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영혼의 화원, 나의 혈친들 1 > 문학(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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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영혼의 화원, 나의 혈친들 1

  • 전경업
  • 조회 6925
  • 기타
  • 2005.10.02 22:58
영혼의 화원- 나의 혈친들

별로 하는 일도 없이 부모를 멀리 떠나서 오래 있다보니 나중엔 효도도 못하고 사업도 바로 못해 결국 고독뿐 남을 것이 없을 번했는데 다행이라고 할까? 뜻밖의 사연으로 자유의 몸이 되어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숨막히는 도시의 오염된 공기와 팽팽한 대인관계에서 떠난 마음은 홀가분하기만 했다. 하여 나의 메말랐던 영혼은 그들의 몸에서 새로운 양분을 섭취하여 내 생의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나의 혈친, 그들은 내 방황하는 영혼의 화원이었다.


아버지

마을 좌상이신 아버지는 이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신다. 어머니와 마을의 몇 살 지하이신 한 후배 되는 바깥노인이 와서 동무해주시곤 했다. 그런데 며칠 아버지 곁에 있으면서 아버지와 그 바깥노인의 관계를 알고 나서 나는 어지간히 놀랬다.

그 바깥노인은 이전에 부친께서 당신이 다시 그와 한 자리에 앉으면 성을 갈겠다던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대약진(大躍進, 큰 걸음으로 뛰어 전진한다는 뜻, 중국 1959~1961년 사이에 있었던 물질적인 모든 풍요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공산주의'를 몇 십 년 사이에 실현한다고 허풍을 쳤던 정치운동. 이 정치운동에 자연재해까지 곁들어 수 없이 많은 백성들이 굶어죽기도 했다)》 때 촌에서 대대장 직을 맡았었는데 그 때 아버지는 마을의 간부들이 배를 곯으며 쉴새 없이 일하면서 고생하는 것을 보다 못해 남몰래 촌 식당의 음식을 집에 가져다 밤중에 촌 간부들에게 대접하고 일을 시켰는데 그걸 문화대혁명 때 누군가 아버지는 《대약진》때 촌의 양식을 훔쳤다고 고발을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지금 매일 아버지를 동무해주고 있는 그 바깥노인이라는 것을 썩 후에야 아버지는 알게 되었던 것이다.

《대약진》때 그 바깥노인도 촌 간부여서 음식을 같이 먹었는데 함께 먹고도 아버지를 탐오를 했다고 고발을 했으니 아버지가 다시 보지 않겠다고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원수였던 두 사람이 지금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스스럼없이 동서고금의 이야기를 서로 나눈다. 아마도 인생의 종착역을 앞두고 과거의 모든 것을 서로 양해를 해주고 또 서로를 용서했는가부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아버지께 탄복이 갔다. 이쯤이면 아버지는 생사의 계선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겠다. 비록 무식한 농민이라고는 하지만 아버지는 무엇이 인생의 소중함인지를 아시고 용서의 뜻은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용서하실 줄은 아시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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