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그곳의 술향기 더욱 그윽하시죠? > 문학(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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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그곳의 술향기 더욱 그윽하시죠?

  • 김영춘
  • 조회 9605
  • 기타
  • 2007.03.23 09:53
아빠, 참으로 오래만에 아빠라고 불러봅니다.

아빠, 그때는 몰랐습니다.
유난히 맑고 아름다운 아빠의 눈에
왜 말못할 애수가 늘 어려있었는지를…
 
그때는 그냥 술 즐겨 마시는 아빠가 남보기가 부끄러웠습니다.
평소에는 언제나 우리에게 웃는 얼굴이고 따뜻한 분이시다가도
술만 마시면
아들 없이 맨딸만 키우는 섭섭함을 토로하시던 아빠,
밤을 새며 이어지는 아빠의 그 술주정이 그때는 그냥 싫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엄마몰래 20전짜리 용돈을 주던 아빠의 그 손은 따스했습니다.
당신의 맏딸이 맨 아들집의 맏아들을 이기고 사범에 붙던 날
그렇게도 기뻐하시던 아빠,
말없이 나가시더니 손목걸이로 된 깜찍하고 예쁜 시계를 사갖고 들어오셔선
<집 떠나 공부 하는데 이것이 필요할거다> 하시던 아빠,
아빠의 그 손은 터실터실했지만 따스했습니다.

아빠,
월급 나오는 날이면 꼭꼭 우리에게 사탕이며 과자를 사다주던 아빠를
내 긴 외태머리 곱게 땋아주며 녀자애는 머리를 잘 건사해야 하느니라 하던 아빠를
잔병이 많으신 우리 엄마를 꼭 살려내야 된다며
너희들에겐 나 없인 살아도 엄마 없으면 안된다며
영양제랑 언제나 엄마에게만 건네주던 아빠를
멀리 떠난 고향이 그리우면 말없이 압록강에 나가 담배를 피우시던 아빠를
형제가 그립고 아들이 그리우면 술로 달래는 아빠를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아빠가 살아계실 때는 몰랐습니다.
아빠의 그 마음을, 아빠의 그 아픔을...
살아생전에 아빠가 그렇게도 즐기시는 술을 많이 사드리지 못한것이
내내 후회됩니다.
아빠, 오늘은 아빠의 생신날,
자그마한 이 글 한편으로 술을 대신하는 이 딸을 용서해주세요.
올해 추석엔 좋은 술 사들고
아빠의 산소에 꼭 찾아갈겁니다.

아빠, 천당에서 잘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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