다. 작자는 이를 독자들에게 맡겨버린 것이다. 그럼으로 하여 독자들의 상상의 공간은 더 커지게 되고, "짜그배 누님"은 작자 의사 표달의 도구가 아닌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독자들 앞에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그보다 문제는 그녀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바로, 그 "짜그배 누님"의 신세가 바로 우리 조선족들의 운명의 축소판인데 있는 것이다.
근대 이민을 시작해서부터 우리의 이민 1, 2세들은 조선반도를 떠나 러시아 연해주나 당시 "만주"라고 불렸던 중국 동북으로 이주를 했다. 그 과정에 갖은 고통을 겪기도 했고  많은 꿈을 키우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우리의 고향이 조선인지, 아니면 중국인지, 러시아인지를 모르는 때도 있었다. 어쩌면 러시아 사람의 딸인지 중국사람의 딸인지를 모를 "짜그배누님"의 신세가 바로 이를 말해주는 듯 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친어머니가 누구인지는 더구나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를 놀려주는 체육과대표의 입을 통해 자기가 "주어온"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던져버린 아기가 떠있는 늪에서 자기의 신상에 대해 어렴풋이 깨쳐 알게된 것이다.
소설은 특정된 년대에 내쳐진 우리 민족의 생존환경과 그 심태에 대해 잘 파악을 한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중국에서 발생된 대사변속에 처한 소수민족의 운명과 그 양태, 이는 작품의 폭을 확장시켰을 뿐더러 더 많은 독자 권을 포섭하고 있다. 하면서 작품은 우리만의 빛깔로 중국문단의 문화대혁명수작에 비해 농도와 줄기가 다르게 읽혀지게 될 것이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를 접하면 누구나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속도감 , 그리고 읽고 난 다음에도 재미나게 음미해보는 매력을 갖고 있다. 미풍이 초원을 스쳐 지나듯 약간의 손놀림으로 흐르는 인물과 환경에 대한 묘사, 그러면서도 거칠게 흐르지 않고 섬세한 감각과 확실한 전달을 주는 방식, 지나간 년대를 반영했지만 현대인들에게도 손쉽게 읽힐 수 있는 활달한 문체의 구성, 지나간 한 년대와 그 시대 인물군상의 특점에 꼭 걸 맞는 묘술(描述)들이 작품 전체에서 점진적으로 자유분방하게 개인의 소사(小事)로부터 사회의 대사를 아우르면서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주를 마쳐도 여음을 울리는 악기처럼 독자들의 머리 속에 머무는, 머물러서 떠나지 않는 작품, 여기서 작가의 작품을 다루는 높은 기교와 깊이를 감지할 수 있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여러모로 최근 몇 년간 우리 문단의 장편소설 중 수작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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