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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미술가 지승원

  • 김영춘
  • 조회 7343
  • 기타
  • 2005.10.07 22:47
<김영춘이 만난 사람>15               

                   
                              연변  미술가  지승원



    75세의 고령임에도 만강의 열정으로 <연변인민의 항일투쟁사>를 생동하게 그려낸 지승원 미술가는 주덕해 기념비, 연변혁명렬사기념비 등의 조형설계를 하신 분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처럼 진실하고 말쑥한 삶을 살아오셨다.

    연변에선 최초로 련환화를 그린 지승원 화백은 일찍 1982년도에 석희만, 김영호, 리부일, 전동식, 장홍을 등 화가들과 함께 중국미술가협회 회원으로 된 연변미술계의 원로였다. 연변에선 여태껏 유화를 중시했는데 그런 환경에서도 끈질기게 조선화, 중국화,  만화 , 민속화, 서예 등 여러가지 쟝르를 골고루 섭렵해온 다재다능한 미술가이다.
 
    지승원 화백은1946년부터 1969년까지 23년동안 연변일보사에서 사업할 땐 1950년대를 대표할수 있는 출판화가로 이름났고 1970년부터 1991년 퇴직할 때까지 20년동안 연변박물관에서 사업할 땐 각종 전시회의 전람설계를 책임지고 주덕해기념비, 혁명렬사기념비 등의 조형설계를 맡기도 했다.

      지승원 화백과 함께 연변일보사에서 사업한적이 있는 분들은 모두 지승원 선생님을 <연변일보>에 공헌이 많은 사람,  아름다운 노력가라고 했다. 하지만 지승원 화백은 자신을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벌써 16살 때 연변일보의 전신이였던 길동일보사의 통신원으로 일하게 되였는데 짬짬이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다.  당시 주필이였던 김평동지가 이 사실을 알고 양성전도가 있다면서 일본 각자로동자의 학도로 맡겨 각자도 배우고 그림그리기도 배우게 하였다. 지승원화백은 너무 기뻤다. 그는 고기가 물을 만난듯 신문에 많이 사용되는 그림 배우기에 열중하였는데 마침내 1947년 , 첫 미술작품 <봄맞이>을 <길동일보>에 발표하였다.

      체계적인 미술공부도 없이 자신의 피타는 노력과 정성으로 그려낸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게 된것으로 하여 지승원화백은 무한한 기쁨을 느꼈다.  1948년 4월 1일에 연변일보가 정식으로 창간되였고 일본기술자도 길림신문사로 조동해가게 되자 지승원 화백은 <연변일보라>는 신문의 <눈>을 새기는 일로부터 삽화, 만화, 서예, 선전화 등 일에 이르기까지 신문사 미술원의 일이라면 다 하였다. 이때 창작한30폭이나 되는 련속화 <농민가운데 새인물---김준희>는 그의 처녀작이면서 대표작이였다.

      일부 젊은 화가들은 순수예술을 하느라 민족이고 대중이고 멀리하는데 선생님의 풍격은 언제나 대중과 호흡을 함께하는 사실주의였다. 민족을 못떠나고 사회를 못떠나고 대중을 못떠나는 지승원화백의 사명감은 그로 하여금 진실성과 전형성을 바탕으로 하는 사실주의라는 아름다운 틀에 박히게 하였다. 하기에 순수예술을 추구한다며 사회나 대중을 떠나 예술의 상아탑속에 갇힌 외로운 추상파화가들과는 달리 지승원화백의 작품은 언제나 농민들이나 로동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야생의 민들레처럼 자연스럽게 사회와 민중들속에 젖어들어 있었다.

        청년기분일 때도 수채화나 유화같은것도 그리고싶었지만 <연변일보>에서 사업을 하니 신문에 많이 사용되는 그림에만 전념했고 연변박물관에서 사업할 땐 행정사업을 하느라고 개인창작을 할 시간과 정력이 없어 무척 아쉬웠던 지승원 선생님은 퇴직한후에 마음껏 창작할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단다.
우리가 조그만 아이적에 즐겨보던 그림책 <다시 찾은 피리>랑 그리던 지승원 화백은 퇴직후에 백두산의 춘하추동을 그린 백두산8경, 우리 민족의 민속놀이를 그린 민속화를 포함한 수많은 그림들을 창작해냈다. 지난해부턴 또 <그림으로 본 연변조선족 인민들의 항일투쟁사>를 창작하여 올해 반파쑈승리60주년기념 그림전시회를 열기에 이른것이다.

    제3기 연변미술가협회 부주석이고 제4기 연변미술가협회 고문이며 중국미술가협회 회원인 지승원선생님은 연변박물관에서 사업하면서 연변혁명렬사에 대해 깊이 연구, 드디어 2005년 <그림으로 본 항일투쟁사>를 창작해서 전람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그린 많은 단폭그림은 성, 주 국가급 그림전에 전시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연길감옥 탈옥 기념비와 청산리대첩기념비의 조형설계도 지승원 선생님의 그림을 본딴것이다.

    지승원 화백의 그림의 예술특점은 소묘기초가 튼튼하고 간결미가 있으며 선은 정확하고 미끈하고 인물조형이 단정하고 우아했다. 그의 매폭의 그림은 전반 화면의 배치와 공간처리, 형상대비와 화면균형은 화가의 고의적인 형식처리가 없이 생활법칙과 자연법칙에 어긋나지 않은 진실감을 사람들에게 주고있다.  이 모든것은 그의 창작방법과 창작사상에서 사실주의 진실성과 전형성을 바탕으로 한데 있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 <농민속에서 나온 새인물---김준희>는 제1회길림성미술전시회에서 1등상을 수상했으며 전국미술전시회에도 입선되였다. 그리고 중국화 <봄>, <탈춤> 등 여러 작품은 성급이상의 전시회에 참가하였으며 <봄>은 중국민족문화박람회미술서예작품전시회에 전시하게 되였으며 <탈춤>은 <중화민족미술서예예술전>에서 창작상을 받았다. 그리고 작품 <소방울소리>, <바라지>, <농악무>,<봄제비> , <풍년에 닭무리> 등 작품은 미국, 일본, 한국 등 국제교류그림전시회에서 큰 호편을 받기도 하였다. 

    지승원 화백의 그림에는 언제나 뒤에서 묵묵히 뒷바라지를 해준 안해의 뒤모습도 있고 재롱둥이 손자, 손녀의 웃음소리도 담겨있고 네 자식에 네 손군들이 함께 어울려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가정을 가꿔가는 삶의 즐거움이 그려있다. 그리고 우리 연변조선족의 력사와 민속이 숨쉬고 있다. 그것은 연변에서 태여나 연변에서 살면서 연변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한 연변토배기화가만이 그려낼수 있는 그림이기때문이다.

    가장 민족적인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다. 지승원 화백의 소원대로 그의 작품전시회가 하루빨리 열려 연변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하고 밝은 미적향수를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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