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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문화의 몰락 그리고 일견 / 허동식

  • 김영춘
  • 조회 7529
  • 기타
  • 2006.11.19 19:34
중국 시문화의 몰락 그리고 일견 

                    허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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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곁에 동년배 시인이 한분 있다. 언젠가는 열혈남아로서 詩作도 엄청나게 했었고 대학교 詩社의 회장도 지냈으며 지금은 대학교 선생으로 일하는 시인의 시집 한권을 얻어 읽었다. 좀 미안하기는 했지만 나로서는 끝까지 읽어내려갈수가 있는 그런 詩作들은 아니였다.

  시인은 지금은 시창작을 그만두고 소설을 쓴다고 한다. 인터넷에 인기소설을 많이 연재했고 또 출판도 해서 많이 판매되여 돈도 벌었고 동료들로부터 명과 리를 일거량득한 유명인물이라고 부러움을 받으며 산다. 그래서 시집외에도 시인의 소설책도 안받침하여 받았는데  나로서는 읽어내려갈 자신이 없는 소위 대학생생활소설이라  그만 책장에 넣어버렸다. 

  물론 사람마다 흥미가 다르고 사는 재미가 다르겠지만 나는 과거에는 정열적인 순수 문학도였고  소박한 詩情을 너무나도 틀에 째이게 표현하던 (시인의 시에 대한 나의 느낌) 시인이 현재는 독자들의 구미에 따라 소설창작도 아닌 소설<<제작>>을 하는 상업형 작가로 대전환된데 대하여 조금 아쉬움을 느끼면서 그 시인의 문학창작의 대전환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다시 20세기 80년대 말엽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시가 독자들을 많이도 잃어버렸고 중국의 시인들이 어떻게 보면 漫長하기도 한 이 세월을 침묵으로만 대하는 현상을  소위 중국 시문화의 몰락이라 이름짖고 그 현상과 근원에  대하여 좀 생각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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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먼 옛날부터 詩國이였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사용하는 문자가 표현수단이 이미지적인 문자이고 또 유학의 學과 術을 바탕으로 삼은 과거시험제도를 대표로 하는 문화전통의 원인으로 말미암아 음운문이 아주 각광을 받아왔었다. 그래서  중국 전통적인 인테리들의 공부는 시공부가 많았었고 시를 모르면 인테리(士)라고 말할수 없을 정도였다. 따라서 시문화는 관방문화권과 귀족문화권 그리고 인테리문화권만이 아니라 민간문화권에서도 절대적인 중심을 자리매김하여 왔었다.

  중국고전소설의 대작으로 꼽히는 <<홍루몽>>  <<삼국연의>> <<수호전>>도 사실은 명나라 후기부터 시작되는 市井문화권 산물로서 <<이야기 집>>에 평민들이 모여들어 선생의 <<說書>>를 얻어듣던 시대의 이야기 각본에서 기인되였으며  그 시대에는  문학의 高品에 전혀 끼이지도 못했었다.

  중국의 문학적인 목적을 지닌 서사문학은 근대와 현대를 거치면서 서방문화와 서방소설을 접하고 백화문운동을 해서부터 시작된다. 그 뒤에는 파금 전중서를 비롯한 소설 名家들도 많이 나타났고 20세기 30년대로부터 서서히 문학의 서사시대로 진입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문학쟝르형식의 전이과정에서도 중국문학은 시문화와 완벽한 리탈을 한것은 아니다.  深厚한 시문화 우세를 빌어 국난시기와 격변시기에는 詩國 이름에 손상이 없도록 곽말약  애청 등  훌륭한 현대시인들을  배출하였었다.

  당대에 들어서서는 비상시기였던 50년대로부터 70년대 초엽까지는 시를 쓰고 읽는 사람도 많았고 全民이 시를 쓰는 애국운동까지 했었지만  별로 훌륭한 시인들을 낳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70년대 중엽에 발생했던 북경시민들이 천안문광장에 모여 주은래총리를 기념하는 집회와  <<4인방>>을 분쇄하던 사회정치사건을 배경으로 北島를 대표시인로 하는 몽롱시파가가 중국의 시문화사의 또 하나의 크지도 작지도 않는 고봉기를 만들었었다.     

  하지만  80년대말엽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사문학의 상대적인 번영과는 판이하게 시문학은  독자군체가 많이 줄어들고 있으며  점차적으로 중국시인의 사회지위 사회영향 등이  아주 미소해졌다.

  내가 대학을 다닐적에는 문과생은 거지반 시집을 몇권씩은 챙기고 있었는데 요새 우리 회사에 취직하는 대학생들을 보면 태반이 문과생이기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며 집사람 학생들을 보아도 시를 좋아하는 대학생들이 별로 없다. 대학생들마저 시를 별로 읽지를 않는다면 서점의 시집이 잘 팔리지않는다는 문화현상은 리해하기 아주 쉬운 일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볼 때에도 전에는 시를 자별나게 좋아했느데 요새는 시 읽을 기분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시문화현상을 나는 중국시문화의 몰락이라 칭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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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극을 비롯한 중국의 전통적인 희곡들이 거의 박물관에 보존되여 가듯이 중국의 시와 시인도 이제는 자취를 감추어버리는것이 아닐가?

  眼下를 둘러보면 시와 시인은  냉대를 받지만 나의 생각에는 아무것도 아닌 超女들이 크게 환대받고 있으며 또 새로운 문화형식과 문화현상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는것들을 보면서 나는 詩徒로서 조금은 당황감을 다소 지니게된다.

  나는 중국 시문화가 몰락하는 원인은 우선은 문화표현교류수단의 다양화와 중국국민경제의 쾌속적인 공상업화와 국민들의 물질생활의 향상 반면에 내존하는 非적응성이라는 객관원인에서 찾아보고싶다.

  문화가 언어와 문자에만 크게 의뢰하던 과거와는 다르게 과학기술의 발전과 리용에 따라 현시대는 여러가지 표현수단이 중겹으로 사용되는 시대이다. 문자에만 종이에만 매달리던 사유가 현재는 테레비요 인터넷이요 하는  여러가지 현대적인 표현교류수단을 리용하고 있으며 그래서 빠르게 전수하고 빠르게 받아들이고 빠르게 보급되는 소위 快餐문화가 주요한 문화표현교류형식으로 변해감에 따라 언어문자가 아닌 符號들이 조금은 강제적이고 폭력적으로 우리의 사유방식과  문화방식을 영향주고 간섭하고 또 <<신신인류>>계층의 생활방식을 지배한다.따라서 언어문자와 인쇄업을 표현전달수단으로 하는 시문화는 자연히 그 수단의 전통성과 어느 정도의 <<시수양수준>>을 필수로 하는 詩文자아요구로 하여 자연히 독자들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였고 시문화와 시인은 부득불 사회지위의 하락을 맞이하게 된다.

    거의 30년이 되는 중국의 개혁개방은 사실은 선진적인 공상업시대로 돌입하는  초급단계이다 .중국은 기나긴 농경사회를 거치였고 또 수십년에 달하는 침침한 계획경제시대와 가난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공상업화의 물결에 휘말려들었기에 공상업시대의 視角과 높이라는 다른 차원에서 진행하여야 할  전통문화정리를 미처 끝내지 못한 사정이며  어떻게 보며는 버리지말어야 할 문화전통을 많이도 잃으며 또 허겁지겁 버리기도 한다. 중국시문화도 당연히 그 재화를 입고있다. 공상업사회의 혜택을 입어 물질생활수준의 향상되는 반면에 詩徒들을 포함한 중국의 인테리들과 국민들의 삶은 개인소유시간의 소실이 많아졌으며 또 제한된 개인시간소유내에도 가볍게 쉽게 오락적이게도 접촉할수 있는 문화생활형식이 많아졌으므로 자연히 인간의 정서와 사상을 조금은 <<까다롭게>> 발로하는 특징을 지닌 시문화를 버리고 꺼리고 있다. 快餐문화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시간소모가 길고 정서적인 대가를 요구하는 시문화는 상술한 사회변혁조건하에서는 렬세에 처하여있으며 또 공상업사회의 초급단계에 보여지는 중국인테리들과 국민들의 自若이 부족한 非적응성은  중국의 시문화를 더욱 창백하게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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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시인과 시문화는 이러한 현실앞에서 흰기를 내들것은 아니다 . 언어와 문자가 존재하는한, 언어와 문자가 인류사회의 제일 기본적인 교류수단으로 사유수단으로 존재하는한 나는 중국인의 언어와 문자를 통한 사상정서의 발로가 필연코  존재하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시문화의 몰락을 거절하고 중국시가 문화와 문학의 一席을 차지하려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중국 시문화의 남다른 자아반성도 중국시문화 몰락을 저지하는 필수품이 아닌가고 생각한다.

  중국은 詩國이기는 하지만 서구문화권과 비교하면 세계적으로 알려진 시인은 아주 적다. 그 주요한 원인은 중국시를 다른 문자로 옮기는 번역난문제에 있기는 하지만 문화력사적인 시각으로부터 볼 때는  나는 중국시인 인문정신의 폭과 깊이가  제한을 받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거의 당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인테리와 중국시인들의 머리를 지배하여온 사상은 유학사상이다. 물론 중국인테리와 중국시인들이 불교와 도교의 사상영향을 받기는 하였지만 불교사상은 중국식불교사상이였고 도교사상도 많이는 <<개인적인 삶의 경지>> 에만 제한되였다. 서구와 비교하면 중국의 인테리들과 시인들의 인간수업은 <<우국우민>>과 <<治天下>>이라는 리상적인 境界도 있기는 하였지만  인간의 終極價値에 대한 관심과  神과의 대화( 형식적으로는 신령과의 대화로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으로서 인간과의 대화가 아닌가고 생각한다)를 지니지를 못했었다. 따라서 중국의 인테리와 시인들은 종교사상의 洗禮와 인문사상의 대폭팔(서구에서의 문예부흥)을 감지하지 못했으며 인간과 사회를 보는 시각과 높이가 지역성이 짙었고 지방정치색채가 짙었다.

    때문에 중국의 인테리들과 시인들은 줄곳 대인문정신부족증에 깊이 빠져있었었다.  그 대신 중국의 인테리들과 시인들은 전통적으로  지역정치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민감도를 지니고 있었으며 력대적으로는 실리를 추구하여 국가기구와 지배층에 아부도 많이 했고 의뢰도 많이 했으며 반항도 많이 했다. 굴원의 시는 <<楚왕에게 드리는 애원가>>였고 리백 두보를 대표로 하는 당시인들도 자신을 알아주는 좋은 황제를 만나 한자리 하려는 幹谒詩라는 시형식마저 만들었으니 옛날 중국시인들의 내실의 일부분을 알아보기에는 알마춤한 실례라고 생각한다. 중국시인들의 대인문정신부족증은 당대 시인들의 몸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아주 재간둥이였던 곽말약이 문화대혁명 시기에 쓴  詩作과 유명한 시인이였던  애청의 문화대혁명이 금방 끝난 시기에 쓴  詩作들을 읽으면 그러한 陋習의 변형형이 일목료연하게도 잘  보여진다. 

    중국인테리들과 중국시인들의 대인문정신부족증에 대하여 어느 정도 판단이 된다면 , 당대에 있었던 거짓말도 아주 화려하게 꾸미던 중국시인들의 詩作을 읽으면  지금 겪고 있는 중국시문화의 몰락은 리해하기가 쉬운 문화현상이 아닐가? 개혁개방이래 중국국민들의 사유의 폭과 깊이가 엉청난 변화를 가져왔고 심층적으로는 전통보다도 높은 차원의 심미요구와 대인문정신을 기대하고있음은 의심할바가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중국인테리들과 중국시인들이 자아반성은 아주 필요하며 중국도 진정으로 령혼의 자유를 지니고 있는 시인 만들기를 하는 작업이 바로  시문화 부흥의 묘약의 하나가 아닐가 하는 욕심을 생각해본다.



          --글이 좋아서 연우포럼에서 퍼왔습니다.
          허동식 시인님,  다음에는 이 <두만강시회>에도 직접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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