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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계절은 소리없이 다가오나 봅니다

  • 김경희
  • 조회 7036
  • 기타
  • 2006.08.26 15:49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소슬해졌습니다.
내놓은 정갱이가 시린 느낌이 올 정도로 여름은 서서이 물러  가고 가을이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나 봅니다.
문득 아침해살 아래 콩크리트 길에 하얗게 번뜩이는 유리가루  같은 것들이 눈 뿌리를 자극합니다. 좀 더 찬히 보니 내가 선 주위의 길 바닥에도 있습니다.
아, 그건 유리 가루가 아니고 곤충의 시체들이였습니다.
무슨 나는 벌레들이 이렇게 많이 죽었을 가요? 내 놀라움에 남편은 하루살이겠지 하고 덤덤해 합니다. 하루살이가 이렇게 큰지 난 알수가 없습니다. 하루살이라 하기엔 넘 큰 날벌레들의 시체가 그렇게 눈가루를 뿌린 듯이 콩크리트 바닥에 쫙 펼쳐져있는 모습은 바라보는 시선이 젖어 들게 합니다. 아무리 날벌레라도 그 생명의 취약함 앞에서  가슴이 서늘해지기만 합니다.
올해에 들어 와서 첨 느껴보는 시린 바람입니다.
우리의 본의 와는 상관 없이 오는 계절 앞에서 숙연함을 느낍니다.
여름의 공기가 아직 식지 않았는데 서느러운 공기가 우릴 향해 휩싸여 옵니다.
선뜩 함을 느끼며 새벽 시장으로 혼자 산책 삼아 천천히 가고 있는데, 저 앞에서 익숙한 얼굴이 인사를 해옵니다.
그렇게 입고 춥지 않나요?
그냥 짧은 치마 아래로 내놓은 정갱이가 시린 느낌이 올 정도고 춥단 느낌 까진 아직 없습니다.
근데 대방은 완연한 가을 차림 이네요.
춥지 않아요, 그 말에서 따뜻 함을 느끼면서도 또 난 아직 젊었 음을 절실히 느낍니다.
난 아직 춥지 않는데 저분은 벌써 춥나 봅니다.
그 분은 저보다 몇살 이상인 남성 이랍니다. 얼마 전에 불치의 병이란 진단을 받은 분, 인제 그분에게 가을은 얼마나 남아 있을가요? 이 가을이 그분은 얼마나 추울가요?얼마나 추우면 나에게 춥지 않냐구 관심을 보이고있을 가요?
스무해를 함께 일해온 동료,인제 살아 있을 나날을 시간으로 재일수 있는 그에게, 내가 해줄수 있는건 무얼 가요?
건강이 괜찮습니까 하고 묻는건 그에게 인젠 아무런 위안도 안되는 물음 이겠죠? 남은 시간이 얼마 안되는 걸 알면 서도 아무 일도 없는 듯 그분은 드문히 직장에도 나오고 사람을 보면 미소도 짓고 그럽니다.난 속으로 눈물을 지으면서도 마주 환하게 웃어 드립니다.
어떤 이들은 혀를 찹니다. 얼굴이 저렇게 못쓰게 되는데 직장에 인젠 나오지 말지,보면 안쓰러워 못살겠네. 하지만 전 생각이 틀립니다.속으로 안쓰럽더라도 그분 앞에선 그런 내색을 내면 예의가 아니죠.우리 모두가 그가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를 아무렇지도 않은척 그에게 자연스럽게 대한다면 그 이상 그에게 더 큰 사랑이 없을 줄로 압니다.
그분에겐 훌륭한 아내가 있고 자랑스런 대학생 딸애가 있습니다.그리고 직장엔 그분을 좋아하는 동료들이 많죠. 이 좋은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것을 그분은 어떤 힘으로 받아 들이고 있을 가요.죽음 앞에서 의외로 담담 함을 보이는 그분의 모습이 멋 스럽습니다.
하긴, 날마다 울고 화를 내고 누구를 탓한다고 기적이 일어 나는것도 아닌 바에야, 인제 남은 나날을, 하고 펐던 일을 하고 그리운 이를 만나고 죽음을 위해 초연히 마주할수 있는 일 역시 자기를 위해서 곁 사람을 위해서 모든 보는 사람을 위해서도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 일가요?
그런 그분에게 이 세상의 가장 따뜻한 웃음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가능 하다면 이 가을을 견디고 눈 내리는 겨울을 이겨 진달래 만발한 봄 산을 그에게 보이고 싶습니다.
인제 그에게 내가 해줄 가능한 일은 또 없을 가요? 환한 웃음 말고 또 해줄 일은 없을 가요? 근데 그분에겐 모자라는게 없습니다. 권력도 가져 보았고 저보다도 많이 부유한 분이 랍니다. 그분이 가장 수요하는건 하늘아래 우리 곁에 머무르는 시간을 연장하는 것이겠죠. 생명이란 이름앞에 머리가 숙여지는 시각이겠죠..
아름답게 살아왔던 초라하게 살아왔던 갈때면 한결같이 올때처럼 손에걸 다 내려놓고 그냥 떠나야 하는 줄을, 그리고 아름다움과 추함과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순간이겠죠. 삶과 죽음 앞에 생명체는 한결 같음을, 그리고 우리에게 그처럼 큰 생명이 자연과 우주앞에 얼마나 작고 취약한것인지를, 어찌할수 없는것인지를  시사해주는 시각이겠죠.
산이 있는곳엔  물이 있듯, 살아있는 모든 것은, 아니 삶과 죽음사이에도 어울림은 우리 몸의 보이지 않는 기처럼 숨쉬고있습니다. 떠나는 모습이 초연하고 담담할수 있다는것은 살아온 나날들이 그만큼 아름다웠다는 것일것니다.
소슬한 바람이 페부를 뚫고 지나갑니다.
계절은 이렇게 소리 없이 다가오나 봅니다.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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